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399
#닥터 플레이어 399화
지금껏 페닌 치료원의 제자 양성은 체계적이지 못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었다.
체계적인 의료 교육 체계.
즉, 의과대학 설립은 필수였다.
레이몬드는 이번에 재원이 마련되었으니, 의대 설립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초대 학장은 내가 되고, 실제로 교육을 담당한 주임 교수는 한슨으로 해야겠지? 린든은 내가 데리고 다녀야 하니, 안 되고.’
참고로, 린든은 서포트에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환자의 상태를 살필 때는 산전수전 다 겪은 간호사, 수술할 때는 집도의의 눈치를 귀신같이 읽는 눈치 어시스트라고 할까?
그래서 항상 보조 힐러로 늘 린든을 데리고 다니는 걸 선호하는 레이몬드였다.
‘그리고 돈을 더 쓸 게…… 아, 홍보도 필요하니, 일부 금액은 기부금으로 써야겠다.’
기부.
가난뱅이 레이몬드 주제에 무슨 기부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이다.
이제 레이몬드는 전 대륙적인 의료 사업을 펼칠 터.
체계적인 이미지 관리는 필수였다.
‘물론 이미지는 지금도 좋지만, 나 개인의 명성에 의존하는 이미지 관리는 벗어나야 해.’
그래서 체계적으로 수익의 일정 금액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부할 계획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현혹(?)되어 레이몬드를 칭송하게 될 것이고, 그건 고스란히 환자 폭발, 매출 상승, 수익 증대로 이어지리라.
그렇게 돈 쓸 계획을 장황하게 짜둔 레이몬드였다.
다만, 한 가지 문제점을 깨닫고 레이몬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너무…… 지출이 큰가?’
레이몬드는 고민했다.
신나게 지금껏 꿈꾸어왔던 포부를 실천하려고 봤더니, 지출이 예상보다 더 컸다.
‘……왠지 이렇게 하면, 관세 혜택에서 얻는 돈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
하지만 괜찮을 것 같았다.
그에게는 또 다른 황금알을 낳는 거위, 탈모 치료제, 주름 개선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 수익까지 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돈을 그냥 저축하는 게 낫지 않나 싶은 마음도 드는데.’
레이몬드는 침묵했다.
뭔가, 삽질하는 것 같은 기분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 꿈은 고작 평범한 슈퍼 리치가 되는 게 아니니까.’
그래, 혹자는 레이몬드를 어리석다고 할지도 몰랐다.
부자가 되려면, 그냥 지금 벌 돈을 저축하라고. 그러면 충분히 슈퍼 리치가 될 거라고.
하지만 그건 소인배들의 생각일 뿐이었다.
레이몬드의 꿈은 고작 평범한(?) 슈퍼 리치가 아니다.
의술로 대륙 최고의 부자가 되는 것이다.
‘지금 투자하면, 나중에 투자금의 몇십 배로 돈이 굴러들어올 텐데, 투자 안 하는 게 바보지.’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페닌슐라 왕국에는 주식 시장이란 게 있다. 자세히 따지면 조금 더 복잡하지만, 투자 후 주식을 발행한 상단의 손익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투자하기만 하면, 몇십 배의 이득을 볼 주식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전 재산을 털어…… 아니, 영혼을 담보로 맡기고 빚을 져서라도 투자하는 게 정상이다…… 라고 레이몬드는 생각했다.
레이몬드에게는 의료 산업이 그러했으니까.
투자만 하면, 황금알을 낳을 거위가 될 게 눈에 보이니 당연히 투자하는 것이다.
그래서였다.
“1천만 페나 대출입니다, VVVIP 고객님♥♥♥♥♥~”
이런 서류를 마주하게 된 것은.
“…….”
레이몬드는 잠시 침묵했다.
‘……너, 너무 과감했나?’
오랜만에 만난 로즈가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레이몬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하고 있으세요? 어서 사인하지 않으시고요? 이번에도 왕자님만을 위한 ♥♥ 초저리 대출이랍니다.”
착각일까?
로즈의 친절한 음성이 ‘어서 노예 계약서에 사인하세요’라고 들리는 건?
‘여, 역시 1,000만 페나 추가 대출은 너무 많은가?’
레이몬드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여러 돈 벌 구석이 생겼으면서, 이렇게나 어마어마한 대출을 받는 이유는 간단했다.
관세 혜택이든, 탈모 치료제든, 당장 실현된 수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일들이 현금이 되어 들어오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반면, 레이몬드는 마음이 급했다.
‘황도로 떠나기 전, 이 계획들을 착수하고 떠나야 해.’
황도에 가면, 또 다른 일들로 바쁠 것이다.
황도의 일이 마무리된 후 진행하면, 너무 시간이 뒤로 미루어줄 테니, 아예 황위 선출이 시작되기 전인 지금 계획을 시작해 놓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관세 혜택이나, 탈모 치료제 수익이 충분히 쌓이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일단 대출을 받고 일을 진행 후, 나중에 들어올 수익으로 갚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현명한 방법이었다.
‘무엇보다 못 갚을 돈도 아니고. 관세 혜택, 탈모 치료제 수익이 쌓이면 충분히 갚을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왜일까?
선뜻 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본능적인 감이었다.
이 대출 서류에 사인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더구나 로즈 영애의 정체는…….’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무시무시한 철의 제국의 전(前) 황제!
왕자인 그보다 훨씬 높은 신분이었다.
즉, 이 말은 로즈 영애에게는 그의 신분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빚을 못 갚을시 레이몬드에게 어떤 해코지를 할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폐위되었지만, 철의 제국에서 힘을 완전히 잃은 것도 아니고.’
로즈테일 비르문드.
그게 로즈의 본명이었다.
그녀는 수백 년 동안 철의 제국의 황가였던 비르문드 가문의 적녀였다.
그리고 황조가 바뀌긴 했지만, 무려 수백 년이나 대제국을 지배하던 가문이다.
분명, 남몰래 그녀를 추종하는 이가 남아 있을 것이다.
‘빚을 못 갚으면, 그런 추종자들이 날 묻어버릴 수도 있어. 아니, 그전에 외대륙에 노예로 팔려갈지도.’
빚의 금액이 너무 커서일까?
별생각이 다 드는 소심쟁이 레이몬드였다.
“흐음.”
한편, 그런 레이몬드의 반응에 로즈는 무언가 기분이 상하는지, 다리를 꼬고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고민이 많으신 것 같군요.”
“그게…….”
레이몬드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로즈의 분위기가 가라앉으니, 찔끔 겁이 들었다.
“제가 가져온 케이크도 많이 안 드시고.”
“마, 많이 먹었습니다만.”
레이몬드는 찔끔하였다.
케이크.
로즈는 오늘 오면서 직접 베이킹한 케이크를 가져왔다.
지난번 먹어봤듯 지옥의 맛이었고, 레이몬드는 채권자 로즈가 무서워 억지로 세 조각이나 먹었다.
하지만 로즈는 자신의 케이크가 맛없다는 걸 모르는지 레이몬드가 케이크를 먹을 때마다 눈을 반짝였는데, 당하는 레이몬드는 속으로 외쳤다.
‘언젠가 빚을 다 갚아서 당당히 맛없다고 해주겠어!’
하지만 그러긴커녕 1,000만 페나를 추가로 빌리게 되었으니, 고민이 안 될 수가 없었다.
“흐음…… 혹시 금리가 마음에 안 드는 건가요?”
“네? 아니, 아닙니다.”
로즈가 제시한 금리는 세상 어느 은행보다 더 쌌다.
“있잖아요. VVVIP 고객 왕자님.”
로즈가 막대 사탕을 꺼내 물었다.
“……네?”
“저 사실 오늘 기분이 되게 좋았거든요. 사랑하는 VVVIP 고객 왕자님께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었어요.”
“…….”
“지금도 그 기분은 마찬가지예요. 꼭 왕자님께 도움을 드리고 싶거든요. 그리고 전 원하는 건 어떻게든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에요.”
원하는 건 어떻게든 넣어야.
그 말을 할 때 로즈는 지그시 레이몬드를 바라봤고, 레이몬드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래서 말하는 건데…….”
로즈는 싱긋 웃었다.
“절반의 금리는 어떤가요?”
“……!”
레이몬드는 흠칫하였다.
원래도 쌌는데, 절반이라니?
이건 그냥 거저였다.
안 빌리는 게 바보인.
심지어, 로즈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니, 그냥 무이자로 하죠. 1,000만 페나 무이자 대출.”
무이자!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한두 푼이면 모르지만 1,000만 페나 아닌가?
이 정도 금액이면 아무리 로즈라도…….
‘아니, 그래도 푼돈인가?’
레이몬드는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로즈야말로 이 세상 최고 부자에 가까운 이.
레이몬드가 간절히 바라는 꿈을 이미 이룬 그녀의 얼굴에선 왠지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하지만 선뜻 쉽게 결정을 못 하자, 로즈가 눈썹을 꿈틀했다.
“좋아요. 이렇게 하죠. 마이너스 금리.”
“네?”
“첫 한 해에 한해서 5%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겠어요. 이후로는 무이자로 하죠.”
레이몬드의 머릿속이 핑핑 돌았다.
1,000만 페나에 5% 마이너스 금리면…….
‘빌리기만 해도 50만 페나 정도를 주겠다는 거야!’
레이몬드는 자신도 모르게 로즈 영애의 손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
순간, 로즈가 흠칫하였다.
레이몬드도 흠칫하였다.
너무 좋아, 자신도 모르게 손을 잡아버린 것이다!
‘이, 이런 실례를…… 그것도 무서운 채권자에게…….’
만약, 기분이 상해 지금껏 빌린 돈을 갚으라고 하면 큰일이다!
“죄, 죄송합니다.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
하지만 로즈는 답하지 않았다.
왜인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레이몬드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 그렇게 기분 나쁜가?’
하긴, 나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흥분해 큰 실례를 저질렀다.
그런데 로즈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희미하게.
“고작 50만 페나로…… VVVIP 고객님의 손을…….”
“……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워낙 희미한 목소리라 잘 못 듣고 반문했다.
로즈는 흠칫하고는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왠지 하얀 뺨이 더욱 붉어진 느낌이었다.
“그러면 그렇게 계약하도록 하죠. 칼스, 대출 서류를 다시 작성해 줘. 마이너스 금리 적용해서.”
“네, 아가씨.”
칼처럼 날카로운 집사, 칼스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서류를 다시 작성해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제게 호의를 베푸는 겁니까?”
레이몬드는 이전부터 궁금했던 사실을 물었다.
호의.
그래, 무섭긴 했지만 분명 호의였다.
로즈가 없었다면, 레이몬드는 자신의 뜻을 펼치는 데 어마어마한 고생을 했을 것이다.
‘……훨씬 고리로 돈을 빌리느라, 더 심각한 빚쟁이가 되었겠지. 대출 상환이 다가올 때마다 은행을 돌아다니며 빚을 돌려막기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하지만 로즈가 왜 이런 호의를 베푸는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유요?”
로즈가 묘한 웃음을 흘렸다.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