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07
#닥터 플레이어 407화
과연, 진상 대처법 스킬 효과가 나타나자 지금껏 레이몬드를 폄훼하던 사람들은 입을 우뚝 다물었다.
그들도 사람을 보는 눈이 있으니 한눈에 느끼게 된 것이다.
자신들이 함부로 이야기해도 될 위인이 아니란 것을.
‘좋았어. 분위기 좋아. 스킬 포인트를 때려 부운 효과가 있어.’
레이몬드는 단번에 연회장의 분위기가 변했음을 느끼고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이 분위기를 이끌어 연회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돈 벌 기반을 마련해야 했다.
그가 황도까지 먼 길을 온 건 오로지 하나.
돈 벌기 위해서니까!
마침 퀘스트가 떠올랐다.
[의술의 종주로 연회를 정복하라!](인술 퀘스트)
선행도 : 중의급
난이도 : 중
퀘스트 설명 : 황도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의술의 종주로 연회의 주인공이 되어 의술의 위대함을 널리 알리십시오!
클리어 조건 : 연회 정복
보상 : 보너스 레벨 업×2, 스킬 포인트 200점
특전 : 황도 정복의 첫걸음
레이몬드는 눈을 빛냈다.
연회를 정복하라.
그렇지 않아도 지금 그가 하려는 일이었다.
‘연회를 시작으로 황도를 정복해 십자 연맹 제국의 황금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 거야!’
그렇게 파이팅 넘치게 앞으로 나아갔다.
한편, 그런 레이몬드의 모습에 불편한 표정을 짓는 이가 있었다.
광휘의 성자 비온드였다.
‘감히.’
비온드는 눈썹을 꿈틀했다.
그는 어릴 적 강력한 힐을 각성 후 항상 주인공이 되어 자라왔다.
-당신은 위대한 이가 될 것입니다.
기어스 왕국은 차기 황위를 손에 넣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비온드를 성자로 만들었다.
기어스 왕국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그는 최고의 성자가 되었고, 누구든 그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덕분에 그는 극도로 오만한 성정을 지니게 되었고, 다른 이가 자신보다 더 주목받거나 우위에 서는 걸 견디지 못했다.
그때, 기어스 왕국의 한 귀족이 어색하게 말했다.
“그래도 아주 뜬 소문은 아닌 것 같군요. 하지만 그래 봤자 일 겁니다.”
그 귀족은 광휘의 성자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춰주었다.
“연회장의 누가 가난의 성자를 상대해 주려 하겠습니까? 가난의 성자를 추천한 성 로제트 왕국 놈들 정도 말고는 누구도 가난의 성자와 상대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그 말에 광휘의 성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옳았다.
‘그래, 생각보다 대단한 위인인 것 같지만 그래 봤자 촌구석에서 올라온 놈일 뿐이지. 누가 저놈을 상대하겠는가?’
이미 황도는 광휘의 성자인 그와 기어스 왕국이 장악하고 있다.
같은 3강인 마법사들의 왕국, 알펜서 왕국마저 기어스 왕국의 손을 들어주고 있으니.
그러니 놈은 이 연회에서 볼품없이 기가 죽어 쓸쓸히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자마자였다.
생각지 못한 이변이 일어났다.
“가난의 성자님을 뵙습니다! 스리던 왕국의 카멘입니다.”
“메이시 왕국의 왕자 마밍입니다!”
연회장의 수많은 이가 우르르 레이몬드에게 몰려들었다.
‘아니?’
광휘의 성자를 비롯한 기어스 왕국의 이들은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된 일인지 봤더니 3강이 아닌, 비 3강 출신의 인물들이었다!
레이몬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황도는 3강만의 것이 아니니까.’
황도는 십자 연맹 제국 전체의 수도였다.
즉, 당연히 3강이 아닌 곳의 인물도 많이 있었다.
그저 주눅 들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을 뿐.
그런 이들이 레이몬드의 출현을 기회 삼아 우르르 모여들었다.
사실 이건 레이몬드가 의도한 것이기도 했다.
‘미리 연회에 오기 전에 이들과 접선하였지. 내 밑에 모여들도록.’
뜻밖의 이야기였다.
레이몬드가 황도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과 미리 접촉하였다니?
예상치 못한 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휴스톤 왕국의 배다른 형 리머튼이었다!
리머튼이 으스대며 앞으로 나섰다.
“보십시오. 우리 십자 연맹 제국의 자랑인 가난의 성자님을. 제가 형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가난의 성자님은 우리 십자 연맹 제국을 밝게 비출 광채이십니다.”
“오오. 리머튼 전하. 전하께서 가난의 성자님의 형제시라니. 참 부럽습니다.”
“당연하지요. 가난의 성자님과 같은 혈육인 건 제 삶의 가장 큰 영광입니다. 전 가난의 성자님의 위대함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리머튼은 사람들에게 한껏 우쭐대며 레이몬드를 자랑하였고, 레이몬드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놀고 있다. 내 위대함을 알고 있긴, 개뿔이.’
떨떠름한 얼굴을 하였다.
리머튼이 저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레이몬드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기 위해서!
‘원래 저런 캐릭터 아니지 않았나? 황도에서 고생 좀 했다고 사람이 저렇게 바뀌다니.’
레이몬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머튼.
휴스톤 왕국의 3왕자이자 한때 레이몬드의 라이벌…… 까지는 아니고 본인 혼자 레이몬드를 경쟁자로 여기고 발악하다가 황도로 볼품없이 쫓겨난 인물이었다.
그때, 리머튼의 어머니인 3왕비는 리머튼이 황도에서 고생하며 정신 좀 차리길 바랐는데, 그 바람은 반만 이루어졌다.
왕위 계승에서 밀려난 소국의 왕자로 괄시 아닌 괄시를 받은 덕에 오만한 성격은 고쳐졌는데, 대신 성격이 다소 이상하게 바뀐 것이다.
그러니까…….
‘속물적으로 변했어.’
레이몬드는 황당한 얼굴을 하였다.
헛똑똑이 허영심은 사라지고, 대신 속물근성이 그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그래서 레이몬드가 황도에 오자마자 옆에 와서 알랑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옆에서 호가호위하며 나중에 한자리 얻어내겠다고.
‘……음, 어차피 내가 황제가 될 확률은 없으니. 내 옆에 있어봤자 얻어먹을 것 없을 텐데.’
하지만 뭐, 레이몬드로서는 나쁠 것 없었다.
오래전부터 황도에 와 있었던 탓에 리머튼의 인맥이 꽤 넓었다.
헛똑똑이, 허영 근성이 사라진 리머튼은 의외로 어울리기 나쁜 사람이 아니었고, 덕분에 많은 사람과 교분을 나누고 있었다.
특히 비 3강의 인물들과 동병상련하며 깊은 친목을 나누었는데, 덕분에 레이몬드는 리머튼의 도움으로 빠르게 수많은 인물과 안면을 틀 수 있었고, 그 결과는 지금과 같다.
처음 황도에 왔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한 인맥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레이몬드도 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진심 어린 모습을 보였다.
돈 때문이었다.
‘꼭 3강의 인물들만 돈이 되는 건 아니니까.’
사실, 황위 선출에 비 3강의 인물들과 친해지는 건 크게 도움이 안 된다.
하지만 레이몬드의 목적은 돈이다.
3강의 인물이든, 비 3강의 인물이든 다 똑같은 호구님이었다.
아니, 어쩌면 비 3강의 인물들이 더 중요할 수도 있었다.
‘각국에서 온 이 사람들에게 환심을 사면, 황도를 넘어 온 십자 연맹 제국의 부자들을 호구로 만들 수 있어!’
그런 마음으로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마주하는 모두에게 진심을 다하여 대했다.
그런 레이몬드의 진심(?)을 느끼자, 비 3강의 인물들은 크게 감동했다.
‘소문이 거짓이 아니구나.’
‘사실, 우리는 황위 선출에 도움도 안 될 텐데, 저런 진심 어린 모습이라니.’
‘……이분은 진짜 대단한 분이야.’
그렇게 말 없는 감동이 퍼져 나갈 때 그 분위기에 불을 지피는 이야기가 있었다.
리머튼이었다.
그가 사람들 사이로 나서며 이렇게 외친 것이다.
“이 기회에 우리끼리 클럽을 하나 만드는 게 어떻습니까?”
“클럽이요?”
클럽.
황도 사교계에 유행하는 것으로, 뜻이 맞는 귀족들끼리 모임을 결성하는 것이었다.
“네, 가난의 성자님을 추종하는 빈자의 클럽을 만드는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리머튼의 제안에 사람들이 술렁였다.
빈자(貧者).
가난한 자를 뜻한다.
“빈자의 클럽이라면? 설마?”
“네, 가난의 성자님을 본받자는 것이지요. 우리처럼 고귀한 이라면 무릇 가난의 성자님처럼 힘없는 이들을 위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사명으로 삼아야 하는 법이니 말입니다. 가난의 성자님을 본받는 클럽입니다.”
그 말도 안 되는 발언에 레이몬드는 입을 뻐끔거렸다.
‘하지 마, 이 바보야. 누가 그따위 바보 같은 클럽에…….’
그런데 놀랍게도 모두 찬성하였다.
“좋습니다!”
“훌륭한 생각입니다! 이 로함은 앞으로 가난의 성자님을 따르는 마음으로 빈자의 클럽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가입하겠습니다!”
레이몬드는 황당함에 입을 벌렸다.
‘무슨 바보들이?’
하지만 사실 이건 미리 사전에 이야기가 된 일이었다.
리머튼을 비롯한 황도의 비 3강의 인물들은 레이몬드를 자신들의 구원자로 여겼다.
비 3강 출신인 레이몬드가 황제가 되면, 아무래도 비 3강의 위상이 올라갈 테니 말이다.
따라서 그들은 아예 본격적으로 레이몬드를 지지하기로 하고, 빈자의 클럽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난 그런 것까지는 바란 적 없는데. 아니, 내가 바라는 건 그저 돈 버는 거라고.’
레이몬드는 입만 뻐끔뻐끔하였다.
레이몬드가 저들에게 바란 건 자신의 돈주머니, 호구가 되는 것이다.
정치 클럽까지 만들어 지지해주길 바란 적은 없다.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져 버렸다.
심지어 리머튼은 레이몬드에게 의기양양한 눈빛을 보내기까지 했다.
‘어떠냐? 이 형의 도움이?’
이렇게 말하는 듯해 레이몬드를 울컥했다.
‘필요 없다고! 더구나 빈자의 클럽이라니! 뭐야, 그 기분 나쁜 이름은!’
가난의 성자도 기분 나쁜데, 그를 따르는 클럽도 빈자의 클럽이라니.
기분이 두 배로 좋지 않았다.
‘기분만 나쁜 게 아니야. 이거 뭔가 불길해.’
무언가 익숙하지만, 지금까지 숱하게 느꼈던 불길한 기운이 등줄기를 스쳐 지나갔다.
저 빈자의 클럽.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이 되어 돌아오는 것처럼 무언가 그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 같았다.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말려야.’
하지만 이미 다 진행한 걸 어떻게 말린단 말인가?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
‘괘, 괜찮겠지? 어차피 난 황위에 떨어질 거니까. 그러면 다 흐지부지해지겠지.’
애써 불안감을 가라앉히며 다른 생각을 하였다.
‘그나저나 이 사람들 말고 다른 호구들도 만들어야 하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있어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뜻밖의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아아, 그레이트. 드디어 황도에서 전하를 뵙게 되다니.”
온통 시뻘겠다.
마치 장미처럼 화려한 귀부인.
라이나였다!
그녀가 레이몬드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위대한 분을 뵙습니다. 전하께 제 친구들을 소개해도 괜찮을까요?”
친구들.
레이몬드는 라이나의 뒤를 바라보고는 놀란 눈을 했다.
수많은 귀부인이 레이몬드를 보고 있었다.
그것도 이글이글 타오르는 시선으로.
“아아. 어메이징.”
“저렇게 아름다운 분이 계시다니.”
“벽에 박제하고 싶은 아름다움이에요. 아아, 미라클.”
귀부인들은 레이몬드를 보며 황홀한 음성으로 서로 중얼거렸다.
마치 진짜 잡아먹으려는 듯한 눈빛이라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뭐, 뭐야. 무서워.’
심지어, 다들 말투조차 비슷했다!
라이나가 무리를 지어 서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