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21
#닥터 플레이어 421화
레이몬드는 곧바로 로즈의 ‘부탁’대로 은행에서 인출된 300하이페의 용처를 조사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 300하이페를 기어스 왕국이 인출하였다는 사실을.
‘역시 로즈 영애가 날 도와주려 한 거였어.’
레이몬드는 로즈의 속뜻을 짐작했다.
‘……내가 망하면, 대출을 갚지 못하게 되니까. 망하지 않게 도와주는 거구나.’
레이몬드는 로즈에게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서늘한 무서움도 같이 들었다.
만약, 로즈에게 빚을 갚지 못하게 되면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두려움이 든 것이다.
‘아니야! 2천만 페나 따위, 단숨에 갚겠어. 난 슈퍼 리치가 될 남자이니까!’
그러려면 카트린느 황제 누님을 구하고 황제 누님의 비호 아래 황도에서 돈을 쓸어 담아야 했다.
그런 마음으로 열정적으로 뒷조사를 하였고, 알게 되었다.
기어스 왕국이 인출한 300하이페가 어디로 전달되었는지.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돈이 전달된 곳이 의심을 받는 기사가 아니었다.
‘아니, 왜 이 인물에게 돈이?’
레이몬드는 뜻밖의 사실에 눈을 부릅떴다.
‘뭐지?’
때마침 뮤리안에게서 연락이 왔다.
알벤다졸의 개발과 DNA 감식에 성공했다는 연락이었다.
그리고 레이몬드는 또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그 기사의 DNA가 아니라고요?”
“네, 감식 결과 전혀 다른 이의 DNA로 확인되었습니다. 그 기사는 범인이 아닙니다.”
레이몬드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뿔싸.’
그는 순간 전말을 깨달았다.
문제의 그 기사는 범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기사는 함정이었어. 진짜 범인은 따로 있어!’
함정!
그 문제의 기사는 레이몬드가 진짜 범인을 찾지 못하도록 눈을 돌리게 하려는 기어스 왕국의 수작이었다.
‘이런. 진짜 범인을 찾아야 해.’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당장 내일이 카트린느 황제의 폐위를 결정할 최종 선고 날이었다.
남은 시간은 단 하루.
그 안에 진짜 범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운명의 선고 날이 다가왔다.
* * *
현 황제의 폐위가 확정되는 자리인지라, 법정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
하지만 사람들 모두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어차피 결정된 판결.’
‘중요한 건 차기 황제가 누가 될 거냐지.’
카트린느의 폐위는 이미 결정된 사실.
오늘 판결은 정해진 절차일 뿐이었다.
모두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안도의 얼굴을 하는 이가 있었다.
기어스 왕국의 재상, 루드비히였다.
‘다행이야. 레이몬드, 그놈이 함정을 눈치채면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루드비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번 일을 꾸밀 때, 이중의 계략을 짰다.
일단, 용의자로 의심받을 가짜 범인을 내세웠다.
레이몬드가 의심한 그 기사였다.
하지만 그 기사는 위장일 뿐.
진범은 다른 이였다.
‘레이몬드, 그놈이라도 절대 눈치채지 못했겠지.’
진범의 정체는 상상을 초월하는 이.
눈치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대로 카트린느를 폐위시키고, 단숨에 광휘의 성자를 황위에 올리는 거야.’
루드비히는 눈빛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황제의 권한을 이용해 성 로제트 왕국의 날개를 자르고 십자연맹제국을 기어스 왕국의 손에 거머쥐겠어.’
그러면 기어스 왕국은, 아니, 루드비히는 십자연맹제국의 진정한 지배자가 될 것이다.
그때였다. 그의 생각을 끊는 소리가 들렸다.
“카트린느 황제 폐하이십니다!”
드디어 주인공인 카트린느가 등장했다.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드디어 비련의 주인공이 등장하셨군.’
‘안됐어. 그래도 큰 탈 없이 보좌에 있었는데, 마지막에 이런 모욕을 당하게 되다니.’
이번 카트린느의 폐위가 기어스 왕국의 음모임은 대부분 짐작하고 있다.
사람들은 혀를 차며 카트린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의 주모자인 루드비히는 흠칫하였다.
카트린느의 얼굴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정체 모를 결연함이 가득 차 있었다.
‘뭐지?’
루드비히는 고개를 갸웃했다.
‘헛된 희망이라도 품고 있는 건가?’
하지만 희망은 없었다.
레이몬드가 거짓 용의자에 속았으니 말이다.
‘그래, 이변은 없어. 카트린느는 이대로 끝이야.’
루드비히는 괜스레 불안해지는 마음을 달랬다.
“그러면 최종 공판을 하겠습니다.”
참고로, 이건 폐위를 결정하는 재판.
일반적인 재판과는 절차가 달랐다.
황위 선출권을 가진 선제후 중 한 명인 기어스 왕국의 최고 귀족 달란트 공작이 판사 역을 맡았다.
동시에 다른 선제후들이 배심원 역을 하고 있었다.
이 배심원들도 절반 이상 친 기어스 왕국 일파 측임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이미 판결을 내리는 이들의 선정부터 카트린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끝났어.’
‘상황을 완벽히 뒤집을 수 있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판사 역을 맡은 달란트 공작이 말했다.
“폐하께 여쭙습니다. 재무관에게 비위를 명하고, 증거를 은닉하기 위해 재무관을 살해한 죄를 인정하십니까?”
“인정하지 않는다.”
카트린느는 딱딱하게 답했다.
달란트 공작은 비웃음을 지었다.
“이미 증거가 명백한데, 죄를 부정함은 차후 가중 처벌의 근거가 됩니다.”
“…….”
“이렇게 계속 죄를 부정하기만 한다면 단순히 폐위에서 그침이 아니라, 종신형을 선고받게 될 수 있음을 명심해 주십시오.”
협박이었다.
하지만 카트린느는 물러서지 않았다.
“인정하지 않는다.”
달란트 공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러면, 더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만약 없으시면, 이대로 판결을 내리도록…….”
그때, 한 음성이 법정을 갈랐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그렇게 나선 인물의 정체에 장내가 술렁였다.
레이몬드였다!
“가난의 성자님?”
“네, 제가 이번 최종 공판 때 카트린느 폐하의 변호를 맡게 되었습니다. 먼저 말씀드리면, 카트린느 폐하는 범인이 아닙니다.”
그 말에 장내가 술렁였다.
레이몬드는 한없이 신뢰 가득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어째서 카트린느 폐하가 범인이 아닌지, 그리고 진범이 누구인지 지금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 * *
루드비히는 레이몬드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수작이지?’
루드비히는 레이몬드가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위장으로 내세운 그 기사를 의심할 뿐, 진범에는 접근도 하지 못했는데?
‘놈이라도 답은 알아냈을 리가 없어. 놈이 사물의 기억이라도 읽는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은 한.’
당시 사건을 목격한 이는 누구도 없다.
그러니 아무리 레이몬드 놈이라도 범인을 짐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놈이 범행 도구에 사용된 스태프의 기억이라도 읽을 수 있지 않은 한 말이다.
그때, 레이몬드가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메디컬 학파의 ‘의술’로 누가 진정한 범인인지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레이몬드는 일부러 ‘의술’을 언급하며 깨알 홍보를 하였다.
그런 여유 넘치는 레이몬드의 모습에 루드비히는 정체 모를 불안감이 차올랐다.
“의술에는 신비의 노끈 감식이란 기술이 있습니다. 고대에 범인을 찾기 위해 사용되던 기술로, 사람마다 고유한 신비의 노끈을 가졌다는 사실에 착안한 감식법이지요.”
레이몬드는 간단히 DNA 감식에 대해 설명했다.
다행히 이곳에 자리한 이들은 DNA의 레이펜타이나식 개념, ‘신비의 노끈’에 대해 알고 있는 이가 많았다.
그건 이들이 모두 황도의 고위 귀족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교양을 위해 기초 마학 정도는 공부하였고, ‘신비의 노끈’에 대해서도 들어보았다.
‘다행이야. 다른 곳의 귀족이었으면 신비의 노끈을 모르는 이가 훨씬 많아 설명이 어려웠을 텐데.’
“이전 마탑의 위대한 대마법사 로이논 님께서 밝힌 바처럼, 신비의 노끈은 모든 사람마다 다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로이논.
세포 안 핵의 DNA 존재에 대해 처음으로 밝혀낸 마탑의 생체 마법 학자였다.
당대 최고의 연금술사였던 그는 연금술로 신비의 노끈, 세포 핵 안의 DNA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DNA가 어떤 역할을 하는 건지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대단한 업적이지.’
“따라서 의술은 이런 원리를 이용해 신비의 노끈을 분석했고, 범인을 밝히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바로 ‘신비의 노끈 감식’입니다.”
레이몬드가 설명한 DNA 감식을 들은 청중들은 웅성거렸다.
신비의 노끈을 구별하여 범인을 구별해 내겠다니.
상상치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도 많아 레이몬드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방금 제가 한 이야기가 마법학적 지식에 근거해 틀린 점이 없다는 것은 마탑의 다음 분들이 보증해 주실 겁니다.”
그러자 3명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금술의 최고 대가인 뮤리안을 필두로, 생체 마학, 인챈트 분야의 최고 대가인 마도 학자들이었다!
“나 뮤리안, 마탑 연금술의 명예를 걸고 방금 레이몬드 전하께서 하신 말씀이 진실임을 맹세합니다.”
다른 2명도 같은 맹세를 하였다.
장내가 고요해졌다.
이들 3명은 마도학의 최고 석학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레이몬드의 말이 사실이라 맹세했으니, 감히 반박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저놈들이, 어떻게?’
루드비히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레이몬드 놈이 고독을 해결할 방책을 마련한 건가?’
루드비히는 전말을 눈치채고 레이몬드를 노려보았다.
‘아니야.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어차피 놈은 진범을 밝히지 못할 테니.’
제법 용을 쓰긴 했지만, 그래 봤자였다.
진짜 범인을 밝히지 못한다면, 카트린느의 폐위는 번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레이몬드가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신비의 노끈 감식을 토대로 저와 마탑은 이 사건의 진범을 밝혀냈습니다. 그 진범은…….”
두근.
루드비히의 심장이 뛰었다.
‘절대 아니야. 알아낼 수 있을 리가.’
이윽고 레이몬드가 입을 열었다.
“범인은 카트린느 폐하가 아닙니다.”
“……!”
“정확히 말해, 이 사건은 살인 사건이 아닙니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장내가 술렁였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전하?”
“죽은 이가 있는데 살인 사건이 아니라니요?”
비웃는 이도 많았다.
레이몬드의 말이 헛소리라고 여긴 것이다.
‘거창하게 나타나 무슨 말을 하는가 했더니, 저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니.’
‘가난의 성자도 별 볼 일 없군.’
하지만 단 한 명.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는 이가 있었다.
바로, 이 모든 일의 주모자 루드비히였다.
‘서, 설마?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