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20
#닥터 플레이어 420화
‘다행인 건, 여기 뮤리안이 연금술의 최고 대가란 거야.’
레이몬드가 알고 있는 지식과 뮤리안의 연금 실력을 합치면 알벤다졸을 구현해 낼 수도 있다.
아니, 알벤다졸뿐이 아니었다.
지금껏 구현해 낼 엄두를 못 냈던 여러 약을 모두 실제로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그러면 난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을 거야!’
늘 그렇듯 ‘기승전돈’이었지만, 레이몬드는 의지에 불타 말했다.
“이건 비단 경을 위한 일만이 아닙니다.”
“그러면?”
“만약 이 일에 성공한다면, 경은 앞으로 수백, 수천만 명의 생명을 구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업적을 세우게 될 겁니다.”
“……!”
수백, 수천만.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레이펜타이나에도 기생충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가 수도 없이 많았다.
만약 알벤다졸을 완벽히 구현할 수 있다면, 그들을 모두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앞으로 미래 세대에 생길 환자들 또한 구제할 수 있으리니, 그 업적은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으리라.
현대 지구로 따지면 노벨 의학상을 받고도 남을 업적이었다.
‘그리고 난 돈을 벌겠지. 흐흐. 알벤다졸만 개발하면, 이것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거야.’
도대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지금 몇 마리인데, 늘 가난뱅이 신세인지 모르겠지만, 레이몬드는 항상 그렇듯 해맑게 장밋빛 미래를 상상했다.
한편, 뮤리안 경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가…… 수백, 수천만의 생명을…….”
“네, 이건 시작일 뿐입니다. 경과 내가 손을 잡으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물론 나는 돈을 벌고.
라는 말은 일부러 생략했다.
과연 뮤리안 경의 눈빛이 활활 타올랐다.
“하겠습니다! 어떤 어려운 난이도의 일이든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그러면 알벤다졸의 화학식…… 아니, 연금식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레이펜타이나에도 화학식이 있었다.
연금식이라 표현하는데, 현대 지구의 것과는 다르게 화수풍토의 개념이 들어가 있고, 뭔가 부정확한 게 많았지만, 어쨌든 개념 자체는 있었다.
레이몬드는 알벤다졸의 화학 구조식을 연금술의 개념에 맞추어 설명하였다. 뮤리안의 눈빛이 깊어졌다.
* * *
이후, 레이몬드는 뮤리안과 헤어졌다.
더 함께 있으면 기어스 왕국에 꼬리를 밟힐 가능성이 있었다.
‘어차피 이제 내가 할 일은 없으니. 나머지는 뮤리안의 역량에 달렸어.’
알벤다졸의 개발과 DNA 지문 감식.
모두 뮤리안의 손에 달려 있다.
레이몬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하였다.
‘문제의 기사가 기어스 왕국의 사주를 받은 거라는 증거를 확보해야 해.’
이미 뒷조사는 끝낸 상태였다.
“거액의 도박 빚을 진 상태라고?”
“네, 전하!”
“냐옹!”
뒷조사를 맡은 엘무드와 미엔 콤비가 힘차게 외쳤다.
이번에도 미엔의 미인계(?)가 한몫하였다.
고양이 모습으로 몰래 기사의 뒤를 캔 것이다.
“그런데 그 도박 빚을 최근에 모두 갚았고?”
“네, 가문에서 돈을 받았다고 하는데, 피오네 왕녀님께 부탁해 조사해 보니 그럴 만한 재력의 가문이 아니라고 합니다.”
레이몬드는 전말을 눈치챘다.
‘기어스 왕국의 손을 잡는 대신, 도박 빚을 갚을 돈을 받은 거야.’
하지만 곧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입증하지?’
이 사실을 입증하려면, 기어스 왕국 측에서 문제의 기사한테 돈을 준 사실을 증명해 내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돈을 주고받은 걸 어떻게 입증해. 목격자도 없을 거고.’
증거가 남으면 안 되니, 분명 현물 금화로 건네주었을 것이다.
목격자라도 있는 게 아니면, 증거를 잡는 건 불가능했다.
‘그 기사가 자백할 리도 없고.’
그렇게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을 때였다.
생각지도 않은 인물이 레이몬드를 찾아왔다.
“전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음? 바쁜데, 다음에…….”
“로즈 영애이십니다.”
“……!”
레이몬드는 최고 사령관을 맞은 병사처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모셔와! 최고로 공손하게!”
빚쟁이님의 강림에 레이몬드는 사색이 되어 외쳤다.
* * *
“어서 오십시오!”
‘왜 온 거야, 무섭게.’
레이몬드는 쩔쩔매며 로즈를 맞았다.
그는 세상에서 로즈가 제일 무서웠다. 이 무서움은 빚을 갚기 전까지 영원할 것이다.
“뵙고 싶었어요, VVVIP 왕자님. 아니, 이제 곧 VVVIP 폐하가 되실 건가요?”
“…….”
레이몬드는 어색한 얼굴을 했다.
전(前) 황제였던 로즈가 저런 말을 하니,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단 마음이 든 것이다.
‘무엇보다 난 황제가 될 생각이 없다고.’
어쨌든 로즈는 그의 목줄(2천만 페나)을 쥔 이.
레이몬드는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최대한 친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혹시 어떤 일로 행차하신 건지요?”
“후음. 제가 꼭 어떤 목적이 있어야 와야 하는 건가요? 서운한데요?”
“아, 아닙니다! 그냥 오셔도 됩니다!”
레이몬드는 바짝 긴장해 외쳤다. 로즈는 그런 레이몬드가 귀여워 쿡쿡 웃음을 지었다.
“농담이에요. 사실, 부탁할 게 있어서 왔어요.”
“부탁이요?”
레이몬드는 의아한 얼굴을 하였다.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있는 건가?’
어쨌든 로즈의 부탁이면, 지옥 불에서 환자를 구해오는 거라도 들어줘야 할 처지였다.
“말씀만 하십시오. 뭐든지 들어 드리겠습니다.”
“정말요? 뭐든지요?”
로즈가 오드 아이를 빛내며 물었다.
“……네, 뭐든지요.”
“정말이죠? 흐음. 조금 욕심내서 부탁드려도 될까요? 청혼?”
“……네?”
“청혼.”
“……네?”
“…….”
“…….”
“농담이에요. 진지하게 반응하지 마세요.”
로즈는 빙긋 웃었고, 레이몬드는 식은땀이 송골 맺혔다.
‘……정말 농담인 거지?’
분명 농담이라고 했는데, 로즈의 눈동자가 먹이를 보는 고양이처럼 반짝 빛나고 있었다. 긴장감이 쭈뼛 올라왔다.
레이몬드는 불길함을 떨치기 위해 물었다.
“……어떤 부탁인 겁니까?”
다행히 로즈는 더 장난(?)치지 않고 용건을 꺼내었다.
“조사를 하나 해주시겠어요?”
“조사요?”
“네, 제 은행 중 한 곳에서 300하이페가 인출되었는데, 그 용처가 궁금해서요.”
레이몬드는 의아한 얼굴을 하였다.
‘300하이페?’
참고로, 하이페는 하이 페나의 줄임말로서 1하이페가 1만 페나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즉, 300하이페면 300만 페나와 동일한 가치의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큰돈이긴 하지만, 로즈 영애께는 푼돈이나 다름없는 금액 아닌가?’
아니, 다 떠나서 왜 이런 걸 레이몬드에게 부탁한단 말인가?
레이몬드와 전혀 상관없는 분야의 일인데.
이런 일은 로즈 밑에 있는 이들이 훨씬 잘 처리할 것이다.
“혹시 이 일을 왜 제게 부탁하는 건지?”
레이몬드는 조심스럽게 물었고, 로즈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답을 하였다.
“전하는 제 VVVIP 고객이니까요?”
“네?”
“자세한 이유는 설명할 수 없어요. 왜냐면 사실 지금 이것도 조금은 반칙인지라.”
반칙.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로즈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 반칙이긴 하지만, 이 정도는 상관은 없겠죠. 아무리 기어스 왕국이라도 감히 나 로즈힐트를 건드릴 수는 없을 테니.”
레이몬드는 놀란 눈을 하였다.
로즈가 어째서 이런 부탁을 한 건지 어렴풋이 깨달은 것이다.
“설마? 이 부탁은?”
“네, 짐작하시는 대로예요.”
로즈는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덧붙였다.
“제 부탁이 전하의 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나중에 돈이나 더 빌려 가세요. 한 천만 페나 정도 더 빌려 가면 참 좋겠네요.”
* * *
“왜 이런 일을 한 겁니까?”
밖으로 나온 후 칼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뭘?”
“방금 레이몬드 왕자께 정보를 전달한 것 말입니다.”
정보 전달.
그래, 로즈는 부탁이라고 표현하였지만, 아니었다.
로즈는 이미 300하이페를 누가 인출 했는지 알고 있었다.
바로 기어스 왕국이었다.
기어스 왕국은 그 거액의 돈을 현금으로 인출해 과연 어떻게 사용했을까?
그 질문의 답은 지금 레이몬드가 밝혀내려는 사건의 진실과 연관이 있다.
즉, 방금 로즈가 한 부탁은 부탁이 아니라, 사실은 레이몬드에게 도움을 줄 정보였다!
“주요 고객의 정보를 타인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폴른 그룹 전체의 신용도에 영향이 갈 수도 있습니다. 아니, 기어스 왕국 측이 불쾌해할 겁니다.”
“무슨 상관이야?”
하지만 로즈는 태연히 물었다.
“기어스 왕국 따위가 불쾌해해서 뭐 어쩌라고?”
“……!”
“칼스, 넌 내가 기어스 왕국 따위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 로즈힐트 비르문드가?”
칼스는 흠칫하였다.
로즈의 무심한 시선이 그를 주시했다.
“이런 처지가 되었지만, 난 대(大) 철의 제국의 황제였어. 그런데 십자연맹제국의 황제도 아닌, 고작 삼 강(剛)의 하나일 뿐인 기어스 왕국의 눈치를 보는 게 옳다고 생각해?”
칼스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발언을 실수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참고로, 대륙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네 개의 국가를 대륙 사패라고 한다.
그중 가장 커다란 두 개의 국가는 십자연맹제국과 철의 제국이었다.
규모로 따지면 이 두 개의 제국이 대륙의 7할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그 두 제국 중에서 어느 쪽의 국력이 더 뛰어난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철의 제국 쪽이었다.
양 제국의 국력을 비교하면 대략 1.5할 정도 철의 제국이 앞섰다.
주기적으로 철의 제국 동쪽 연안을 침략하는 외대륙 요르문드의 마물을 상대하느라 국력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레이펜타이나 대륙은 진즉 철의 제국의 손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
철의 제국이야말로 사실상 대륙 최강의 국가였다.
로즈는 그런 철의 제국의 황제였던 이.
그러니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발언은 굉장히 무례한 이야기였다.
“뭐, 그리고 이건 단순한 사심 때문에 한 일은 아니야.”
“그러면?”
“우리 철의 제국에 파고든 어둠이 기어스 왕국 측과 연관이 있다는 건 알고 있겠지?”
“……!”
칼스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철의 제국에 파고든 어둠.
로즈를 황위에서 몰아낸 이들을 뜻한다.
“난 이제 철의 제국의 황위를 되찾을 거야. 그러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고.”
레이몬드가 빛을 뿌리는 동안, 로즈도 허송세월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
원래의 황가를 지지하던 이들과 힘을 합쳐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승산은 있어. 문제는 외부의 개입이야. 결정적인 순간에 십자연맹제국 측에서 방해하고 나서면 상황이 곤란해져.”
그녀가 파악하기로 철의 제국에 파고든 어둠과 기어스 왕국에 파고든 어둠은 동류였다.
그러니 그녀의 대업을 방해하려고 들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래도 하늘이 내게 내려준 운명일까? 마침, 내 VVVIP 왕자님께서 기어스 왕국 놈들을 향해 정의의 칼을 빼 들었으니, 내가 조력해 주는 게 당연하지.”
칼스는 로즈의 말을 알아들었다.
기어스 왕국은 그녀의 잠재적 적.
그러니 레이몬드가 기어스 왕국을 상대하는 걸 돕겠다는 것이다.
“우리 VVVIP 왕자님이 십자연맹제국의 황제가 되면, 난 뒤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니까.”
“가능할 거라 보십니까? 이미 선제후 선출이 끝나 쉽지는 않을 겁니다.”
“칼스, 너 그런 질문. 지금까지 몇 번이나 한 건지 알아?”
칼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
휴스톤 왕국에서부터 지금까지.
매번 칼스는 똑같은 의혹을 품었고, 레이몬드는 매번 똑같이 기적을 이루어내었다.
“그리고 사심도 있긴 하고.”
“사심이라면?”
“왕자님께 최대한 많은 빚을 지게 하고 싶다는 사심?”
“……이미 2천만 페나나 빚지지 않았습니까?”
“모자라.”
로즈는 단호히 말했다.
그래, 모자랐다.
레이몬드의 빚은 그녀가 레이몬드에게 건 영혼의 족쇄.
그러니 그녀는 레이몬드에게 최대한 많은 빚을 지게 하고 싶었다.
‘절대 못 풀고, 어디로도 못 도망가게.’
로즈는 싱긋 웃으며 레이몬드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레이몬드는 정체 모를 스산함을 느껴 몸을 떨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