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19
#닥터 플레이어 419화
의학을 레이펜타이나에 구현하는 데는 연금술, 인챈트, 생체 마학이 필수였다.
그래서 지금 레이몬드는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연금술사, 인챈터, 생체 마법사들을 고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돈으로 고용한 이들의 수준은 한계가 있어서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릴 때마다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마탑에 자문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저 사람들을 그의 인물로 만들면 자문료를 모조리 아낄 수 있다!
‘생각해 보니 이건 마냥 무섭다고 피할 게 아니야. 저들을 내 사람으로 만들면 어마어마한 금전적 이득을 볼 수 있을 거야. 무엇보다 아직 기어스 왕국이 진짜 배후라는 증거도 없잖아?’
그래, 그가 지레 겁먹고 있는 거지, 아직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의외로 기어스 왕국이 배후가 아닐 수도 있었다.
설사, 기어스 왕국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그가 페닌슐라 왕국으로 튀면 어쩔 건가?
‘황도야 기어스 왕국의 텃밭이지만, 다른 곳도 그런 건 아니라고. 내 텃밭으로 튀면 크게 두려워할 이유 없어.’
더구나 이미 쌓인 악연.
하나 정도 더 쌓인다고 해서 뭐 크게 달라질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래, 너무 겁먹지만 말자. 용기를 내!’
그렇게 레이몬드는 돈을 위해서 용기를 냈다.
물론 겉으로는 한없이 환자를 위하는 얼굴을 하는 걸 잊지 않았다.
호구로 만들려면 상대를 감동하게 하는 건 기본이었으니까!
마침 뮤리안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절 정말 치료해 주시려는 겁니까?”
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따뜻한 음성과 함께 뮤리안의 손을 잡아주었다.
“당연하지요. 전 힐러. 당신을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만약 고독에서 치료된다면, 앞으로 제가 이루고자 하는 뜻을 전적으로 도와주십시오.”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니까. 보상 문제는 미리 결론지어 놓는 게 좋겠지.’
레이몬드는 속물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뮤리안의 반응이 이상했다.
무언가 감격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당신께서 하는 위대한 일에 제 손을…….”
“……?”
“하늘이여. 제게 이런 기회를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제 모든 걸 바쳐서 당신의 일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레이몬드는 그 반응에 침묵했다.
뭔가 뮤리안은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 같지만, 굳이 교정해 주지 않았다.
‘……뭐, 자발적 열정 노예가 되어주면 나야 기쁜 일이니. 환자와 백성을 위한 일이라고 명분을 내세우면, 무보수로 부려먹을 수도 있을 거야.’
그렇게 새로운 호구를 만드는 작업…… 아니, 고독 치료가 시작되었다.
* * *
문제는 고독을 치료하는 거였다.
‘고독의 정체가 도대체 뭐지?’
고독은 원래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존재였다.
상대의 몸에 파고 들어가 뜻대로 상대를 지배하는 전설의 벌레!
‘실제로 그런 전설의 벌레는 아닐 거야. 어쩌면?’
레이몬드는 짐작 가는 게 하나 있었다.
“먼저 검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레이몬드는 일단 뮤리안을 은밀히 피오네 왕녀가 마련해 준 자신의 거처로 데려갔다.
일반 저택이었지만, 건물 일부를 환자를 치료할 용도로 사용하려고 임시로 꾸며 놓은 상태였다.
“신기한 물건이 많군요.”
뮤리안은 마법사답게 레이몬드의 의료 도구에 관심을 보였다.
황도가 워낙 중요 시장이다 보니 비록 임시로 꾸민 거지만, 중요한 도구는 다 가져온 상태였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의료 도구는 바로 이것이었다.
“이 통에 들어오십시오.”
“이건?”
“영상 마법으로 몸 안의 내용을 투과해서 보는 겁니다. 이름은…… CT라고 합니다.”
CT!
현대 지구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영상 진단 도구였다.
원래 레이몬드는 지금껏 X-ray 수준의 영상 도구를 사용하다가 얼마 전 CT까지 개발해 낸 상태였다.
‘이것도 돈이…….’
레이몬드는 CT 개발 과정을 떠올리고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사실 CT의 원리는 간단했다.
몸에 층마다 X선을 다양한 각도로 촬영 후 그걸 컴퓨터를 통해 하나의 화면으로 조합해 내는 것이다.
이곳에는 컴퓨터가 없으니, 대신 아티팩트의 계산 기능을 이용했고, 당연히 비쌌다.
‘저거 한 대가 몇십만 페나더라. 몰라, 생각하지 않을래.’
CT는 현대 지구에서도 비쌌다.
그걸 레이펜타이나에서 구현했으니 가격은 상상만 해도 뼈 아플 수준이었다.
‘고독을 치료해 마탑의 대가들을 호구로 만들면, 이런 비용이 대폭 줄어들 거야. 반드시 치료에 성공하자!’
레이몬드는 그렇게 굳게 다짐했고, 검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곧 단서를 찾아냈다.
‘폐에 음영이.’
폐, 허파에 불규칙한 하얀 음영이 보였다.
‘저곳에 고독이 있는 건가?’
“뮤리안 님, 지금 혹시 폐 쪽으로 불편한 증상이 있습니까?”
“아니, 기어스 왕국 놈들이 준 약을 먹고 있어서 괜찮습니다. 하지만 약을 끊으면 1~2주일 후부터 증상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레이몬드는 그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하나의 진단명이 떠올랐던 것이다.
‘이거 혹시 고독이 아니라?’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섣부른 추측은 금물이었다.
‘확인해 보면 돼.’
정확히 고독의 정체를 알아볼 진단 방법이 하나 있었다.
“고독의 정체를 알아내려면, 생검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생검이라면?”
“여기 고독이 있을 거로 추정되는 곳에 기다란 바늘을 찔러 벌레를 직접 빼내는 겁니다.”
“……!”
뮤리안은 살짝 얼굴을 굳혔다.
기다란 바늘로 폐를 찌른다니. 당연히 걱정되었다.
‘생검은 현대 지구에서야 당연한 검사법이지만, 레이펜타이나에서는 아니니.’
이전 휴스톤 왕국이나 페닌슐라에서도 생검에 거부감을 보이는 이가 많았다.
일단 따듯한 말로 걱정을 달래주려고 할 때였다.
뮤리안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가난의 성자님을 위할 수 있도록 하늘이 내게 준 기회! 설사 생명이 위험하더라도 감수하겠습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위험하지는…….”
“그렇게 말씀해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리 위험해도, 설사 죽게 될 위기가 오더라도 반드시 이겨내 가난의 성자님을 돕겠습니다!”
“…….”
뮤리안은 마치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서는 기사처럼 결연한 얼굴을 하였다.
레이몬드는 입을 다물었다.
‘……뭔가 성격이.’
뮤리안에게서 익숙한 향기가 느껴졌다.
엘무드, 한슨…… 그런 이들에게서 느껴졌던 향기 말이다.
라이나가 옆에서 속삭였다.
“원래 전하 팬이었다고 해요.”
“……제 팬이요?”
“네. 뮤리안 경, 그렇지 않아도 마탑에서 공부만 해서 원래 순수한 면이 있으시거든요. 그런데 음유시인이 노래하는 전하의 영웅담을 우연히 듣고 팬이 되었다고 해요.”
“…….”
그러니까 상아탑에서 평생 공부만 하다가 레이몬드의 영웅담을 듣고 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독을 반드시 치료해, 전하의 위대한 일에 한 팔 거들고 싶은 눈치예요. 저야 이전부터 해왔던 일이지만요, 후후.”
레이몬드는 라이나의 귓속말에 헛기침하였다.
‘……내가 뮤리안 경에게 바라는 건, 내 돈벌이에 도움이 되는 건데.’
어쨌든 자발적으로 저렇게 열정이 넘치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적당한 감언이설로 속이면 무보수 호구로 만들기 좋을 테니.
“그럼 검사하겠습니다. 잠시 숨을 참으십시오. 금방 끝날 겁니다.”
특수 제작한 생검용 기다란 바늘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철컥 폐 조직 일부를 뜯어냈고, 레이몬드는 곧바로 현미경으로 검체를 확인했다.
그리고 침음을 흘렸다.
‘역시.’
알아낸 것이다.
고독의 정체를.
레이몬드는 진단명을 말하였다.
“기생충 감염.”
* * *
고독의 정체는 기생충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흔한 종류의 기생충이었다.
‘개회충(Toxocara)이야.’
개회충.
사람이 흔하게 감염되는 기생충 중 하나이다.
‘현대 지구의 개회충과는 다소 다른 것 같긴 하지만.’
현대 지구와 레이펜타이나는 다른 세계이다.
그래서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등 감염병의 종류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지금 이것도 개회충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현대 지구의 개회충과는 성질이 조금 달랐다.
‘훨씬 더 독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비슷하면서도, 훨씬 강한 증상이 나타나는 거야. 어쩌면 생체 마학으로 강화시킨 종일 가능성도 높아.’
이건 레이펜타이나에서 원래부터 있었던 기생충 종보다는 생체 마학을 통해 자체적으로 강화시킨 종일 가능성이 컸다.
다른 개회충 환자에서 이런 독한 증상이 나타나는 걸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어스 왕국이 준 약은 아마 이 기생충을 억제하는 약일 거야. 약을 안 먹으면, 수면기에서 깨어나 체내에서 활동해 증상이 나타나도록.’
그때, 뮤리안이 긴장된 음성으로 물었다.
“어떻습니까? 치료 가능합니까?”
레이몬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건 지금 제 능력으로는 치료하기 어렵습니다.”
“……!”
뮤리안의 눈이 커졌다.
그의 눈이 절망에 잠기는 순간.
레이몬드가 결연한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뮤리안 님과 제가 힘을 합치면 가능합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약을 하나 개발해야 합니다.”
레이몬드는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알벤다졸’이란 전설의 비약을 개발해야 합니다.”
알벤다졸!
수많은 기생충 질환에 특효인 약이었다.
‘전설의 비약이란 말이 부족하지 않은 약이지.’
기생충은 지구에서도 수많은 이를 괴롭힌 질환이었다.
얼마나 많은 이가 기생충에 고통받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서는 어지간히 의술 환경이 개선된 국가면 기생충으로 환자가 사망하는 일은 없다.
아니, 사망뿐 아니라 중증의 병을 앓는 일도 없어졌다.
바로, 알벤다졸을 비롯한 구충제 덕분이었다.
‘이 알벤다졸이면 웬만한 기생충은 모조리 박멸할 수 있으니까.’
그런 어마어마한 효능이 있는 만큼 가히 전설의 약이라고도 칭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문제는 아직 내가 알벤다졸을 구현하지 못했다는 건데.’
지금 레이몬드가 현대 의학의 약을 구현하는 주된 경로는 비슷한 효과를 내는 약초의 성분을 추출하는 거였다.
최근에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연금술로 합성할 수 있는 약들을 구현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구현해 내지 못한 약이 훨씬 더 많았고, 알벤다졸도 그중 하나였다.
‘기생충을 죽이는 데 효과를 보이는 약초의 성분을 추출해 구충제 대용으로 쓰고 있긴 하지만, 실제 알벤다졸의 효과에는 훨씬 미치지 못해. 그 약초로는 이 고독을 치료하는 건 어려울 거야.’
고독.
정확히는 생체 마학으로 강화된 개회충이었다.
이 강화 개회충을 치료하려면 알벤다졸이 필요했다.
그 전설의 비약이라면, 아무리 강화된 개회충이라도 박멸해 낼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