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18
#닥터 플레이어 418화
‘결론적으로 제국 백성들에게 도움이 될 일이니.’
“그렇습니다. 경이 절 돕는다고 말씀해 주기 전까지는 정확한 사정은 말할 수 없지만, 백성들을 위한 일입니다.”
뮤리안의 눈동자에 일순 강한 갈등이 깃들었다.
뮤리안은 고뇌하듯 침묵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전하를 돕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알다시피 정치적 입장이 다른 지라.”
뮤리안은 씁쓸한 얼굴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러고 뮤리안은 굳은 얼굴로 등을 돌렸다.
레이몬드는 다급히 뮤리안을 붙잡았다.
“잠깐! 기다려 보십시오.”
“전하?”
“무슨 사정이 있는 겁니까? 혹시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아닌 겁니까?”
뮤리안은 살짝 놀란 눈을 하였다.
“역시 소문대로군요. 단번에 제 속마음을 짐작하다니.”
‘아니, 그런 우거지상을 하고 있으면 누가 모르나.’
레이몬드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뮤리안은 슬쩍 봐도 속마음이 읽히는 단순한 스타일이었다.
어쨌든 레이몬드는 늘 그렇듯 진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
“어떤 사정이 있는 건지, 혹시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는 거라면 말씀해 주십시오. 어떻게든 제 힘으로 당신을 돕고 싶습니다.”
하지만 뮤리안은 씁쓸한 얼굴을 하였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아무리 전하의 능력이라도 불가능할 겁니다.”
“어째서입니까?”
“전 전설의 고독에 당한 상태입니다.”
뜻밖의 이야기에 레이몬드와 라이나는 눈을 크게 떴다.
“보십시오.”
뮤리안은 한쪽 눈을 가리고 안대를 풀었다.
그리고 안대 안의 눈동자를 본 레이몬드는 흠칫하였다.
초점을 잃은 텅 빈 눈동자였다!
“제 몸에는 기어스 왕국이 심어놓은 끔찍한 벌레가 있습니다. 그래서 놈들의 명에 거스를 수가 없는 처지입니다.”
뜻밖의 이야기였다.
‘고독이라니. 실제로 그런 게 있다고?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게 아니었어?’
레이몬드는 당혹스러운 얼굴을 했다.
고독(蠱毒).
벌레를 사람 몸에 심어, 상대를 자신의 노예로 만드는 끔찍한 수작을 뜻한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거고 실제로 존재한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기어스 왕국의 짓인 겁니까?”
“네, 저도 기어스 왕국 놈들이 처음 협박할 때만 해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독을 억제하는 약을 복용하지 않으니 곧바로 증상이 오더군요.”
“어떤 증상입니까?”
“때에 따라 다릅니다. 벌레가 몸 어디를 기어 다니느냐에 따라 증상이 달라지는데, 보통은 복통이나 기침, 호흡 곤란 등의 증상이 주를 이룹니다.”
뮤리안은 씁쓸히 말했다.
“사실, 처음에는 버틸 만하여 놈들의 협박을 무시했지요. 하지만 곧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엇입니까?”
“벌레가 한쪽 눈의 시력을 앗아간 것입니다.”
“……!”
“더 버티면 다른 쪽 눈의 시력을 뺏기는 건 물론 벌레가 뇌에 파고들어 가 끔찍한 처지가 될 수 있다 하여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명령에 따르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레이몬드와 라이나는 침음을 삼켰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라이나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혹시 다른 마법사 중에도 뮤리안 님과 같은 처지인 자들이 있는 건가요?”
“많지는 않고, 몇 명 더 있는 것으로 압니다. 모두 저랑 비슷한 부류의 인물이지요.”
비슷한 부류.
전투 마법사라기보다는 어떤 특정한 분야의 대가(大家)란 뜻이었다.
뮤리안이 말해준 이들의 면면을 들은 라이나는 경악한 얼굴을 하였다.
연금술의 대가.
인챈트의 대가.
생체 마학의 대가들이 뮤리안과 같은 협박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저야 홀몸이라 직접 협박을 당했지만, 다른 분들은 가족들이 고독에 당했습니다. 그래서 밖에 발설할 생각도 못 하고 기어스 왕국 놈들의 노예 신세가 되었지요.”
뮤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렇게 전하께 이 일을 이야기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백성들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전하를 속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말씀드리는 겁니다.”
“…….”
레이몬드는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꺼림칙한 생각이 든 것이다.
‘기어스 왕국은 어떻게 고독을 사용할 수 있었던 거지?’
고독을 이용해 상대를 노예로 만든다.
왠지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수법 아닌가?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놈들’이 부리던 수작이랑 비슷하잖아.’
놈들!
지금껏 레이몬드가 골든 로드를 걸을 때마다 나타나 훼방을 넣던 놈들을 뜻한다.
그 나쁜 놈들이 부리던 수작과 지금 기어스 왕국의 행패는 비슷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라이나 님도 십자연맹제국의 유력 국과 놈들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는데, 설마 그게 기어스 왕국이었던 건 아니겠지?’
레이몬드는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왠지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물론, 아직 정확한 건 모른다.
라이나를 비롯한 마탑의 마법사들도 놈들의 정확한 실체를 아직 꿰뚫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때, 로드 로렌스를 처단한 후 증거품을 수집해가긴 했지만, 분석에 시간이 걸리고 있어 놈들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만약, 기어스 왕국이 놈들과 연관이 있으면 어쩌지?’
레이몬드는 창백한 얼굴로 고민했다.
‘황도에서 도망가야 하나?’
도망.
이 비겁한 생각은 놀랍게도 진심이었다.
‘애초에 놈들이 기어스 왕국과 연관이 있는 줄 알았으면 황도에 오지도 않았을 거라고!
원래부터 레이몬드는 놈들과 맞설 생각이 없었다.
물론, 한때 놈들에게 한 방 먹여주겠다는 호기로운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이미 다 잊은 상태다.
그의 신조는 강약약강, 무사안전제일주의니까.
놈들이 정말 기어스 왕국과 연관이 있다면, 무조건 피해야 했다.
‘황도에서 돈벌이가 아쉽지만, 놈들이 정말 기어스 왕국과 연관이 있다면 돈이 중요한 게 아니야.’
그의 안전은 돈보다 소중하니까.
‘생각해 보니 굳이 황도까지 욕심내지 않아도 페닌슐라 왕국 시장만 해도 슈퍼 리치가 되기에 충분할 것 같기도 하고.’
레이몬드는 그렇게 대범(?)하게 황도 시장을 포기할 생각을 하였다.
‘그래, 사람이 너무 욕심부리면 안 되는 법이야. 앞으로 나대지 말고, 얌전히 있다가 광휘의 성자님께 황위를 넘겨주고 난 얌전히 페닌슐라 왕국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파라락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정의로운 마법사들을 구하라!](의술 퀘스트)
의술 등급 : 파이브 메스
난이도 : 중
퀘스트 설명 : 정의로운 마법사들이 사악한 수작에 당해 노예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의술을 통해 그들을 구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 마법사들을 구함.
보너스 : 보너스 레벨 업×2, 스킬 포인트 150점
특전 : 정의로운 마법사들의 조력
‘닥쳐! 난 기어스 왕국 무섭다고!’
고독에 당한 마법사들의 처지가 안타깝긴 하지만, 그들을 구하면 배후일 가능성이 높은 기어스 왕국의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다.
환자를 외면하는 건 옳지 못한 일이지만, 레이몬드는 소심쟁이라 기어스 왕국이 무서웠다.
마침, 뮤리안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러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레이몬드는 뮤리안이 도와달라고 매달리지 않자 안심했다.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다가 흠칫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래도 표정 관리는 해야지.’
사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 레이몬드는 뮤리안을 위하는 얼굴을 하였다.
그런데 매일매일 습관처럼 남을 위하는 척 표정 관리를 해온 탓일까?
레이몬드는 자신도 모르게 장기를 발휘해 버렸다.
진실로 상대를 위하는 얼굴을 한 것이다!
그런 레이몬드의 얼굴을 본 뮤리안은 눈썹을 꿈틀했다.
“……왜 그런 얼굴이십니까?”
“네?”
‘그냥 이미지 메이킹한 건데?’
뮤리안은 참혹한 얼굴을 했다.
“혹시 절 도와주려고 하는 겁니까?”
그런 뮤리안의 반응에 레이몬드가 당황해 입을 다물 때였다.
옆에 있던 라이나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뮤리안 경. 그게 무슨 어리석은 질문인가요.”
“……라이나 님.”
“당신 앞에 있는 이는 미라클한 빛. 기적의 레이몬드 전하시라고요. 당연히 당신을 도울 생각이신 거죠.”
“……!”
“……!”
참고로, 두 번째 느낌표는 레이몬드의 느낌표였다.
‘아니, 나는?’
전혀 그런 게 아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또 어떻게 대놓고 ‘도울 생각 없는데요? 기어스 왕국이 무서워서요’라고 하겠는가?
어버버 하고 있을 때 뮤리안이 크게 감격한 얼굴을 하였다.
“……역시. 가난의 성자님. 곤란한 처지의 인물이 있으면 그게 누구든 외면하지 못하신다더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건지, 뮤리안은 레이몬드에 대해 톡톡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라이나가 옆에서 그 오해를 부추겼다.
“걱정하지 말라고요. 당신 앞에 있는 분은 바로 그레이트 샤인(Shine), 빛, 그 자체인 분이니까요.”
“……아아.”
그런 둘의 반응에 레이몬드는 곤란한 얼굴을 하였다.
‘제길, 어쩌지?’
눈앞에 환자가 있으니 치료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놈들이, 정확히는 놈들의 배후일지 모르는 기어스 왕국이 무섭다.
그렇지 않아도 레이몬드는 놈들과 악연이 많지 않았던가?
‘놈들은 날 원수로 여기고 있을 수도 있어. 물론, 나도 당한 건 많지만.’
레이몬드는 그저 평화롭게 돈만 벌고 싶지, 놈들과 더 악연을 쌓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번 일을 기피해 보려고 하는데, 뮤리안이 뜻밖의 말을 하였다.
“만약 이 고독만 해결할 수 있다면 제 모든 힘을 다해 가난의 성자님을 도울 수 있을 텐데.”
그 말에 레이몬드는 흠칫하였다.
‘도움? 저 뮤리안의?’
뮤리안은 마탑의 연금술 최고 대가였다.
그런 이의 도움이라니, 갑자기 확 구미가 당겼다.
‘뮤리안뿐만 아니야. 고독에 당한 다른 이들 모두 내게 어마어마하게 도움이 될 거야.’
참고로 고독에 당한 이들의 분야는 이러했다.
연금술의 최고 대가!
인챈터의 최고 대가!
생체 마학의 최고 대가!
모두 의료 산업에 어마어마한 도움이 될 인재들이었다!
마치 레이몬드의 의료 산업에 보탬이 되라고 일부러 골라준 듯한 인선이었다.
저들을 치료해, 메디컬 학파의 자문 위원으로 모시면 어마어마한 이득을 볼 수 있으리라.
‘고작 무섭다고 놓치기에는 너무 아쉬운 인재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