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505
#닥터 플레이어 505화 – 외전 53
“…….”
레이몬드는 곤란한 얼굴을 하였다.
‘하지만 세계수의 마나를 사용하지 않으면 저 어둠의 군세를 막을 수가 없어.’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제가 벌레들을 해결해 보겠습니다.”
[구원자여?]사실, 이건 그의 영역은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히 별개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레이몬드는 마켓 창을 열었다.
그리고 스킬을 구입했다.
식물도 병에 걸린다.
식물들이 걸리는 병을 치료하는 학문이었다.
특히, 병충해와 살충 지식을 머릿속에 입력 후 말하였다.
“벌레들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세계수의 정령이 레이몬드를 이끌었다.
[이것입니다.]“……!”
레이몬드와 린든은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손톱만 한 벌레가 나무에 파고들고 있었다.
“이런 벌레가 많습니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마나가 밀집되어 있는 밑동 쪽에 주로 퍼져 있습니다.]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충제를 만들어야 해.’
저 벌레.
그러니까 해충을 박멸할 방법은 살충제 하나였다.
‘문제는 살충제 독성인데. 세계수에 살충제를 뿌려도 되나?’
다행히 정령은 괜찮다는 듯 말하였다.
[독을 뿌린다고요? 괜찮습니다. 어느 정도의 독성은 세계수 자체의 힘으로 정화할 수 있습니다.]“알겠습니다. 그러면, 저 벌레를 없앨 약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오랜만에 아공간에서 탈모고라를 꺼냈다.
어떤 살충제가 저 벌레에 효과가 있을지 알 수가 없어 탈모고라로 확인해 보려는 것이다.
[날 또 얼마나 괴롭히려는 거냐?!]“소고기 줄게.”
[탈모고라 열심히 하겠다! 소고기! 소고기!]탈모고라로 여러 종류의 살충제를 실험해 본 후 레이몬드는 저 벌레에게 효과 있는 살충제를 알아냈다.
‘좋았어! 바람의 정령 소환!’
[캬르륵! 소고기! 소고기!] [등심! 등심!]이미 소고기에 중독된 실프가 소고기를 구호처럼 외치며 등장했다.
[무슨 일이야?]“이 약을 세계수에 뿌려줘. 그러니까, 저 세계수의 정령이 가리키는 곳에.”
일반적으로 살충제를 살포하는 방식으로는 벌레를 박멸하기 어려웠다.
어느 정도 박멸해도 살아남은 벌레가 다시 번식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수의 정령이 있었다.
세계수의 정령은 세계수와 연동되어 벌레가 정확히 어디에 서식하고 있는지 한 마리도 빠짐없이 알고 있었다.
[이쪽이다!] [캬르르! 소고기!]실프가 세계수의 정령이 지목하는 곳으로 살충제를 실어다가 날랐다.
워낙 세계수의 크기가 커서 쉽지는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살충제의 양도 많이 필요했다.
‘……내 돈.’
레이몬드는 울상을 지었다.
그가 스킬의 권능으로 사용하는 연금술은 하나부터 열까지가 모조리 돈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큰 지출이 나갔다.
‘……도대체 나 여기 와서 얼마나 빚진 거야. 이 악덕 시스템.’
시스템이 틈만 나면 돈을 뜯어 가려는 사채 고리대금업자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간신히 벌레들을 박멸한 이후였다.
어둠의 군세를 상대로 작전을 펼치던 이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성자님! 어둠의 군대를 세계수 쪽으로 유인하였습니다!
-마법진을 준비하겠습니다!
“……!”
세계수 위에서 시선을 돌리니 저 멀리서 어마어마한 군세가 몰려오고 있었다.
‘미친. 저게 백만 군세.’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치 거대한 모레 바람이 밀어닥치는 듯했다.
군세의 대부분은 언데드, 망령, 마물들이었다.
‘과연 통할까?’
실패하면 끝이었다.
저 어마어마한 군세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절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세계수의 정령이 레이몬드의 옆에 서서 손을 잡았다.
[이제 세계수의 마나를 쓰시면 됩니다.]레이몬드는 눈을 감았다.
‘세계수의 마나가 느껴져. 마치 나 자신의 것처럼.’
원래 레이몬드는 자신의 스킬로 세계수의 마나를 사용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건 한계가 있는 방법이었다.
아무리 스킬의 효과가 좋아도 저 막대한 군세를 정화시킬 정도의 마나를 흡수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세계수의 정령이 도와주며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 순간, 레이몬드는 세계수와 하나가 되었다.
세계수의 맥동이, 섭리가. 거대함이 레이몬드에게 깃들었다.
레이몬드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푸르른 빛으로 빛났다.
마치 세계수의 정령이 그랬던 것처럼.
이윽고 해가 지고.
짙은 밤이 깃들었을 때 어둠의 군세가 세계수 밑이 펼쳐진 평원에 들이닥쳤다.
레이몬드가 손을 들었다.
파아아아아앗!
빛이 터져 나왔다.
성스러운 정화였다.
시작은 마치 촛불 같았다.
그 촛불은 등불이 되었고, 곧 어둠을 밀어내는 태양이 되었다.
마치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 듯 어둠이 완전히 밀려났다.
“아아.”
“빛이여.”
평원의 건너편에서 숨어 레이몬드가 일으키는 기적을 바라보던 요르문드의 존재들은 주륵 눈물을 흘렸다.
그만큼 장엄한 빛이었다.
레이몬드가 일으킨 빛은 요르문드 전체를 뒤덮었다.
요르문드에 어둠이 가시고 빛이 도래했다.
요르문드의 모두가 그 빛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모두 그 빛을 보며 확신했다.
전설이 도래했다고.
저 빛이야말로 자신들을 어둠에서 해방해 줄 구원의 빛이라고.
그리고 어둠의 군세가 빛으로 화해 사라졌다.
* * *
그 빛을 본 건 요르문드의 존재들뿐이 아니었다.
외해를 거슬러 요르문드로 향하는 레이펜타이나의 함대들도 그 빛을 보았다.
“……!”
“저, 저건?”
어둠을 가르는 빛에 모두가 경악해 외쳤다.
그들은 단번에 저 빛의 정체를 깨달았다.
“폐하의 빛이야!”
“와아아아!”
로즈는 손을 꾹 움켜쥐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레이펜타이나의 함대가 외해를 갈랐다.
함대의 목적지는 수페인 항.
지금껏 있었던 모든 일의 원흉인 절망의 지배자의 본거지였다.
* * *
요르문드 대륙이 발칵 뒤집혔다.
100만 군세의 소멸!
정말 전설이 도래한 것이다.
지금껏 레이몬드를 미심쩍어하던 이들도 완전히 믿음을 가졌다.
“황금 가난의 성자!”
“황금을 모두에게 뿌릴지니!”
“스스로 가난해짐으로써 모두를 이롭게 하는 도다!”
이런 노래가 수많은 이에게 울려 퍼졌고, 요르문드의 모든 고통받던 이가 레이몬드의 밑으로 모여들었다.
레이몬드는 이 여세를 몰아 수페인 항으로 진격하기로 했다.
……정확히는 밑에 모인 이들이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일로 절망의 지배자도 큰 타격을 입었을 겁니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난 무서운데.’
레이몬드는 찔끔하였다.
절망의 지배자가 얼마나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는지 지금껏 겪지 않았던가?
그런데 직접 놈을 치러 가자니. 하고 싶지 않았지만, 밑에 모인 이들의 기세가 너무 흉흉(?)했다.
“우리에게는 황금 가난의 성자님이 함께 계시니 걱정 없습니다!”
“황금 가난의 성자님께서 또 기적을 일으켜 주실 겁니다!”
“가난! 가난! 가난!”
‘아니, 내가 무슨 기적을 일으켜?! 난 그냥 힐러일 뿐인데.’
레이몬드는 한숨을 팍 내쉬었다.
하지만 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지금이 기회는 맞기 때문이다.
절망의 지배자가 요르문드를 지배한 힘은 바로 여러 질병이다.
각 종족에 질병을 퍼뜨려 목숨을 빌미로 협박한 것이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레이몬드가 나타나서.
절망의 지배자가 퍼뜨린 온갖 질병을 해결하였고, 덕분에 각 종족은 절망의 지배자의 영향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절망의 지배자가 가진 힘의 원천인 인신 공양도 뚝 끊겼다.
‘인신 공양이 아니었다면 절망의 지배자가 그런 말도 안 되는 힘을 손에 넣지는 못했겠지.’
절망의 지배자가 그토록 비상식적인 힘을 지닐 수 있었던 건 모두 인신 공양 덕분이었다.
그런데 힘의 원천이 끊겼고 이번에 100만 마물의 군세가 사라지는 타격까지 입었으니, 절망의 지배자는 지금 굉장히 약화한 상태일 게 분명했다.
‘그래도 무서운데. 으으, 그냥 나 없이 혼자 가면 안 되나.’
졸보 근성 레이몬드는 끝까지 겁을 먹었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아니야. 만약, 절망의 지배자가 예상과 다르게 여전히 강한 힘을 지니고 있어도 함께 따라가는 게 훨씬 나아.’
레이몬드는 슬그머니 치사한 생각을 하였다.
‘정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 수페인 항에서 레이펜타이나 대륙으로 가는 배에 타서 탈출하면 되니까.’
혼란의 와중을 노리면 몰래 탈출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그건 최악의 상황일 때고,
‘일이 잘 풀리면 얻을 이득도 어마어마할 테니까.’
레이몬드는 힐끗 고개를 돌렸다.
요르문드의 수 없는 종족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먹음직스러운 잠재 호구들.
‘절망의 지배자를 무찌른 영웅이 되어 요르문드까지 내 호구로 만드는 거야!’
레이펜타이나를 넘어 요르문드까지.
대륙 규모가 아닌,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기로 다짐했다.
이제 정말 고지가 멀지 않았다.
* * *
레이몬드는 수페인 항으로 진격을 결정했다.
수많은 종족이 그의 뒤를 따랐다.
사실상 요르문드의 모든 종족이 레이몬드를 따르기로 했으니, 어마어마한 병력이었다.
“그런데 막는 병력이 없네요?”
린든은 고개를 갸웃했다.
레이몬드도 의아했다.
요르문드를 한 손에 쥐었던 절망의 지배자다.
아무리 지난번에 타격이 컸다고 해도 남은 병력이 많이 있을 텐데,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심지어 중요한 방어선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요새도 비어 있어요!”
“뭐지?”
레이몬드를 따르는 각 종족도 의아한 눈치였다.
“이상하군요. 원래 큰 격전을 예상했었는데?”
“이 요새만 지나면 수페인 항까지 전혀 막을 만한 방어선이 없는데?”
마치 방어를 포기한 듯한 모습.
석연찮은 상황이었지만,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일단, 목적지까지 진격할 수밖에.
수페인 항 근처로 간 레이몬드는 눈을 크게 떴다.
예상치 못한 이들을 만난 것이다.
성 앞에 병력이 도열해 있었는데, 적이 아니었다.
‘저건…… 철의 제국의 깃발?’
뿐이 아니다. 십자연맹제국, 자유 도시 연합의 깃발들도 펄럭이고 있었다.
선두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로즈 님?”
“고객님!”
예상치 못한 재회!
로즈가 레이몬드에게 달려와 와락 껴안더니 입을 맞추었다.
레이몬드는 당황해 그 입맞춤을 받았고,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멍하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당연히 고객님 때문에 왔지요.”
로즈는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레이몬드를 구하러 왔다고.
동시에 레이펜타이나를 농락했던 절망의 지배자를 처치할 생각이라고.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많은 이를?”
레이몬드는 함께 온 레이펜타이나의 전력을 보고는 놀란 얼굴을 했다.
급하게 편성해 출발하느라 병력의 숫자 자체는 많지 않았다.
대략 3만 명?
문제는 보통의 전력이 아니란 것이다.
각국의 최정예들이 모조리 모여 있었다.
소드 마스터만 150명 이상.
아크 메이지도 100명 이상.
이 정도면 레이펜티이나 대륙의 소드 마스터와 아크 메이지를 7할 이상 끌고 온 것이다.
전투 종족 천족도 대부분 와서 500명이 넘었다.
“다, 고객님 덕분이죠. 모두 고객님을 구하기 위해서 이렇게 모인 거예요.”
로즈가 아무리 강력한 황제라도 저 많은 이를 모으는 건 불가능했다.
모인 이들은 철의 제국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십자연맹제국, 자유도시연합, 성국, 철의 제국…… 대륙 전체를 망라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레이몬드는 십자연맹제국의 은인이다.
또한, 자유 도시 연합의 은인이다.
철의 제국의 은인이다.
성국의 은인이다.
즉, 레이몬드는 레이펜타이나 대륙의 은인이었다.
그러니 저 많은 이가 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