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61
#닥터 플레이어 61화
‘언젠가는 없어지겠지. 그런데 다음 승급은 70레벨인가?’
그런 것 같았다.
아마 고년차 레지던트 다음 단계가 될 듯했다.
‘대표 레지던트인 ‘치프’ 등급이 되는 건가? 그런데 100레벨이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대답하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클래스의 ‘격(格)’이 상승하게 됩니다.]더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아마 ‘전공의’급에서 ‘전문의’급으로 격의 상승이 이루어진다는 뜻 같았다.
‘흐흐. 어쨌든 좋아. 아주 좋아!’
누누이 말하지만, 그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대륙 최고의 치료사가 되어 세상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리는 것!
이제 그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한슨, 체력 보강을 위해 오늘은 소고기다!”
“또요?”
“어제도 먹었잖아요?”
린든과 크리스틴이 반발했으나, 한슨이 무마했다.
“마스터의 가르침에 따르면 소고기는 체력뿐 아니라, 면역력에도 좋습니다. 우리처럼 질병에 노출된 이는 계속해서 소고기를 먹어 면역력을 보강해야 합니다.”
크리스틴은 뭔가 납득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으나 곧 머릿속에 새겼다.
‘고대의 신비를 다 이해할 수는 없을 테니까. 일단 외우자.’
그렇게 행복한 시간이 흘러가던 중이었다.
난데없이 가슴 덜컥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위기 상황에 돌발 퀘스트가 발생합니다!]‘위기 상황?’
레이몬드는 눈을 크게 떴다.
지금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웬 위기?
[치료원을 지켜라!](의술 퀘스트)
의술 등급 : 원 하프 메스
난이도 : 중
퀘스트 설명 : 음모를 가진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나쁜 환자도 환자! 그를 살리십시오! 살려 배후를 밝혀내 복수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 환자의 생존
보상 : 보너스 레벨 업×2, 스킬 포인트 30점
특전 : 피의 복수를 할 기회를 갖는다
‘뭐지?’
레이몬드는 치료원을 둘러보았다.
좁은 건물에 10명이 넘는 환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모두 순박한 인상의 일반 평민들.
‘이 환자 중 음모를 숨기고 있는 이가 있다고?’
레이몬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지금쯤 도착했겠지?”
“네, 슬슬 작업을 시작했을 겁니다.”
피어르는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액터(Actor)가 나선 이상 놈은 끝장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 액터의 실력은 믿지. 놈이야말로 수도 최고의 사기꾼…… 아니, 사기 기술자라고 할 수 있으니.”
칸톤 남작은 액터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말씀하신 대로 놈의 치료를 받고 큰 부작용이 생긴 연기를 하겠습니다. 놈의 치료술이 완전히 엉터리란 소문이 퍼지도록요.’
칸톤 남작은 그걸로 만족할 수 없었다.
‘단순한 연기 정도로는 안 돼. 놈의 치료를 받고 이 독약을 먹게.’
‘……독약 말입니까?’
‘걱정하지 말게. 큰 독은 아니니. 문제가 생겨도 우리 메이플 치료원에서 책임지고 치료해 주겠네.’
그렇게 액터는 레이몬드의 치료를 받고 몰래 독약을 먹기로 했다.
레이몬드의 치료가 잘못되었다고 누명을 덮어씌우기 위해!
“그런데 액터가 독을 먹으면 치료해 줄 생각입니까?”
참고로, 독은 피어르가 암시장에서 구해왔다.
“음, 그거야 물어볼 것도 없는 일 아닌가?”
칸톤 남작은 음흉하게 말했다.
“당연히 죽도록 놔둬야지. 그게 더 극적인 효과가 나올 테니 말이야.”
끔찍한 이야기였다.
그는 같은 편인 액터마저도 속였던 것이다!
레이몬드를 철저히 몰락시키기 위해서!
칸톤 남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크큭, 멀쩡히 걸어 들어간 환자가 놈의 치료를 받고 죽음에 이른 것이니 커다란 파문이 일어나겠지. 놈을 쫄딱 망하게 하는 건 일도 아니야.”
“확실히 그게 더 좋겠군요. 액터의 입을 막아 증거를 인멸하는 효과도 있으니, 일석이조입니다.”
“그래, 우리는 샴페인이나 마시며 좋은 소식을 기다리자고.”
칸톤 남작은 선반에서 고급스러운 샴페인을 꺼냈다.
자유도시연합산 최고급 샴페인이었다.
“자네도 한 잔 받지.”
“네, 감사합니다.”
최고급 샴페인답게 빛깔이 영롱하기 그지없었다. 겉에 떠오른 기포가 천상의 구름 같았다.
“그러면 레이몬드, 그 천한 놈의 몰락을 기념하며 건배.”
“네, 건배하겠습니다.”
그렇게 둘은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칸톤 남작은 편안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자고 일어나면 좋은 소식이 도착해 있겠군. 큭큭.’
기분이 좋아서일까? 칸톤 남작은 좋은 꿈을 꾸였다.
레이몬드가 망하는 꿈이었다.
한참 단꿈을 꾸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쾅쾅!
“……뭐야?”
행복한 꿈을 방해받은 칸톤 남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누구야? 들어와!”
하지만 문이 벌컥 열리는 순간, 칸톤 남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무장한 병사들과 기사가 들이닥친 것이다!
“칸톤 남작 맞습니까?”
“……무슨 일입니까?”
“본인은 수도 경비대 산하, 수사대 소속의 기사 볼리톤이라고 합니다.”
“……그렇구려. 이곳엔 무슨 일이오?”
칸톤 남작은 뚱하니 물었다.
수사대의 기사가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뭔가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
“칸톤 남작, 당신을 살인 교사 혐의로 입건하니, 수사본부에 동행해 주십시오.”
“……뭐?”
칸톤 남작은 머리를 망치로 맞은 얼굴을 하였다. 지금 나한테 뭐라고?
“살인 교사?! 지금 뭐라고?! 당신 미쳤나?! 갑자기 무슨 말도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혐의인지, 아닌지는 곧 밝혀지겠지요.”
익숙한 음성이었다.
뒤이어 나타난 얼굴을 보고 칸톤 남작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호수처럼 잔잔한 인상의 미청년, 레이몬드였다!
“너, 너…… 여기에는 왜?”
“페닌 준남작님은 참고인 자격으로 동행하였습니다.”
나타난 이는 레이몬드뿐이 아니었다.
뒤이어 등장한 이를 보고 칸톤 남작은 입을 벌렸다.
“마, 맞습니다. 칸톤 남작이 제게 모든 음모를 지시했습니다.”
액터였다!
그가 창백한 얼굴로 나타나 칸톤 남작을 가리켰다.
“칸톤 남작이 이번 사건의 배후입니다. 제가 모든 걸 설명하겠습니다. 칸톤 남작이 제게 독을 건네며…….”
설명이 이어갈수록 칸톤 남작의 얼굴은 시체처럼 변해갔다.
다 끝장이었다.
* * *
‘정말 큰일 날 뻔했지.’
레이몬드는 치료원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처음에 그는 누가 음모를 숨긴 이인가 찾으려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설마 그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 아저씨가 범인이었을 줄이야.’
별것 아닌 감기 환자였다.
열을 떨어뜨리는 약을 처방해 주었는데, 갑자기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독약 증상! 일부러 독약을 먹은 거야!’
약초학 S등급답게 레이몬드는 독약에도 해박했다.
곧바로 조처에 들어갔고, 천만다행으로 살릴 수 있었다.
‘아슬아슬했는데, 다행이야. 만약 잘못되었으면 죄를 뒤집어쓸 뻔했어.’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크리스틴의 호위기사인 ‘레로’가 범인과 ‘단독 면담’을 하였고, 무슨 대화를 한 건지 범인은 모든 걸 자백하였다.
‘칸톤 남작이 절 속였습니다! 이렇게 심각한 독인 줄 알았으면, 절대 먹지 않았을 겁니다! 복수하고 싶습니다!’
‘복수?’
배신감을 느끼는 범인과 레이몬드는 손을 잡았다.
칸톤 남작을 끝장내기로!
“칸톤 남작은 제게 독을 먹으라고 했고, 심지어 페닌 치료원의 환자들에게 독을 살포하라고까지 했습니다!”
“내, 내가 언제!”
칸톤 남작은 입을 뻥긋 꺼렸다.
자신이 언제 독을 살포하라고 했다고?
‘놈들이 날 모함하고 있어!’
그가 시킨 건 어디까지나 스스로 독을 먹으라는 것까지였다.
환자들에게 독을 유포하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액터는 혼신의 연기를 다해 거짓말을 하였다.
“칸톤 남작님은 페닌 치료원을 시기해 저에게 그런 끔찍한 일을 시켰습니다. 무고한 환자들을 죽이라고 했어요.”
“아니야! 아니라고!”
곁에 있던 레이몬드가 박자를 맞추었다.
레이몬드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두려워했다.
“이, 이런 끔찍한 일이 제게 벌어지다니. 정말 두렵습니다. 기사님들께서 정당한 심판을 내려주십시오.”
물론 연기였다.
레이몬드는 두려워하는 척하면서 이런 눈빛을 보내는 걸 잊지 않았다.
‘콩밥 먹을 준비나 하시지?’
그 눈빛을 본 칸톤 남작은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았다.
이대로는 살인 교사의 죄를 모조리 뒤집어쓰고 말 것이다. 귀족이라고 벗어날 수 있는 죄가 아니었다.
“이, 이놈들! 감히 그런 헛소리를 뱉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느냐?!”
“진정하십시오, 준남작님.”
수사대의 기사가 만류하자, 칸톤은 악을 썼다.
“진정?! 너희도 미쳤느냐?! 저런 증거도 없는 이야기를 믿다니?!”
칸톤 남작은 발뺌하기로 하였다.
“내가 저놈에게 독을 건네준 증거가 있느냐? 증거도 없으면서 이렇게 나오다니!”
하지만 수사대의 기사들은 예상 밖의 대답을 하였다.
“증거는 있습니다.”
“뭐?”
“얼마 전 수하를 시켜 암흑가에서 이 독을 구하셨더군요. 이미 확인이 끝난 사항입니다.”
칸톤 남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 어떻게?’
수사대의 기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제보자가 있었습니다.”
제보자.
레이몬드를 뜻한다.
‘베이 구역에 이런 거 조사해 줄 사람은 많으니까.’
암흑가 길드 하면 베이 구역이다.
그가 한마디 하니 다들 우르르 나서주었다.
곧 칸톤 남작의 수하, 피어르가 남긴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 모함이다! 난 절대 살인 교사를 지시한 적이……!”
항변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을 이야기였다.
증인, 증거 모두 확실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수사본부에 가서 하시죠. 불편하지 않도록 모시겠습니다.”
“놔, 놔라!”
병사들이 칸톤 남작을 양옆에서 붙들었다.
그렇게 칸톤 남작은 하루아침에 피의자의 신분이 되어 압송되었다.
“레이몬드! 이놈!”
칸톤 남작은 끌려가며 원통하다는 듯 레이몬드를 부르짖었다.
물론 그렇게 부르거나 말거나, 레이몬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감옥 갈 놈의 절규 따위.
강약약강의 레이몬드에게 타격을 줄 수 없었다.
대신 레이몬드는 얄밉게 비웃어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각도로. 정확히 칸톤 남작만 볼 수 있도록.
“그러게 착하게 살았어야지.”
“뭐, 뭐라고?”
“아, 죄송. 마음속 말이 튀어나와 버렸네요. 하여튼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은 죄가 없다면 진실은 밝혀지겠지요. 물론 지은 죄가 없다면 말입니다.”
가벼운 조롱은 여기까지.
레이몬드는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하였다.
“그만 질질 짜고, 감옥에서 지금껏 등쳐먹은 환자들한테 참회하십시오.”
“……!”
“당신 때문에 피눈물 흘린 이들이 한둘이 아니니까.”
칸톤 남작은 눈을 부릅떴다.
그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끌려갔다.
레이몬드는 축 처진 칸톤 남작의 뒷모습을 보며 냉소적인 얼굴을 하였다.
사실 레이몬드도 돈 바라는 속물인 건 칸톤 남작과 똑같았다.
하지만 칸톤 남작은 레이몬드와 다르게 치료사의 본분을 버리고 선을 넘었다.
이제 그 죗값을 치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