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76
#닥터 플레이어 76화
‘유적에 들어가기만 해봐라. A급 힐의 위용을 보여주마! 격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겠다!’
메이슨은 씩씩거리며 앞으로 걸어갔고, 레이몬드는,
‘젠장, 저놈은 A급 힐러가 무슨 강단도 없이 저리 쉽게 고개를 숙여.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꼭 유적 탐사에 성공하겠어.’
굳은 의지를 불태웠다.
‘그래서 남몰래 보물을 슬쩍하겠어! 오늘로 빚쟁이 인생은 끝이야!’
보물을 향한 의지를 말이다.
* * *
탐사대의 인원은 약 15명 정도였다.
왕실 기사 7명, 궂은일을 할 종자(스콰이어) 2명, 마법사 3명, 힐러 3명(레이몬드 포함)이었다.
왕실 기사가 앞장섰고, 그 뒤를 다른 인원이 따랐다.
파앗!
환한 빛이 어두운 유적을 밝혔다.
힐이었다.
“감사합니다, 메이슨 치료사님.”
“아닙니다. ‘A급 치료사’인 저에게 이 정도야 별것 아니죠.”
그러며 메이슨은 이를 드러내며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어떠냐?
이런 눈빛이라, 레이몬드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해줘야 하나?’
우쭈쭈 칭찬을 바라는 것 같아, 한마디 해주었다.
“잘하셨습니다.”
“……뭐라고요?”
“훌륭합니다! 대단하네요! 그레이트, 어메이징!”
원하는 대로 칭찬해 주었는데, 어째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
분노로 파들파들 떨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다.
‘왜 저래?’
레이몬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메이슨이 저러든, 말든 별로 무섭진 않았다.
‘제깟 게 노려봐 봤자지.’
그는 강약약강.
A급 힐러라 봤자, 뭐 어쩔 건가?
솔직히 버릇 나쁜 애새끼가 떼 부리는 느낌밖에 안 들었다.
‘알아서 나서서 치료해 주니, 나는 편하기도 하고.’
A급의 힐이 대단하긴 했다.
가벼운 상처는 손만 대면 척척 이니 말이다.
어지간한 감염증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니, 레이몬드까지 나설 것도 없었다.
‘그렇게 알아서 다 해주라고! 난 뒤에서 편히 쉴 테니.’
어차피 그의 진짜 목표는 환자 치료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
레이몬드는 유적 곳곳을 살폈다.
‘아직 보물이 나타날 기미는 없네. 기다리자. 분명 어딘가 보물이 숨어 있을 거야.’
고대 유적에는 절대 명제가 있다.
-어딘가 함정과 보물이 숨어 있다! 매의 눈을 가진 자만이 함정을 피하고 달콤한 보물을 취할 수 있으리라!
그 격언을 떠올리며 레이몬드는 곳곳으로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나에게는 실제로 매의 눈이 있지. 스킬 사용, ‘매의 눈’!’
[스킬 : ‘매의 눈’이 발현됩니다!] [좁은 부위를 세밀히 살필 수 있습니다!]장막이 내린 듯, 시야가 어둡게 변했다.
그 어둠 속에서 레이몬드의 눈이 향하는 곳만이 도드라진 형상으로 보였다.
‘원래는 마나의 한계로 잠깐밖에 못 쓰는 스킬이지만, 보너스 특전이 있으니.’
24시간 무제한 사용 스킬로 ‘매의 눈’을 고른 레이몬드였다.
왜?
보물찾기에 필수니까!
‘유적의 보물은 보이는 곳에 놓여 있지 않아. 은밀한 장치 뒤에 숨어 있는 게 보통이야.’
그렇게 매의 눈으로 유적을 살피던 중이었다.
레이몬드의 눈에 이상한 게 잡혔다.
‘음? 뭔가?’
평범한 바닥이다.
그런데 뭔가 주변과 달랐다. ‘매의 눈’이 아니었으면 발견하지 못했을 미세한 차이였다.
‘설마?’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기다리십시오!”
“음?”
앞서 나가던 종자(스콰이어)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입니까?”
“잠깐만 있어 보십시오!”
레이몬드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갔다.
그는 바싹 속이 탔다.
‘유적의 보물은 최초로 발견해 소유한 자가 가장 큰 지분을 갖게 돼! 내가 얻어야 해!’
그런 마음으로 바닥을 손으로 꾸욱 눌렀다.
과연 다른 바닥과 다르게 푸욱 들어갔고, 그리고.
파바바바바박!
저 앞에서 우르르 창날이 튀어 올랐다.
보물이 아니라, 함정이었던 거다!
“…….”
창날의 섬뜩한 모습에 레이몬드는 물론, 탐사대 모두가 잠시 얼어붙었다.
“어, 어?”
“치료사님? 어떻게 함정이 있는 줄 알았던 겁니까?”
“준남작님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왕실 기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만약 저 함정이 지나가던 중에 발동했으면? 적지 않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을 거다.
레이몬드가 그들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어, 어…… 그게…….”
레이몬드는 놀란 정신을 추리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기사들이 한없는 감사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적 탐사 전, 이런 종류의 함정이 있다는 걸 공부해서 확인해 본 겁니다.”
레이몬드는 그렇게 대충 둘러대었고, 기사들은 감탄했다.
‘유적의 함정까지 조사하다니.’
‘우리를 위해 유적 탐사에 참가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구나.’
이 자리의 모두는 레이몬드가 메이슨에게 했던 말을 똑똑히 들었다.
‘제가 이 탐사에 참여하려 한 건, 혹시나 생길 환자를 위해서입니다.’
거짓이 아니었다.
저런 함정까지 조사한 걸 보면, 레이몬드가 그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이전의 못난이로만 생각했는데.’
‘저렇게 변하다니.’
왕실 기사단은 모두 레이몬드와 구면이었다.
레이몬드가 어린 시절 왕궁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못난 모습을 기억해 다들 은연중 레이몬드를 무시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조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변했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어린 시절의 못난이가 아니야.’
탐사에 참여한 왕실 기사단은 모두 7명.
소수지만, 하나같이 실력자들이다. 최소 마나 유저급 이상들.
그런 이들이 레이몬드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일단 앞으로 가죠.”
보물 찾다가 얼떨결에 왕실 기사단의 은인이 된 레이몬드는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비슷한 일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저기, 무언가 이상합니다.”
“저것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것도!”
“저것도……!”
레이몬드는 보물을 건지겠다는 일념으로 필사적으로 주변을 살폈고, 계속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모두 함정이었다.
‘왜 자꾸 함정만 나타나는 거야! 이 정도면 꽤 깊이 들어왔는데, 보물은 어디에 있어?!’
싸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혹시 보물이 없는 건가 하는.
그런 불안감과 다르게 왕실 기사들은 갈수록 레이몬드에게 감탄의 시선을 보냈다.
‘대단해. 함정을 모조리 밝혀내고 있어.’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함정을 잘 찾아내는 것입니까?”
“……철저히 조사해 와서.”
기사단의 눈빛이 감탄을 넘어 점점 부담스러워지자, 레이몬드는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이 기회에 왕실 기사들의 환심을 사면 좋은 일이니까.
“병법에 이르길 최선의 승리는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거라 했습니다. 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애초에 다칠 일이 없으면 하고, 철저히 유적을 조사했습니다.”
그 답변에 기사단이 더욱더 크게 감탄한 건 당연한 일!
어쨌든 레이몬드 덕분에 탐사대는 매우 안전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이렇게 안전한 유적 탐사가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모험가 세 파티나 전멸한 유적이라고 해서 긴장했는데, 별것 없군요.”
“어리석은 말 하지 마라. 모두 페닌 준남작님 덕분 아니냐.”
발턴은 파훼된 함정들을 돌아보았다.
“미리 간파하지 않았다면 만만치 않았을 함정들이야. 우리는 모두 페닌 준남작님께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해도 좋아. 페닌 준남작님이 아니었으면 분명 우리 중 하나, 둘 이상은 큰 부상을 입었을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그런 기사단의 모습에 메이슨을 비롯한 치료사들은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어 입을 다물었다.
레이몬드 놈에게 본때를 보여주기는커녕, 완전 놈의 독무대였다.
‘이대로는 안 돼!’
다행일까, 불행일까.
메이슨이 바라는 기회가 다가왔다.
“키아악!”
저 앞에서 섬뜩한 비명이 들린 것이다.
마물이었다!
“전방 공동! 식별되지 않은 마물로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사들 앞으로! 마법사들은 뒤에서 보조를!”
발턴의 지휘에 맞춰 탐사대는 진을 짰다.
“힐러분들은 여기서 대기해 주십시오. 전투가 마무리되면 곧바로 와서 부상자 수습을 부탁합니다.”
철컥. 철컥.
기사들의 철제 군화 움직임에 맞춰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적 속에 칼날 같은 긴장감이 퍼졌다.
‘별일 없겠지?’
레이몬드는 불안한 얼굴을 했다.
마물이 저 앞에 있다고 하니 겁부터 났다.
“두려운가 보군요. 힐러라면 무릇 환자를 위해 두려움도 극복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거늘.”
“…….”
“하긴 그런 잡스러운 치료술이나 사용하는 당신에게 높은 덕목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 수도 있겠군요.”
메이슨은 비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걱정할 것 없습니다. 발턴 경은 무려 소드 익스퍼트 중급의 강력한 기사. 왕실 기사단 내에서도 실력자로 인정받는 이이니.”
그렇게 이야기하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 기사단이 들어간 공동에서 단말마 비명이 들려왔다!
“커억!”
“크윽?!”
“저, 저주가!”
“……!”
레이몬드를 비롯한 치료사들은 깜짝 놀란 얼굴을 하였다.
뭔가 이변이 생긴 것이다!
털썩. 털썩.
공동에 들어간 기사들이 하나둘 바닥에 쓰러졌다. 비교적 후방에 있던 마법사들도 차례로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무, 무슨?’
잠시 힐러들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갑작스러운 이변에 몸이 굳은 것이다.
‘뭐, 뭐지?’
레이몬드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상황 파악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때, 마찬가지로 하얗게 질려 있던 메이슨이 말했다.
“힐러들. 앞으로.”
“네, 네?”
“기사들을 치료해야 한다! 출발!”
레이몬드는 깜짝 놀라 그를 만류했다.
“자, 잠깐! 무작정 그렇게 가면……!”
같은 꼴이 될 확률이 높았다.
일단 침착히 상황을 판단해야!
하지만 메이슨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겁쟁이는 뒤로 빠져 있으십시오! 어차피 당신 같은 사이비는 와 봤자 방해만 될 테니!”
메이스의 눈동자는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두려움과 긴장으로 흥분한 것이다.
또한, 이런 자신감도 있었다.
‘한꺼번에 쓰러진 걸로 봐서 독이나 저주일 가능성이 높아! 내 A급 힐이면 치료할 수 있어! 로열 나이츠를 구해 이번 탐사의 1등 공신이 되는 거야!’
“가자!”
“자, 잠깐!”
레이몬드가 만류했지만, 듣지 않았다.
메이슨은 두려움에 떠는 힐러들을 데리고 앞으로 쇄도했고, 어느 순간 우뚝 자리에 멈추어섰다.
“커, 커억……!”
앞선 기사들과 같은 외마디 비명.
털썩. 털썩.
힐러들은 비틀거리더니 짚단처럼 자리에 쓰러졌다.
“…….”
레이몬드의 얼굴이 파랗게 변했다.
그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쓰러져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