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80
#닥터 플레이어 80화
‘참으로 훌륭하지 않습니까?’
갈먼이 했던 이야기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오든은 그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듯이.
하지만 오든도 레이몬드의 훌륭함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찌 모르겠는가?
잘 알고 있었다.
레이몬드는 참으로 뛰어난 치료사였다.
아니, 치료사를 넘어 뛰어난 신하였다.
근자에 휴스톤 왕국을 위해 레이몬드만큼 큰 공로를 세운 이가 있던가?
하지만 기꺼워하고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레이몬드는 그의 사생아였으니까.
‘결국, 모두 나의 책임인 거지.’
그래, 이 모든 일은 그의 책임이었다.
하지만 그는 씁쓸히 생각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휴스톤의 국왕. 다른 것보다 오로지 왕국을 위한 행동만을 해야 한다.’
오든은 칼끝에 3명의 형제의 피를 묻힌 후 왕위에 올랐고, 이후 속죄하는 마음으로 일평생 휴스톤 왕국을 위해 노력했다.
오로지 왕국을 위해 움직이는 살아 있는 기계.
그게 스스로에 대한 오든의 생각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본인의 사사로운 감정 따위 중요치 않았다.
따라서 앞으로도 레이몬드를 자식으로 대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공을 세울수록 타인보다 더욱 냉랭하게 대해야 한다.
무정한.
완벽한 타인보다 못한 사이를 유지해야 했다.
그게 왕국을 위해 ‘옳은’ 일이니까.
하지만 그때.
레이몬드가 마지막으로 보인 눈빛이 떠올랐다.
저 깊은 곳. 텅 비어 있는 듯한 눈빛.
오든은 그 눈빛을 애써 외면했다.
그렇게 오든은 혈육의 소중함보다 국왕으로서 가지는 의무를 더욱 소중히 여겼다.
그런 자신의 행동이 일평생 레이몬드에게 어떤 상처가 되었는지 알고 있으면서.
그게 ‘옳은’ 일이라고 여겼다.
그게 가장 큰 잘못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 * *
그때, 4왕자 세이틸은 자신의 방에서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레이몬드의 이름이 갈수록 올라가고 있었다.
심지어 2왕자 카이른이 놀리듯 이런 말을 이런 말을 꺼냈다.
‘이러다 정말 레이몬드가 우리의 형제가 되겠는걸? 세이틸, 네가 형님으로 잘 모셔야겠어.’
‘절대 그렇게 놔두지 않아!’
이를 바득 간, 세이틸은 다시금 개린슨 백작을 불렀다.
“방법이 없겠소?”
개린슨 백작도 레이몬드에게 이를 갈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지난번 음모를 꾸미다 도리어 된통 당해, 그는 현재 귀족 사교계에서 반쯤 매장된 상태였다.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오?”
“곧 있을 건국제를 이용하는 겁니다.”
검술 천재인 세이틸은 머리 회전이 다소 느렸다.
개린슨 백작의 말을 이해 못 하고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였다.
“건국제는 수도 인근의 귀족이 모두 참석하는 대연회. 놈도 참석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그때 놈을 매장시키는 겁니다.”
“……!”
개린슨은 비열한 얼굴을 하였다.
“놈은 연회에 참석하는 게 이번이 처음입니다. 더러운 사생아라 연회 예법을 제대로 익히지도 못했지요. 그러니 그걸 이용해 놈을 천하의 경우 없는 못난 놈으로 만들어 귀족 사회에서 매장해 버리는 겁니다.”
세이틸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연회 때 예법에 무지한 레이몬드 놈에게 온갖 치욕을 주자는 거다.
“그러면 앞으로 귀족들은 놈을 상대도 안 하려고 하겠구려.”
“맞습니다. 명예를 아는 귀족이라면 그런 예법도 모르는 무지렁이와는 아는 척도 하지 않겠지요.”
개린슨 백작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네놈은 더러운 평민만 상대하고 살아야 할 거다.’
십자연맹제국 어디나 그렇지만, 치료계는 귀족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힐러의 부, 명예, 위세는 귀족 환자를 얼마나 치료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놈은 평생 냄새나는 평민들만 상대하며 비루하게 살아갈 것이다.
‘각오해라.’
세이틸도 신이 나서 말했다.
“연회 때 놈을 망신 주는 건 내가 직접 담당하겠소.”
세이틸은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다.
‘다시는 왕국 수도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개망신을 당하게 해주마.’
둘은 스산하게 웃었다.
“건국제가 기다려지는구려.”
“저도 그렇습니다, 전하.”
개린슨 백작이 기분 좋게 말했다.
“이번 연회의 주인공은 페닌 준남작이 될 겁니다.”
물론 레이몬드가 주인공이 될 연극의 장르는 희극이었다.
잔뜩 망신을 당해 모두를 폭소하게 만드는.
세이틸과 개린슨은 그 연극의 설계자이자 관객이 되어 레이몬드가 시궁창에 뒹구는 모습을 즐거운 마음으로 구경하기로 했다.
* * *
한편, 대연회를 준비하는 건 세이틸과 개린슨만이 아니었다.
레이몬드도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기회야! 의술을 홍보할 기회로 삼아야 해!’
그는 이번 연회를 ‘의술 홍보’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최근 들어 느끼고 있었다.
치료원이 성장하려면-그러니까 돈을 벌려면-귀족 환자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호구를 뜯어야 했다.
‘평민들을 상대해서 버는 돈은 한계가 있어.’
레이몬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페닌 치료원은 궤도에 올라서, 평민 구역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치료원이었다.
메이플 치료원의 몰락 후 평민 구역에 수많은 치료원이 생겼지만, 그중 으뜸은 페닌 치료원이라 할 수 있었다.
혹자는 수도 3대 치료원으로 헬리엔 치료원, 라울 치료원에 이어 이제 페닌 치료원을 넣는 이도 생겼다.
하지만 그래도 재정 상황은 썩 좋지가 않았다.
얼마 전 흑자가 났지만, 다음 주에 다시 적자 전환했다. 그 뒤 계속 흑자, 적자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다른 힐러들처럼 악독하게 돈을 뜯어내면 평민들만으로도 큰돈을 벌 수 있겠지만.’
아니, 치료비가 없는 환자를 받지만 않아도 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무슨 놈의 오지랖인지. 그냥 못 본 척하면 되는데. 레이몬드, 네까짓 게 뭐라고.’
사실 몇 번이나 그런 다짐을 했다.
괜한 오지랖 부리지 말자고.
하지만 막상 환자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그 다짐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다. 보통 독심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귀족 환자를 치료해야 해. 그래서 호구를 뜯어야 해!’
혹자는 물을 수도 있다.
귀족을 싫어하는 것 아니었냐고.
물론 레이몬드는 귀족에게 악감정이 있다.
‘돈 뜯어내는 데 상대가 누구이든 무슨 상관이야.’
오히려 싫어하는 상대이니 반가운 점도 있었다.
더욱더 신명 나게 바자기를 씌울 수 있을 테니까.
‘날 무시했던 놈들일수록 더 큰 바가지를 씌워주겠어. 바짓가랑이 잡아도 소용없어!’
상상만 해도 행복한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건국 연회 때 잘해야 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절호의 홍보 기회였다.
‘멋지게 보이려 옷도 비싼 걸로 샀고. 흑흑. 뭔 놈의 연회 복이 이렇게 비싸.’
옷 한 벌이 500페나라니!
그나마 최대한 저렴한 걸로 샀는데도 저 가격이었다. 궁핍한 평민과 다른 귀족들의 씀씀이를 알 수 있었다.
왕성에 치료 요원으로 참석할 한슨과 린든의 치료복도 새로 맞춰줘야 해서 피 같은 지출을 해야 했다.
‘그래도 투자할 때는 해야지! 반드시 오늘 한 투자가 몇 배로 돌아오게 해주마!’
아니, 몇 배가 무엇인가?
일단 귀족들을 호구 잡기 시작하면 쌓이는 돈을 주체할 수 없으리라.
‘그러니 파이팅!’
그렇게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순간이었다.
크리스틴이 말했다.
“왕성 연회를 생각하시는 거죠?”
“아, 네. 제자님.”
“연회 때 환자가 발생할까 염려하는 거죠? 탄신제 때 소피아 공주님을 치료했다고 들었어요.”
레이몬드는 입을 다물었다.
‘아니? 귀족들에게 어떤 식으로 영업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런 속마음도 모르고, 크리스틴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환자만 생각하는 바보인 건 알지만, 본인도 좀 챙기세요.”
“절 챙기라뇨?”
“음…… 연회에 가면 일부 사람들이 마스터를 고깝게 볼 수도 있어요.”
레이몬드는 그녀의 말뜻을 알아보았다.
‘내 신분을 트집 잡아 무시하는 자가 있을 거라는 뜻이구나.’
그 정도야, 뭐.
익숙한 일이었다.
일평생 구박과 함께 살아온 레이몬드 아닌가?
고까운 눈초리 정도야 그에게 타격을 줄 수 없었다.
하지만 옆의 라오도 이렇게 걱정했다.
“가볍게 생각하실 게 아닙니다. 최근 형님이 여러 훌륭한 모습을 보임에 따라, 질투심을 느끼는 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악의적인 시비를 걸 수도 있습니다.”
그냥 하는 걱정이 아니었다.
당장 라오, 본인만 해도 레이몬드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자꾸만 질투심 때문에 레이몬드의 본질은 속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 곤란한 라오였다.
그조차 그럴진대, 다른 귀족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말에 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이야기야. 남들에게 무시당하며 의술을 영업할 수는 없으니.’
영업의 원칙!
그럴싸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다!
손가락질받으며 무시당하는 순간, 영업은 실패였다.
더구나 그에게는 마이너스 요소가 있지 않은가?
[더러운 사생아]설명 : 사생아에게 주어지는 경멸의 칭호.
칭호 등급 : 왕국급
부가 효과 :
-사람들에게 심각한 편견 어린 시선을 받습니다!
-해제하려면 더 큰 명성이 필요합니다!
‘도대체 이 칭호는 언제 사라지는 거야?’
레이몬드는 못마땅한 얼굴을 하였다.
더 큰 명성!
부정적인 인식을 덮을 정도의 명성을 쌓아야 사라질 것 같았다.
“마스터, 춤 같은 사교술 하나도 모르죠? 이리로 오세요. 특별히! 이 누님이 가르침을 내려주겠어요.”
크리스틴은 어딘지 신이 난 얼굴로 레이몬드의 손을 이끌었다.
늘 레이몬드를 이기고 싶어 하는 그녀이니, 뭔가 가르쳐 줄 게 있다는 게 신이 난 눈치였다.
그때, 레이몬드가 손을 빼내며 고개를 저었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마스터?”
“형님? 지금에라도 배우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러다 개망신을 당할 텐데?
이런 염려가 담긴 얼굴들이었지만, 레이몬드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원래는 그랬겠지만, 지금은 아니거든? 스테이터스 열람!’
[플레이어 스테이터스]이름 : 레이몬드
클래스 : 외과의사(SSS)
직업 등급 : 수석 치프
레벨 : 73
경험치 : 10/750
스킬 포인트 : 460p
칭호 : 더러운 사생아, 빈민의 구원자, 평민의 사랑을 받는 자
보조 직업 : 활성화되지 않음
[스탯]체력 : 34
감각 : 32
지력 : 24
마나 : 8
외과학(B-), 내과학(C-), 일반의학(B+) 기초의학(B+), 응급 의학(D), 외상학(D), 약초학(S), 풍토병학(A), 연금술(D)
직업 등급이 ‘수석 치프’가 되어 있었다.
덕분에 이전과 여러 차이가 생겨났다.
일단 외과학이 B-로 상승했다.
또한, 다른 학문 스킬의 숙련치도 올랐고, ‘응급 의학’과 ‘외상학’ 학문 스킬도 새롭게 신설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것!
‘사교술’이란 스킬을 익힐 수 있게 되었다.
[직업 등급이 ‘수석 치프’가 되었습니다!] [병원에서의 트레이닝 외에도 대외 활동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필요 시 ‘사교술 스킬’을 익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