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11
제 1111화
‘히익!’
사마현의 시선이 닿자 소름이 돋아 바로 머리를 숙이기 바쁘다.
하필 상대는 광면호리라 불리는 자.
그가 벌였던 참살들을 떠올리면 절로 머리가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그리고 한 가지 더.
‘소문으로 들었던 것보다 왠지 더 두려운 기분이 드는 것은……?’
현경까지 이제 한 걸음이 남았기에 사마현도 의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무학에서 깨달음이란 행하지 않아도, 그저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몸이 절로 행하게 되는 것.
모르던 때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
그의 감정과 불편한 기색에 따라 공기가 묘하게 변화되어 간다.
평범한 자라면 눈치채지 못할 미묘한 변화.
하지만 천 명의 악인을 잡아먹어 고대의 악(惡)을 불러본 자.
그 영향인지 흑도들은 내심 사마현에게 위압감을 갖게 되었다.
기색을 감추고 있으니 큰 위압감까지는 아니라고 하나, 그가 차기 하오문주이고, 자신은 실수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칠 것 같은 기분을 주기에 충분.
사마현은 심드렁한 어투로 말했다.
“혹시라도 분쟁이 생긴다면 이곳은 그들의 땅이니까 물러서라. 우리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니까~”
“존명!”
객잔 주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사마현이 나가라는 손짓을 하자, 그제야 기듯이 도망쳤다.
진천희가 물었다.
“……왜 이렇게 다들 무서워하냐?”
형은 그런 사마현에게 어떤 위압감도 느끼지 못한다.
흑도들과는 지나치게 거리가 먼 자.
사람들이 미쳤다 손가락질을 하지만, 그 본질은 언제나 의원이고, 사람을 구한다.
“아아, 하오문의 권력관계가 그래. 내 쪽 라인이 아니라서 잘릴까 봐 겁먹는 거야~”
“하긴 직장 잘리면 힘들지. 이 동네 정치질 때문에 다들 힘들겠어.”
‘정확하게는 직장이 아니라 목이 잘릴까 봐지만.’
보통 이쪽 바닥 해고는 물리적인 해고다.
몸과 머리가 분리되면 그게 이 바닥 해고.
굳이 살아있는 실직자를 만들지 않는다.
사마현은 형의 오해를 정정해주진 않았다.
형은 천리안이 있나 싶을 정도로 날카로울 때가 있으면서도, 또 이렇게 삼척동자보다도 순진할 때가 있으니까.
예전에는 그 이유를 몰랐으나, 이제는 알고 있고.
아우 입장에서는 형님이 편하게 지내시는 게 제일이다.
‘모르는 게 약이지.’
사마현 역시 이곳에서 구태여 피를 볼 생각이 없으니까.
“가가~ 홍옥 한판 하시겠습니까?”
“에이, 그건 나중에 하자.”
흑도들의 목줄을 쥔 왕.
그 왕이 형에게 웃었다.
참으로 바보 같고 무방비한 웃음이었다.
좀 무능하긴 했어도, 사마현은 이곳에서 하오문도 누구도 죽일 생각이 없다.
‘딱히 중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착한 놈들은 아니다.
사파는 사파.
그들은 사마현이란 목줄에 메였을 뿐, 흑도라는 본질은 변하는 바가 없으니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그거면 된 일 아닌가.
“알았어. 그래도 오늘은 푹 쉬자~ 형.”
“응.”
진천희는 그리 말하고는 구석에서 가부좌를 하고 명상에 들어갔다.
운기행공도 겸하는 모양이니 빠르게 회복하기 위함이겠지.
‘시간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단 말이지.’
사람이 아니라 명령을 받은 목인이나 강시가 아닌가 싶을 지경.
사마현은 그런 형을 위해 차를 끓이고 간식으로 내올 떡을 준비하라 일렀다.
오늘 밤은 일단 여독을 풀 때.
앞으로의 일을 대비해야 할 터이니.
* * *
사람이 걸어간다.
하니,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기이한 ‘무언가’가 걸어가고 있다.
창백한 얼굴은 핏기라고는 전혀 없었고, 팔 관절은 목인처럼 딱딱하다.
허나, 그렇다고 강시라고 규정하기에는 퍽이나 자유로운 움직임.
그들은 손수레에 음식을 산처럼 쌓아 놓고 그것을 밀며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거대한 원숭이가 음식들을 와구와구 먹었다.
대부분 과일류.
이 세계에서 과일은 비싸다. 특히 이 계절에 신선한 과일은 더욱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그럼에도 그런 진귀한 과일들을 마구 집어 먹고 있었다.
“…….”
그 정체는 키가 무려 2장(약 6m)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원숭이!
원숭이는 진법 안에 앉아서 양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었다.
팔에는 금속관이 꽂혀 있었는데 기묘하게도 그 관에서 피가 흘러 나와 항아리에 조로록 모이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거대 원숭이는 태연하게 식사를 계속한다.
그 앞에 노도사가 나타났다.
귀곡문 문주.
귀혼자(鬼魂子).
“어떤가. 견딜 만한가, 녹림왕?”
“이 정도야 가뿐하지. 이래 봬도 천도를 먹은 몸이라고!”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노도사는 끌끌 웃으며 턱을 쓸었다.
거대 원숭이.
그 정체는 녹림왕.
녹림왕이 물었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렇게 수혈해 줘야 하는 거냐?”
“조금만 더 하면 될 것이네. 선계의 열매라 일컬어지는 천도(天桃)를 먹은 자네의 피가 있어야 완성되는 것이니…….”
“시해선이 뭐 좋다고 그리 되려고 그러나… 차라리 지선(地仙)을 노리지 그래?”
그 말에 귀곡문 문주인 귀혼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본문의 사상과 맞지 않거든. 조금만 참아 주게. 대법이 완성되면 그대가 원하는 술법을 쓸 수 있을 것이니. 하지만 옛날에도 말했지만, 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다네.”
“천승술 말이지?”
“그래. 그 술법 말이네.”
요괴와 인간의 거래.
죽이고 빼앗는 게 보통 요괴의 행동양식이지만, 신기하게도 녹림왕은 거래에 응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놈이니까.
“아아. 알고 있다고. 그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지. 그래도 네 녀석들 정도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으니까.”
“차라리 혈선교를 찾아가지 그랬나?”
“…….”
녹림왕은 잠시 침묵했다.
어둠 속에서 짐승의 안광이 형형하게 빛났다.
“…그놈들은 믿을 수 없는 놈들이거든. 너처럼 ‘계약’할 수 없는 놈들이다.”
“흐음… 하긴 그럴지도 모르겠군. 참. 그대를 찾는 자가 있더군.”
“나를?”
녹림왕이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천하진일광 진천희. 그가 그대를 찾아 본 문의 영역으로 들어왔다네.”
“그… 그놈은 대체! 왜 나를 그렇게 끈덕지게 찾아다니는 거야?!”
연원왕은 소름이 돋는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동안 산적질을 좀 많이 했나? 자네 부하들은 또 어떻고. 일광은 강호인이나 동시에 관(官)의 사람이네. 자네를 제거해야 완전히 녹림을 토벌할 수 있다 여기는 것이겠지, 필시… 끌끌끌…….”
그게 상식이긴 했다.
녹림왕이 이마를 찌푸렸다.
“물론… 그거야 그렇지. 그 긴 역사 동안 녹림을 없애기 위해 날 토벌하러 나온 강호인이 어디 한둘이겠나. 하지만 좀 달라. 일광은! 그놈들과는 다른 느낌으로 달라붙는다고!”
“……?”
귀혼자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녹림왕이 말했다.
“아무튼 그런 게 있다! 당하는 놈만 느끼는 뭐 그런 거!”
‘음, 피를 많이 뽑아서 예민해지기라도 한 건가.’
귀혼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쨌거나 저놈도 사파고, 이쪽도 사파다.
백도가 흑도를 쫓는 일이야, 어디 한두 번인가.
“안심하게. 잘 돌려보낼 테니.”
“제거는 안 하고?”
“……죽이기에는 지나치게 거물이라…….”
옛날의 일광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일광은 지나치게 커져 버렸음을 모르는 자가 없다.
‘그래. 일광은 이제 무시무시할 정도로 성장했지.’
연원왕은 납득했다.
“뭐. 네가 알아서 하라고. 그나저나 천승술도 그렇지만. 너희가 만드는 ‘그것’은 제대로 되고 있나?”
천승술 자체가 옛부터 불가능하다 알려진 금단의 비술 중 하나.
그것은 지금 귀곡문주가 하려는 ‘그것’에 비하면야 그래도 가벼운 축이라 할 수 있겠지.
한 요괴와 한 사람은 금단을 넘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 하고 있었다.
“뭐어… 가능할지 아닐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일단 만들고 있네. 기대하게나. 제대로 된다면……. 저 일월신교나 혈선교도 우리를 귀찮게 하지 못할 것이야.”
“음. 든든하군!”
연원왕이 응원하듯 손을 흔들었다.
비록 사람과 요괴라고 하나, 흑도이며 사파다.
선악을 무시하며 제멋대로 사는 악인들.
귀곡문주는 친우에게 가볍게 웃음을 건네고는 밖으로 나갔다.
* * *
새벽이 되자 까만 하늘이 쪽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진천희는 일찍 눈을 떠서 수련을 시작했다.
‘이 습관만은 쉽게 안 없어진단 말이지.’
어릴 때부터 했던 새벽 수련은 어른이 되고 나서도 쭉 이어졌다.
허나, 그 모습은 어릴 때와는 사뭇 달랐다.
부공삼매로 허공에 살짝 떠 있는 상태. 그리고 그 주변에는 오행진기가 펼쳐지며 춤추고 있었다.
흡사 신화 속에나 나올 법한 모습.
‘경지에 올랐으니 좀 요란해졌군.’
허나, 본질은 똑같다.
아침부터 주천을 하고 명상을 한다.
무인의 삶이란 칼과 같아서 매일매일 닦아주고 관리해주지 않으면 녹슬어서 부러지게 된다.
‘이제 내게 내공을 쌓는 행위 자체는 더 의미가 없구나.’
현경에 닿아 천지교태에 이르렀기에 내공의 양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허나.
‘내공을 운용하는 수련은 계속해야지.’
화경 때부터 현경의 적들과 생사결을 하며 데굴데굴 굴러본 결과.
생의 승패는 내공의 양이 아니라, 그 내공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가의 문제 같았다.
특히나 현원전단신공으로 시간을 조각내고, 조각내서 싸우는 무인의 특성상 쓸 수 있는 변수는 많을수록 좋았다.
그림으로 치면 물감의 색을 조합하는 과정.
오행신공의 다섯 가지 진기가 서로 조합하고, 조합하며 뇌기와 빙기를 이루기 시작했고.
진천희는 흩고, 다시 음과 양으로 가르기 시작했다.
우우웅-
마치 진천희를 주변으로 태양계가 돌고 있는 듯한 모습에 보통 사람이라면 넋을 놓고 바라볼 법도 하나.
유일한 구경꾼.
사마현도 좌선 중이시다.
‘현이도 제대로 정신 수양은 되고 있는 모양이고.’
천변검만공을 대성한 여파로 한번 미쳐버린 후, 정신 수양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었다.
그리고 이런 좌선은 반야신공의 성취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사마현은 매일매일 좌선을 해야 한다.
한 팔에는 어디서 주워 왔는지 모르는 염주 알을 굴리며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젊은 불자(佛者)이나.
이 녀석의 정체는 하오문의 소문주.
어울리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풍경 속에서 형제는 한참이나 수련에 매진했다.
“…….”
그렇게 수련을 끝내고, 두 사람은 씻고 나서 곧바로 아침 식사에 돌입했다.
사마현은 두부를 젓가락으로 자르며 투덜거렸다.
“어째 맛이 다 별로네~ 형이 만든 거에 입맛이 익숙해진 건가?”
“이 정도면 괜찮은데 왜?”
“맛이야 있긴 한데 형이 만든 야영 음식보다 못하다는 거지~”
“야, 인마. 그건 분위기로 먹는 거지.”
“아아아아… 가가께서는 그렇게 말하시겠지만 요리에 의념까지 부어서 만드는 자를 대체 누가 이기냐고요오오~”
입맛만 높아진 혀를 원망하며 사마현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컹컹, 삑!
그 말에 동의하듯 황구와 뇌진이 한마디씩 한다.
진천희가 말했다.
“……애효. 그러면 주방을 빌릴까?”
“그렇다고 형이 괜히 움직일 필요는…….”
으르르릉!
황구가 닥치라는 듯 사마현의 옷자락을 물었다.
뇌진도 지지 않고 부리로 사마현의 손가락을 잘라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놈들 지금 반대하면 나를… 끝장낼 준비를 하고 있어?’
형은 대체 뭘 키운 거야?
사마현은 그리 생각하며 말했다.
“……그… 그래~ 형, 나중에 같이 만들자.”
“그래. 저녁에 주방 빌린다고 해야겠다. 점심에는 나가서 알아봐야 할 테니.”
그렇게 두런두런 수다를 떨고 있는데.
문득 남룡객잔의 점소이가 와서 손님이 찾아왔다는 말을 전하는 게 아닌가.
“음? 손님?”
점소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것이 귀곡문의 접객당주가…… 직접 와서 전갈을 한지라…….”
“접객당주가 직접?”
사마현이 말했다.
“얘들 독이 바짝 오른 것 같은데? 뭔가 형에게 할 말이 있나 봐~”
쓰읍-
진천희가 말했다.
“설마 내 대학원새… 아니, 미래의 친구를 만나는 걸 방해할 생각은 아니겠지?”
“…….”
사마현이 정색한 얼굴로 답한다.
“…형, 방금 본심 나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