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76
제 1276화
‘됐다. 그만 생각하자. 그쪽은 그만 생각하자. 스승님께서 입으로 직접 말씀하신 건 아니지 않나. 제자 된 자가 굳이 그걸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본디 마음의 상처란 것은 괴이하게도.
친하지 않은 자보다 친한 자가 잘 내는 법이다.
원수가 내뱉는 100만 자짜리 욕보다.
‘부모님이 낳지 말걸 그랬다는 한마디가 훨씬 아프니까.’
사람이란 본디 그런 법.
스승님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는 몰라도.
모르는 대로 사는 게 더 편할 것이라고.
진천희는 눈을 감는다.
알았을 때의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기 때문도 있고.
“크헤헤헷! 업무나 보자.”
일부러 크게 웃으면서 서류를 정리한다.
스승님께서 ‘줄다리기’를 좀 하고 가셨다고는 해도.
소각주로서, 그리고 태수로서 양쪽 업무를 처리하는 게 쉬울 리는 없다.
그나마 현원전단신공에다, 현경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과로하는 것도 불가능했겠지.’
백린군의 일은 백린서군청과 백린동군청으로 나누고.
각각의 청장에게 일임(청장은 진천희가 만들어낸 직위로 직급은 현령과 동급)했기에 이 정도인 것.
아니었으면 진짜로 행정 업무 하느라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터.
사실 지금도 진천희가 하는 백린군의 행정 업무라는 것은 감사와 감찰.
그리고 비효율적인 몇몇 일을 정리하는 업무에 가깝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청장들에게 권한을 많이 준 것이기도 하지.’
그렇게 한창 일하던 진천희.
그는 장계를 탁탁 놓고 기지개를 쭈욱 켰다.
“행정 업무 끝!”
위에 설명했듯이 개선, 감찰에 가까운 일이 진천희의 주 업무였기 때문에.
그걸 처리하면 행정 일은 끝난 것.
“역시 잘 가르친 부하들은 좋구나.”
만만치 않았던 업무들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고.
오늘 확인한 장계들을 보아하니, 진천희가 손댈 것들이 확연하게 준 것이 느껴졌다.
“이걸로 적어도 반년은 또 별일 없이 백린군 일은 굴러갈 거고……. 의각 업무는 랜덤 발생이니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려나.”
예전에는 수지 접합 같은 부술은 진천희와 스승님만이 가능했으나.
이제는 상의원들의 부술 실력도 많이 늘어서 분배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무, 나무인가.’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아는 단어인데 ‘대품’이라는 용어가 있다.
어원은 진천희도 알 수 없으나, 크게 자란 식물을 대품이라고 부르더라.
크게 자란 식물이니 공이 더 들어갈 것 같지만.
의외로 이 ‘대품’ 단계까지 커버리면 오히려 잘 안 죽는다고 한다.
뿌리도, 가지도 튼튼해져서 병충해에 강해지고.
물도 약간 많이 주거나 적게 주어도.
작았을 때보다 버틸 맷집이 생긴다고.
그러다 보니 식물은 어릴 때가 더 키우기가 어렵다고 했다.
조직도 마찬가지.
작은 구멍가게가 대기업보다 훨씬 작으니 더 키우기 쉬워 보이지만.
실상 폐업률이 가장 높은 건 사업 시작하고 첫 1년이 아니던가.
‘잘 컸어. 백린군, 그리고 백린의각.’
나무 대신 사람을 심어서 온 길이다.
그때 성장한 사람들이 이제 도시와 의각을 책임지기 시작했다.
진천희는 장계들을 각 부서로 내려보내고는 집무실을 나갔다.
마침 햇빛도 좋고, 바람도 선선하여 기분이 좋았다.
진천희는 눈을 감고 홀로 생각을 정리했다.
‘강소성. 백린군. 둘 다 문제는 없지만……. 다른 지역은 역시 문제려나.’
호남성의 일은 마무리 지었지만.
그 여파까지 진천희가 처리하는 것은 불가하다 할 수 있겠지.
애초에 그것은 호남성주의 일이기도 했고.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의 일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제국 차원의 움직임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구호물자가 호남으로 내려가고 있고 이재민들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여러 일들이 시행 중이라는 정보도 이미 입수하긴 했어.’
덕분에 강소성에서 생산되는 막대한 식량들이 엄청 팔려 나가고 있는 중.
황궁의 지원도 받은 터라 나름대로 괜찮은 가격에 팔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강소성은 현재 호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강소성의 강호도 현재 아주 크게 성황하고 있다.
놀랍게도.
강소성에 발붙이고 있는 문파들은 전부 성세가 날로 좋아지고 있는 상황.
일전 마교의 수작질로 상잔을 해서 절반 정도의 강소성 강호 무림인이 줄긴 했지만…….
‘현재 사파들은 완전 정리되었고.’
백도 무림의 경우도 절반 이하로 준 바람에 서로 싸우지 않고 있고.
그리고 대다수의 백도 무림은 어쨌든 동네 이권을 끼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게 토지가 되었든 양조가 되었든.’
무당파 속가제자인 복숭아주를 담그던 그 집안이 대표적.
‘늙은 거목에 복숭아꽃이 피었고, 그 양조장인의 복숭아 술을 이제 천우도 담글 수 있게 되었어.’
그런 문파들이 벌어들인 돈으로 내실을 다지면서 그 성세가 높아져 가는 중이라 할 수 있겠고.
백린의각에서 판매하는 영약을 사서 복용하거나 하면서 제자들을 육성하는 식.
게다가 현재 강호에서는 신공절학인 무량연화범신공을 돈만 주면 구할 수 있고 배울 수도 있으니…….
다만.
그들은 그렇게 세력이 강력해짐에도 불구하고.
‘강소성에서 사건을 만들지 않는다.’
반대로.
밖으로 나가고 있다.
강소성 근처 지역으로 나가서 활동한다.
‘왜냐면 강소성에서는 비무를 제외한 단체적인 행동은 불법이니까.’
그래서 최근에 혼인동맹도 빈번하다고 들은 상황.
예를 들어 A문파가 강소성 아래의 절강성의 B라는 문파와 혼인동맹을 하고.
곡물을 그쪽으로 수출.
이득을 나누고 B문파와 힘을 합쳐 그 지역을 평정한다거나 하는 일이 생겨난다고.
‘강소성 인근 지역에 새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해야 할 듯?’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호남성 홍수 사태로 제국 전체가 삐걱거리기 시작해서.
당연히 강호 문파들도 각종 이권에 걸쳐 있기에.
그에 따라 난리가 나고 있는 것.
‘당연히 치안도 안 좋아졌지.’
호남성만 해도 이재민 중 일부는 아예 수적, 산적화 되기도 했다고 들었으니까.
‘강소성의 남아도는 무력이 그래서 외부로 투사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려나?’
진천희도 가만히 두고만 보진 않을 거고, 행정적인 조치야 취하겠지만 한계가 있겠지.
결국 강호는 강호다.
강호의 생리 그 자체가 변하는 일은 없다.
그들은 여전히 무(武)에 목숨을 걸고, 칼을 벗 삼아 살지 않던가.
‘그래. 강호는 결국 강과 같구나. 사람이 아무리 막는다고 하더라도 강줄기를 조금 틀어버리는 게 전부일 뿐. 결국 흘러 바다로 가는 건 똑같아.’
결국 스승님의 말씀이 옳았다.
평화는 오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최선은.
내 팔이 닿는 곳까지 지키는 것뿐.
‘이러다가 정사대전이 다시 일어나려나… 일전에 일어났던 건 적당히 봉합되었는데. 음……. 어쩌려나.’
거기까지 생각하는데 종소리가 들렸다.
댕- 댕-
느린 두 번의 종.
점심시간이라는 뜻이다.
문득 진천희가 그림자 길이를 보더니 푸른 눈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어제보다 좀… 종 치는 시간이 느려진 것 같은데.”
진천희의 현원전단신공의 초월적인 감각에 의하면 어제보다 종 치는 소리가 이각 정도 늦게 난 것 같다.
식당으로 가는 진천희.
마침 사마혜도 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옆에는 사마혜와 당아, 그리고 퀭한 얼굴의 무월도 있다.
“혜야! 무월! 당아야! 어, 그런데 당아… 안 돌아가도 되는…… 건가?”
“걱정하지 말거라. 대적자여. 아버님께서도 강소성의 신문물을 잘 공부하고 오라고 하셨으니 실컷 놀……. 아니, 견학을 할 생각이다.”
대사천당가,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
진천희는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네 명이서 직원용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
“와, 오늘 식단은 그냥 우육면이랑 사천식 우육면, 그리고 사천식 볶음밥이군요.”
백린의각 사천식 볶음밥은 꽤나 맛있기로 정평이 나 있다.
당아가 말했다.
“나는 사천식 우육면이다.”
“사천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사천식 우육면을 먹게?”
당아가 말했다.
“크크큭, 모르는군. 여기 사천식은 진짜 ‘사천식’과 다르다. 이곳 사천식은 손속에 사정을 둔 사천식이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여기 우육면은 소 연골도 사용해서 맛있다. 맛 달걀도 넣었고.”
진천희는 시선을 돌린다.
‘후, 그 맛 달걀은 내가 넣었지.’
이래서야 돼지 뼈 국물 베이스의 좀 매콤한 일본식 라멘이 아닌가 싶다만…… 어쨌든 ‘우육면’이다.
백린의각식 우육면(사실은 그냥 창작 라멘!).
‘……참을 수 없었어. 면을 먹는데 갈라 먹을 반숙 달걀이 있었으면 해서 그만……!’
괜찮다.
이 세계에 떨어진 건 자신 혼자뿐 아닌가.
자신이 우육면이라 우기면 이것은 우육면인 것이다!
‘나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모르겠지.’
진천희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우리 백린의각 사천식 우육면이 끝내주긴 해. 특히 달걀이 아주 기가 막히지. 나도 똑같은 거 사야겠다. 무월은 어쩌실래요?”
무월은 차갑게 말했다.
“저는 그냥 우육면을 하겠습니다. 철야에 매운 것은 위장에 너무 폭력적이니까요.”
아침햇살처럼 반들반들 건강한 피부로 말해 봐야 왠지 설득력이 없다만…….
그가 야근을 했다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바.
사마혜는 조용히 무월에게 그냥 우육면 식권을 주었다.
그렇게 모두가 앉아서 면식을 후룹후룹 하고 있는데 당아가 말했다.
“후식은 분명 달콤한 것이겠지. 백린의각 식당은 본식이 사천식이면, 후식은 반드시 달콤한 게 나온다!”
‘얼마나 얻어먹었던 거니. 당아야.’
진천희는 부처의 눈으로 당아를 봐주었다.
그렇게 잡담을 하다가 진천희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점심 종이 좀 늦은 듯하던데…….”
그 말에 무월이 맞장구를 쳤다.
“아무래도 누호(漏壶)는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지요.”
누호란 고대부터 사용해 오던 일종의 물시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그것을 ‘누호’라고만 부른다.
‘물시계’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다.
‘애초에 ‘시계’라는 단어 자체가 서대륙에서 건너온 회중시계를 중원식으로 번역해서 생긴 단어긴 하지.’
애초에 태양태음력(太陰太陽曆)은 고대부터 시간을 세는 방법.
하루를 십이간지에 따라 나누고.
그것을 통째로 백각(白刻)으로 나눈다.
‘문제는 태양태음력 자체가 미묘하게 시간적 오차가 난다는 것.’
거기에 태양태음력(太陰太陽曆)에 의거해서 커다란 물이 담긴 장치를 준비하고.
이 장치에서 일정한 속도로 물이 떨어지게 하여 그 양으로 시간을 측정하게 하는 게 현재 화 제국의 물시계.
문제는 앞서 말했듯 태양태음력 자체에도 약간 오차가 있지만-
‘이 누호라고 부르는 물시계도 계절과 날씨에 따라서 시간 측정이 정확하지 않지.’
거기다가.
누호를 두고 있는 곳은 사실 관청이나 백린의각 같은 거대한 조직 정도.
일반인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해의 방향과 그림자를 보고 감으로 때려 맞히는 게 보통이다.
그래도 백린군은 진천희가 여기저기 시간을 알리는 종을 설치하고.
누호를 보고서 종을 치게 해 두긴 했다.
……그래도 당연히 오차가 난다.
무월이 말했다.
“뭐. 좀 귀찮긴 해도 어쩌겠습니까. 애초에 이 정도로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곳 자체가 흔치 않습니다. 그리고 그걸 모두가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음? 소각주님?”
진천희는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긴다.
“으음. 시간……. 시계. 그러고 보면…… 충분히 만들 수 있지 않나?”
왠지 모르게 턱을 쓰다듬는 것 아닌가.
‘시간을 여기서 더 정확하게 잰다고?’
발상 자체가 기묘하여 무월이 내심 경악한다.
그가 물었다.
“그게 정녕 가능한 일입니까?”
“으음, 아마도요……? 알고 있는 것도 있고…….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런 것도 만들어 두면 좋긴 하겠네요.”
“빈틈!”
그때 당아가 진천희의 맛 달걀을 쏙 빼앗는 게 아닌가.
“으앗, 당했다.”
“크하하핫, 방심했구나. 운명의 대적자여. 이제 이건 내가 먹도록 하겠다.”
사마혜가 그런 당아의 등짝을 팡팡 때렸지만.
당아는 달걀을 입에 쏙 넣고는 뱉지 않았다.
“은공 제 거 드실래요?”
“괜찮습니다. 아무튼 괜찮아. 대신 당아에게 줄 간식은 뺄 테니.”
“허억?”
“딸기 찹쌀…….”
“아아아아아악! 미안하다. 대적자여. 미안하다!”
혜아가 작게 웃으며 진천희에게 몰래 전음을 했다.
[당아는 이런 부분이 참 귀여운 거 같아요. 그죠?]그건 그렇지.
남궁세가나 공손세가 같은 다른 세가 후계들에 비해 애 같은 면이 있지만.
사마혜는 당아의 이런 부분이 참 좋았다.
[그런데……. 말만 협박하고 딸기 찹쌀떡 줄 거죠?] [봐서.]라멘에서 맛 달걀을 빼앗다니…….
이건 큰 죄다.
마치 비빔밥에서 달걀 프라이를 쏙 빼간 것과 진배없는바.
“혜아 두 개, 당아 하나!”
“크윽, 주긴 하는구나……! 고맙다, 고맙다.”
“고맙습니다. 은공.”
아무리 봐도 두 개 주면 하나는 당아 줄 것 같다.
‘뭐 그것도 괜찮겠지.’
중원에서 피치 우롱을 만들 계획인데 둘 다 시험작을 좀 먹여 줘야겠다.
그때 무월이 말했다.
“저도 보내주십시오.”
“무월도 당연히 드려야죠.”
“예, 고맙습니다.”
왠지 무월 찹쌀떡도 당아에게 갈 것 같군.
‘이렇게 된 거 당아에게도 일 좀 시켜 볼까?’
여기서는 관광 온 백수지만 애초에 그녀는 천하십대고수 중 하나 아닌가?
그걸 공짜로 부려 먹을 수 있으면 땡큐지.
“당아야, 세 개 먹을래?”
“당장 내놓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