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09
제 209화
같은 시간.
무림맹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구파일방과 팔 대 세가가 집결했다.
합이 열여덟 문파의 가주와 문주들이 모인 셈.
무림맹은 본래 정파들의 모임에서 시작되었던 단체이다.
당연하지만 강호에서도 강성한 세력들은 무림맹 내에서의 영향력 역시 클 수밖에.
그러다 보니 구파일방과 팔 대 세가가 무림맹의 주축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소 문파들이 가맹하지 않은 건 아니다.
많은 수의 중소 문파들도 무림맹에 가맹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무림맹을 운영하는 데 발언권을 갖기 어려웠다.
대신 그들은 구파일방이나 팔 대 세가들과 연합했다.
그렇다.
구파일방, 팔 대 세가. 이들 열여덟의 문파들은 각기 중소 문파들과 연합하고 그들의 우두머리로서 이곳에 온 것이다.
무당파만은 늦어지고 있어 현재는 불참한 상태.
다만 앞서 무림맹에 파견된 무당파의 장로가 회의에 대신 참석하게 되었다.
중원을 움직이는 거산(巨山)들의 모임. 후기지수라면 한 번쯤 열망해 본 무인들이 모여 있었다.
“백린의각은 불참인가.”
‘백린의각은 무림 문파이나 무림맹에 속한 것은 아니고 대외 협력 문파라는, 그 특수한 위치는 인정하나… 요즘 들어 그 위치를 이용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군…….’
무림맹주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허나, 결국 이 또한 당금의 강호가 자초한 일이니 어쩔 수 없나.’
제갈가의 혈사가 일어났을 때 구파일방과 팔 대 세가는 무엇을 하였나.
그나마 무당권제나 운룡표국 정도가 손을 뻗어 주었을 뿐, 문(門)의 이름으로 깃발을 든 이는 누구도 없었다.
어린 제갈린의 한에 누구도 답하는 이가 없었고.
그 소년은 홀로 청년이 되고, 고독한 길 손에 피를 뒤집어쓰며 동시에 백린의선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그 이후 모두가 생각했다.
곧 죽을 이라고.
구음절맥은 천형(天刑)이며, 그 구음절맥을 얻은 이는 만고의 기재가 되나 동시에 단명할 운명 또한 피할 길이 없다.
날카로우나 결국 부서지고 말 유리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유리칼은 불혹이 되었다.
장년이 된 백린의선은 자신을 놓았다. 은도 원도 모든 것을 놓았다.
세상을 놓아 버렸다.
어차피 곧 스러지고 말 것이라면 모든 것이 허망하니.
그저 백린의각 속에서 후사 하나 남기지 않고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모두가 안도했지.’
그리고 불혹의 제갈린은 생의 마지막에 어린 진천희를 만났다.
당시만 해도 백린의선의 새 후계라는 사실에 강호가 들썩였다.
백린의선은 무서운 자이나 그의 후계는 선인이라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렇다면 백린의선이 스러지고 난 후라면, 그때라면 소백룡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할 수 있으리라.
허나, 소백룡은 백린의선을 치료해 내는 데 성공하고 만다.
그런 지금.
백린의선은 강호의 모든 은원을 잊은 듯이 행동하며 용봉지회에서는 어디까지나 협력 단체로서 움직이고, 동시에 사파와 마교와도 비밀리에 교류를 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는 상황.
물론 어디까지나 정황 증거를 통한 추측일 뿐, 제대로 된 물증도 증인도 그 어떤 것도 나오지 않고 있다.
무서운 자였다.
이만큼 파냈는데도 빈틈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은.
‘대체 무슨 속내인가. 제갈린.’
현 무림맹주이자 창왕(創王) 악진은 우묵한 눈으로 현 상황을 차분히 분석했다.
‘어찌 되었든 제자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은 확실한 터. 미래를 보기 시작한 인간은 빼앗는 것보다 지키는 것을 우선시하는 게 당연한 법.’
이 정도의 의도는 악진도 능히 추측해 낼 수 있었다.
‘대체 제자에게 무엇을 쥐여 주려는 것인가. 백린의선.’
무림에 황제 자리라도 만들어 애제자에게 면류관이라도 씌워 줄 작정인가.
의도는 알아도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가 없다.
마치 눈을 감고 바둑을 두는 기분.
더 무서운 건 상대는 이쪽 수를 알고 있다는 것.
‘조사해 본 바로는 소백룡은 상당한 의인이며 선인이라는 말밖에 없었지.’
처음에는 그의 행적 하나하나가 믿기지가 않았다.
과연 사람이 그 정도로 자신을 돌보지 않고 타인을 위해 달려갈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다른 의도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거기다가 최근 소백룡이 집필한 책은 두 가지.
하나는 [강시에게 효율적인 검진(劍陳) : 연구에서 임상까지].
어째서 ‘강시파훼절진’이나 ‘제갈파검진’ 같은 일반적인 무공서 제목이 아닌 저런 제목으로 집필하였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으나.
그건 소백룡이 괴짜라고 하니 그럴 수 있다고 치고.
그것을 모든 강호에 전달하고, 언제든지 사본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허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지식은 세가와 문파를 통해서만 전달된다.
그것은 정사마 가리지 않고 이어지는 게 당연.
강호는 비인부전이다.
그럼에도 소백룡은 [강시에게 효율적인 검진(劍陳) : 연구에서 임상까지]라는 진법(陣法)을 모두에게 전하였고 심지어 그것은 무료.
가난한 세가도 그것을 읽고 따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심지어 고절한 무공이 아니어도 대체하여 싸울 방법까지 적어 놓아서, 검진을 펼쳐도 강시를 처리할 방도가 없는 사람들이라도.
적어도 시간을 벌고, 사람을 구명하고, 조력을 기다릴 수 있도록 그 방안을 마련한 것은 탄성이 나올 정도로 놀라운 일.
‘진주언가에서는 못마땅할 일이나 어쩔 수 없지.’
강시를 주력으로 다루는 진주언가 입장에서야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제삼 세력의 무분별한 강시 남용으로 인해 정파인 진주언가의 인식이 땅에 떨어지고 있던 것도 사실.
자연히 주력 수입인 장의사 일 쪽도 줄기 시작한 터라 이대로면 금전적 타격을 막을 길이 없었다.
그렇기에 진주언가는 차라리 이 [강시에게 효율적인 검진(劍陳) : 연구에서 임상까지]라는 미친 제목의 검진서에 편승하여 오히려 앞서서 널리 알리고.
뒤로는 먼저 검진서를 입수해 익히고 파훼법을 찾고 있다.
두 번째로 만든 건 의술서.
[실용 가정 의학 : 기초편].이 또한…… 제목이 어딘가 이상하다.
‘만초보감’이나 ‘백린기초의술서’가 아니라 어째서 이런 제목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내용은 무시할 수 없었다.
돈이 없어 의방에 갈 수 없는 양민들도 병에서 구완할 수 있도록 그 방도를 마련하였고. 거기에 필요한 재료들은 하나같이 산야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것들뿐이었다.
단순히 병을 구완하는 것뿐만 아니라 외상 치료법.
의방을 찾기에는 부담스러우나 집에서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상처들을 어찌 치료해야 할지 그 대책이 적혀 있었고.
그리고 만약 큰 상처를 입었을 때, 혼자의 힘으로는 도무지 어쩔 수가 없을 때.
어떤 의원을 찾아야 시간과 금액이 절약될지 그 길 또한 소상히 적었다.
[가정 의학 입문 : 기초편]은 백린의각 분타와 백린의각과 연계된 지역 의방을 통해 사본을 만들 수 있도록 허락했다.양민들 중에는 글을 아는 이가 그리 많지 않기에 그림도 동봉하여 알기 쉽게 만들었다.
이미 마을마다 촌장이 사람을 파견해 사본을 만들어 마을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형편상 사본을 만들기도 어려운 빈민가는 그곳에서 가장 인망이 높은 이를 찾아 무료로 책을 나누어 주었다.
이로써 많은 이들을 구명할 터였다.
‘어찌 보면 소백룡은 나와 뜻이 같다 할 수 있을 터인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허나. 구파일방이 만들어 낸 업보 또한 크고.
스승의 한(恨)은 제자의 한(恨)이기도 했기에.
감히 욕심낼 수는 없다는 것 또한 창왕은 알고 있었다.
그는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고는 고개를 들었다.
자신과 무림맹 총군사까지 다 합쳐 스무 명.
그렇게 모인 거산정파들이 본 회의 전에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창왕 자신은 한때 산동악가의 가주였으나 무림맹주를 하기 위해 가주 자리를 내려놓은 상태.
그의 자녀가 산동악가의 가주로서 참석하고 있다.
아이는 아버지를 깊게 한 번 바라보더니.
“…….”
그 이상의 대화는 하지 않았다.
무림맹의 일을 처리하느라 제대로 된 아비 노릇을 하진 못했다.
심지어 이곳에서는 아비가 아닌 무림맹주로서 대하라 명했다.
자칫 친한 모습을 보였다가 사적으로 무림맹을 이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살까 저어되었기 때문.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나 자식 입장에서는 원망 또한 깊겠지.
그래도 누구보다 일을 잘해내고 있는 아이였다.
그렇게 맹주의 시선이 아이의 옆얼굴에 잠시 머물다가…….
“긴급 회의를 시작하겠소.”
아이가 아버지를 돌아보는 순간, 그 시선은 떨어졌다.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창왕은 말을 이어 나갔다.
“총군사. 그것을.”
무림맹 총군사 독고선은 몸을 일으켜 회의실 탁자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탕!
그것은 사람의 팔이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피는 굳어 있었고, 상처는 썩은 곳이 보이지 않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생기가 느껴졌다.
“아시다시피 강시의 팔입니다.”
“허어…….”
모두가 깊게 침음했다.
“진주언가에서 확인했습니다만. 그간 강호에 등장한 적이 없는 새로운 종류의 강시라는 증거가 나온 상태. 무당파에서 혈사를 일으킨 혈선교라는 자들은 확실히 실존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독고선의 말에 모두가 진주언가의 가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가주 언생도.
구시술법과 무공 양쪽에 둘 다 능한 화경의 고수.
애초에 그 정도의 문(門)에서 문주나 가주쯤 되면 화경이 아니기가 어렵다.
“내 직접 확인했소이다. 우리 언가와도 방식이 다르고, 저 사도련의 강시와도 다르며, 과거 마교에서 만들었던 방식과도 다르더구려.”
“일부러 그렇게 보이기 위해 마교가 수작질을 할 수 있지 않소?”
그 말에 진주언가가 고개를 저었다.
“구시술(俱尸術), 그리고 강시술이란 그런 식으로 펼칠 수 있는 게 아니오. 모든 무공에 뿌리가 있듯 강시술 또한 그 뿌리가 존재하며 그것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오. 제아무리 뛰어난 자라 하더라도 감출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소.”
“뿌리부터 다르다?”
“강시를 제조하는 방법부터가 이미 상궤를 벗어나 있소. 즉, 새로운 계파의 강시술인 셈이지. 이것만은 진주언가의 이름을 걸고 단언할 수 있소.”
누구보다 흉수를 찾고 싶은 사람이 바로 진주언가 가주다.
그 가주가 가문의 이름을 걸고 단언했다.
그 말에 모두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림맹주가 말을 이어 나갔다.
“제삼의 세력이 있다는 증거는 몇 가지가 더 있소.”
그는 삼절추호가 찾아낸 혈선교의 장부, 그리고 비밀 사당에서 올린 의식의 방식과 그 정황.
또한 무당파에서 혈사를 일으키다 사로잡힌 자들을 심문하여 얻어낸 것들을 모아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맹주께서는 그 제삼의 세력이 있다는 게 확실하다 믿으십니까.”
“지금 공개한 증거들은 가장 크고 결정적인 것들이오. 현재로서는 제삼 세력의 존재 여부는 확정적이라 판단되오.”
무림맹 내에서 창왕의 신뢰도는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가 내민 증거들은 하나같이 명확하여 막연한 낙관론 같은 것들은 유리잔처럼 부서져 버렸다.
결국 남은 건 이 참담한 현실을 인정하는 수밖에.
“혈선교라. 어디서 이런 자들이 튀어나왔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