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20
제 620화
뎅! 뎅! 뎅!
종소리가 울린다.
나무를 베어내고, 그 뿌리를 캐내던 사람들이 곡괭이나 도끼 같은 것을 그대로 놓고서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이, 왕씨! 점심시간이야. 먹고 하자고.”
“잠깐만… 이놈이… 좋았어!”
퍽!
왕씨라 불린 사내가 나무 밑동에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쩌적!
그러자 나무가 그대로 옆으로 넘어갔다.
“휘우. 이제 먹으러 가자고.”
왕금.
평범한 농가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지금은 서백린이라고 명명된 지역으로 밀려들어 온 유민 중 하나였다.
본래 이 시대 사람들 대다수가 그렇듯이.
토호의 농지를 빌려다가 소작을 부쳐 먹고 사는 사람이었던 그가 왜 여기 있는가?
그것은 그가 살던 지역의 농사가 망했기 때문.
흉년이 들었고, 소작농인 그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가족들과 함께 야반도주를 하고 항만에서 노동이라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고 생각하며 서백린현까지 흘러들어온 사람이 바로 이 왕금이라는 사내였다.
그런 그에게 이번 공사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나 다름이 없다.
식사를 전부 내어주고.
거기에 돈도 넉넉하게 주었다. 게다가 이 일에 나서면 유민이라고 해도 현민으로 받아주고 호패도 새로 발급해 준다 하였다.
저번 겨울은 제법 혹독해서 사실 백린현 인근 현에서 유민이 제법 많이 생겨나 있었는데.
그들 대다수가 이번 공사에 뛰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
그 숫자가 만 명이 넘을 정도라고 왕금은 들었다.
그중 절반이 투입된 공사는 가도 공사와 하수도 공사.
왕금은 그중 가도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중.
서백린의 가장 번화한 마을인 보응(寶應)은 호수의 항구 도시이면서, 무역과 유흥으로 이름 높은 곳.
그곳에서 동백린 현청까지 직통으로 이어지고, 동시에 백린의각까지 직통으로 이어지는 가도를 만드는 공사를 진행하는 것.
본래 있던 가도는 보수하고, 가도가 없는 곳은 가도를 만든다.
공사 예정 기간은 약 3개월!
무지막지한 공사 기간.
그래도 이렇게 한철 일하고 나면, 내년은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 없다.
“요즘 백린현으로 들어온 이후 살기가 편해졌어.”
“그치. 황상께서 이미 한번 정리하셨긴 한데. 사실 아래 일을 자세히 아시는 건 아니지 않나.”
“그렇지.”
양민들이 앞다투어 고개를 끄덕였다.
“부패 관리는 전부 잡혀갔고, 새롭게 온 관리들은 일을 그렇게 잘한다고 하네.”
“백린의선, 천하일광, 현령님 만세지!”
“어허, 어디 만세를……. 그건 불충 아닌가!”
“그리고 천하일광이라니! 우리 현령 대리님이 어디가 미쳤다고!”
“자네 처음 공사할 때만 해도 이상한 거 시켰다고 일광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말에 왕금이 얼굴이 시뻘게져서 소리 질렀다.
“어이구! 그건 옛날이야기고! 그리고 나만 그랬나! 다들 그랬지.”
* * *
아아, 모르는가. 이것은 작두 펌프.
즉, 수동 양수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좌변기란 것이지.
관리들에게 이것을 선보이는 자리.
과거 물을 뜨기 위해서는 동네 우물에서 두레박을 던졌다가 손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당연하게도 두레박이 올라오면서 흘리는 물도 물이거니와, 시간 소모도 너무 크다.
힘없는 노약자들은 물 뜨는 것도 큰 고통이고.
거기다 강호다 보니 언제나 우물에 독을 타는 걸로 늘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것.
우물에 독 타기가 너무 쉽다.
강호인 하나 잡으려고 살수들이 그 짓까지 하고 앉아 있는데, 제아무리 마을 사람들이 보초를 선다고 해도.
독단 하나 퐁당 떨어뜨리면 소리 소문 없이 줄초상 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비록 물맛이 크게 달라지지 않고 중독만 시키는 독이 비싸다고는 해도 장문인들 모가지 값만큼 비싸겠나?
거기다가 물맛이 좀 바뀌어도 ‘앗, 물맛이 이상하군. 모두 그만 마시시오!’라고 말하는 건 무협지 주인공이고.
현실은 할머니가 끓여 준 국. 간이 이상하다고 말할까 말까 하다 이미 한 그릇 다 비운다.
그렇게 줄초상이 나면 지역 의원들도 멘탈이 나가지.
심지어 우물물끼리도 연결이 되어 있어서 옆 마을까지 훅 가는 경우도 있다.
여기는 CCTV도 주민 등록도 없어서 어느 살수가 그랬는지 잡지도 못해. 그냥 양민은 죽는 거야.
반면 작두 펌프는 피스톤의 원리를 이용한 재래식 펌프 장치로,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이 설치되었더랬다.
여기에 독을 탄다?
일단 뜯어야 하는데, 하려면 하겠지만 우물보다 훨씬 복잡하다.
하오문 살수들을 시켜서 확인해 봤는데 본인은 조용히 한다고 해도 작두 펌프도 조용할까?
그걸 뜯고 있으면 일단 동네 개가 와서 짖고 있다.
절정 살수까지는 못 막는다고 해도 일류 살수까지는 걸러졌다.
헬렌, 느껴지니? 이게 Water란다. W-a-t-e-r.
그랬다. 헬렌 켈러의 깨달음에는 설리번 선생과 마을 작두 펌프가 기여한 셈이다.
‘이제 집집마다 수도관이 설치되고 나서는 사라진 놈이지만, 그 전까지는 꽤 유용하게 사용된 놈이지.’
사용 방법?
누르기만 하면 된다.
물론 힘이 필요하지만 두레박 끌어올리면서 소모되는 힘에 비하면 훨씬 적게 들어서 편하고 우물보다는 위생적이지.
“오오오, 과연. 대단하군요. 하지만 고장 나면 마을 사람이 아니라 전문 관리가 계속 수리하러 다녀야 하지 않을까요?”
그뿐만이 아니다.
잘못 관리하면 이것도 수인성 전염병의 주범이 돼요.
런던에서 이걸 잘못 관리해서 콜레라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한 일도 있었는데, 그걸 밝혀낸 의사 이름이 존 스노(John snow)다.
아무튼 이건 1가구 1펌프 할 때까지는 계속 조심해야 할 거다.
“그러기 위해 행정이 있는 거죠.”
진천희는 그리 말했다.
“백린현이 커짐에 따라 더 많은 기술자들이 필요해졌습니다. 인력 보충이 관건이겠군요. 그리고 상하수도 관리도 다시 짜야 할 터이니 그것도 이제 고민이고요.”
집집마다 깔지는 못하더라도 구역마다 깔기는 해야 하지 않나.
그리고 한 펌프가 오염되었을 때 상수도를 타고 다른 수도도 오염되는 걸 막으려면, 처음부터 물길을 잘 구축해야 할 거고.
‘결국 계획도시니까 대비도 가능한 거지.’
다행히 연무 도시 때부터 함께해 온 기술자들이 있기 때문에 만들고 설치하는 것 자체는 할 수 있다.
문제는 관리 인력인데…….
결국 삐약이들만 넘어가는 게 아니라 고참들도 함께 넘어가기로 했다.
이걸 건드린다는 건 계획도시 하나 새로 만들자는 거니 삐약이들로는 절대 대응 못 하는 상황.
이건 고참이 해야 한다.
삐약이들은 배워야 할 거고.
“다음으로 넘어가죠.”
좌변기다.
먹으면 싸야 한다.
비록 소설에서는 독자님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태반이 삭제되지만.
생물인 이상 먹으면 싸야 하고, 이 시대의 화장실이란 나무 판때기 두 개 놓고 처리하는 일이 많다.
노상에서 방뇨하는 경우도 많고.
옛날 공자님이 길 옆에서 똥 싸는 놈보고 뭐라고는 해도, 길 한가운데에서 똥 싸는 놈은 이 새끼는 나도 못 가르친다며 말을 안 했다지 않나.
화장실은 멀고 공중 보건도 먼 시대.
그러다 보니 당연히 소똥, 말똥, 사람똥 냄새가 늘 풍겨 온다.
행정 정비가 잘된 곳은 대로를 쓸고 닦아서 깨끗하지만 정비가 안 된 곳은 뭐…….
어쨌든 간에, 이 시대에는 어린아이가 용변 보다가 빠져 죽는 일도 종종 생긴다.
우리도 납량 특선 옛날이야기를 모아 보면 화장실에 빠져 죽은 귀신 이야기가 나오지 않나.
과거 WHO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사람들 중 10억 명 정도가 아예 노상 방뇨를 하고, 24억 명은 집에 화장실이 없다.
현대도 그럴진대 여기라고 크게 다를 바는 없겠지.
‘여기는 다행히 인력도, 보급할 수 있는 자본도 충분하니까 하려면 할 수 있겠다.’
변기 원리 자체는 의외로 단순하다.
전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다만 화장실인 만큼 각자 양심적으로 깨끗하게 잘 써야 하는데…….
‘크헤헤헷! 내가 현령이다! 이것이 권력!’
화장실 나올 때 반드시 손 씻게 만들어 주마.
변기 구멍에 이상한 거 넣는 놈은 적발하여 호통을 칠 것이야!
그리고 그렇게 모은 분뇨는 재가공하여 체계적으로 거름으로 전환한다!
기생충 알 하나까지 다 태워서 만들 생각을 하니 의원은 가슴이 뛰었다.
“일단 구획마다 화장실 두어 개는 놓는 것을 우선으로. 최종 목표는 집집마다 두는 것입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쓰는 방식이다.
수세식의 경우에는 분뇨를 거름으로 재활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은 화장실을 깊이 파서 아래에 콘크리트를 깨끗하게 발라 두고, 구더기나 파리가 올라오지 못하게 파이프 처리를 한 후.
거대한 강화 상자를 내부에 넣어서 쉽고 편하게 인분을 옮길 수 있도록 한다.
최종 목표는 집집마다 하나씩 두는 것.
거기까지 가게 되면 공공 위생은 훨씬 더 발전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지탱하려면 계속 행정 인력을 돌려야 하는 거고.’
그리고 그 예산은.
“사실 이건 우리가 돈이 있으니까 가능한 거죠.”
진천희가 입을 열었다.
“일단 시험적으로 설치해 보고 본인 집에도 설치를 원하는 양민은 세금을 감면해 주는 체제로 갑니다.”
이것도 예산이 있으니까 가능한 일.
참고로 먼저 설치를 시작한 건 놀랍게도 금혈방이다.
금혈방 소속 큰 객잔부터 이렇게 좌변기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객잔이라고 해도 민가와 화장실이 크게 다르진 않았으나, 좌변기를 설치하면서 훨씬 위생적으로 화장실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놀랍게도 여기는 수세식.
사이펀관의 압력 차이와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 의외로 제대로 된 수세식이다.
다만 물을 계속 수동으로 보충해 줘야 하는 단점이 있다.
상수도가 현대처럼 잘 깔린 게 아니라서, 물을 퍼다가 날라야 하는 것. 그거야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얼마나 깨끗한가!
권력으로 강제 보건! 위생 사회 이룩하자!
물론 그렇게 쌓인 오물을 강으로 바로 보내진 않고 4단계로 이루어진 정화조를 통해서 여과해야 한다는 단점도 있다.
‘뭐, 이 시대는 그냥 대소변을 강에 뿌리기도 하지만.’
그런 식으로 갔다가는 역병 창궐을 또 맛보게 될 터이니 연무 도시에서 쓰는 방식을 고대로 도입시키기로 했다.
물론 물을 내릴 때 나는 소리 때문에 적응을 못 하겠다고 깽판을 치는 무인도 있긴 한데, 그건 사마현과 그의 하오문 조직들이 ‘사파식으로’ 잘 관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암살자들이 재래식 똥통 속에 숨어 있다가 칼 찌를 위험은 없지 않나.
그거 강호에서 꽤 자주 쓰이는 암살 방법이라고?
‘내 참, 들여오고 있는 나보다도 빨리 설치하고 있다니.’
물 내릴 때 나는 소리가 요란한 건 보완 중이다.
신참 관리들은 눈을 빛내며 감탄했다.
“오오, 저희 집에도 하나 설치하고 싶군요.”
“이거라면 밤에 삐걱거리는 소리를 안 들을 수 있으니 덜 무서울 것도 같고요.”
“위생적이군요. 마음에 드옵니다.”
고참의 시선은 또 다르다.
“이걸 하려면 땅을 몇 자를 파야 할지 알아봐야 하는데, 그거 정비를 다 하라굽쇼?”
“그래서 구획 정비를 다시 하라고?”
“기반 공사부터 들어가야 하는데 장인 쪽에 이미 이야기하셨습니까요?”
“관련 예산은 누가 뽑을까요?”
“분뇨 처리는 어느 정도 주기로 해야 하는지 누구한테 알아보면 됩니까? 현령 대리님.”
그랬다.
산전수전 다 겪은 고참들은 밀려올 업무량부터 계산했다.
깨끗한 곳에서 똥을 싸는 것보다 당장 밀려올 서류 업무가 더 급했다.
그래도 낭떠러지 수직 유교 사회에서 예스맨을 안 하고 업무량부터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나름대로 큰 성과이긴 하다.
백린현은 봉록이 잘 나오고, 의료보험은커녕 그냥 아프면 죽어야 하는 이 세상에서 의료비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게 큰 메리트.
대신 다른 현과 달리 토목, 건축, 산술을 죽어라고 해야 한다는 게 단점이랄까.
“작두식 수동 양수기는 지하수까지 파서 설치하라는 겁니까, 아니면 상수도관을 매설한 후에 연결하는 방식입니까?”
“단면도를 보니 여과 장치가 들어있는데 재료 수급은…….”
진천희는 밝게 말했다.
“넵, 질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