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1
제 81화
팡!
진천희는 하단차기로 넘어갔다.
진천희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부풀어 올랐다.
“스승님. 저는 여하륜을 살려 낸 것이 무척이나 다행스러운걸요.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두 가지 중 하나일 거예요. 또 다른 하나는 스승님의 제자가 된 것이고요.”
“희는 참 착하구나.”
번역하자면 ‘네가 착해서 속고 있는 거란다.’가 되겠다.
문득 스승님이 말했다.
“희야. 이번에는 창을 들고 삼재권법을 펼쳐 보겠니?”
“창은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데 괜찮을까요?”
“그래. 묘리를 깨우칠 수 있을 거란다.”
그리 말하고는 손을 뻗으셨다.
벽에 걸려 있던 연습용 목창이 스승님 손에 빨려 들어가듯 스스로 날아와 잡혔다.
허공섭물.
‘스승님의 내공은 대체 몇 갑자일까?’
다섯으로 내력을 갈라 움직이는 오행진기 특성 때문에 진맥을 해도 정확한 내공량을 측정하기가 어렵다.
스승님은 마치 물 흐르듯 창을 한 번 돌려 진천희에게 던졌다.
완벽하게 그려 내는 창선에 넋이 나갈 것만 같았다.
탁.
창은 생각보다 가볍고, 무거웠다.
그냥 들기에는 가벼웠으나, 하루 종일 휘두르기에는 무거웠다.
무엇보다 길다 보니 무게중심을 잡기가 검보다 어려웠다.
제갈린이 말했다.
“어려워할 건 없단다. 못하면 될 때까지 하면 되니까. 하지만 삼재권법을 인이 박일 때까지 연공한 너라면 금방 깨우치겠지.”
깨우친다? 무엇을?
스승님이 그동안 했던 입버릇을 생각하면 이 말의 뜻은 간단했다.
‘깨우치면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뜻. 그리고 못 깨우치면 깨우칠 때까지 답을 가르쳐 주지 않고 다시 죽어라고 굴리시겠다는 뜻이겠네.’
뭘 깨달으라는 소리인지 깊게 생각해 봐야 머리만 아파 온다.
일단 그냥 해 보자.
진천희는 우선 창을 한 바퀴 핑그르르 돌렸다.
그간의 수련으로 몸은 충분히 잘 만들어졌다.
근력과 지구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천마 놈만큼은 아니지만 키도 제대로 잘 크고 있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천희는 삼재권법의 초식을 창을 들고 휘둘렀다.
팡!
창끝이 공기를 때렸다.
‘아, 이 느낌이 아닌가?’
창은 날카로워야 한다. 주먹과는 달랐다.
‘공기 사이를 가르는 느낌으로 좀 더 날카롭게 해 볼까.’
신기하게도 삼재권법 그 자세에 창만 들고 휘두르고 있을 뿐인데 막히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훙!
맞는 소리가 울렸다.
상단치기, 중단치기, 하단치기, 막기, 흘리기.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이 동작이 이어졌다.
진천희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다. 마치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듯, 창술을 배운 것마냥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구나. 간단하기에 응용하기가 쉬운 거였어.’
그릇으로 치면 삼재권법은 마치 무늬 없고 커다란 질항아리 같았다.
못생기고, 화려한 부분이라고는 전혀 없었지만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었다.
재미있다.
진천희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난감을 가져 본 아이처럼 진천희는 무아지경으로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방금 스승님이 보여 준 완벽한 선을 그대로 따라해 보고 싶다.’
한 번, 두 번, 열 번, 스무 번.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하고, 또 해 볼 뿐이었다.
탕!
창대의 탄성이 좋았다.
창날에 닿는 무게감이 좋았다.
공기를 가르는 느낌이 재미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진천희의 몸 위로 내공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섯 가지의 오행진기가 빠져나가 네 가지 특성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네 가지 진기, 화, 풍, 금, 수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새로운 특성의 진기를 만들어냈다.
콰르르릉-
오행진기 뇌(雷).
창날을 타고 전격이 튀기 시작했다.
검기와는 비슷하나 조금은 다른 형태의 진기였다.
진천희의 창이 계속해서 움직였다. 창이 움직이는 선을 따라 전격이 흘러갔다.
마치 유성과도 같았다. 번개가 만들어 내는 빛이 별처럼 흩어지고 모인다.
콰르르!
반면 연무장 바닥에는 전격 모양의 자국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가장 소박하고 특성이 없다 했던 삼재권법이 뇌전을 머금은 화려한 창술로 변화한다.
진천희가 그려 낸 뇌전이 연무장에 피어난다.
그리고 그 창술은 막바지에 다다랐다.
콰과과광–!
나무창이 화강암 바닥에 꽂혔다.
깨달음이 온몸을 튀기며 지나간다.
숨이 가빴다.
꽂힌 창대에 머리를 기댄 채로 한참이나 숨을 몰아쉬었다. 눈을 감고 방금의 깨달음을 음미했다.
의식이 내면에 침잠하는 것도 잠시, 진천희는 깨달은 것들을 빠르게 정리해 냈다.
‘오행신공 육 성. 뇌전(雷電)! 육 성에 다다랐어.’
그뿐이 아니었다.
삼재권법을 통해 창술을 익혔다.
이 창술이 대체 무엇인지 진천희는 알지 못했다.
그때 스승님이 말했다.
“미리뇌창(迷離雷槍)이라고 부른단다. 뇌전이 모이고 흩어지는 모양을 그리 이야기하셨지. 하지만 강호에서는 다른 이름이 더 유명하단다. 십보신창(十步神槍).”
그 말을 듣는 순간, 척추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
‘십보신창? 이게 십보신창이었어?’
소설에서 몇 번 언급이 된 창술이다.
어떤 적도 열 걸음(十步) 간격으로 접근할 수 없다 하여 붙여진 전설의 창술이다.
작중에서 호사가들이 창술을 언급할 일이 있을 때 이런 대사를 한다.
‘전설의 십보신창만큼은 아니더라도 대단한 창술이구나.’
‘어쩌면 십보신창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평생 창수로서 살아왔소. 십보신창과 겨룰 만큼 된다 자부하오.’
그래 놓고 정작 십보신창이 등장한 적이 없었다.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무협의 중심은 언제나 검이다.
괜히 만병지왕이 아니다.
창은 무협의 조연 같은 역할이다.
무협 소설에서 천하제일 무투회라고 할 수 있는 대회를 열면, 그중에 창수는 많이 쳐줘 봐야 겨우 한둘. 대부분은 검수다.
때문에 애초에 창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할 일도 그리 많지 않았다.
주인공인 천마 놈이 주로 쓰는 무기도 검이나 권이고.
거기까지 생각하니 불현듯, 스승님이 왜 창을 던져 주었는지 깨달았다.
‘천마 여하륜을 상대하기에는 창이 상성이 좋다.’
무기의 길이는 꽤 중요하다.
심검의 이치를 깨달은 고수끼리의 싸움에서도 무기의 길이는 꽤 중요한 변수로 통한다.
창은 검보다 길다. 또한 파괴적인 검술을 상대하기가 좋았다.
애초에 닿지 않으면 될 문제였으니까.
천마 놈을 상대하기에 이만큼 좋은 무기도 없었다.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십보신창을 익히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단다. 하나는 지루하고 따분하기 그지없는 삼재권법을 극성으로 익혀야 한단다. 두 번째는 삼재보법. 이 역시, 미리보를 익히기에 차고 넘칠 만큼 깨달음이 있어야 하지. 마지막은…….”
“……오행신기를 오 성 이상 익혀야 할 것.”
“그래. 거기에 약간의 재능이 있어야 한단다. 특별한 자가 가장 하찮은 무공을 극성까지 익혀야 하며, 오행신공이 더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창술이지.”
사람을 많이 타는 무공이었다.
단순히 육체의 체질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오성과 성격을 많이 탔다.
스승님이 말했다.
“십보신창 초입에 들어선 것을 축하한단다, 희야. 한 번에 거기까지 해낸 이는 제갈세가를 통틀어 봐도 너밖에 없을 거란다.”
그 순간, 스승님이 작게 기침을 했다.
어린아이의 숨소리처럼 작았지만 뭔가가 터져 나가는 것처럼 날카로웠다.
스승님이 손을 뗐을 때는 까만 피가 묻어 있었다.
두 번째 기침이 이어진다.
이번에는 새빨간 생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왔다.
스승님의 커다란 몸이 한 번 휘청이더니 풀썩 무너졌다.
그와 동시에 진천희는 창을 던지고 스승님을 향해 달려갔다.
“유호, 유호! 스승님이! 스승님이……!”
의식을 잃은 스승님의 몸은 산보다 무겁고, 얼음보다 차가웠다.
* * *
따뜻한 침소로 스승님을 옮기고 끊임없이 치료를 했다.
다행히도 스승님은 금방 정신을 차렸다.
“또 발작이 일어났구나.”
“…….”
진천희는 대답 대신 제갈린의 커다란 손을 양손으로 붙잡고만 있었다.
죄책감이 가득 든 눈동자에 제갈린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희야. 나는 괜찮단다.”
“…….”
스승님의 목소리에서 죽음의 냄새가 났다.
그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스승님의 목소리가 몹시도 안온하다는 것이었다.
“각주만 들어갈 수 있는 서가에서 미리뇌창을 찾아보렴. 너는 소각주이니 들어갈 수 있게 이미 조치해 놓았단다.”
언제나 그는 자신이 없어질 그날을 안배했다.
자신이 닳아 없어질 그 이후에도, 진천희가 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진천희의 얼굴이 감정으로 일그러진다.
“스승님.”
“그런 식으로 보지 말렴. 이런 건 그저 자연스러운 섭리 아니겠니.”
스승님이 잔기침을 뱉었다.
진천희의 조치 때문일까. 다행히 이번에는 피가 나지 않았다.
제갈린의 긴 은발이 땀에 젖어 흘러내렸다.
이렇게 방을 덥히는데, 이렇게도 땀을 흘리는데 왜 이리도 스승님 몸은 차가운지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진천희는 스승님의 손에 자신의 내기를 불어넣었다.
체온을 올려야 했다.
‘무리하신 거야. 나를 가르치느라. 내게 모든 것을 전하느라 무리하신 거야.’
어쩐지 오늘이 마지막일 것처럼 가르치시던 매일이었다.
깨문 입술 사이로 피가 배어났다. 스승님이 손을 뻗어 제자의 피를 닦아 주었다.
“스승님. 오늘은 같이 자도 돼요?”
“내 몸 상태 때문에 그런 거라면…….”
진천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더 크면 어리광도 못 부리니까 이럴 때나 실컷 부리게요.”
그 말에 제갈린이 작게 웃었다.
“넌 언제나 날 난처하게 하는구나.”
참 기이했다. 사람들이 괴물이라고 수군거리는 스승님이 제자에게만큼은 약해지니 말이다.
진천희는 스승님의 침상 옆에 나란히 자신의 이불을 깔았다.
스승님이 좀 더 안정될 때까지 자는 척 밤새도록 돌볼 생각이다.
‘원작보다야 많이 좋아졌지만 그걸로는 부족해.’
빨리 다음 처치로 넘어가야 한다.
언제나 그랬듯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으니까.
* * *
제갈린은 그 이후로 종종 상태가 나빠지는 날이면 안채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진천희를 가르칠 때에도 기침 소리가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게 의미하는 것이야 뻔했다.
‘상태가 매일매일 나빠지시는구나.’
병이란 게 그렇다. 초기, 중기에는 일상생활도 하고, 밥도 먹고 지낸다.
환자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눈치 못 채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말기에 이르러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다.
어느덧 소설에서 나왔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게 되셨다.
소설에서 정확한 날짜를 표기하진 않는다.
하지만 개방 방주 사태 전에 용봉지회에서 제갈린이 크게 쓰러진 후,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버티고, 버티다 결국 사망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지금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