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47
제 947화
‘어라라?’
그동안은 개파조사님에 대해 이런 시각으로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당연하지 않나.
삼국지연의를 봤으니까, 나는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하지만 정작 제갈세가의 시점에서 하나하나 따져 보니…….
‘정작 후인들은 선조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거 아닌가?’
그렇게 진천희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시간은 0.3초도 안 되는 찰나.
그동안 영성산인이 말했다.
“호오오. 감히 제갈세가의 진법으로 우리의 술법진을 이길 수 있다. 그거, 본 파에 도전장을 내미는 거라는 것을 아는가?”
“…….”
깜빡.
진천희는 현원전단신공을 거두고 곧바로 현실로 돌아왔다.
한없이 길게 이어지던 시간이 본래의 속도로 돌아온다.
“글쎄요. 도전장이라기보다는… 상호이득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야 대가를 받고 일해주면 그만이지만. 자네들에게는 무슨 이득이 있다고?”
“저희는 의각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이득이 증가하지요. 죽은 이는 치료할 수 없지 않습니까? 살아야 치료비도 내는 거니까요.”
진천희의 명랑한 대답에 영성산인이 웃음을 터뜨린다.
“하? 하하하하핫! 이거 참. 걸작이로군. 자네는… 선(善)을 행하면서 굳이 그것을 이(利)로 포장하는구먼! 뭐어……. 좋네. 좋아. 그런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지.”
몸은 선인(善人)일진대, 혓바닥은 상인(商人)이라.
왜일까? 싫지가 않다.
영선산인의 웃음이 쓰게 굳는다.
젊을 때의 자신이라도 겹쳐본 것일까.
마치 과거를 비추는 듯한 눈이었다.
“좋네. 그러면 진법을 먼저 보도록 하지. 만약 성에 차지 않는다면 없던 일로 하겠네.”
“좋습니다!”
진천희가 환하게 웃었다.
* * *
‘이놈은 대체 뭐 하는 놈이지?’
다들 그런 눈으로 진천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기를 이용해서 땅을 파고 있기 때문.
쿠과과과곽!
보통 강호인들이 술법을 위한 진식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기현상인데 그걸 강기까지 쓸 수 있는 초고수가 하고 있는 풍경.
“오우,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거기 물러나시고~”
머리에는 노란 모자를 쓰고, 흰색 백묵으로 대충 바닥에 설계를 쓱쓱 그린다.
풍수반을 들고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보통 절진을 만드는 방식과 크게 차이가 나는 상황.
“절진을 만들고 있는 게 맞긴 한가?”
“아, 네. 절진도 토목이지요. 이게 또 설계를 잘해야 나중에 계산이 안 틀리는 겁니다. 조상님들은 감으로 천기를 읽고 하신다는데 그런 건 정밀성이 떨어져요. 감으로 다 해결하려고 하면은 결국 부실 진법의 원인이 됩니다.”
“…….”
뭔 소리를 하는 걸까. 이 새끼는.
어찌 되었건 황구까지 동원하여 땅을 파고 뇌진을 이용해 돌을 찾아 옮긴다.
그렇게 난리를 쳐서 만든 진법은 넓이 백 장(약 300m) 정도.
그 난리법석을 피운 것에 비해서는 좀 작은 크기라고 할 수 있었고.
진천희는 진법을 설치하며 새로운 것을 깨닫는 중이다.
‘아, 이건……. 소환진이구나.’
기억으로만 알던 것들이 갑자기 육감처럼 내려와서 빠른 속도로 진천희에게 그 구조와 정수를 속삭이고 있었다.
외운 것을 그저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그 진의를 파악하고 있으니.
모산파의 사람들이 이것까지 알았다면 혼비백산하고도 남을 만한 상황.
하지만 진천희는 그것까지는 말하지 않는다.
‘왜 소환진이 제갈세가에 전해져오는 거지?’
술법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 세부 계통까지 치면 모래알만큼 많지만, 진천희가 다두 왕국의 주술사와 쟈시에게 배운 계통을 취합해보면 대충 이렇다.
영혼, 정신, 소환, 강신, 원소, 창조, 생명.
이 외에도 지역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계통의 술법과 주술들이 판을 친다 들었는데, 일단 대충 크게 이렇게 나누는 모양이다.
‘여기서 가장 특이한 게 창조라고 하지.’
실제로 천지창조를 하고 그런 건 아니다.
무에서 유를 만든다기보다는 그냥 변형에 가깝다.
‘예를 들어 인형술.’
의념을 인형에 불어넣어 움직이게 하는데, 그 과정상 일종의 인공 혼백을 만들어내는 것에 가까워서 창조라고 분류하고 있다.
그러니까 진짜 영혼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있던 것을 다른 방식으로 변형하는 것이니.
진짜 ‘창조’와는 한참 떨어지지만.
당연히 원료는 전부 영기(靈氣).
그 뿌리는 kiiiii이니 강호인의 내가진기로도 어느 정도 대체는 가능하지만, 효율이 떨어지고 위험도도 올라간다.
기름으로 치면 같은 기름이라고 해도 중유, 휘발유, 경유, 등유가 다 다르지 않나.
그저 원유를 가열해서 끓는점에 따라 분리했을 뿐인데도 이렇게 다른 기름이 나오듯, kiii 안에서도 영기와 진기는 다르다.
그리고 기계마다 먹는 기름이 다르듯이 무공이냐 술법이냐에 따라 다르고.
‘나는… 해당 사항이 없지.’
신혈 때문인지 모르겠다.
왜인지 이 육체는 영기를 쓰든 진기를 쓰든 그저 자연스럽게 환원하여 사용한다.
‘…이것도 걸리면 귀찮아지겠지.’
스승님께서 제자가 걸릴지 안 걸릴지 예상했는지는 모르겠다.
허나, 확실한 것은 진천희의 사회생활이 이미 도(道)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
“오오, 과연 일광. 못하는 게 없구려. 설마하니 영기까지 모으다니…….”
“애초에 진기와 영기를 같이 모을 수가 있나?”
“모르겠소. 하지만 무공과 볶음밥을 같이 하는 놈도 없지 않소?”
“우리가 모르는 제갈세가의 비전일 수도 있겠군. 하긴, 지금 저 술법에 도움이 된다는 절진도 제갈세가의 비전이라고 하니.”
전생과 현생.
사회생활로 구르며 깨달은 진리인데, 인간은 뭐랄까, 보고 싶은 대로 본다.
눈앞에 있는 놈이 비품실에서 비품을 박스째로 들고 나가는데, 도둑놈으로 보일지 아니면 외근 나가는 영업팀 주려고 가지고 나가는 걸로 보일지는 사람의 평판과 ki-bun에 달린 일이다.
이미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모두 진천희에게 닭갈비와 볶음밥을 얻어먹은 자들.
진천희가 제갈세가의 신묘한 힘을 가지고 영기를 축적하고 있다고 믿지, 설마하니 선황의 사생아 1 또는 신분을 감춘 황자 1이라서 신혈 파워로 이 짓을 하고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대신 장로급 앞에서 보였다가는 엿 될 수도 있으니 적당히 타이밍 봐가면서 조금씩 하고 있다.
그렇게 진법을 쌓아가며 계속 새롭게 깨달으니 이제는 단순 영기를 집적시킨다고 배웠던 진법은 사실 그 진의가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것.
‘미친……. 몇 번이나 확인해도 이상하잖아. 뭐 이딴 진법이 다 있지?’
완성하면 완성할수록 사기당한 기분이다.
이게 옛날 카드 게임이었으면 이렇게 표기되었으리라.
-이 소환진 카드를 엎어 놓으면 1턴마다 필드에 영기를 소환한다. 소환되는 영기의 양은 해당 진법의 타일 크기와 필드 속성값에 비례한다.
‘요즘 애들은 카드 게임 모르나?’
어찌 되었건 이건 정말 나사 빠진 진법이었다.
‘개파조사님, 영기를 모으는 척하고… 어디선가 영기를 뿅 소환한다는 약 팔이 진법은 대체 어디서 익히셔서 전수하고 계시는 겁니까……. 허허허허.’
이래 놓고 정작 술법은 후대에 전수를 안 하셨네.
물론 개파조사님께서 영기를 다루는 진법을 이것만 남기신 건 아니다.
하지만 그중에서 영기를 가장 많이 모으는 진법은 이게 맞다.
그냥 글자로만 외우고 있을 때는 몰랐던 사실이다.
다행히 이걸 지켜보는 다른 모산파 문인들은 모르고 있는 눈치.
죽은 제갈량이 산 모산파를 속이고 있다.
‘대체 어디서 영기를 소환하고 있는 거지?’
문제는 진법을 아무리 뜯어 봐도 어디서 영기를 소환하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
그 순간, 진법이 완성되었다.
푸화아아악!
어마어마한 영기가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내 평생 이렇게 많은 영기를 본 적이 없소!”
“이게 영기가 맞긴 한가?! 온천수가 아니고?”
“전설에 나오는 진정한 용맥(龍脈). 그 지맥에나 보이는 현상 아니오!”
“최상급 영지(靈地)에서나 볼 법한 현상이라 들었소오오오오!”
그 순간, 진천희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어이쿠! 이런.”
콰과과과과광!
진법이 순식간에 파괴되었다.
그걸 지켜보던 모산파의 문인들은 충격을 먹은 눈으로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그 넘치던 영맥이 사라졌으니까.
진천희가 말했다.
“아, 진법이 잘못되었군요.”
“방금 그 영기는… 영기는 무엇이오?”
“네. 만들다가 실수를 해서 바로 해체했습니다.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 말에 문인들이 입을 다문다.
‘대체 방금 그 진법은 뭐지?’
‘과, 과연 제갈세가. 대체…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 것인가.’
‘아쉽군. 용맥급 영기라니……. 아쉬워.’
허나 진천희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이거 모산파에 설치해도 되나?’
일단 위험한 곳에서 영기를 소환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실제로 느껴지는 영기 역시 청정하기 그지없었고, 진천희에게 속삭이는 기묘한 지식들이 이 진법은 안전하다 말해주고 있었다.
또 한 가지.
‘이 진법을 설치하고 나면 모산파가 익히긴 할 거야.’
그 정수까지는 따라갈 수 없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눈짐작으로 하위의 하위 호환 정도의 진법을 만드는 것까지는 가능해 보였다.
‘그렇다고 이걸 우리가 쓸 일이 있긴 한가?’
쟈시의 말로는 지금 백린의각은 유호의 응원(?)이 담겨 있어서 이런 진법은 쓸데없다고 한다.
오히려 수행하는 문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영기가 많아 봐야 괴이한 일만 가득해지니 안 하는 게 낫다고.
‘어차피 필요는 없는 거네.’
그놈의 유호의 응원(?)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그렇군. 대가가 부족해서 내가 지금 주기 싫은 거구나.’
이 진법을 제공하는 게 안 아까워질 만큼의 대가를 받아내야 한다.
‘이 정도의 가치일 줄은 생각도 못 했어.’
그렇지 않아도 주변 문인들의 눈빛이 아주 끈적한 것이 무슨 삼 일은 굶은 사람 같다.
그도 그럴 만했다.
용맥.
그만한 게 모산파에 온다는 것이니까.
‘그러면 내가 모산파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뭐지?’
기본적인 정보야 알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받아내려면 다른 측면의 정보가 필요하다.
‘쓰읍, 너무 성급하게 움직였나.’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는 김에 모산파에서 뜯어낼 수 있는 게 뭔지 분석해오고 올 걸 그랬다.
과로와 전쟁에 그럴 틈이 없었던 게 아쉽다.
그렇게 생각하려던 찰나, 모산파 장문인 영성산인이 달려왔다.
“바, 방금 아주 강렬한 영기를 느꼈네만……. 자네가 한 일인가?”
역시나 그걸 못 느낄 장문인이 아니다.
그의 뒤에는 장로로 보이는 다른 자들도 놀라서 바라보고 있다.
진천희는 태연하게 말했다.
“예. 제가 설치한 진법이 한 일이 맞습니다. 지금은 실수로 파괴했지만요.”
“아, 아니! 실수 한 번 한 걸 가지고 왜 파괴씩이나 하려고 그러나!”
영성산인도 한 삼 일, 아니 열흘은 굶은 얼굴이다.
당연했다.
문인들이야 개개인의 기량만 책임지면 될 일인데 이쪽은 장문인이 아닌가.
영성산인의 눈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저 진법만 있다면 우리 모산파가 앞으로 두 배, 어쩌면 세 배도 더 성취를 올릴 수 있을 텐데…….’
좋다.
미끼가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모양.
진천희는 의뭉스럽게 낚싯대를 흔든다.
“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실수 없이 하기에는 워낙 재룟값이 많이 드는지라…….”
일부러 어리숙하게 대답하는 진천희를 보며 영성산인.
장문인답게 곧바로 의중을 파악했다.
‘이놈, 대가를 더 내놓으라는 뜻이구나!’
백린군을 뒤덮고 있는 주술진을 해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인가?
‘잔인하군. 차라리 아예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맛만 보여줘 놓고 부수다니! 과연 제갈세가. 심계가 보통이 아니구나!’
사실 진천희도 이 정도 위력인 줄은 몰랐다.
영성산인은 오해를 했다.
허나, 상식적으로 자기도 위력을 모르는 절진을 구축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이 아니므로.
“그… 그러면 그렇게 비싼 절진이면 어떻게 값을 치러야 하나? 우리가 얼마든지 내주겠네.”
원래라면 ‘얼마든지’란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흥정해야 하니까.
허나, 이 진법은 그럴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다른 장로들도 절로 고개를 팍팍 끄덕일 정도.
방금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진법을 보았다.
저런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구했을 터.
‘우리 모산파가 돈이 없나! 이 세상에 돈으로 못 하는 게 어디 있겠나!’
‘어떻게든 거래를 성사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모은 재산이니까!’
당연했다.
강호의 행사를 여는데 모산파가 빠지는 일이 드물었다.
모산파가 써주는 부적부터 풍수, 동티난 곳에 가서 퇴마까지!
돈은 많다. 아주 많다.
그리고 이만한 성능이면 얼마든지 돈을 뿌릴 용의가 있다.
허나, 눈앞의 청년은 태연했다.
분명 모산파의 황금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옵션이 몇 가지 있습니다만…….”
“오… 옵션?”
처음 듣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