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12
기수는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외존자의 공격이 엄청나게 빨랐기 때문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분광권 초식으로 막아내는데, 팔과 팔이 닿을 때마다 저릿저릿한 통증이 몸 전체로 전해져 왔다.
‘우왓! 씨발…. 이 새끼 장난 아니네. 괜히 코피 터뜨렸나?’
상대를 열받게 만든 게 잘할 일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천외존자와 싸우면 싸울수록 점점 기분이 좋아진다는 점이었다.
‘이 새끼를 쓰러트리고 싶다!’
온몸의 호르몬들이 전부 다 동시에 펌프질하는 느낌.
‘아드레날린 업그레이드 한 저글링이 이런 기분일까?’
기수는 잠시 밀렸지만 오래지 않아 승기를 되찾았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천외존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넌 도대체 누구냐?”
“난 네가 더 궁금해. 눈썹은 면도기로 민 거냐? 아니면 저절로 빠진 거냐?”
혹시 무슨 피부병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이 됐다.
“으으….네놈을 쓰러트린 후 답을 듣겠다.”
“그게 가능하다면….”
기수는 내공을 조금 더 끌어올렸다.
전체 내공의 80%를 넘기면 주화입마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이 솔직히 부담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예전에 비해 전체 무공이 증진된 느낌이었다.
약선문에서 지내는 동안, 밤중에 탁지연 덮칠 생각을 포기하고 꾸준하게 운기조식만 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큰 보탬이 된 것 같았다.
기수는 조금씩, 조금씩 한계를 시험해 보았다.
천외존자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자가 나와서 자기와 대등하게 싸우는 것만도 황당한데, 기수의 파워가 시간 갈수록 조금씩 더 강해지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 도대체 네놈은…..”
그는 뭔가 결심하는 듯 하더니 갑자기 자기 입술을 콱! 깨물어 잘근잘근 씹었다.
기수는 그의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저러는 거지? 어라? 저 새끼 자기 피를 마시고 있잖아? 뱀파이언가?’
흡혈귀도 자기 피를 마시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피를 마신 이후 천외존자의 눈동자 색깔이 달라졌다.
붉게 충혈되는가 싶더니 갑자기 스피드와 파워가 한꺼번에 증진되기 시작했다.
‘헉! 피에다 무슨 약이라도 탔나?’
생긴 것만 괴상한 게 아니라 하는 짓도 상식에서 벗어나는 놈이었다.
문제는 상대의 공격에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흐흐흐……넌 이제 내 손에 죽었다.”
천외존자가 자신감을 가질 만 헸다.
기수는 주화입마를 각오하고 내공을 더 끌어 올려야 할지, 아니면 안전한 선에서 좀 더 버텨봐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잠깐 방심해서 상대의 공격에 당하고 말았다.
파팍!….
“크으윽……..!”
기수는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뒤로 날아갔다.
앞선 두 사람처럼 목뼈가 부러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갈비뼈 한두 대 쯤은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존나게 아프다. 씨바….’
그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따라오면서 연달아 공격하는 것이었다.
기수는 몸의 중심도 잡기 힘든 상태에서 간신히 팔을 뻗어 천외존자를 상대하면서 이대로 밀리다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엄마!’
어머니도 아니고 엄마란 단어가 생각난 게 조금 민망하긴 했지만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절망감만큼은 진짜였다.
“흐흐흐….. 넌 끝이야!”
천외존자의 빨간 눈동자와 비틀린 미소의 입이 가까이 보였다.
기수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어디 한 번 해보자!’
결심을 하자 단전에 공존하고 있던 두 개의 내공이 나선형으로 회전하면서 꼬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 이것은 뭐지?’
마치 나사못처럼 회전하면서 폭주하는 내공!
평소의 기수였다면 이 폭주가 고스란히 주화입마로 이어질 거라는 걱정 때문에 그 시점에서 운기를 멈추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어차피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극강으로 밀어붙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천외존자는 몸의 자세도 제대로 잡지 못한 기수가 폭발적인 반격을 가해오자 깜짝 놀랐다.
그는 선택을 해야 했다.
잠시 물러서서 상대가 추스를 여유를 주느냐, 몰아치는 김에 그냥 끝내느냐.
천외존자는 후자를 선택했다.
기수가 아무리 악에 받쳐 저항한다고 해도 지금은 자기가 더 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정적인 오판이었다.
태무대력신공과 혈천제의 내공이 합쳐진 파워는 상상을 초월했다.
꽝..!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의 장이 마주쳤고, 기수는 그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시원한 쾌감을 느꼈다.
반대로 천외존자는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기수는 낙법으로 몸을 바로잡자마자 선풍비로 상대를 따라가며 연달아 주먹을 날렸다.
자기가 당한 것을 똑같이 보복해주는 것이었다.
상황은 아까와 달랐다.
기수는 불리한 중에도 어떻게든 방어를 했지만, 천외존자는 기수의 공격을 고스란히 모두 맞았다.
장과 장의 격돌에서 받은 충격이 워낙 컸던 것이다.
기수는 승리를 확신했다.
그러자 내공 폭주가 걱정되었다.
‘싸움에선 이겨놓고 죽는 거 아냐? 아…. 말도 안 돼.’
그러나 참으로 절묘하게도, 그의 내공 폭주를 막아준 힘이 있었다.
바로 천외존자가 장력으로 맞받아 친 그의 내공이었다.
쫓아가며 두드리는 중에도 그의 호신강기가 끝까지 반탄력으로 작용해서 기수의 내공 폭주를 막아주고 있었다.
상황을 알아차린 기수는 황급히 내공을 단전으로 빨아들였다.
그것은 마치 야생마 두 마리가 끄는 마차를 조심스럽게 세우는 것과 같아서 한쪽을 너무 심하게 낮춰도 위험해질 수 있었다.
동시에 그로기 상태인 천외존자에게 숨 돌릴 기회를 줘도 안 되었다.
기수는 외줄타기라도 하는 것처럼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나사처럼 꼬인 두 내공을 풀었다.
그리고 단전으로 회수하면서 동시에 천외존자에게 피니시 블로우도 날렸다.
휘청거리는 그의 양쪽 귀 근처에 손바닥을 동시에 대고 홱! 팽이 돌리듯 돌려서 목뼈를 우두둑! 부러뜨려 버린 것이다.
영화에서 종종 보긴 했어도 ‘저게 진짜로 되겠어?’ 하던 장면인데 진짜로 됐다.
아무래도 천외존자가 저항할 정신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았다.
모용세가의 두 아들 목뼈를 부러뜨렸던 천외존자가 거꾸로 자기 목뼈가 부러져서 죽자 모용가와 약선문 측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와 반대로 산적들은 겁먹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천외존자의 죽음을 확인한 기수는 갑자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고개를 하늘로 젖힌 후 포효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어마어마한 볼륨의 소리가 구화산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기수는 자기가 왜 그러는지 몰랐다.
하지만 승리의 순간 몸이 저절로 그렇게 반응하고 있었다.
해냈다는 뿌듯함, 승리의 쾌감. 그것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축구선수들이 골 넣고 포효하는 것과 비슷한 심정이었다.
긴 포효를 마친 기수는 산적 진형을 향해 말했다.
“자! 다음은 누구냐?”
산적들은 서로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원래 천외존자 한 명만 나갈 생각으로 대결을 제안한 것이었다.
그가 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비책도 없었다.
“도전자 없나? 그렇다면 그냥 항복하겠느냐?”
기수가 다시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산적들 모두가 두령인 맹유산만 바라봤는데, 그는 멍한 표정으로 천외존자의 시체만 응시할 뿐 사고가 멈춰버린 사람 같았다.
그때, 기수는 목소리를 들었다.
[잘 했다. 이제 열하나 남았다.]
기수는 깜짝 놀랐다.
자기를 이곳에 데리고 온 존재, 예전에도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이봐! 잠깐만! 뭐가 열하나 남았다는 거야?]
그러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계속 부르고, 나중엔 욕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내가 환청을 들었나?’
그것은 아니었다. 그 목소리가 들린 게 분명했다.
‘열하나 남았다고? 그럼 천외존자를 포함해서 모두 열둘이었다는 얘긴데…. 뭐가?’
기수는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상념에 빠져 있던 기수는 탁지연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형님! 어디에 정신 팔고 계시는 거예요. 피하세요.”
기수가 고개를 들어 보이 목소리에 골몰하는 동안 산적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자기네가 지면 산채를 불태우고 전원이 무조건 항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것은 모용세가 쪽을 대결에 나서도록 하기 위한 미끼일 뿐, 실제로 그렇게 할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맹유산이 정신을 차리자 마자 총공격 명령을 내린 것이다.
모용세가 가주 모용기는 큰소리로 고함을 쳤다.
“약속을 어기다니! 너희들이 그러고도 사내냐?”
그러나 산적에게 뭘 바라겠는가.
난전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싸움은 상당히 긴 시간 계속되었지만 처음부터 모용세가가 유리했고, 그 우세가 끝까지 이어졌다.
산적들은 천외존자의 죽음 이후 사기가 추락해서 싸울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산채 문을 활짝 열어놓고 밖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이제까지처럼 높은 목책을 이용하는 방어도 불가능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녹색 장포를 입은 자들이 먼저 천외존자의 시신을 챙겨서 도망쳐버렸다.
그들이 빠지자 전세는 더 확연히 기울었다.
그러자 맹유산을 비롯한 두령과 간부들이 부하를 버리고 도망쳤고, 결국 산채는 완전히 와해되고 말았다.
제자들이 포로를 묶고 산채를 뒤지는 동안 가주 모용기는 기수에게 다가와 감사인사를 했다.
“덕분에 안 좋은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소. 고맙소!”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기수는 겸손하게 대응했다.
모용기 이후엔 모용인도 따로 찾아왔다.
“양소협 덕분에 형님들의 원한을 갚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는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았다.
모용기는 체면 때문에 점잖게 한 마디 하고 갔지만 모용인은 죽음 일보 직전에서 살아났다는 사실 때문에 감정이 격해져 있었다.
기수는 그를 위로했다.
“비록 큰 불행이 있었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기운 내십시오.”
“고맙습니다.”
기수가 모용인에게 잘 해주는 것은 미안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고원경에게 딴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단지 치료제 역할을 해줬을 뿐이지만 어쨌거니 미안한 건 미안한 거였다.
약선문 사람들도 기수를 대하는 게 달라졌다.
“대파산 상춘관 출신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약선문 문주 고무학은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 어째서 이런 훌륭한 무공이 그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동안은 우리 문파에 제대로 된 고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전 사부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완성하신 단약을 먹고 갑자기 내공이 증진되었습니다.”
“혹시 그 약의 처방을 아는가?”
독종의 전인답게 약에 관심이 많았다.
“그 처방은 사부님만 아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사부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실전되고 말았지요.”
“허어! 그것 참 아쉽군.”
고무학은 생각에 잠겼다.
천외존자의 무공은 자기가 나서서 싸웠다고 해도 쉽게 승부를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고강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대를 이긴 고수가 자기 아들의 보표였다.
“자네. 우리 약선문을 어떻게 생각하나?”
“장차 천하제일이 될 전도 유망한 문파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리 생각하나?”
“예. 그렇습니다.”
“하하하…..! 제대로 보았네. 하하하!”
기수는 속으로 웃었다.
‘제대로 보기는…. 너희들은 전부 탁지연의 검에 죽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슬쩍 그녀 쪽을 보았는데, 약선문 사람들을 향항 눈빛이 의외로 담담했다. 그동안 감정 숨기는 연습이 좀 된 것 같았다.
고무학이 기수에게 말했다.
“앞으로도 우리 아들을 잘 부탁하네.”
“염려마십시오.”
“그리고 앞으로는 내가 매달 은 열 냥씩을 추가로 주겠네.”
“감사합니다!”
기수는 일부러 기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기가 돈이라면 꺼뻑 죽는 속물로 보여야 상대방이 방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원달이 어깨가 으쓱해진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었다.
고수는 양일인데, 마치 자기가 고수가 된 것처럼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녹림 72채 따위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하하….!”
고무학은 그런 아들에게 냉정하게 명령했다.
“넌 어서 가서 대청단이나 찾아봐라!”
고원달은 그 한 마디에 기가 팍 죽어서 산채를 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