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04
기수는 군관들의 보고를 백무영과 함께 받게 되었다.
백무영이 기수가 단지 무공만 고강한 게 아니라 생각이 깊고 머리도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수는 사매들과의 저녁 약속을 어기게 된 게 아쉬웠지만 당장은 이 일이 더 급하다고 생각했다.
호중만을 잡는 것은 단지 소서시의 원한을 갚아주는 데서 그칠 일이 아니었다.
호중만이 새로 얻은 자료로 강시 제조법의 업그레이드에 성공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지하 무덤에 있던 강시들은 시체를 움직이는 단계까지는 성공했지만 무기라고 하기엔 부족한 수준이었다. 단지 고통을 못 느끼고 팔다리가 잘려도 계속 덤빌 뿐이었다.
이 단계에서 막아야 했다.
일월신교에 대한 자료들을 읽으면서, 기수는 그들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천마교는 마황 아래 3명의 천제, 즉 혈천제, 암천제, 멸천제가 있고 그들이 108마령을 거느리는 식의 구조였다.
그 안에서 지내봤기 때문에 기수도 그건 잘 알고 있었다.
일월신교는 좀 달랐다.
교주 아래 직속 친위대라고 할 수 있는 9마왕이 있고, 나머지 사도, 흑도 문파들은 각각이 교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상하구조였다.
즉, 친위대인 9마왕이나 각각의 소속 문파들이 교주와 직결되어서 모든 권력이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는 단순한 방식이었다.
문제는 나이 든 현 교주가 후계자를 정하려 하는데 그에게 장성한 아들이 셋이나 있다는 점이었다.
교주 한 사람에게 충성을 맹세한 구마왕과 소속 문파들 입장에선 차기 교주가 누가 되건 그에게 충성을 바치면 되겠지만 장남인 유지상보다 차남인 유지광의 무공이 더 고강하고 야망이 더 크다는 사실이 그들로 하여금 편을 가르게 만들었다.
기수는 세력 도표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들 중 분명히 사도가 한 명 이상 있을 거야.’
이제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보면 무림의 그럴듯한 세력엔 반드시 사도가 한명 혹은 두 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우두머리는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도 공통점이었다.
‘9마왕 중 하나쯤 되겠군.’
이번 기회에 사도까지 하나 잡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무영이 자료를 최종적으로 정리한 후 말했다.
“이제까지 알아낸 바로는 9마왕 중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적근왕이 중립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장남 유지상은 풍도왕과 박피왕, 한빙왕이 지지하고, 차남 유지광은 나머지 다섯 마왕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 같군.”
“막내는요?”
“그는 욕심도 없고 무공도 형들에 비해 부족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어.”
“호중만은 어느 쪽입니까?”
“그는 장남 유지상을 지지하는 풍도왕과 인연이 깊어.”
“그럼 우룡당과 사혼방은 차남 유지광의 지지세력이겠군요.”
“자네 말이 맞네. 세불리를 느낀 장남 유지상이 강시를 만들어 자기 힘을 강화하려 했던 것 같네. 이렇게 보니 큰 그림이 나오는군.”
백무영은 몹시 흡족한 표정이었다.
당금 무림의 한 축인 일월신교에 대해 많은 자료들이 축적되고 있었지만 이렇게 꿰어서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은 상당부분 기수 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수가 백무영에게 물었다.
“근처에 가장 가까운 유지상의 세력이 어디에 있습니까?”
“서주에서 가장 가까운 세력이라면 철마방을 꼽을 수 있지. 그런데 그건 왜 묻나? 양아우. 자네 혹시…”
“예. 호중만은 아마 그곳으로 피신했을 것입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놈들을 찔러보고 반응을 살필 필요성은 있습니다.”
백무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무림과 관이 얽히는 것은 여러모로 좋지 않네. 이곳은 불이 나고 살인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에 관군이 투입되어도 별 문제가 없지만 가만히 있는 철마방을 우리 쪽에서 먼저 건드리는 것은….”
기수가 웃으며 말했다.
“잊으셨습니까? 저와 사매들은 관리가 아닙니다.”
“아! 그렇군….”
“다른 사람 필요 없이 저희들 여섯 명만 가서 건드려 보겠습니다.”
“그렇게 해주겠나?”
“일월신교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천하를 위해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고맙네! 고마워. 하하하!….”
물론 기수는 호중만, 더 나아가 일월신교 안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사도를 찾는 게 목적이었다.
그리고 더불어서 6명만 움직이면 매일 밤 파티를 즐길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기수의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혹이 하나 붙은 것이다.
“그쪽에서 관과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석초를 딸려 보내겠네.”
백무영 입장에선 계속 보고를 해 줄 자기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석초와 동행하게 된 기수는 입술이 댓자나 나왔다.
석초가 말했다.
“형님. 죄송하게 됐습니다.”
“너도 아는구나.”
“예? 무슨 말씀이신지.”
“미안하다며?”
“아! 예. 저는 싸움이 벌어져도 저는 절대로 끼지 말고 구경만 하라고 시랑님이 명령하셨습니다.”
“그건 그래야겠지.”
“제가 알아야 할 다른 일이 또 있나요?”
“아, 아냐. 됐어.”
마을에 들른 기수는 포목점부터 들렀다.
그동안 입고 있던 하인 옷 대신 좀 더 그럴듯한 복장으로 지어 입기 위해서였다.
옷 치수재기를 마친 뒤엔 객잔에 머물면서 석초에게 철마방 정찰을 시켰다.
“가서 최대한 자세하게 정찰하고 와. 이를테면 보초 교대 시간 같은 걸 확인하려면 밤늦게까지 있어야 하겠지?”
“걱정 마십시오. 그런 일이라면 쉽게 해낼 수 있습니다.”
“쉽다고 빨리 오지 말고. 제대로 하란 말야. 알았지?”
“예. 교대시간 모두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석초를 보낸 후에야 비로소 사매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날 오후 늦게 급행료를 지불한 옷이 완성되었다.
검정 무복엔 소매와 가슴에 매화 문양을 넣었다.
혈매궁의 상징을 표시한 것이다.
사매 다섯 명이 검은 옷 입은 걸 보니까 이제 확실히 한 팀처럼 보였다.
‘역시 유니폼이 필요하단 말야. 타이즈라면 더 좋았을 텐데.’
특히 추매의 긴 다리나 동매의 볼륨, 풍매의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의상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것들은 옷 안 입은 상태로 만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기수는 거울에 자기 옷을 비춰봤다.
자기 옷의 매화만 회색이었는데, 그건 여자들과 차별화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궁주니까 좀 달라 보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좋아. 가볼까?”
석초가 말했다.
“이제부터 보초 교대시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약간 복잡하니까 잘 들으셔야 할 겁니다?”
“교대? 아! 교대… 그래. 얘기해 봐.”
“우선 정문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수는 필요하지도 않은 정보를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까지 끄덕이면서 흘려들었다. 다 듣고 난 뒤엔 그의 노고에 대해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석초는 마냥 기뻐했다. 기수가 백무영에게 자기 얘기를 잘 해주었기 때문이다.
기수가 석초에게 말했다.
“너는 여기서 우리를 기다려.”
“아닙니다. 근처에서 행인들과 섞여 얼쩡거리겠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던가.”
기수와 사매들은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철마방의 장원으로 향했다.
철마방은 일대의 상권을 장악한 거대 조직으로 건물의 규모도 몹시 컸다.
기수는 살짝 긴장이 되어 사매들을 돌아봤다.
다들 표정이 굳어 있었다.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기수는 리더인 자기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속으론 긴장되더라도 그걸 겉으로 드러내선 안 되는 것이다.
“자! 시작해볼까?”
기수는 사매들 각자와 시선을 맞추고 미소를 지어 보인 후 앞장서서 담을 넘었다.
그리고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외침이 들려왔다.
“웬 놈이냐!”
“거기 멈추어라.”
기수는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두 명의 보초는 박도와 장창을 들고 달려왔다.
기수는 걸어가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잔백지로 둘을 쓰러트렸다.
그리고 휘적휘적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침입자다!”
“후원 북동쪽이다!”
금방 위치까지 파악하여 명령이 전달되는 것을 보니 평소 상당한 훈련이 되어 있는 것으로 같았다.
몰려드는 자들의 수가 많았지만 기수의 걷는 속도는 일정했다.
계속해서 점혈당해 좌우로 쓰러지는 자의 수만 늘어날 뿐이었다.
기수의 그런 압도적인 무위를 보고 비로소 사매들의 표정에도 생기와 도도함이 살아났다. 궁주의 힘을 재확인하고 신뢰하게 된 것이다.
기수가 커다란 객청 앞의 중정에 이르자 한 사람이 나서며 부하들을 물러서게 했다.
“너희들은 누구냐?”
장원이 쩌렁쩌렁 울리는 호통. 바로 철마방의 방주 악차명이었다.
기수는 상대를 훑어보았다.
나이는 40대 중반이고 딱 봐도 강자로 보이는 인상이었다.
짙은 눈썹 아래 험악한 눈빛도 그렇고, 큰 키에 육체미 선수 같은 팔다리도 위협적이었다. 단지 외모만 그런 게 아니라 내공까지 겸비했다는 사실은 방금의 호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기수가 나서서 말했다.
“나는 혈매궁의 궁주 양칠이다.”
“혈매궁?”
“그렇다. 우리 옷을 보고도 모르겠느냐? 너는 누구냐?”
“나는 이곳 철마방의 주인 악차명이다!”
“흐음… 방주라면 얘기가 통하겠군. 호중만을 내놓아라.”
“호중만?”
“그렇다. 여기에 숨어 있지?”
악차명은 놀란 눈으로 기수를 노려봤다.
난데없이 나타나 부하들을 쓰러트린 것도 놀라웠지만, 호중만이 이곳에 왔었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다.
기수는 그의 표정 변화를 통해 자신이 제대로 짚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악차명이 말했다.
“혈매궁이라는 문파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남자 하나에 계집이 다섯이라니.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던 자들이냐?”
“우리 혈매궁으로 말하자면…”
기수는 잠깐 말을 끊었다. 소개 멘트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도는 방파라고나 할까… 존재 자체가 강호에 알려질 리 없는 신비의 문파라고 할 수 있지.”
“신비의 문파?”
“그렇다.”
“흥! 미친놈들. 얘들아. 쳐라!”
방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동안 포위망을 여러 겹으로 확고히 하던 부하들이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모든 방향에서 동시에 달려들었다.
기수는 코웃음을 치며 검을 뽑았다.
그러나 그가 나설 기회는 없었다.
사매들이 순식간에 매화오궁진으로 자신을 가운데 집어넣더니 저마다 솜씨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크아악….!”
“으윽!…..”
비명소리가 난무하고 피가 사방에서 튀었다.
여자라고 우습게 보던 철마방 무사들은 공격범위에 들어서는 대로 모두 검에 찔려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순식간에 희생자가 늘어나자 악차명이 큰소리로 외쳤다.
“모, 모두 물러서라!”
부하들은 부상자를 부축하여 뒤로 멀찌감치 원의 크기를 벌렸다.
악차명이 이를 갈며 물었다.
“너, 너희들은 도대체 누구냐?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어서 이러는 것이냐?”
기수가 대답했다.
“너희와는 아무 원한도 없다. 호중만만 넘겨주면 곱게 물러가주마.”
“흥! 이렇게 많은 우리 식구들을 죽여 놓고 그냥 가겠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뭐, 선택은 너희들 몫이니까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방금 봐서 알겠지만 우리 혈매궁한테 덤비는 놈들은 전부 저 꼴이 된다.”
기수는 검으로 바닥에 즐비한 시체들을 가리켰다.
악차명은 이를 갈았다.
“으으….”
자신도 두 눈으로 똑똑히 봐서 알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다섯 여인의 무공은 자신이라고 해도 쉽게 제압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가 기수에게 말했다.
“한 가지만 물어보자. 호중만은 도대체 왜 찾는 것이냐?”
기수는 씩 웃었다.
그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른다. 단지 의뢰를 받았을 뿐이다.”
“의뢰? 누가 그런 의뢰를 했느냐?”
“하하하!…. 그런 걸 대답해줄 리 없지 않느냐?”
대답하지 않아도 유지광의 세력일 거라고 의심할 게 분명했다.
그러면 이곳에 온 목적 중 하나. 즉, 일월신교 내의 내분은 더욱 가중될 것이었다. 지금 이곳에 모인 철마방 방도 중 하나만 살아남아도 그 소문은 퍼지기 마련이었다.
악차명이 갑자기 좌우로 팔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양쪽 팔목에서 철컥! 하는 소리가 나더니 손등 쪽으로 길이 30cm 정도 되는 검 날이 튀어나왔다.
그는 마당으로 내려서서 기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 집에 들어와 식구들을 해친 죄를 용서할 수 없다! 너도 사내라면 이리 나서라! 나와 1대1로 싸우자!”
다섯 여인의 검진보다는 기수와 승부를 보는 게 차라리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궁주라고 했으니까 그만 꺾으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기수는 씩 웃었다.
“좋아. 내가 상대해주지.”
기수는 장검을 춘매에게 주었다.
춘매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았다.
기수는 유성추를 꺼내어 양손으로 하나씩 쥔 후 악차명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