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62
남궁세가는 기습에 흔들렸고, 양동작전에 완전히 무너졌다.
장원의 북서쪽으로 병력이 몰린 상태에서 정문이 부서지고 적이 쏟아져 들어오자 다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비백산했다.
그것은 비룡검문의 의도보다 훨씬 잘 된 결과였다.
우선 북서쪽으로 남궁세가의 병력이 너무 많이 몰렸고, 그렇게 몰린 병력들이 지휘체계 붕괴로 혼란에 휩싸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휘체계를 무너뜨린 사람은 바로 기수였다.
비룡검문의 새로운 호법은 남궁세가 무사들 중 고수만 골라 제압했고, 부하들은 무공도, 경험도 부족한 상태에서 마치 놀이공원에서 부모 잃어버린 아이가 좌우를 둘러보며 어쩔 줄 몰라 하듯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남문 쪽으로부터 급보가 올라오자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천과 차남 남궁현은 검을 챙겨들고 함께 나섰다.
그들의 뒤로는 남궁세가의 실질적인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창궁대가 따랐다.
창궁대는 남궁세가 무사들 중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자들로 구성된 일종의 근위대로, 가주와 그 아들들을 호위하고 함께 움직이면서 특수한 임무를 수행했다.
현재 장남인 남궁필이 난주에 가 있고, 막내인 남궁인이 며칠 전 교대인원과 함께 그곳으로 갔기 때문에 현재 세가에는 가주와 차남 남궁현, 그리고 고작 20여명에 불과한 창궁대와 500여명의 일반 제자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근자에 들어 전력이 가장 약할 때 하필이면 침입을 당한 것이다.
자다가 깨어난 남궁천은 반백의 머리를 두건으로 묶고 장검을 휘두르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적을 연무장 쪽으로 유인하라!”
건물이나 창고, 가솔들에게 피해가 최소화 되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그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그 넓은 장원 안에 안 들리는 곳이 없었다.
일종의 내공을 자랑한 것인데, 적에게 겁을 주고 동시에 문도들에게 가주의 존재를 알리려는 의도였다.
그것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특히 갈팡질팡하던 북서쪽의 무사들은 따로 지휘관이 없어도 자체적으로 검진을 구성하면서 연무장 쪽으로 질서 있게 퇴각하기 시작했다.
기수 입장에선 못마땅한 상황이었다.
무질서하게 무너지던 놈들이 나름 체계를 갖추어 움직이니까 시간이 좀 더 많이 걸릴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전력 차가 많이 나는 팀끼리 축구를 할 때, 약팀이 비와 미드필더 사이에 공간을 허용하면 마음껏 다득점을 할 수 있지만 작정하고 9백을 서면 아무리 강팀이라도 골 넣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였다.
호통 한 마디로 문도들을 정신 번쩍 들게 한 것을 보면 가주의 카리스마가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남궁세가의 평소 훈련 상태와 기율이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명가는 뭔가 다른 것이다.
‘어쨌거나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한 놈이라도 더 쓰러트리는 거다!’
기수는 기감을 끌어올려 자신의 위치에서 접근 가능한 최고 고수를 계속해서 찾았다. 그리고 한 놈, 또 한 놈 쉬지 않고 제압했다.
길고도 치열한 전투 끝에 마침내 양측은 연무장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본진보다 뒤늦게 도착한 기수는 상황을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비룡검문 쪽의 숫자가 많았다.
기습이 완벽하게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한 자리에 뭉치게 된 남궁세가 문도들은 가주와 남궁현, 그리고 창궁대를 중심으로 단단한 방어진을 형성했다.
그 기세가 만만치 않아서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룡검문 제자들은 일단 남궁세가의 방어진을 포위했다.
그런데 그 포위진이 또 기수를 놀라게 했다.
수십 개의 작은 진형이 방위를 분담하고 있었는데 그 배치가 기묘해서 함부로 뚫겠다고 나서기가 조심스러워 보였다.
남궁세가 못지않게 비룡검문도 엄청난 훈련량을 축적한 게 분명했다.
‘과연, 문주가 기문진법에 달통한 문파답군.’
기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남궁세가 가주 남궁천의 표정도 여러 차례 변했다.
적이 수준이 대단히 높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가 앞으로 나서서 큰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은 누구기에 무단히 우리 담을 넘었느냐! 정체를 밝혀라!”
그러자 포위한 측에선 진백이 나섰다.
“우리는 비룡검문이다!”
“뭣이!”
남궁천의 안색이 굳었다.
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후 진백에게 물었다.
“조부 때의 빚을 이제 와서 갚겠다는 거냐?”
“오래되었다고 해서 잊을 수 있는 건 아니지.”
“흥! 그때도 안 됐는데, 지금은 될 것 같으냐?”
“그거야 직접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 아니겠느냐. 손자가 겁쟁이라서 도전을 피한다면 모를까.”
남궁천은 진백을 노려보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의 옷자락이 펄럭이며 주변 공기를 휘몰아치게 만들었다.
그러자 진백 역시 지지 않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흙먼지가 확! 일었다.
연무장에 정적이 감돌았다.
양측 합쳐서 7, 8백여 명이나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두 수장의 대치상태에 모두가 긴장한 것이다.
기수는 금방의 내공 과시를 통해 두 사람의 우열을 분간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진백의 내공이 약간은 부족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차이는 크지 않았다.
의지력으로 극복 가능한 범위 이내였다. 문제는 남궁천의 분노와 진백의 복수심 중 어느 쪽이 더 강한가에 달렸다고 할 수 있었다.
남궁천이 말했다.
“옛날의 빚을 청산하겠다면 정정당당하게 도전을 하면 될 것이지, 비겁하게 야밤에 기습을 할 필요가 무엇이란 말이냐?
상대가 의외로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말로 기를 죽여 놓자는 의도였다.
진백이 코웃음을 친 후 대답했다.
“흥!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너와 내가 이렇게 마주 설 기회를 잡을 수 있겠느냐? 그리고 보아라. 우리가 기습을 했다고 하지만 건물에 불을 지르지도 않았고 무기 없는 자를 죽이지도 않았다. 뭐가 비겁하다는 거냐?”
기수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말 불길이 하나도 타오르지 않고 있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적을 혼란시키기 위해 사방에 불을 지르는 게 보통이었다.
그럴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는데 비룡검문은 하지 않았다.
기수가 그동안 몸담았던 수로맹이나 혈매궁의 사매들이었다면 당연히 불을 질렀을 것이었다.
비룡검문은 단순히 복수뿐만 아니라 그 과정까지 중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남궁천이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그렇다면, 네가 나와 맞대결 할 용기가 있느냐?”
진백은 즉시 대답했다.
“당연하지! 내가 바라는 게 바로 그것이다!”
수적으로 우세한 데다 적을 완전히 포위한 상태에서 1:1 대결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명예로운 선택이기는 했다.
기수는 진백의 당당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남궁천도 잠시 말없이 진백을 바라보았다.
검에 일생을 건 무인으로서, 상대를 존중하게 된 것이다.
“좋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나는 진백이다.”
“나는 남궁천이다. 내가 너를 이기면 병력을 퇴각시킨다고 약속할 수 있겠느냐?”
“물론이다. 대신, 내가 너를 이기면 3년간 봉문해라.”
그러자 남궁천 옆에 있던 차남 남궁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봉문이라니….”
진백은 냉소를 지었다.
“흥! 그게 싫다면 여기서 모두 죽던가.”
남궁현은 욕을 퍼부으려고 했지만 남궁천이 손짓으로 그를 제지했다.
“넌 나서지 마라.”
“하, 하지만 아버님!”
“가만히 있으라니까!”
“아, 알겠습니다.”
사실 봉문 요구는 무리라고는 할 수 없었다.
만약 가주가 패한다면 남은 사람 중에 진백을 당적할 사람이 없는 것이고, 그의 말대로 몰살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3년간 봉문이란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대결 상대를 존중해주는 거라고 할 수 있었다.
기수는 진백과 시선을 맞추고 서로 미소 지었다.
봉문은 사실 기수 때문에 추가해 준 조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림에서의 활동을 전부 다 중단한다는 의미이니 혈매궁에 내린 현상수배도 저절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남궁천이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좋다! 내가 지면 우리 남궁세가는 향후 3년간 일체의 강호 활동을 중단하고 봉문 하겠다. 내 입으로 분명히 말했으니 누구도 어겨선 안 된다.”
남궁현은 입맛을 다셨다.
가주가 선언을 해버렸으니 이젠 대결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그는 자기 아버지와 진백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아버지가 질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뭔가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그래서 훌쩍 뛰어나가 진백 앞에 선 후 포권을 했다.
“난 남궁현이라 하오! 비룡검문에 대해서는 일찌기 들어본 적이 있소. 내게 그 검법을 견식할 기회를 주시오.”
자기가 먼저 싸우면 진백에게 부상을 입히거나 내력을 소모시킬 수 있었다. 그러면 아버지의 승리 확률을 현격히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남궁천은 아들의 경박하고 속 보이는 행동이 못마땅했다. 그러나 그의 체면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원래 자리로 돌려놓을 수도 없었다.
진백은 이 훼방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남궁세가의 혈족이니 도전할 자격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진백은 최상의 상태로 남궁천과 싸우고 싶었다.
그 상황을 해결해줄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기수가 훌쩍 뛰어나가 남궁현 맞은편에 선 후 포권을 했다.
“난 비룡검문의 호법인 양모라 하오! 내가 기꺼이 당신에게 우리 검법의 위대함을 보여주겠소.”
남궁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기 의도를 거스르는 훼방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는 자기 집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는 하인 옷을 입고 있는 데다가,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얼굴이었다.
남궁현은 자기를 놀리는 거라 생각하고 화를 냈다.
“비켜라! 너 같은 놈이 어딜 나서는 거냐!”
기수는 피식 웃었다.
“자식이 죽는 꼴을 눈앞에서 보면 그 아비의 심정이 어떨까?”
“뭐, 뭣이라고?”
기수는 검을 뽑아 남궁현을 겨누었다.
“네 아버지가 제대로 싸우기를 바란다면 못난 꼴로 죽어 자빠지는 꼴을 보여선 안 된다는 뜻이다.”
순간 그의 검이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파고들어 순식간에 남궁현의 얼굴에 검상을 만들고 귀를 찔러서 귓바퀴를 찢어버렸다.
“으윽!….”
갑자기 당한 남궁현은 극도의 분노와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상대의 검이 너무나 빨라서 피하지 못하고 당했다는 사실이 놀랍기 짝이 없었다.
기수가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젠 진짜로 해 볼 마음이 생겼겠지?”
남궁현은 손바닥으로 상처를 눌러 피가 흥건하게 묻는 것을 확인한 후 이를 갈았다.
“내 기필코 네놈을 죽여 천참만륙을 내고 말 것이다!”
“하하!… 멍청아. 싸움은 입이 아니라 검으로 하는 것이다. 겁먹은 개처럼 짖지만 말고, 검을 휘둘러 덤벼보란 말이다.”
남궁현은 검을 뽑아 미친 듯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기수는 방어에 치중했다.
흥분한 남궁현의 공격은 치열하기 짝이 없었지만 기수의 엄밀한 방어를 뚫지는 못했다. 그럴수록 남궁현은 더욱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뒤쪽에서 남궁천이 외쳤다.
“서두르지 마라!”
그는 이미 기수의 검술이 남궁현보다 위임을 알아보았다.
남궁현이 홧김에 하는 공격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싸움은 의외로 길게 이어졌다.
그것은 기수에게 숨은 의도가 있기 때문이었다.
기수는 진백이 남궁세가 검법을 충분히 견식하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남궁현의 얼굴에 검상도 만들고, 말로도 자극해서 가지고 있는 재주를 전부 다 쏟아내게 만든 것이었다.
비룡검문은 오랜 세월 남궁세가 검법에 대해 연구를 했겠지만, 최신의 가장 완성된 형태에 대해서는 모를 테니까 남궁현을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진백은 두 사람의 대결, 특히 남궁현의 검 움직임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남궁현은 최초의 의도와 달리 이적행위를 하게 된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깨닫지 못했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서 젖 먹던 힘까지 짜내고, 비장의 기술들을 총동원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들이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면서 계속 시간만 흐르자 그도 차츰 상황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의 생각 변화는 공세의 위축을 가져왔다.
기수는 그 시점에 반격을 개시했다.
“실력이 고작 이것뿐이냐?”
“으으…. 닥쳐라!”
“후후… 좋다. 이제부터 우리 비룡검을 보여주마. 각오해라!”
기수가 공세로 전환하자 비룡검문 제자들 사이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양호법이 어떤 사람인지 문주에게서 들었기 때문에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남궁현에게 계속 밀리는 모습을 보면서 약간의 실망과 불안감을 느낀 게 사실이었다.
그러던 기수가 본래 실력을 드러내어 단번에 상황을 역전시키자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기수가 쓰는 초식들이 압권이었다.
분명 자기네들도 배우고 익힌 검초인데, 천하의 남궁세가를 상대로, 그것도 방금 전까지 그토록 몰아붙이던 가주의 아들을 상대로 어찌나 멋지게 펼쳐지는지, 보는 사람의 어깨가 으쓱할 지경이었다.
북서쪽 담을 넘었던 선발대는 대부분 기수의 검술 실력을 봤지만, 정문을 깨고 들어온 본진의 300명은 처음으로 보는 광경이라 놀라움이 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