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87
장안의 분위기는 기수와 사하를 놀라게 했다.
행상인들로 북적거리던 거리에 관군이 가득했다.
병장기를 든 무림인들도 평소보다 많은 것 같았다.
기수는 사하와 함께 붐비는 객잔에 들어가 먹을 것을 시키고 청력을 돋우어 주변의 대화를 들어보았다.
사방에서 모두들 무림맹의 패퇴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그 중 가장 끔찍한 소식은 차기 맹주 선출에 대한 얘기였다.
기수가 사하에게 말했다.
“맹주님이 돌아가셨나봐.”
“아!…. 그럴 수가…”
기수는 소림방장과 약간의 교분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쉽고 애통한 기분이 들었다.
“놈들이 제대로 노리고 습격한 게 분명해.”
음종의 특별한 능력을 정말 시의적절하게 잘 써먹었다는 점에서 사마연합, 특히 제갈세가의 전략 운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삶은 양고기와 야채 요리를 먹는 동안 충분한 정보를 들은 두 사람은 장안 서쪽에 있는 함양으로 이동했다.
경공으로 가면 사하 능력으로도 하루면 충분할 거리를 객잔에서 4박이나 하며 걸어간 것은 이제 본진에 합류하면 더 이상 함께 할 기회를 잡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하만 아쉬운 게 아니라 기수도 그녀와의 시간을 더 가지고 싶었다.
갈색의 매끄러운 살결, 곧고 늘씬한 다리, 뜨거운 속살, 정성을 다 하는 입의 서비스 등이 대단히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양은 조금씩 가까워졌고 결국 그들은 무림맹의 집결지인 커다란 사찰, 보국사에 도착하게 되었다.
반가운 일은 비룡검문과 보타문 모두 큰 피해 없이 빠져나왔다는 사실이었다.
기수와 사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져서 각자의 문파로 갔다.
기수는 우선 문주에게 인사를 올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오!…. 무사히 빠져나왔군. 정말 다행이야!”
진백은 첫 휴가 나온 아들을 맞는 늙은 아버지처럼 기수를 반겼다.
순우광과 조치성,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기수를 둘러싸고 기뻐했다.
기수가 문주에게 물었다.
“어떻게 피해 없이 나올 수 있었습니까?”
“사해문의 배를 타고 수로로 이동했지. 육로로 왔다면 아마 크게 당했을 거야.”
“아! 그랬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자네가 사마연합군의 배를 모두 부숴버렸다고 하더군. 덕분에 물길로 퇴각한 병력은 대부분 괜찮았네.”
“다행입니다.”
그래서 보타문도 추가 피해가 없었던 것 같았다.
진백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는 괜찮지만 무림맹 본진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네. 현현각의 각주와 천마교가 합동으로 화양문을 들이쳤는데, 소림방장을 비롯해서 무당, 청성, 곤륜, 천산파 장문인과 각 문파의 고수들 수십 명을 죽였다고 하더군.”
기수는 깜짝 놀랐다.
“9대 문파의 장문인만 5명이 당했단 말씀입니까?”
예상보다 더 심각한 피해였다.
“각 문파에서 자랑하던 고수들이 모두 장문인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가 일부는 성공하고 대부분 실패하면서 나온 결과니까 실제 손실은 훨씬 크다고 봐야지.”
장문인이 당하는 걸 그냥 두고 봤을 리가 없을 테니까 각 문파에서 실력 좀 있다고 하는 제자는 전부 다 싸움에 뛰어들었을 것이었다.
그러고도 장문인이 다섯이나 죽었다면 제자들의 희생은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갔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각 문파마다 사방으로 구원을 청하기 위해 제자를 파견했네. 우리도 제자들을 추가로 불러 200명을 채울 생각이고.”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비룡검문의 규모로 봤을 때 200명은 좀 많았다.
“어쩔 수 없지 않나. 애당초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면 모를까. 일단 입맹을 했는데 위기에 처했다고 해서 모른 척 할 수야 없지.”
기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괜히….”
“하하!… 아닐세. 난 여기 온 걸 아주 다행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고. 사문의 복수를 한 데서만 끝났다면 우리 비룡검문의 이름을 누가 알아줬겠는가? 그저 남궁가의 원수가 되었을 뿐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비룡검문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네. 선조님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시겠나.”
얘기를 듣고 보니 명성을 쌓는다는 면에선 모두가 어려워하는 지금이 오히려 기회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려울 때 옆에서 도와주고 힘이 되어주는 친구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진백의 증원 결정은 그런 판단 하에 내려진 것이었다.
기수가 다시 물었다.
“새 맹주님은 어떻게 선발하기로 되었습니까?”
“이미 선발되었네.”
“예? 벌써요?”
“수장이 없이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겠는가. 개방 방주 취개 주일비가 새로운 무림맹주가 되셨지.”
“개방방주….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함께 가면서 얘기하도록 하지. 안 그래도 맹주님이 자넬 만나고 싶어 하시니까.”
“저를요?”
“가장 최근까지 적진에 있다가 왔으니 그곳 정보를 많이 알지 않겠는가?”
“최근? 아! 예…. 그렇습니다…”
최근엔 밤마다 사하와 뒹군 기억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그 이전의 경험은 나름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따라 나섰다.
가는 도중 기수는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그러나 개방 방주를 만난 적도, 그에 대해 들어본 기억도 거의 없었다.
“아무리 9대문파 중 5파의 장문인이 당했다고 해도 나머지 화산, 아미, 종남, 형산파에서 개방에 순순히 무림맹주 자리는 내어준 게 이상하군요. 뿐만 아니라 4문 5가도 있지 않습니까?”
“4문과 5가는 처음부터 한 발쯤 뺀 상태로 무림맹에 참여하고 있었네. 병력도 파견하고 군량도 지원하지만 문주나 가주가 직접 나선 경우는 없지. 남궁세가의 가주도 집에 있으면서 자식만 보내지 않았나. 무림맹의 주축은 어디까지나 9파1방이었어. 그런데 그 중 화산파와 형산파는 제 발로 무림맹을 떠나갔고, 소림, 무당, 청성, 곤륜, 천산파는 장문인이 목숨을 잃었지. 전력이 온전한 건 아미와 종남파 그리고 개방뿐이야.”
그렇게 정리를 해놓고 보니까 셋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다른 선택이 없을 것 같았다.
아미파 장문인은 여자니까 아무래도 지금 같은 시기에 리더로 모시기에 얼마간 꺼려지는 게 있고, 종남파 장문인은 겪어봐서 알지만 무림맹주직을 맡을 인물은 못 되었다. 차라리 진백이 훨씬 나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군요.”
“더구나 맹주는 자기 능력을 입증하기도 했으니까.”
“어떻게 말입니까?”
“알고 보니 그는 황족이라고 하더군.”
“아! 주일비… 주씨였군요.”
“오래 전에 갈라져 나온 방계에 불과하지만 어쨌거나 현 황실과 약간이나마 연관이 되는 것 같더군. 그래서 덕분에 대규모 지원군을 불러올 수 있었네.”
“지원군이라면…. 관군 말씀입니까?”
장안에서부터 계속 보이던 관군은 바로 새 무림맹주의 치적이었던 것이다.
진백이 대답했다.
“관군이라기보다는 동창이 이번 정사대전에 개입하게 되었지. 관군은 동창에서 동원한 것이고.”
“동창! 그들이 어째서…”
지금의 무림맹 입장이라면 찬밥 더운 밥 가릴 형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동창을 무림에 끌어들인 게 과연 잘한 일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진백이 말했다.
“소문에 듣자하니 대장군부가 강남에서 일월신교 토벌전을 대대적으로 벌이는 중이라고 하더군. 그러니까 동창 입장에선 자기네들도 뭔가 공을 세우고 싶었겠지.”
“그렇군요.”
“천마교는 황실이 선 이후 계속해서 적이었고, 삼황맹은 변방 오랑캐라 볼 수 있고, 녹림72채와 수로맹은 토벌대상 아닌가. 그들이 함께 뭉쳐 있는 적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동창 입장에선 기회라고 할 수도 있지.”
기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황족이라고 해도 직계가 아닌 오래 된 방계. 게다가 거지 왕초 노릇 하고 있는 사람이 동창을 움직였다는 사실이 왠지 믿어지지 않았는데, 앞뒤 사정을 알고 나니까 이해가 되었다. 동창은 주일비의 부탁을 들어준 게 아니라 자기 의지로 공을 세우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어쨌거나 현재의 무림맹 입장에선 한숨 돌릴 수 있는 든든한 방패를 얻었다고 볼 수 있었다. 관군이라면 삼황맹한테는 약간 밀릴지 모르지만 녹림72채나 수로맹과 비교했을 때는 거의 동등한 전력이었다.
게다가 숫자 면에서 엄청나니까 아무리 음종과 손을 잡은 사마연합군이라고 해도 쉽사리 섬서성 경계를 넘지는 못할 것이었다.
맹주 집무실로 가는 동안 기수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인사를 받았다.
특히 신성진 전투에서 구함을 받은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와 감사 인사를 했다.
기수를 처음 보는 사람들도 멀찍이에서 귓속말을 한 뒤 고개를 끄덕이곤 했는데, 기수 입장에선 좀 묘한 기분이었다.
그는 사도 12명만 잡고 떠날 계획이라 명성을 얻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얼굴이 알려지면 자기 일에 오히려 방해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목을 받고 보니 유명해진다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본래 얼굴로 돌아가서 좀 활약해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마침내 도착한 맹주 집무실.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 보였다.
수십 명이 바쁘게 움직이며 수없이 많은 종이쪽지들을 전달하거나 옮겨 적고 있었다.
강호 최고의 정보망을 가지고 있는 개방다운 모습이었다.
탁자엔 대형 지도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 작은 나무판들이 배치되어서 양측의 포진 상황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새 무림맹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가 양십일인가?”
“예. 그렇습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기수는 그에게 군례를 올렸다.
주일비는 50대 중후반으로 수염과 머리가 백발이었지만 체격이 크고 눈빛이 형형했으며 만만치 않은 기도를 풍기고 있었다.
지난번 무림맹주인 항마법사보다 더 고수일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두 사람을 내실로 데리고 가 차를 권한 후 기수에게 물었다.
“신성진 전투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나?”
기수는 자기가 겪은 일들을 최대한 자세히 말했다.
다 듣고 난 주일비가 침음성을 흘렸다.
“흐음…. 루주들조차 그 정도로 강하단 말인가?”
“예. 저도 두 번째 소녀에게 깊은 내상을 입어서 그걸 치료하고 오느라 이렇게 늦고 말았습니다.”
사하와 보낸 시간을 대충 그렇게 퉁쳐 넘기기로 이미 말을 맞춰둔 상태였다.
주일비는 연거푸 탄식을 토했다.
“이거 큰일이군…. 정말 큰일이야… 각주의 가공할 능력만 해도 끔찍한데, 그 아래 루주들까지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다니…”
기수는 궁금해졌다.
“그들의 직책이 루주입니까?”
“그렇다네. 이제까지 우리 개방…. 우리 무림맹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현현각은 한 명의 각주와 10여명의 루주, 그 아래 100여명의 제자로 이루어져 있네.”
“전체 인원이 고작 100명밖에 안 됩니까?”
“그러니까 이제까지 아무런 흔적도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힘을 키울 수 있었겠지.”
“그런데, 루주라는 꼬마들이 10명이 넘는단 말씀입니까?”
“적으면 10명에서 많으면 16명 정도 될 걸로 보네. 그리고 그들은 꼬마가 아니야. 적어도 100살은 되었을 걸세.”
“예? 그럴 리가요.”
“변성기 직전의 동남동녀들을 모아 특수한 대법을 시행하면 그 나이에서 더 이상 늙지 않는 외모를 가지게 된다고 하더군.”
기수는 역시 본진에 합류하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정보가 있는 것이다.
“맹주님. 그들에게도 약점이 있겠지요?”
주일비는 진백과 시선을 마주친 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 덕분에 알게 된 게 전부일세. 암기와 접근전. 우리들 중 자네만큼 가까이 접근하고도 목숨을 보존한 사람은 아무도 없네.”
“그, 그렇군요.”
정보는 없었다.
주일비가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 앞으로 내 가까이에 있으면서 많이 좀 도와주게.”
기수는 그를 바라봤다.
어떻게든 위기의 무림맹을 다시 일으켜 세워 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성심을 다해 맹주님을 돕겠습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주일비는 몹시 기뻐했다.
그리고 그는 진백에게 말했다.
“마침 문주님이 오셨으니 긴한 부탁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현무단의 단장을 맡아주십시오.”
“현무단이라니요?”
“지금 우리 무림맹의 병력 규모는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고수의 수로 따지자면 이전의 절반, 어쩌면 삼분지 일로 약해졌다고 봐야 할 겁니다.”
주일비는 거기서 잠시 말을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힐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직을 재편하고자 합니다. 저와 우리 개방, 그리고 이번에 장문인을 잃은 소림, 무당, 청성, 곤륜, 천산파는 중군 본진을 맡기로 하고 나머지 병력은 재편하여 각각 청룡단, 백호단, 주작단, 현무단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진백은 깜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그렇다면 우리 비룡검문은 어디에건 들어가서 시키시는 대로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제가 단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
4개 단의 단주라는 것은 맹주 아래 서열 4위라는 의미.
입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비룡검문이 바랄 자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주일비는 진지했다.
“우리는 지금 떠나간 화산과 형산파에 복귀를 부탁하기 위해 사신을 보낼 정도로 급박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올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그리고 4문 4가 역시 가주가 직접 참여하는 건 이번에 장원을 잃은 화양문밖에 없을 것입니다. 청룡단은 종남파 장문인이, 백호단은 아미파 장문인이, 주작단은 화양문의 양문주가 각각 맡아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비룡검문에서는 현무단을 지휘해 주십시오.”
“허어! 이것 참…”
진백은 난감했다. 선배들이 죽고 다치는 바람에 서열이 급상승한 느낌.
그리고 그 얘기를 꺼낸 시점이 양호법의 복귀와 맞물린 것을 보면 최근에 쌓은 그의 명성이 무림맹 전체 사기 진작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보는 것 같았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진백이 말했다.
“좋습니다! 맡겠습니다.”
“고맙소이다! 진문주.”
주일비는 몹시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