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43
기수는 한 줄기 진기를 들이마신 후 선풍비를 시전하여 그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간발의 차이로 그들에게 잡히지는 않았지만 옷이 걸려 찢기면서 움직임이 살짝 늦춰지고 말았다.
기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놈들 뭐야?’
이 정도로 강한 마령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잔백지가 튕겨 나오고, 선풍비가 거의 잡힐 뻔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순간, 대맥혈을 향해 무시무시한 경력이 밀려 들어왔다.
“씨발!…”
자기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두 마령이 협공하는 틈에 멸천제가 기회를 잡은 것이다.
기수는 전신의 내공을 최대한 끌어올려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하는 동시에 분광권으로 멸천제의 장을 쳐내고, 허리를 틀어 피했다.
순간, 쿵! 하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기수의 몸은 사오 장이나 뒤로 밀려났다.
“크으으…..!”
기수는 머릿속이 아득해지고, 콧속이 충혈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까스로 빗겨 맞았지만 상상 외로 큰 통증이 전신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하하하!…. 제법 솜씨가 있구나.”
멸천제는 큰소리로 웃으며 뚜벅뚜벅 다가왔다.
기수는 황급히 내력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치사한 놈! 암습을 하다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그 자신도 사도와 싸울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아 최대한 빨리 죽이기로 마음먹은 바 있었다.
멸천제도 그런 식으로 한 거라 볼 수 있었다.
“일단 몇 군데 부러뜨려 놓아야 대화가 통하겠지?”
멸천제가 손짓을 하자 두 마령이 기수의 뒤쪽으로 돌아갔다.
퇴로부터 봉쇄한 것이다.
기수는 그들의 신법을 보고 확실히 다른 마령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도 본인뿐만 아니라 그 수하까지 업그레이드 시킨 건가?’
이전에 유소진은 수로맹 채주들에게 무공을 전수해준 바 있었다.
그러나 멸천제의 두 마령 흑승과 등활은 배우는 단계가 아니라 이미 무공이 완성된 상태. 적이 상당히 적극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멸천제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기수는 재빨리 몸 상태를 점검했다.
겨드랑이 일대가 뻣뻣해서 세 사람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너희들의 주군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이냐? 쥐새끼처럼.”
“후후후…. 질문은 내가 할 것이다. 네가 아니라.”
기수는 작은 희망을 봤다.
무조건 죽여야 한다는 자신과 달리, 멸천제는 뭔가 알아내고 싶어 했다.
어쩌면 자신이 기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살아 있는 게 그것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회가 있을 때 나를 죽이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기수는 3개 단전을 동시에 운용하여 왼손에는 단정홍, 오른손엔 파천강기, 그리고 전신에 화류의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화악! 하는 폭음과 함께 기수 주변에 난데없이 불길이 치솟아 오르자 멸천제와 두 마령은 깜짝 놀랐다.
기수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잽싸게 뒤로 몸을 날려 흑승을 향해 달려들면서, 오른손으로는 등활 쪽으로 다섯 줄기의 파천강기를 발사했다.
겨드랑이 맞은 자리에서 극심한 통증이 전해져 왔지만 최선을 다해야 했다.
적이 화염에 놀라는 것은 한 번 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멸천제를 공격하지 않은 것은 가장 확률 높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두 마령을 놔두고 싸우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승산이 없었다.
등활은 화염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강기들이 날카롭게 파고들자 양손을 십자 모양으로 교차시켜 그것들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에 튕겨낸 잔백지와는 성질도, 위력도 판이하게 달랐다.
“크아악!…..”
피가 튀었고, 그는 비명을 질렀다.
거의 동시에 기수의 주먹이 흑승의 얼굴로 찔러 들어갔다.
흑승은 그 상황에서도 민첩하게 반응하여 손등으로 기수의 주먹을 쳐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기수의 미소를 봤다.
단지 손이 한 번 닿았을 뿐인데 다 이긴 사람처럼 웃는 것은 흑승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그 미소의 의미가 드러났다.
“으악!….”
손등에서부터 단숨에 팔꿈치와 어깨를 지나 기경팔맥을 장악하는 통증이 그를 쓰러져 버둥거리게 만들었다.
기수는 0.1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곧바로 등활을 향해 달려가며 양손 모두로 파천강기 십여 발을 더 날렸다.
“크으….”
등활은 어떻게든 버텨내려 했지만 처음보다 더욱 강한 관통력이 결국 그의 몸에 구멍들을 연달아 만들었다.
기수는 그제야 손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었다.
흑승과 등활 모두 아직 숨이 안전히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단정홍과 다량의 출혈로 인해 회생 가능성은 제로였다.
멸천제는 입을 쩍 벌리고 자신의 두 수하가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갑작스런 화염에 놀라 딱 반 발자국을 뒤로 물러섰을 뿐인데, 그 짧은 시간에 상대는 믿을 수 없는 신위를 보인 것이다.
“너. 방금 그 수법들은….”
멸천제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하핫!… 어디서 본 것 같지?”
기수는 여유를 되찾았다.
계획대로 1:1 대결로 만들었다는 게 우선 고무적인 일이었고, 그보다도 자기 의지대로 마령 두 명을 해치웠다는 게 몹시 기분 좋았다.
성공의 비결은 처음에 만든 화류 호신강기의 화염이 엄청나게 컸기 때문이었다.
기수 본인도 놀랄 정도였는데, 그 원인은 딱 하나.
오후까지 쉬지 않고, 존슨의 표피가 얼얼해질 정도로 정말 열심히 음양대법을 연마한 덕분이었다. 자영과 함께 불굴의 의지로 노력한 대가가 빛을 본 것이다.
‘이 정도까지 내공이 증진되었을 줄은 몰랐는걸.’
그동안 만들기에만 열중하고 실전은 처음이라 본모습을 비로소 확인하는 셈이었다.
기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너희들. 준비를 좀 한 것 같구나. 그런데 이렇게 망쳐서 어떻게 하냐?”
멸천제는 어느 정도 냉정을 되찾고 있었다.
“흥! 고작 내 수하 두 명에게 이겼다고 기고만장하는구나.”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아니지. 이제 네가 이길 기회는 사라져버렸다는 게 중요한 문제지.”
“후후…. 과연 그럴까?”
순간 멸천제의 신형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경력이 확! 밀려왔다.
기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분광권을 펼쳐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호신강기를 바짝 끌어올리고 방어에 치중한 것은 상대가 또 무슨 희한한 기술을 쓸지 몰라 일단 탐색전부터 벌이는 것이었다.
다행히 단정홍이나 전기충격 같은 까다로운 기술은 없었다.
팔이 저릿저릿할 정도의 파워가 조금 신경 쓰일 뿐이었다.
‘됐다! 이길 수 있어.’
기수는 멸천제를 제압하여 주군이란 자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정신 차려! 아주 작은 여유라도 주면 오히려 내가 당할지 몰라. 기회가 있을 때 가장 빠른 방법으로 죽여야 돼.’
그게 맞는 길 같았다.
기수는 양손에 단정홍을 만들어 운용했다.
진기 소모 대 치사율로 봤을 때 가장 효율이 높은 기술이었다.
처음에 맞은 자리 때문에 아무래도 내공을 전부 싸움에만 쏟아 부을 수 없는 상황이니만큼 효과적으로 적을 죽일 필요가 있었다.
팔과 팔이 얽히고, 단정홍이 상대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멸천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왜 이러지? 혹시 상성이 안 맞는 건가?’
그러나 상성 문제가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멸천제의 몸은 투명한 강철 갑옷을 입은 것 같았다. 단정홍의 기운이 그의 몸속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외부에서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단정홍으로 뚫지 못한다면 파천강기는?’
진기 낭비를 막기 위해 오른손 검지로 하나만 만들어 쏴보았다.
팍! 하는 파열음과 함께 멸천제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지만 곧 회복되었다.
기수는 상대의 강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마령들과는 격이 다르구나.’
그러자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피가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오냐. 좋다! 힘 대 힘으로 싸워주마.’
단정홍이나 파천강기 없이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기수는 세 단전의 진기를 분광권에 집중했고, 상대와 똑같이 파워와 스피드만으로 싸움에 임했다.
파파파파팍!….
팔다리가 부딪힐 때마다 무시무시한 파열음이 발생했다.
기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상대에 집중했고, 몇 차례 타격을 가하기도 했지만 몇 대 얻어맞기도 했다.
급소를 피해 맞아도 통증이 온몸으로 퍼졌다.
‘물러서면 안 돼! 저놈도 속으론 아플 거야.’
이런 식의 힘 대 힘, 스피드 대 스피드 대결은 기수 입장에서도 자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공명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싸움인 셈인데, 어떤 면에선 상쾌하다고 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더욱 기분이 좋은 것은 자기가 조금씩 우위를 점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수의 3연타가 멸천제의 방어를 차례로 뚫고 마지막에 그의 가슴에 적중했다.
“크윽!….”
멸천제는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신형을 바로잡았다.
기수는 마지막에 그의 가슴을 친 손바닥을 거둬들이지 않고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무공 고하가 가려진 것 같군.”
말은 차분하게 했지만, 승리의 기쁨이 그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멸천제는 냉소를 지었다.
“흥! 한 대씩 때리고 맞았으니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지.”
“후후…. 잊었나본데, 지금 넌 혼자야. 더 이상 도와줄 사람이 없어.”
“도움 따윈 필요없다.”
멸천제는 양손 검지로 자신의 혈도 십여 군데를 스스로 짚기 시작했다.
‘뭐 하는 짓이지?’
기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곧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멸천제의 기도가 폭발적으로 강화된 것이다.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상대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오는가 싶더니 배에서 무시무시한 통증이 느껴졌다.
“으윽!…..”
숨이 턱! 막히는 느낌.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고 온몸이 공중으로 떠오르자 멸천제의 팔이 긴 스윙을 순식간에 회전시켜 얼굴을 후려쳤다.
기수는 황급히 팔을 들어 막았지만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몸이 땅에 처박혔다.
집어삼킨 흙먼지에 기침을 할 사이도 없이 이어진 발길질.
기수는 다시 한 번 몸이 허공에 떠오르고 말았다.
“크하하하!….”
멸천제는 광소를 터뜨리며 떠올라 깍지 낀 양손으로 기수의 허리를 내리찍었다.
“으으….!”
기수는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내상에 땅과 부딪힌 충격까지 더해져서 각혈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속 편하게 누워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무릎으로 내리찍는 멸천제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데굴데굴 굴러야 했다.
거기에 이어지는 멸천제의 무자비한 주먹 연타.
기수는 그것들을 간신히 막고 피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파 할 시간조차 없었다.
‘뭐냐! 왜 갑자기….’
멸천제가 아드레날린 업그레이드 저글링처럼 사기 전투력을 가진 것은 필시 자기 혈도를 스스로 눌렀기 때문인 듯 했다.
‘이런 식이면 난 죽는다.’
기수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위기감을 느꼈다.
맞은 자리도 아팠지만 문제는 내상이었다.
계속 이렇게 몰리다가는 그야말로 꼼짝 못하고 맞아죽을 게 분명했다.
기수는 분광권으로 상대의 공격을 간신히 막아내며 상단전에 따로 합비에게서 배운 수류의 태포련을 운기했고, 진기가 모이자마자 상대를 향해 발출했다.
멸천제의 움직임이 약간 주춤거렸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기수가 정신을 차리고 위기에서 벗어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간격을 벌린 기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36계 줄행랑!
멸천제는 고함을 지르며 뒤쫓아 왔다.
“거기 서라! 싸우다가 도망치다니… 부끄럽지도 않느냐?”
“아니. 전혀….”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현재로선 싸움을 피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기수는 나름대로 무학에 대해 깊은 연구를 했기 때문에 멸천제의 현재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특별한 수법으로 잠재력을 한껏 끌어올린 상태.
그러나 그런 수법이 오래 지속되기란 불가능했다.
조금만 시간을 끌면 한꺼번에 태워버린 연료가 바닥날 것이고, 그 뒤엔 아주 쉽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었다.
합리적인 길을 놔두고 일부러 어려운 길을 택할 이유는 없었다.
과연, 멸천제는 다급해 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승부를 가리자! 거기 서라!”
“잠시만 쉬었다 하는 게 어때?”
“그럴 수는 없지.”
멸천제의 잠재력 발현은 경공술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기수는 이제까지 선풍비를 따라오는 사람은 거의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런데 멸천제는 순식간에 간격을 좁혀왔다.
기수는 수류의 태포련을 한 번 더 썼다.
멸천제의 걸음이 살짝 늦춰졋고, 기수는 그 사이에 십여장쯤 간격을 벌릴 수 있었다.
그러나 멸천제는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서 물러서면 자기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미친 듯 빠른 경공으로 또다시 따라붙었다.
기수는 불안감을 느꼈다.
‘도대체 지속시간이 얼마나 긴 거지?’
오행류는 분명 효과가 있긴 하지만 내력 소모가 심했다. 이러다가 자기 내공이 먼저 소진되기라도 하면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