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19
기수는 같은 길을 자기보다 앞서 간 선배에게 확인받고 싶었다.
지금 자기가 과연 정도를 가고 있는 것인지…
“어르신. 제가 개발한 수법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문제라기보다는 중간과정이라고 봐야겠지. 나의 태포련이 탕으로 끓여서 재료의 맛을 모두 우려낸 거라면, 너의 태포련은 기름에 살짝 볶은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거다.”
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말이 안 되는 비유 같으면서도 묘하게 이해가 되었다.
“어르신. 혹시 제게 수류의 호신강기를 가르쳐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건 뭐 하게?”
합비는 씩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맛을 보여주면 결국 자기 제자가 될 거라고 한 작전이 들어맞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은, 제가 오행류의 각 요소들을 순환시키는 새로운 심법을 개발 중인데, 수의 음에 해당하는 부분이 꽉 막혀서 순환이 끊어지고 맙니다.”
합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냐? 순환이라니?”
“그러니까, 파천강기가 목의 양이라고 하면 오행 상생의 순서에 따르면 목은 화를 낳으니까 화의 음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다시 화생토로 토의 양, 이런 식으로 음양을 바꿔가면서 금의 음, 수의 양, 목의 음, 화의 양, 토의 음, 금의 양까지는 잘 가는데 마지막 수의 음에서 딱 막혀서 고리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합비는 웃었다.
“하하!… 어디 수의 음 뿐이겠느냐? 내가 네게 가르친 것은 화의 음양, 수의 양 달랑 세 가지 뿐인데…”
“나머지 여섯 개는 제가 어떻게든 메꿔 넣었습니다.”
“방금 그 화의 태포련처럼 말이냐?”
“예. 어르신의 것과는 격이 다르겠지만 어떻게든 오행의 기운을 지니고 있으니까 순환은 되더라고요.”
합비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기수가 자질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오행류의 격에 맞는 무공들을 익히는 것만도 평생이 걸릴 일인데 그것들을 순환시킬 생각을 했다는 게 독창적이고 참신했다.
“그 순환이라는 걸 내게 한 번 설명해 주겠느냐?”
“예? 그건… 좀 힘들겠는데요.”
“하하!… 왜? 내가 훔쳐 배우기라도 할까봐?”
“아뇨. 그게 아니라 제가 익힌 심법이 좀 특이해서요.”
“얘기해보거라. 특이하면 얼마나 특이하겠느냐.”
“예.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하단전에 토를 단단히 자리잡는 게 중요합니다. 근본이 되니까요. 그 상태에서 상단전에 목의 기운을 집중시키고, 중단전으로 화의 기운을 만들면 진기가 순환을 시작하게 됩니다.”
합비는 손을 내저었다.
“잠깐, 잠깐. 뭔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어떻게 한 몸으로 토, 목, 화의 진기를 한꺼번에 운용한단 말이냐?”
“저는 그게 됩니다.”
합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하면서 주화입마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그러게요….”
“그러게요라니? 그게 무슨 무책임한 말이냐?”
“제 예전 사부님이 개발하신 심법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 자세한 원리는 모릅니다.”
합비가 미간을 찌푸렸다.
“세 개의 단전을 따로 운용할 수도 있고 동시에 이용할 수도 있느냐?”
“예. 물론입니다.”
합비는 손가락으로 관자노리를 짚으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안 돼. 절대 될 수가 없어. 만약 시도했다면 네가 기존에 연마한 진원지기가 그걸 수용할 수 없었을 거다.”
기수는 뒷머리를 긁었다.
“사실, 사부님도 이론만 개발하셨을 뿐, 직접 운기를 하셨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하필이면 그때 내공 운용하던 틀은 가지고 있지만 단전은 텅 비어 있는 묘한 상황이라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단전이 텅 비었다?”
“예. 좀 복잡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유소진의 혼세흡정공에 걸려 내공을 쪽쪽 빨린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네 사부라는 자는 확신도 없고 검증도 안 된 심법을 제자의 목숨을 걸고 시험해 봤다는 말이냐?”
“그, 그런 셈이죠.”
“허어! 어떻게 그럴 수가…. 그 자의 이름이 무엇이냐?”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흐음….”
합비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기수는 사부에 대해 변명을 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사부님에게 이미 진원지기가 확고히 자리 잡고 있어서 시험을 못해봤을 뿐이지요. 전 그 덕분에 남들보다 세 배 빨리 무공이 증진되는 몸을 가지게 되었으니 아주 잘 된 일이죠. 하핫!”
“세 배라…. 그럴 수도 있겠군.”
“방금 말씀드린 오행류 상생순환의 경우엔 세 단전을 모두 돌리기 때문에 마치 단전끼리 서로 추궁과혈을 해주는 것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운기조식에 비해 내공 증진되는 속도가 3배를 훨씬 넘는 것 같습니다.”
합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단전끼리 진기를 순환시킨다면… 그것도 오행류의 상생에 맞춰서…아마 최소한 6배에서 최대 9배까지는 효과가 있을 거다.”
옆에 앉아 얘기를 듣던 사하는 질려버렸다.
‘여섯 배라니….’
기수가 갑자기 현현각주를 죽이고 무림맹을 구한 고수가 된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기수가 말했다.
“마지막 조각을 끼워 넣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합니다.”
합비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왜요?”
“아홉이라고 해도 이미 순환은 충분히 일어난 거니까 열로 늘어난다면 9이던 연공의 양이 10으로 늘어나는 게 이치에 맞지 않겠느냐.”
“아! 그, 그렇군요.”
기수는 약간 실망했다. 하지만 얘기를 듣고 보니 순환이 완성되었다고 갑자기 뻥튀기가 되거나 할 일은 없을 것 같기는 했다.
‘그래도 열을 다 채우는 게 어디야?’
기수는 그런 생각으로 하다가 갑자기 깜짝 놀랐다.
합비의 표정이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르신이 왜 이러시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합비가 자신을 몹시 경계한다는, 심지어는 약간의 적개심까지 품고 있다고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합비가 낮게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이제 확답을 들어야겠구나. 내 제자가 되겠느냐?”
기수는 합비의 심기 변화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그는 할 수 없는 특별한 심법이 있다는 사실, 가르치지도 않은 오행류를 스스로 만들어 상생순환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심법으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그로 하여금 무림인으로서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예전에 합비가 압도적인 고수일 때는 제자가 되지 않겠다고 버텨도 하나둘씩 비결을 가르쳐 주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더 크면 자기보다 더 고수가 될 수도 있는 상대에게 누가 자신의 밑천을 다 가르쳐 주겠는가. 그건 무림의 상식에 맞지 않았다.
‘아! 나도 참 멍청하지… 능력을 그렇게 다 말해버리면 어쩌냐.’
기수는 속으로 엄청나게 후회했다.
사실, 그동안 합비가 가족과 재회하고 푸근한 동네 할아버지처럼 변해서 자기도 그를 마음 편히 대했던 것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자기는 합씨 일족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제자가 된다는 전제 하에 친근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10개 중 미리보기 3개 봤으면 나머지 7개는 정식 구매하는 게 바른 태도 아니겠는가.
더 이상 제자는 아니면서 무공만 빼먹을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사부님으로 모시고 배우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고 막 입을 열려던 그는 한 가지 생각에 머뭇거렸다.
‘가만있어 봐. 일단 사부님으로 모시면 자유는 없어지는 거야. 신중히 생각해야 돼.’
솔직히, 일단 사부로 모셔서 무공을 완성시키고 남은 사도 세 명을 쓱싹! 해치운 뒤에 바이바이~! 하면 가장 쉽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목적으로 합비를 속이고 싶지 않았다.
정의롭고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합비 같은 사람을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먹고 싶지는 않았다. 늘그막에 거둔 제자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면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겠는가.
그렇다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신이 데려갈 거라고, 아주 먼 미래 멀리 떨어진 장소로 돌아가야 한다고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상생순환 고리를 완성해야 하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배우고 익힌 수련법 중에서 가장 효과가 뛰어났다.
아홉에서 멈춘 지금만 해도 마음이 찰떡같이 맞는 음양대법 수준, 혹은 그보다 약간 더 뛰어난 효율을 보이고 있는데 마지막 10%를 채운다면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는가.
사도들의 주군이라는 미지의 강적을 앞둔 지금 상황에선 어쩌면 그것이 유일한 대안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 죽으면 다 소용없잖아. 나중에 사라지는 건 그때 가서 설명하기로 하고 일단 배우자. 엄마가 중요해? 신의가 중요해?’
마지막 질문이 에러. 신의란 단어를 떠올리고 나니까 또 마음이 흔들렸다.
기수가 계속 고민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자 합비가 일어섰다.
“시간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생각해 보거라. 내가 어디 있는지는 알지? 그동안 이 집은 마음대로 써도 좋다.”
그리고는 바로 집을 나가버렸다.
기수는 그를 따라가서 전송한 후 돌아와 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자기가 미온적 태도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기회를 주고 문을 열어놓는 걸 보면 합비는 자신을 몹시 아끼는 게 분명했다.
사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어르신의 제자가 되지 않는 거야? 혹시 이전 사문에 무슨 맹세라도 했어?”
“아니. 일단 사제관계가 되면 묶이기 때문에…”
“어때서? 그동안 보아온 바에 의하면 제자를 괴롭히거나 부당하게 대할 분은 아닌 것 같은데…”
기수는 한숨을 내쉰 후 대답했다.
“관계란 건 말야. 비록 상하관계라고 해도 일방적인 경우는 없어. 일단 사부님으로 모시게 되면 나도 어르신에게 책임을 져야 한단 말야.”
“너도 좋은 남자잖아. 사부님 잘 모실 것 같은데…”
“제대로 봤어.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곁을 영영 떠날 수도 있거든.”
“그건 안 좋은데… 어르신이 돌아가실 때까지만 곁에서 모시다가 그 뒤에 떠나면 안 되는 거야?”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합비의 현재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꼿꼿한 허리와 빛나는 눈빛을 보면 앞으로 적어도 100년은 더 살 것 같았다.
기수의 마음이 어느 정도 굳어진 것으로 보이자 사하는 몹시 아쉬워했다.
“어르신을 사부로 모시고 그 오행류라는 걸 제대로 배우면, 너의 그 심법과 함께 지금보다 훨씬 더 고수가 될 수 있을 텐데…”
“내가 여기 온 게 바로 그럴 목적이었지.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나 봐.”
너무 거저먹으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하는 탁자 위를 치웠다.
그리고 만들어 둔 음식을 데워서 갖다놓고 젓가락을 집어주며 물었다.
“이제 어쩔 생각이야?”
“글쎄…”
기수는 그녀가 만든 음식으로 요기를 하며 생각에 잠겼다.
문은 열려 있으니까 아무 때라도 합비를 찾아가 부탁하면 더 이상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그걸 선택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기수는 갑자기 누군가 바지를 더듬는 걸 깨닫고 화들짝 놀랐다.
고개를 들어 보니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하가 보이지 않았다.
탁자 아래로 기어 들어가서 부스럭거리고 있는 것이다.
“야. 거기서 뭐 해? 나와.”
“응? 아냐. 넌 그냥 계속 생각하고 있어. 난 좀 있다가 나갈게.”
그녀의 집요한 꼼지락거림에 기수는 결국 엉덩이를 들고 한 쪽 다리를 바지 밖으로 빼낼 수밖에 없었다.
사하는 목표물을 양손으로 꼭 쥐고 자세를 잡았다.
“으음….”
기수는 신음을 토했다.
따듯하고 촉촉한 느낌이 존슨을 휘감아 왔는데, 생각을 돕는 사하의 이타적 행동이 정말 효과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래. 내가 뭐가 모자라서 빚지고 사냐? 아홉 개를 만들어냈는데 나머지 하나 못 채워 넣을까 봐? 난 천재니까 할 수 있어!’
갑자기 근거 없는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배운 세 개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었다면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일 찾아가서 확실하게 말씀드리자. 그리고 그동안 가르쳐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인사도 드리고.’
솔직히, 그냥 가르쳐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 입장만 생각한 것이라 곧 지워버렸다.
‘오늘은 일단 사하에 집중해볼까?’
마음을 정한 이후 사하는 확실히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여덟 명으로 풍년이 난 파티도 행복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1:1로 노는 것도 즐거웠다. 집중탐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수는 탁자 아래서 애쓰는 사하에게 그만 올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음…음…”
사하는 머금은 채로 고개를 도리도리 했다.
좀 더 있겠다는 건데, 그 동작 자체로 자극이 강하게 왔다.
기수는 신음을 토하며 몸을 늘어뜨렸다.
싫다면 굳이 서둘러서 나오라고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바로 그 때.
밖에서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빠른 경공으로 지나가는 소리가 분명했다.
아래쪽에서 쿵! 소리와 ‘아야!’ 소리가 동시에 났다.
사하도 밖에서 난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급히 몸을 일으키다가 탁자에 머리를 박은 것이다.
기수는 잽싸게 바지를 제대로 입고 창을 열고 밖을 확인했다.
소리는 멀어져 갔지만 합가촌을 벗어난 것 같지는 않았다.
사하가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물었다.
“누구지? 이런 동네에 웬 무림인이… 제법 고수인 것 같던데…”
“그러게 말야…”
기수도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그는 합가촌을 지키겠다고 합비와 약속한 적이 있었다.
안 그래도 미안한 마음인데 만약 합가촌에 해가 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절대 좌시할 수 없었다.
그는 즉시 지붕 위로 올라갔고 사방을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멀리서 움직이는 인영을 찾아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