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20
침입자의 흔적을 찾은 기수는 뒤따라 올라온 사하와 함께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적이 한 명이 아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는 사람들이었다.
“어! 너, 너희들은….”
“찾았다! 정말 여기 있었어!”
기쁨에 겨워 소리친 사람은 백서린.
그리고 곧바로 달려온 다른 여인들은 양여옥, 당운영, 호운혜였다.
기수는 당황한 표정으로 사하 쪽을 봤다.
왜 이들에게 합가촌에 대해 얘기했냐고 묻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사하는 더욱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기수를 독차지하기 위해 혼자 몰래 왔기 때문이다.
순간 그녀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너희들 혹시!… 우리 제자들을…”
그러자 호운혜가 나섰다.
“흥분하지 마.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까.”
사하는 눈이 뒤집어졌다.
“너, 너희들 진짜로 제자들을 건드린 거야?”
호운혜가 슬쩍 당운영을 가리켰다.
“네가 우리 모임에 끼지 않은 이유에 대해 우리 당매가 그냥 넘어가지 않았지. 뭔가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어. 그래서 너희 제자들을 찾아가서 그냥 물어본 거야. 네가 어디 갔냐고.”
“단지 물어보기만 했는데 내 소재를 얘기해줬다고?”
“응. 진짜야. 물어보기만 했어. 신체적 위해를 가한 것도 전혀 없고, 협박이나 위협을 한 것도 전혀 없었어…”
“그 말을 나더러 믿으란 말야?”
“못 믿겠으면 돌아가서 물어 봐.”
사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들 네 명과 기수를 남겨두고 난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백서린이 한 마디 했다.
“보타문 제자들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우리가 보장할게.”
사하는 당운영을 노려봤다.
제자들이 순순히 입을 열었을 리는 절대로 없었다.
필경 악랄한 당가의 계집이 뭔가 수작을 부린 게 분명했다.
어쨌거나 제자들에게 별다른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지금 급한 것은 오늘밤 기수를 독차지하기 위해 이들을 쫓아내야 하는 것이다.
“먼 길을 찾아왔는데 안 된 얘기지만 기소협은 오늘 밤 나와 갈 곳이 있어.”
“내가?”
기수는 사하의 매서운 눈빛에 곧바로 대답을 바꾸었다.
“그래. 맞아. 오늘 홍콩… 아니, 급히 가기로 한 곳이 있었어.”
당운영이 다그치듯 질문했다.
“거기가 어딘데요? 우리는 가면 안 되는 곳인가요?”
기수는 갑자기 대답할 말이 없어서 사하 쪽을 봤다.
여기까지 찾아올 정도면 따돌리기 극히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하도 대답이 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호운혜가 기수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오라버니. 갈 곳이 있었다고 해도 오늘은 우리가 왔으니까 특별히 하루만 뒤로 미뤄주세요. 네?”
“그, 그럴까?”
호운혜에게 마음이 그다지 끌리지 않게 되었다고는 해도, 몸은 또 별개였다.
팔꿈치가 그 커다란 메론에 파묻히니까 정상적인 사고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당운영이 잽싸게 반대쪽 팔을 꼈다.
“어디 머물고 계세요? 우리가 가서 맛있는 요리 만들어드릴게요.”
기수는 당운영의 달라진 태도가 여전히 낯설었다.
어정쩡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사하의 눈치를 살폈는데, 그녀는 여전히 둘이 함께 가야 할 급한 곳을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꼬리 치는 두 여인을 매섭게 노려볼 뿐이었다.
결국 여섯 사람은 합비의 집으로 향했다.
탁자 위엔 먹던 음식이 남아있었는데 당운영이 싹 치워버렸다.
사하가 뭐라 하자 다른 세 명이 그녀를 에워싸고 눈을 부릅떴다.
자기들을 따돌리고 기수와 단둘이 만난 것에 대해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사하는 물론 그녀들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확신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라서 자기도 모르게 눈을 깔게 되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자기는 이미 기수와 뜨거운 밤을 보냈고 내공까지 듬뿍 증진되지 않았는가.
호운혜와 백서린이 사하와 기수 앞에 마주 앉아 노려보는 동안 당운영과 양여옥은 주방에서 한참 시끄럽게 굴더니 접시를 두 개씩 들고 들어왔다.
탁자에 놓인 음식을 보니 사하가 만든 것보다 특별히 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접시 중 하나가 기수의 입맛을 당겼다.
“이거 매콤한 게 아주 좋은데? 누가 만들었어?”
당운영이 미소 지었다.
“이제 보니 오빠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군요?”
“아! 맞다. 당가는 사천에 있지.”
그쪽이 음식을 맵게 먹는다고 들었던 것 같았다.
느끼하고 싱거운 음식만 먹다가 오랜만에 입맛이 확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한참 먹기에 열중하던 기수는 뭔가 분위기가 어색한 걸 느꼈다.
여섯 명이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며 음식을 먹는 게 가장 좋겠지만, 여인들은 아무래도 뭔가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밤은 깊어가고, 여자는 다섯인데 남자는 하나.
기수가 생각하기에도 좀 애매한 그림이었다.
물론 사매들이라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한 명은 이쪽, 한 명은 요쪽, 그리고 두 명이 거기에 집중하고 한 명은 프리 롤이면 딱 떨어지니까.
그러나 무림맹의 여인들은 사매들과 달랐다.
모두 다 한 번 이상씩 기수와 동침을 한 사이지만 전부 1:1 상황이었다.
한 자리에 모여 있지만 저마다 나머지 넷을 어떻게 따돌릴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기수 입장에선 약간 답답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명예를 중시하는 명문가의 여식이라서가 아니라, 여자라면 본능적으로 남자를 독차지하고 싶은 것이다.
기수는 옛날 생각을 해보았다.
맨 처음 사매들도 얼마나 서로를 견제했던가.
그때는 다행(?)스럽게도 사백의 강력한 감시 때문에 워낙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여건 상 공유를 하게 되고, 그게 더 짜릿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결국 5:1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다섯 명 모두를 넉다운 시키고도 힘이 남아도는 남자의 능력이 전제조건이긴 했지만, 고비를 넘기기만 하면 뒤는 의외로 쉬웠다.
탁지연이 사매들과 합치는 과정도 시작은 순조롭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가 다섯 사매들의 리더가 되었다.
공주는 또 어떤가? 주먹질에 발길질. 그 무시무시한 폭력을 행사하면서 원칙을 내세우다가 겨우겨우 8인조 구성에 성공할 수 있었다.
기수는 이들 5명과 동시에 어울리는 상상을 하며 미소를 머금었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길이 결코 순탄치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거기에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양여옥에 대해 욕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호흡 한 번으로 가라앉힐 수 있었다.
지금 기수가 하고 싶은 일은 합비를 찾아가 자기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어디 조용한 곳을 찾아가 10번째 고리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접시에 얼굴을 박다시피 하고 열심히 젓가락질만 했다.
다섯 여인들의 신경전은 불꽃이 튈 정도였다.
기수를 찾아내기는 했는데 과연 오늘밤 누가 그를 차지할 것인지 아직 결정이 나지 않은 것이다.
“기소협. 저희들 잠시만 밖에 나갔다 올게요.”
“응? 무슨 일로?”
“여자들끼리 할 얘기가 있어요. 호호!…”
“음식 식는데…”
“곧 돌아올 거예요.”
호운혜의 손짓에 따라 식당 밖으로 나가자마자 당운영이 말했다.
“내가 찾았으니까 나부터야!”
너무나 노골적인 선언이라 백서린과 양여옥은 볼을 붉혔다.
그러나 호운혜는 당운영보다 더 뻔뻔했다.
“무슨 소리야? 언니부터 해야지.”
당운영은 매서운 말투로 따졌다.
“왜? 나이 순서로 해야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
“그게 아니라 애당초 마녀들로부터 기소협을 빼내자고 이 모임을 만든 게 나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내가 먼저 해야지.”
백서린과 양여옥은 아예 대놓고 먼저 하겠다는 호운혜에게 기가 질려서 의견을 내지도 못했다.
속으로는 다들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기수를 찾고 한 남자를 공유하려는 실제 상황에 처하고 보니까 볼은 화끈거리고 호흡은 가빠지는데 말문은 열리지 않았다.
사하는 달랐다.
“먼저 찾은 사람이 먼저 한다면 당연히 내가 먼저 해야지.”
“야! 너는 했잖아?”
“하긴 뭘 해? 기소협이 오늘 오후에 왔는데!”
“거짓말하지 마!”
“가서 물어 봐. 내가 거짓말인가.”
사하는 기수를 독차지하고 싶어서 호운혜와 다투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보타문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마음 편히 즐기고 추억으로 간직하자는 기수의 제안을 듣고 마음이 완전히 돌아섰다. 금남의 문파로 돌아가 사부님을 모셔야 하는 자신의 입장에서 질투는 무의미함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고 나니 거짓말을 하고, 쟁탈전에 끼어들어도 마음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그때 백서린이 말했다.
“우리 제비뽑기를 하는 게 어때?”
자기 입으로 ‘내가 먼저 하겠다.’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기도 했고, 또 내세울 공적이 없으니까 차라리 우연에 맡기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 그거 좋겠다.”
양여옥이 즉시 동조했다. 그녀 역시 같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호운혜와 당운영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도 안 돼. 당연히 내가 먼저 해야지.”
“추적에 성공한 내가 1번이야. 절대로 양보 못 해!”
사하는 슬쩍 한 발 뺐다.
“제비뽑기라면 공정하다고 할 수 있겠네.”
그녀는 사실 이미 한 번 했으니까 오분지 일의 확률도 괜찮았다.
다섯 중 셋이 동의하자 호운혜는 마음을 바꾸었다.
“그래. 기소협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니까 빨리 결정하자.”
당운영은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싫어! 무조건 내가 1번이야. 난… 죽을지도 모른단 말야.”
“그게 무슨 소리야?”
“어쨌거나 난 오늘 꼭 해야돼.”
“야. 목소리 낮춰. 다 들리겠다.”
물론 기수는 그들이 목소리를 낮추거나 말거나 다 듣고 있었다.
기수는 여자 다섯 명이 자기를 놓고 다투는 상황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아!… 그냥 이대로 튈까?’
머리는 그게 옳다고 하지만, 그녀들의 심경을 헤아려보면 너무 매정한 것 같았다.
무슨 원수지간도 아니고, 다들 자신과 사랑을 속삭였던 사이 아닌가.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마침내 당첨자가 나왔다.
기수는 속으로 ‘양여옥!’을 외쳤지만 운명의 신은 호운혜을 점지했다.
잠시 후 식당으로 들어온 다섯 명의 얼굴은 볼 만 했다.
호운혜는 좋아서 정신을 못 차렸고, 나머지 네 명은 저마다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자기가 뽑힐 거라는 기대감이 남아 있을 때는 좋았지만 지금은 아쉬움과 질투가 그녀들을 괴롭혔다.
호운혜가 기수에게 말했다.
“오라버니. 피곤하지 않으세요?”
“응? 아니. 난 괜찮은데…”
기수 입장에서 호운혜는 5명 중 5순위였다.
양여옥이었다면 자기가 먼저 그녀에게 피곤하지 않냐고 물었겠지만 호운혜가 상대라고 생각하니까 정신이 말똥말똥 더 깨는 기분이었다.
당운영이 일어섰다.
“그러고 보니 술이 없네요. 아까 주방 구석에서 본 것 같은데.. 가져올게요.”
호운혜는 반색을 했다.
“응. 그래. 어서 좀 가져 와.”
술이라도 들어가면 일이 훨씬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잠시 후 당운영은 쟁반에 술잔 여섯 개를 받쳐 들고 돌아왔다.
“왜 잔만 가져와? 술병은?”
“단지가 거의 다 비었더라고요. 따라보니 딱 여섯 잔 뿐이라 그냥 가지고 왔어요. 그 술을 도대체 누가 마셨을까? 궁금하네.”
하면서 당운영은 사하를 노려봤다.
그리고 기수 앞에서부터 차례로 잔을 놓았다.
모두의 앞에 술잔이 돌아가자 호운혜가 말했다.
“자! 무림을 구한 영웅에겐 건배를!”
“건배!”
다들 자기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러나 기수는 슬쩍 입술만 대고 도로 내려놓았다.
당운영이 물었다.
“오빠. 왜 안 마셔요?”
“응. 요즘 별로 술 마시고 싶은 기분이 아니라서.”
“그래도 한 잔쯤은 마셔도 되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역시 안 마실래. 이 정도로는 괜히 입맛만 버릴 것 같고.”
사실 기수는 술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특히 내공이 고강해지면서 몸 속의 감각까지 예민해져서 수련이나 연공을 할 때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확연히 느끼게 되었다.
“그럼 내가 마셔도 되겠죠?”
그러더니 양여옥이 허락도 안 받고 기수의 술잔을 집어서 단숨에 비워버렸다.
그녀는 정자에서의 입맞춤 이후 기수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키워 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이미 8명의 사매를 가장한 정인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무림맹 내에서 경쟁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속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게다가 난주에서 이 먼 곳까지 달려왔는데 제비뽑기에서마저 탈락하고 나니까 기분이 가라앉아서, 술을 한 동이라도 혼자 다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운영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 그걸 네가 마시면 어떻게 해?”
“왜? 기소협이 안 마시겠다는데 어때서?”
“아아!….”
당운영은 머리를 움켜쥐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