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33
타순이 두 번 돌고 나니까 사매들이 결과를 알고 싶어 했다.
기수는 솔직한 심정을 얘기했다.
“아! 정말 어렵다. 마음 같아선 모두에게 우승 트로피를 주고 싶은데…”
그러나 1등 상품을 노리는 사매들은 기수의 그런 애매한 태도를 용납하지 않았다.
“한 명 선택해. 어서!”
“그래. 어차피 일곱 명은 탈락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하지만 한 명이라도 제대로 혜택을 받아야지.”
“맞아, 맞아. 어서 골라.”
기수는 난감했다.
8:1 파티 성사 이후로는 기술의 상향평준화가 꾸준히 이루어져서 굳이 서열을 매기자면 감촉과 형태 점수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사실 그것은 타고난 거라서 개인의 노력과 상관없는 스탯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왜 자꾸 시간 끌어?”
“어서 고르라니까.”
사매들이 다시 재촉하자 결국 기수는 탁지연을 선택했다.
솔직히 시각적 흥분을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의외로 다른 사매들은 순순히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기수와 탁지연은 정말 오랜만에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정확하게 약속된 시간이 되자마자 사매들이 들이닥쳤지만 두 사람에겐 즐겁고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기수는 저녁때가 되어 잠시 밖으로 나갔다.
수색대로부터 들어온 소식이 없나 궁금했던 것이다.
장원 안의 분위기는 어딘가 들뜨고 흥분되어 있었다.
기수는 바삐 걷는 소림승 무리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미타불… 지금 증원요청이 와서 인원을 편성하러 가는 중입니다.”
소림승들은 걸음을 멈추고 정중하게 대답했다.
무림맹 사람들에게 혈매궁주는 무림맹주만큼, 어쩌면 그 이상 존중받는 대상이었다.
특히 화양문주가 녹아 붙은 창칼을 대형 연무장에 옮겨놓은 이후로 기수를 대하는 군웅들의 태도가 조금 더 달라진 느낌이었다.
“전투가 벌어졌습니까?”
“예. 최소한 다섯 군데에서 접전이 펼쳐지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기수는 다급하게 물었다.
“전황은 어떻습니까?”
“모두 우리 쪽이 우세하다는 보고입니다.”
기수는 안심했다.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원의 들뜬 분위기는 밤새도록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귀환하는 문파들이 줄을 이었다.
다들 승전가를 부르며 돌아왔고, 빼앗은 무기와 깃발들을 잔뜩 가지고 와서 전과를 자랑했다.
기수와 혈매궁 사매들은 기쁜 마음으로 나가 그들을 박수로 맞았다.
중간에 아미파의 능소화와 잠깐 시선이 마주쳤는데,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가 황급히 그 표정을 감추었다.
슬그머니 사매들의 눈치를 봤는데,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보고도 못 본 척 해주는 것인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장원은 온통 승리 분위기에 들떴고, 무림맹주는 연회를 열도록 지시했다.
그동안 억눌려 있던 무림맹이 모처럼 큰 승리를 거두었으니 사기 진작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승전축하연이었다.
사실, 음종과 천마교가 빠진 상태에서의 승전이니까 그 의미가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지만, 분위기를 전환시킨다는 면에선 큰 의의가 있다고 봐야 했다.
기수도 사매들과 함께 기꺼이 축하연에 참석했다.
그런데 눈치 없는 능소화가 계속 눈웃음을 보이며 시선을 맞추려고 했다.
기수 입장에선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그녀의 심정은 이해가 되었다.
뜨거운 첫날밤을 보낸 정인. 사문의 명령 때문에 출정했지만 적을 무찌르고 돌아와 다시 만났으니 얼마나 반갑겠는가.
그러나 능소화가 알고 있는 바가 현실과는 약간 달랐다.
기수는 능소화만의 남자가 아닌 것이다.
그녀의 추파가 계속되자 사매들은 눈에 띠게 불쾌한 표정을 지었고, 무림맹 여인들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
기수로서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주일비에게 건배도 제의하고 마음에 없는 축하와 칭찬도 해주면서 능소화의 시선을 계속 무시했는데, 그녀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자와 처음 정분이 났을 때 주변에 신경 못 쓰고 오로지 그 남자만 보이는 때가 있는데, 능소화가 지금 딱 그런 상태였다.
곤란한 기수를 돕는 손길은 의외의 곳에서 나타났다.
모용세가의 소가주 모용인이 다가와 술을 권하며 말했다.
“궁주님. 잠시만 제게 시간을 좀 내주십시오.”
“그럽시다.”
기수는 그를 따라 연회장에서 벗어났다.
능소화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니까 살 것 같았다.
그런데 그곳엔 비령검문 문주 진백도 나와 있었다.
기수는 뭔가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고 모용인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실은, 우리 무사들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싸우고 있는 건가요?”
“확실치가 않습니다. 전령조차 보고하러 오지 않은 상태라 찾아가보려고 하는데 문주님이 일단 궁주님과 의논해보자고 하셔서…”
기수가 진백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가 말했다.
“이번에 수색 작전에 동원된 문파 중에 오로지 모용세가의 무사들만 돌아오지 않았고 연락도 되지 않고 있네. 맹 전체가 승전 분위기에 취해 있는 마당에 공연히 판을 깨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아서 우리 두 문파만 알아보러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좀 불안해서 말이지…. 함께 가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기수가 흔쾌히 응하자 진백과 모용인 모두 크게 기뻐했다.
승전축하연 도중에 자리를 비우는 것은 정말 내리기 어려운 결정일 텐데 자기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기수는 어떻게든 자리에서 빠져나오고 싶던 참이라 즉시 돌아가 맹주와 염백호 등에게 이만 물러가겠다고 얘기한 후 사매들과 함께 모용세가의 거처로 갔다.
비룡검문에서도 진백과 두 수제자 순우광, 조치성이 10여명의 뛰어난 제자들과 함께 참여했다.
모용인은 모두에게 말했다.
“불필요한 호들갑일 수도 있는 일에 이렇게 나서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탁지연이 물었다.
“혹시 폭죽 신호를 보셨나요?”
“아닙니다. 그게 올라왔다면 즉각 달려갔겠지요. 저희들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다른 문파에서 먼저 구했을 겁니다.”
“그럼 적을 추적하러 깊이 들어갔다고 보는 게 맞겠네요.”
모용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고는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꺼림칙해서요.”
모용인은 지도를 펴고 자신들이 맡았던 구역을 보여주었다.
다른 문파들에 비하면 가까운 거리라서 확실히 의심스럽기는 했다.
내일이면 돌아오겠지 하고 마음 편히 축하연을 즐길 상황이 아닌 것이다.
기수가 모용인에게 말했다.
“날도 어두운데 경공 속도를 못 따라오면 서로 불편할 테니 정예무사만 열 명 정도 뽑으십시오.”
“예. 이미 그렇게 했습니다.”
“그럼 바로 가시지요.”
“예.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모용세가, 비룡검문, 혈매궁의 순서로 이루어진 30여명의 대열은 화양문을 나와 모용세가의 수색 구역으로 향했다.
공주가 기수에게 다가와 물었다.
“우리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그녀는 탁지연이 상품 타는 것을 보고 오늘밤엔 뭔가 다른 경연대회를 하자고 해서 자기가 1등이 되리라 벼르는 중이었다.
실종자 수색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기수가 말했다.
“우리까지 가세했으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조급해 하지 마. 밤은 길어.”
마지막 말에 공주는 생긋 웃었다.
한 시진 정도 지나 담당 지역에 도착한 일행은 모두 다 관솔불을 만들어 들고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여기 발자국이 있습니다.”
“여기도 있습니다!”
모용세가 무사들의 이동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감숙성의 건조하고 고운 황토는 신발 바닥 테두리의 바느질 무늬까지 보존하고 있었다.
그것을 따라 이동한 지 30분 정도.
마침내 모용세가 무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죽은 시체였다.
모용인과 모용세가 무사들은 눈이 뒤집혀서 동료의 주검을 확인했다.
전원몰살.
이 엄청난 상황에 그들은 할 말을 잊었다.
비룡검문 문주 진백과 기수가 차례로 모용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모용인은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째서 모두가 당하도록 구조신호도 보내지 못한 거지?”
탁지연이 한 시신의 상처를 보고 말했다.
“이건 고수의 솜씨군요. 검을 사용한 것 같은데 단 일 초로 즉사시켰어요.”
기수는 그녀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삼황맹이나 녹림72채, 수로맹 중엔 그런 정도의 고수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쪽 시신의 상태를 살펴 봐.”
그리고 자신도 가까이 있는 희생자의 사인을 확인해보았다.
검이라기보다는 창에 찔린 것 같은, 입구가 큰 상처였는데 정확하게 천돌혈을 관통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동창 출신이라 관찰력이 뛰어난 사매들이 속속 상황을 보고했다.
“단칼에 급소를 베었어.”
“이쪽은 주먹에 격중당한 것 같아. 목뼈가 부러졌어.”
20여명의 인원이 다양한 무기에 의해 목숨을 잃었는데, 하나같이 공통점은 신호 폭죽을 꺼낼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당했다는 것이었다.
기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여러 명. 적어도 10명 이상의 적이 한꺼번에 손을 쓴 게 분명하군.”
진백이 물었다.
“이렇게 할 정도의 고수 10명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세력이 도대체 누구지? 혹시 천마교인가?”
“아닙니다. 그들은 절대로 제갈세가와 손을 잡지 않을 것입니다.”
천마교 교주는 적어도 식언할 사람은 아니었다.
기수와 공주의 시선이 마주쳤다.
한귀비와 청탑산 협곡에 흔적을 남겼던 의문의 고수들.
지금 현재로선 그들이 가장 의심스러웠다.
자기 몸을 강시로 만들었던 요종의 사도와 음종의 현현각주가 차례로 제거된 후, 상대 쪽에서도 더 이상 물러설 여유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사도는 주군이라 불리는 자, 한귀비, 그리고 정체불명의 한 명.
그들에 협조하는 제갈세가.
도망치지 않고 포위망을 구축한 것까지 고려하면 그동안 비밀리에 육성한 고수들이 출현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진백이 기수에게 물었다.
“뭔가 짚이는 거라도 있나?”
“예. 제갈세가의 배후에 역모를 꾀하는 무리가 있다고 전에 말씀드렸었죠?”
“이게 그자들 짓이라고 보는 건가?”
“그렇습니다. 제갈세가도 믿는 구석이 있기에 도망치지 않고 맞서는 겁니다.”
“큰일이군. 상처를 보니 실력들이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무공 익힌 상대를 한 수에 제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수는 그 수가 얼마나 될지가 더 걱정이었다.
진백은 충격 받은 모용인을 잘 다독여서 시신을 수습하도록 했고, 탁지연은 사매들을 동원하여 적의 흔적을 찾도록 했다.
접전 장소에서 적의 발자국을 찾은 공주가 그 중 하나를 그대로 밟아서 보법을 재현해 보았다.
“이건 이런 식으로 움직인 것 같은데?”
기수는 그 모습을 보고 청탑산 호법의 기억에서 찾아낸 무공 중 하나를 떠올렸다.
‘확실하군.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미지의 적을 만난다는 것은 어느 정도 두려움이 느껴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적의 비장의 카드까지 나왔다는 점에서 미션 완수가 멀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찾아내자! 그리고 잡자!’
기수는 동창 출신 사매들에게 적의 흔적을 철저히 수색하도록 했다.
“이쪽이야!”
사매들은 서쪽으로 움직이며 적이 남긴 자취들을 찾아냈다.
한참을 가며 정보들을 취합하다 보니 그들의 인원수, 그들이 경공 펼칠 때 한 번에 도약한 거리등을 알 수 있었다.
15명 내외. 무공은 처음 예상보다 약간 더 높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1시간 정도 지나 바위산과 개울을 만나면서 추적은 어려워졌다.
추매가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잡다한 발자국이 너무 많아.”
“삼황맹 무리와 함께 행동한 모양이군.”
탁지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함께 행동했다면 다른 쪽이 당하는 것을 왜 보고만 있었지?”
듣고 보니 이상했다.
그들의 실력이라면 다른 쪽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을 텐데 모용세가 병력만 몰살시킨 후 곧바로 철수한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수는 더 이상 추적이 불가능하다 판단하고 원래의 자리로 귀환했다.
그곳엔 그사이 무덤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기수는 모용인에게 물었다.
“혹시 모용세가에 원한을 가진 문파가 있습니까?”
“그건 왜 물으십니까?”
“특별히 모용세가만 노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글쎄요. 녹림72채를 제외하고는 따로 원수랄 만한 문파가 없습니다만…”
기수는 입맛을 다셨다.
녹림72채의 솜씨는 절대로 아니었다. 그들의 채주들을 전부 모은다고 해도 이 정도 실력자 15명을 추려내지는 못할 것이었다.
“일단 귀환해서 무림맹주님과 이 일에 대해 의논해봅시다.”
결국 일행은 무덤만 남겨놓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