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43
탁지연이 말했다.
“수로맹의 탈퇴는 절대로 쉽지 않을 거야.”
“어째서?”
“생각해 봐. 수로맹이 떨어져나가면 녹림72채가 붙어 있으려고 하겠어?”
삼황맹, 녹림72채, 수로맹, 천마교의 4개 세력이 뭉쳐 있다가 천마교와 수로맹이 빠져나가고 둘만 남는다면 녹림72채 역시 살 길을 찾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혹시, 청탑산 놈들이 여기 온 것은 수로맹의 이탈을 막기 위해선가?”
기수의 말에 탁지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탈을 어떤 식으로 막는다는 거지?”
그러자 추매가 말했다.
“말 안 들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려는 게 아닐까?”
“에이, 설마… 같은 편이었는데.”
“그래서 배신감을 더 크게 느낄 수도 있는 거잖아.”
기수는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정확하겠지? 그들은 지금 어디 있어?”
추매가 턱짓으로 창밖을 가리킨 후 말했다.
“모두 4명이고 건너편 객잔에 투숙했어.”
기수는 창을 통해 주변을 살펴보았다.
사람들 왕래가 많은 도시라 일이 크게 번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밤이 깊기를 기다리자.”
그러자 추매가 바로 콧소리를 냈다.
“그때까지 뭐 하면서 기다리지?”
기수의 입맞춤에 스위치가 켜진 것이다.
“글쎄… 뭐 하는 게 좋을까?”
기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기수는 사매들에게 말했다.
“놈들이 은혈대법을 펼치면 시끄러워질 테니까 최대한 빨리 제압하는 게 중요해. 예매는 그쪽 세 명과 함께 정면 돌파하고, 너희들 세 명은 지붕 위에서 대기하다가 혹시 도망치는 놈이 있으면 잡도록 해.”
“그럼 궁주는?”
“난 아매와 함께 창으로 들어갈 거야.”
“전부 생포해야 하나?”
“아니. 생포는 내가 할 테니까 너희들은 무조건 죽여. 조금의 여유도 주지 말고.”
“알았어.”
사매들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는 4명에 불과하지만 기습적으로 단번에 제압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었다.
일행은 즉시 행동을 시작했다.
공주와 탁지연, 추매, 동매 네 사람이 객잔으로 들어가자 점소이가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고! 월궁의 상아 같은 선녀님들이 네 분씩이나 이 늦은 시간에 어인 일이십니까. 제가 자리를 안내하겠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러 왔으니 소란 피울 것 없다.”
그리고는 곧장 이층으로 올라갔다.
두 번째 방문 앞에 이르러 추매는 턱짓을 했고, 네 사람은 문 앞에 간격을 맞춰 섰다. 그리고 시선을 교환하자마자 공주가 문고리를 발로 차며 안으로 뛰어들었다.
방안의 어둠에 눈이 익기도 전에 암기부터 날아왔다.
그러나 사매들은 이미 그런 공격을 예견하고 있었다.
챙! 챙! 소리와 함께 검으로 암기들을 쳐낸 후 곧바로 공격이 시작되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네 명의 사내는 그 와중에도 반격을 가해왔지만 여인들의 무시무시한 공세에 크게 당황했다.
특히 공주의 상대가 된 자는 그녀의 일 장을 장법으로 마주 받았다가 손바닥과 손목이 한꺼번에 뭉그러지는 타격에 비명을 질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창이 열리며 남녀가 추가로 들어왔는데, 퍽! 소리와 함께 동료 한 명이 뒤통수에 구멍이 뚫리며 쓰러졌고 한 명은 전기에 감전되어 쓰러졌다.
순식간에 한 명은 손을 못 쓰게 되고,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제압 당한 것이다.
남은 한 명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곧장 몸을 솟구쳐 지붕을 뚫고 날아올랐다.
동료를 구하기보다 현재의 상황을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몸이 지붕 위로 빠져나가자마자 세 자루 검이 한꺼번에 그의 몸에 박혔다. 기다리고 있던 춘매, 풍매, 설매가 놓치지 않고 공격한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갑자기 튀어 올라오는 목표에 놀라 검이 빗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기수와 실전 비무를 열심히 한 지금은 예전과 달랐다.
방 안에서도 상황이 정리되고 있었다.
공주가 자기 상대를 얼음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기수는 뇌전격에 당해 정신을 잃은 자의 혈을 누르고 어깨에 들쳐 멘 후 말했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자.”
경황이 없는 중에도 기수는 은자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건물을 부수고 시체를 남겨 놓은 것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였다.
무창성을 나와 갈대 무성한 강변.
기수는 포로를 앉혀놓고 물었다.
“넌 누구냐? 소속은 어떻게 되지?”
그러자 상대는 마혈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기수는 자신의 스타일로 질문을 이어갔다.
“함께 한 다른 자들은 누구냐?”
“목표가 뭐지?”
포로는 자기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데 계속 질문이 이어지자 의아함을 느꼈다.
그리고 자기 생각과 상대의 질문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뭔가 사술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기수와 뇌파로 동조된 상태이기 때문에, 생각을 하지 않겠다는 주체에 대해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리지 않은 이상 저항은 무의미했다.
알고 싶은 것을 모두 읽은 기수는 주저하지 않고 놈의 이마에 구멍을 뚫어주었다.
그리고 사매들에게 말했다.
“이자들은 수로맹의 각 채를 습격하여 채주의 가족들, 남아 있는 부하들을 인질로 잡을 계획이야. 네 명이 한 조가 되어서 총 15개의 수채를 목표로 삼은 거지.”
“그럼 소문이 진짜구나. 수로맹은 사마연합 탈퇴를 결심했어.”
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수로맹은 사마연합 중에선 전력이 가장 딸리거든. 수적들이 뭍에 올라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하지만 장강으로 돌아오면 얘기가 달라지지. 괜히 남의 명령에 끌려 다닐 필요 없이 자기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 되니까.”
“이럴 거면 애당초 왜 사마연합에 합류한 거야?”
“그때는 천하에 욕심을 냈겠지.”
탁지연이 말을 받았다.
“지금은 장강에 만족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거고.”
공주가 기수에게 물었다.
“궁주. 어떻게 할 생각이야?”
“수로맹을 도와줘야지. 빠져나올 수 있도록.”
“나머지 14개 조를 전부 소탕한다고?”
“적의 수를 하나라도 줄여야 돼. 이 자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여기 동원된 인원은 주작 3진, 6진, 7진이라고 했어.”
“7진까지 있어?”
“응. 탁매의 예측대로 백호와 주작은 네 방향을 가리키는 게 맞는 것 같아. 다른 세 방향에도 7진까지 있다면 규모가 500명이 훨씬 넘는 거잖아.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많이 줄여놔야 돼.”
공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한 놈이라도 더 잡아야 하는 상황이 맞네. 그들이 각각 어느 수채를 맡았는지도 알아냈지?”
“아니. 그건 낙양에서 접선했던 그 자만 알고 있어. 이자들이 맡은 건 여기서 가까운 한수채라는 곳이야. 그곳 말고는 아는 게 없어.”
“수로맹의 수채가 전부 몇 개나 되지?”
“정식 채주가 임명된 곳만 서른 개. 이곳 무창을 중심으로 서쪽에 22개, 그리고 동쪽에 8개가 있지.”
방금 읽은 기억에 들어 있던 내용이었다.
공주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30개 중의 15개가 목표라면 딱 절반이잖아? 우리는 아홉 명 뿐인데 그걸 어떻게 다 막지? 어딘지도 모르는 데다 인원을 나눌 수도 없고…”
기수도 마땅한 대책이 없었다.
“수로맹의 중심은 동정호니까 서쪽으로 수채를 하나씩 거치면서 가자.”
“수로맹은 우리도 역시 적으로 생각할 텐데….”
듣고 보니 그것도 문제였다.
그때 탁지연이 말했다.
“내게 생각이 있어.”
모두의 시선이 향하자 그녀의 얼굴 모습이 갑자기 달라졌다.
험악한 도적놈 인상이었다.
기수는 그 얼굴을 바로 알아봤다.
“아! 강달! 그래. 27채에 가서 얘기를 해보면 되겠구나.”
다른 사매들은 무슨 얘기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기수가 대충 설명을 해주었다.
“나와 탁매는 수로맹과 인연이 좀 있어. 그들에게 부탁하면 잘 될 거야.”
“무슨 인연이 어떻게 있는데?”
“하핫! 그냥 좀…. 채주를 했었다고나 할까?”
“뭐?”
사매들은 기가 막혀서 서로를 쳐다봤다.
기수는 강을 따라 걸으면서 포구를 찾았고, 거기서 배를 빌려 탄 후 하류 쪽으로 내려갔다.
새벽 시간에 급하게 빌리다 보니 배가 작아서 제대로 된 선실도 없었다.
그래서 보람찬 시간을 보내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공주의 정체를 알게 된 추매가 약간 소란을 피웠고, 사공이 만들어준 어죽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는데, 배가 파양호를 지나면서 볼만한 경치가 펼쳐졌다.
일행은 호수와 강의 풍취에 젖었지만 사공들은 죽어라 노를 저었다.
파양호는 동정호 다음으로 수채가 많은 수로맹의 요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호수를 다 빠져나갈 때까지 수상한 배는 보이지 않았다.
기수가 사공에게 웃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 겁먹은 태도를 취하시오?”
“아이고! 손님이 모르셔서 그럽니다. 원래 이곳은 수적들에게 통행료를 내지 않고는 다닐 수 없는 길입니다.”
“수적이라니? 아무도 없지 않소?”
“요 근자엔 수적들이 다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아서 우리 같은 가난한 사공들이 신이 났죠. 헤헤헤…. 하지만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기수는 그의 말을 듣고 수로맹 돕는 일을 과연 해야 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결론은 곧 나왔다.
천하가 난세가 되는 것보다는 사공들이 통행료 내는 게 더 나은 일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수로맹 채주하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통행료만 내면 더 이상 괴롭히는 경우는 없었다.
사공들도 통행료 내는 만큼 선객들에게 더 받으니까 사실 손해는 아니었다.
괜히 엄살을 부리는 것일 뿐이었다.
배가 낯익은 강변을 지나게 되자 기수가 사공에게 부탁했다.
“강변에 대주시오.”
“예? 이 근처엔 신강채라는 수로맹 소굴이 있습니다. 한 십리 쯤 더 가서 내리시는 게 안전할 겁니다.”
“우리 목적지가 바로 그곳이오.”
“예? 그, 그렇다면 수로맹의 영웅들이십니까?”
도적을 영웅이라고 하는 걸 보니 겁에 잔뜩 난 모양이었다.
“하하! 우린 아니오. 배는 무사히 빠져나오게 해줄 테니 걱정 말고 대주시오.”
배가 강변에 닿고 모두 내리자마자 사공들은 있는 힘껏 배를 저어 달아났다.
그러나 그들이 강심으로 완전히 멀어진 뒤에도 27채에선 아무 반응이 없었다.
탁지연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경비병이 없는 거지? 이것들이 군기가 빠져가지고…”
그녀는 기수보다 훨씬 오래 머물며 채주 노릇을 했었기 때문에 어디에 누가 보초를 서고, 어디에 정찰선이 떠 있어야 하는지 훤히 알았다.
기수가 웃으며 말했다.
“아까 지나온 파양호도 무사통과였잖아. 인원 차출이 많이 되서 그런 모양이지.”
일행이 강변을 지나 수채 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자 비로소 보초병들이 보였다.
그들은 용돈이나 벌어 볼 생각인지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왔다.
그리고 얼굴을 알아볼 정도의 거리가 되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채주님!”
탁지연이 역용한 강달을 알아본 것이다.
탁지연도 아는 체를 했다.
“하하!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들 지냈어?”
“예! 정말 반갑습니다. 육채주님도 기뻐하실 겁니다.”
그들은 반가워하면서도 그녀 뒤의 사람들을 의심스런 눈으로 훑어봤다.
탁지연은 손짓으로 일행을 소개했다.
“나와 함께 온 사람들이야. 같은 편이니까 긴장하지 않아도 돼.”
졸개들은 어정쩡한 인사를 했다.
탁지연은 자기 집처럼 자연스럽게 수채로 향해 걸었다.
잠시 뒤 부하들의 보고를 받은 육대기가 달려나왔다.
“채주님!”
얼굴 가득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는 그냥 힘만 센 중간급 간부에 불과했지만 이전 채주인 범장과 강달에게 무공도 배우고 병법도 배워서 상당 수준의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기수는 죽은 걸로 되어 있어서 범장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육대기를 보니 반가웠다.
그 사이 고된 수련을 했는지 상체 형대도 전과 달라져 있었고, 수염을 많이 기른 얼굴엔 제법 리더다운 기질도 드러나 보였다.
물론, 기도로 봤을 때는 아직 고수라 하기에 부족했지만 그럭저럭 수채 하나 정도는 맡을 만 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육대기는 강달을 안으로 안내했고, 함께 온 일행도 귀빈으로 모셨다.
그는 연회를 준비시킨 후 강달에게 물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 그보다 사람이 많이 보이지 않는데…”
육대기는 일행을 힐끔 본 후 말했다.
“절반이 넘게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제갈세가와 함께 일하기 위해 난주로 간 건가?”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우리가 바로 그 일 때문에 왔거든.”
탁지연이 손짓을 하자 일행 모두 죽립을 벗었다.
“어어!…”
육대기와 수적들은 멍한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
꽃보다 아름다운 절세 미녀 일곱 명이 한꺼번에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있던 육대기가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흔든 후 입을 열었다.
“채주님. 이, 이분들은 누굽니까?”
탁지연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혈매궁이라고 들어봤나 모르겠네.”
“혀, 혀, 혈매궁이라고요!”
육대기는 손을 떨다가 찻잔을 떨어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