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46
기수와 사매들, 그리고 수로맹 간부들은 서둘러 노를 젓도록 했다.
수채마다 적의 침입에 시간차가 있는 것 같지만, 자기들이 빨리 갈수록 피해가 줄어든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육대기, 막승룡, 24채의 중간급 간부가 23채로 진입해 보니 다행히 아직 침입자가 나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탁지연은 기수와 사매들을 건물 안에 숨도록 하고 23채의 부채주에게 정황 설명을 했다. 그 역시 혈매궁의 출현에 크게 놀랐다.
그러나 육대기 등이 침을 튀어가며 설명해준 덕분에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로부터 반 시진 뒤.
수채엔 침입자 네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무인지경으로 내달리며 수적들을 해쳤지만,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혈매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냥 싸운다고 해도 9대 4로 불리한 상황.
그럼에도 기수와 탁지연은 이런 상황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도망자 없이 깔끔하게, 진기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숨어 있다가 기습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만약 60명이 혈매궁과 싸운다는 것을 알고 대비를 했다면 그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싸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각개격파는 혈매궁 입장에서 대환영이었다.
무창에 이어 네 번째 무리까지 처단했지만 아직도 11개 무리나 남아 있는 상황.
기존 멤버에 23채 부채주까지 더해진 일행은 급히 배를 저어 다음 수채로 향했다.
상황은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침입자들이 막 담을 넘는 시점에 도착했지만 혈매궁 사매들은 정체를 숨기고 접근한 후 상대가 대응하기 어려운 시점에 기습하는 방법으로 그들을 간단히 제압했다.
꼬박 하루가 지났지만 행군은 멈추지 않았다.
배를 타고 다니는 게 좋은 이유는, 이동 중에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기수는 사매들이 선실에서 잠시라도 편히 쉴 수 있도록 불침번을 자처했다.
덕분에 사매들은 매번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쌩쌩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번 수로맹을 돕는 전투에 있어 기수는 보조역할로 만족하고 탁지연을 비롯한 사매들이 최전선에서 싸우도록 했는데, 그것은 그녀들에게 실전 경험을 쌓게 해주는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탁지연이 수로맹에 두루 은혜를 베푸는 부수적 효과도 있었다.
꼬박 나흘 동안 이어진 전투의 결과 수로맹에 가해졌던 청탑산 패거리의 습격은 혈매궁에 의해 모두 와해되었다.
제갈세가에서 파견한 60명 모두가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 즈음 급보를 전해들은 수로맹 수뇌부가 황급히 복귀했다.
수로맹주는 오는 도중 개략적인 상황을 전달 받은 상태라 혈매궁 사람들을 일단 귀빈용 객사에 머무르게 한 후 자기네들끼리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낱낱이 알게 된 후 기수 일행을 연회로 환대했다.
“혈매궁 궁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수로맹주는 정중한 태도로 기수를 상좌에 앉혔다.
부하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와 혈매궁 여인들의 무공은 소문으로 들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게 분명했다.
무림에서 고강한 무공보다 중요한 가치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 혈매궁이 자기네 편을 들어주는데 두 팔 벌려 환영하지 않는다면 바보 멍청이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또한, 혈매궁은 잔인한 손속과 달리 황실을 위해 일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무림맹 편도 들었지만 천마교의 포로를 풀어주었고, 삼황맹을 공격하는가 싶더니 이젠 수로맹을 돕도 있었다.
그들에겐 무림의 정과 사를 구분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는 행적이었다.
그렇다면, 수로맹 입장에서는 역모를 꾸미는 편에 섰다가 조정의 편으로 돌아서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제갈세가와 원수가 된 지금, 혈매궁은 절대 놓칠 수 없는 끈이었다.
상석을 양보하는 것쯤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기수는 수로맹주가 권하는 술을 마시고, 자기도 권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수로맹주의 보라빛 입술, 창백한 안색, 시커먼 다크 써클, 붉은 눈동자는 예전에도 본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더 심해져서 병자처럼 보였다.
거기서 기수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한귀비였다.
따지고 보면, 수로맹에는 예전부터 사도가 두 명이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유청기와 유소진 남매가 그들이었다.
유소진은 여러가지 무공을 채주들에게 보급했는데, 청탑산에서 입수한 무공들과 뿌리가 같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결국 수로맹은 주군이 키우는 세력의 일부였다는 의미였다.
그러니까 제갈세가의 호출에 군말 없이 가세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탈퇴를 결정했다는 것은 그들이 최강의 힘을 가졌다는 환상이 깨졌고, 더 이상 그들에게 매어 지낼 이유가 없어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유청기와 유소진 남매가 없으니 수로맹주 마음대로 결정할 수가 있는 것이다.
청탑산 고수들을 파견한 걸 보면, 제갈세가도 수로맹을 잡아 놓을 수단이 없어서 무력을 택한 것으로 보였다.
기수는 미소 짓는 수로맹주를 보며 마주 미소를 보여주었다.
‘이번 기회에 수로맹을 혈매궁 편으로 만들자!’
수로맹의 잠재력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었다.
비록 난주에서는 전투력 최하의 오합지졸 무리에 불과했지만 그들의 장점은 땅이 아닌 물 위에서 발휘되는 것이다.
60명의 청탑산 고수들이 무려 15개의 각기 다른 수채를 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사매들이 모두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기동력 덕분이었다.
적은 수채로 진입하는 길을 찾아 육로를 구비구비 돌아서 진입했지만 수로맹 병력은 물길을 통해 자유롭고 신속하게 수채 사이를 이동할 수 있었다.
지난번 낙양에서 북경에 다녀올 때도 확인한 바 있지만, 배는 정말 편하고 효율적인 이동수단이었다.
수로맹을 아군으로 삼는다면 그 기동력을 손에 넣게 되는 것이다.
‘제갈세가 놈들 똑똑한 척 하면서도 이럴 때 보면 멍청하단 말야.’
애당초 수로맹을 육지에서 쓴 것부터 에러라고 할 수 있었다.
투수를 대타로 내보냈다고나 할까.
자기라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수로맹주와 혈매궁주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마음을 품다 보니 연회는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밤이 깊어지자 수로맹주가 말했다.
“여기 열흘이고 보름이고 머물러 계시면서 제게 대접할 기회를 주십시오.”
“한 달쯤 있으면 결례가 될까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하하!…. 1년이고, 2년이고 마음껏 머물러주십시오. 동정호는 사시사철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그렇게 유쾌하게 헤어진 후 거처로 돌아오자 공주가 기수에게 말했다.
“궁주. 수로맹주의 눈 봤어?”
“응.”
“그거 은혈대법 맞지? 한귀비하고 똑같잖아?”
“청탑산의 무공이 수로맹에도 전해진 건 맞아. 하지만 그건 오래 전 일이고, 그걸 주도했던 수로맹 군사 남매도 이제 없어.”
“하지만 같은 무공이라면 결국 수로맹주도 역도와 한 편이라고 봐야 하는 거 아냐?”
“아니. 이렇게 단독행동 하는 걸 보면 이미 끈은 끊어졌다고 봐야지.”
탁지연이 말했다.
“아까 보니까 술을 거의 마시지 않던데… 호흡도 약간 불규칙하고.”
“자세히도 봤네. 후후… 맞아. 그의 무공은 현재 미완성 상태야. 예전에 청탑산 무공을 전달해 준 군사가 여러 가지 변형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미완성인 채로 그녀가 죽었기 때문에 수로맹주에게도 지금 문제가 있을 거야.”
탁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전보다 더 마르고 창백해 보이는 거구나.”
공주는 다른 쪽으로 기수를 의심했다.
“수로맹 군사가 여자였다고? 예뻤어?”
“오우! 그녀는 절대로 아냐.”
유소진은, 아무리 여자라고 해도 사도는 보자마자 죽여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해준 상대였다.
“정말 아냐?”
공주뿐만 아니라 다른 사매들도 의심의 눈빛을 보냈다.
“야! 난 여자면 다 헬렐레 하는 줄 아냐? 그녀는 한귀비와 같은 상대였어. 내게 엄청난 시련을 안겨준 적이었다고.”
그녀 덕분에 사부를 만났고, 북궁심법이라는 특수한 기술을 배우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악연이라고만 할 수는 없었다.
공주가 말했다.
“어쨌거나, 일 끝났으면 가야지. 한 달을 머물겠다는 건 무슨 소리야?”
공주는 수로맹에 머무는 것을 별로 탐탁해하지 않는 눈치였다.
무림맹에 있을 때와는 다른 태도였다.
사매들은 그런 그녀의 심정을 이해했다.
동창 출신인 그녀들 생각도 장군부, 무림맹과 함께 하는 건 문제가 없지만 수적들과 어울리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기수는 그녀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명해주었다.
다 듣고 난 공주가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는 역도를 추격하는 입장이잖아. 그들이 물가로 다가오지 않는 한 별 필요 없는 것 아닐까?”
탁지연이 말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 생각해보면 장강과 황하는 물론이고 천하에 물길이 통하지 않는 곳이 없잖아.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데, 적이 장안에 나타났다고 생각해 봐. 그럼 내력을 소모하며 경공을 펼쳐야 하잖아.”
“적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런데 장안에 도착했는데 적이 숨고 다시 항주에서 나타났다면? 그럼 또 달려가야 하는 거잖아. 내력을 소모하면서.”
“그 정도는 각오해야지.”
“아냐. 예매 너는 지금 동창으로부터, 장군부로부터 정보를 받을 수 있어. 그리고 무림맹도 협조적이니까 개방의 정보망도 이용할 수 있지. 거기에다가 수로맹의 정보망이 더해지고 그들의 이동수단까지 활용할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뭐겠어?”
탁지연은 한 때 수로맹의 채주였기 때문에 그들의 잠재력을 잘 알았다.
공주가 깊이 생각해본 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적이면 어떻고 산적이면 어떤가?
혈매궁이 도적질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들이 조정을 위해 애써준다면 여러모로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번에 그들에게 큰 은혜를 끼쳤으니까 어느 정도 보답을 바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래. 바로 그거야.”
사실, 수로맹을 멸망으로부터 구해냈다고 봐도 좋을 정도의 큰 일이었고, 수로맹주의 태도로 보건데 손을 내밀면 덥석 잡아줄 것 같았다.
공주가 그렇게 마음을 정하자 기수가 말했다.
“탁매가 강달로 우리 혈매궁을 대표해주면 좋겠는데…”
“그래야지. 막승룡은 나하고 의형제 맺자고 난리던데…”
육대기와는 원래부터 상하관계, 사제관계로 돈독한 사이였지만 이번에 다른 수채들을 구하면서 새로 알게 된 사람들도 많았다.
수로맹 입장에서 혈매궁은 얼마간 꺼림칙한 게 깔려 있지만, 수로맹 출신 강달에 대해서는 절대적 호의를 보였다.
거의 영웅시 하는 분위기였다.
아투사가 말했다.
“그나저나… 여기 욕조가 꽤 크던데… 아홉 명이 전부 들어가도 될 정도로…”
기수는 가볍게 웃었다.
“하핫!… 장강의 수로맹답게 물은 넉넉하게 쓸 수 있구나.”
그런데 웃는 사매가 한 명도 없었다.
다들 기수를 바라보는 눈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기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오늘은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구나.’
그동안 바쁘게 돌아다니며 격전을 치렀기 때문에 휴식과 위로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사매들도 벼르고 있지만 자신도 그녀들 못지않게 고프던 참이라 밀릴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욕실로 들어간 아홉 사람은 탄성부터 질렀다.
이제껏 이용해 온 객잔의 나무통이 아니라 대리석으로 깎아 만든 대형 욕조였다.
기수는 옷을 벗어던진 후 풀장에 뛰어들 듯 점프했고,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꺅! 옷이 젖잖아!”
“대충 벗고 다들 들어와!”
기수는 양손으로 동시에 화류 태포련을 운용하여 욕조의 물을 순식간에 데웠다.
그리고 흐뭇한 표정으로 사매들의 입수를 감상했다.
다음 날.
약간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귀빈용 객사를 나온 기수와 탁지연은 길을 나누어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갔다.
나머지 사매들은 남아서 운기조식에 집중하기로 했다.
시커먼 수적들 사이에 미녀들이 모습을 드러내봤자 좋을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기수는 수로맹주를 찾아갔다.
수로맹주는 그를 반가이 맞았고, 곧바로 연회를 열었다.
자신과 채주들이 돌아온 이상 제갈세가가 또 다른 보복을 해온다 해도 이전처럼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추가로 혈매궁과 한 편이 된다면 더욱 안전해질 수 있었다.
수로맹주는 다른 채주들도 다 불렀고 기수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애썼다.
기수는 교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그들의 기동력에 대해 물었다.
“수로맹은 장강을 지배하고 있으니 천하의 어디라도 빠르게 갈 수 있겠지요?”
“물론입니다. 물길만 닿아 있다면 어디든지 갈 수 있지요. 예전에 한 번 우리끼리 내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동정호에서 북경까지 누가 가장 먼저 도착하나 말이죠.”
“여기서 북경까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걸어서는 장정의 빠른 걸음으로 석 달 정도 걸리고, 짐이라도 있으면 육개월도 걸리는 거리지요. 배로는 얼마 걸린지 아십니까?”
“글쎄요…”
낙양에서 북경은 얼마 안 되지만 장강의 동정호에서 북경은 지도를 대충 만 생각해 봐고 엄청난 거리였다.
“한 달쯤 걸렸나요?”
“하하!…. 8일 걸렸습니다.”
“와! 굉장하군요.”
정말 놀라운 속도였다.
“쾌속선에 돛을 달고 교대로 노를 저으면 그 정도는 언제든 가능하지요. 하하하!”
기수가 진심으로 감탄하자 수로맹주뿐만 아니라 채주들도 모두 얼굴에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이 드러났다.
“8일이라니… 그럼 북경에서 강남이나 장안으로 가는 건 훨씬 더 빠르겠군요.”
“절반 이하가 걸린다고 보면 됩니다.”
이들이 말하는 쾌속선이라는 건 이제까지 타봤던 다른 배들과는 격이 다른 이동수단임이 분명했다.
기수는 고속철도를 만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