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853
01856 1856화
“그래. 저 새끼도 같은 팀으로 근무하면서도 어색했겠지. 어차피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던 놈이니까 어울릴 생각도 하지 않았고.”
“…….”
“난 그게 싫다고. 응급의료대도 결국은 자기 커리어 쌓으려고 온 거잖아. 열심히 해. 그건 인정하는데, 그런 마음가짐은 마음에 안 들어.”
정민수는 그동안 누르고 있던 불만을 거침없이 꺼내 놓았다.
태수는 그런 정민수를 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
“한가하니까 이런 문제가 있네.”
“뭔 소리야?”
“여기에 당장 전쟁 터지면 그 불만이 나올까?”
“…….”
“그래, 일어나지 않을 상황을 가정하는 건 잘못된 거지. 난 일단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게.”
태수가 한발 물러나자 정민수가 의아하게 쳐다봤다.
“넌 또 누구냐?”
“뭔 소리야?”
“보통 이럴 때 짜증을 내든지, 화를 내서라도 잘 좀 지내보라고 할 성격이잖아.”
“너 봉합할 때 어설프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덧나겠지.”
정민수의 대답에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네. 덧날 걸 알면서 왜 어설프게 해.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아니면 자연히 아물게 놔둬야지.”
“지켜보시겠다?”
“도가 지나치면 드레싱은 하겠지. 하지만 니들 문제니까 니들이 알아서 해결해.”
“저 녀석은 날 어떻게 생각하는데?”
“가서 물어봐.”
태수의 대답에 정민수가 애꿎은 줄만 더욱 바짝 잡아당겼다.
“됐습니다. 이거나 잘 잡고 있으렵니다.”
“그래라.”
탕. 탕.
태수는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고정 장치를 더욱 견고하게 망치질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두 사람 사이가 어떻게 될진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두 가지 경우 중 하나가 될 건 확신했다.
친해지거나, 등을 돌리거나.
지금처럼 미적지근한 사이로 결론이 나진 않을 터였다.
태수는 그에 대해 어떤 관여도 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억지로 붙여 놓으면 자신이 더 피곤한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
어떤 목적이든지 각자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 온 자리였기에 우선 거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저녁 시간이 찾아왔다.
준비해 온 비상식량으로 저녁 식사를 마친 의료진들은 모닥불을 피우고 그 앞에 둘러앉아 있었다.
다들 캠핑 온 분위기는 아니었다.
저녁도 먹고 안전한 지역에 있는데도 표정이 밝진 않았다.
그런 의료진들을 둘러본 태수가 도성민에게 물었다.
“현재 발전기로 가동 중인 게 뭐가 있지?”
“자그마한 냉장고 하나.”
“혈액을 좀 채워 놔야 하니까 내일 여기 선생이 오면 부족민들한테 헌혈 좀 받아 놓자고.”
태수의 말에 다들 손바닥보다 작은 노트에 간단하게 필기했다.
“헌혈이 우선이고.”
“그건 특별한 환자가 없으면 서 선생님이 진행해 주세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혼자 진행하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할게.”
서영우가 대답하자 태수가 이어서 말했다.
“오전에는 응급 환자가 아니면 가급적 수술은 진행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병과 상처가 있는지 확인해 주시고, 기본적인 처치만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민수는 사이먼하고 같이 근처 부족들 좀 돌아봐 줘.”
태수의 말에 필기하던 정민수가 쳐다봤다.
“말이 통할까?”
“가운 입고 가. NGO가 왔다 갔다니까 가운 보면 경계부터 하진 않을 거야.”
“알았어.”
정민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태수가 김혁권에게 말했다.
“간호사분들은 일어나자마자 수술실부터 세팅해 주세요. 혹시 모르니까 언제든지 수술할 수 있게요.”
“그럽시다.”
“유 선생하고 이 선생은 테이블 정리하고 진료부터 시작해 줘.”
끄덕.
두 사람이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각각 할 일을 모두 배정한 태수가 말했다.
“안전한 지역이지만 너무 마음 놓지 않도록 다들 적당히 긴장감을 유지해 주십시오.”
“네.”
“그럼 오늘은 이동하느라 고생하셨으니까 일찍 쉬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다들 짤막하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바로 숙박용 텐트로 향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둘 혹은 셋이서 짝을 지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내일 사용할 의료 물품을 미리 챙겨 놓으려는 움직임도 있었고, 산책을 하기도 했다.
이기준도 지금은 서영우와 함께 행동했다. 그나마 이해관계가 단순해서 그런지 서영우와는 곧잘 어울렸다.
서영우도 그런 이기준을 굳이 밀어내진 않았다.
태수는 그런 모습들이 평화롭게 느껴졌지만 여유롭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들 각자 나름대로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뒤로한 태수는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사이먼 기자가 자신의 야전침대에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남자들이 사용할 텐트라 여기저기 야전침대들이 놓여 있었다.
그걸 모두 볼 수 있는 건 텐트 안에 전등이 하나 달려 있어서였다.
의료진들이 머무는 공간이라 그런지 도성민이 신경을 쓴 모양이었다.
덕분에 태수는 자신의 자리를 수월하게 찾아가며 사이먼 기자에게 말했다.
“내일 닥터 정하고 드라이브 좀 다녀와.”
“진료하는 걸 좀 찍으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사진기도 가져왔다고.”
툭.
사이먼 기자는 카메라 가방을 가볍게 건드렸다. 열려 있던 그 가방 속에는 사진용 카메라와 영상용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안전한 곳에 온 만큼 준비도 많이 해 온 모양이었다.
태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 환경이 어떤지 캠코더로 찍으면 나중에 기사 쓸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건 또 그러네. 하긴 여러 부족을 돌아다니면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더 잘 파악될 거고.”
“여기 있는 것보다는 그게 더 효율적일 거야.”
“오케이. 접수했어.”
사이먼 기자가 기분 좋게 대답하자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일찍 쉬라고.”
“벌써 자나? 여기 온 첫날인데 소감 좀 말해 주는 게 어때?”
“소감이라고 할 게 있나.”
“그래도 이런 지역은 처음이라며.”
“처음이지. 그래서 더 모르겠어. 그저 모든 게 무사히 마무리되길 바랄 뿐이야. 먼저 쉴게.”
태수는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아직 전등이 켜져 있었다.
하지만 그 밝기가 눈을 자극할 정도는 아니었다.
첫날이었지만 두근거리는 마음은 없었다.
사이먼 기자에게 말했듯이 태수는 이번 의료봉사가 시작과 같이 끝까지 순탄하길 바라는 마음만 가득했다.
두 번째 날 아침이 밝았다.
아직 새벽이라고 해도 좋을 이른 시간이었다.
남자들의 텐트 안도 고요했다.
아침 해가 조금 더 떠올라 아침이 될 때까지 이 정적은 유지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예상과 달리 의료진들의 귀가 꿈틀거렸다.
웅성웅성.
밖에서 뭔가 소리가 들려와 귀를 자극한 탓이다.
그때 태수가 그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이런 웅성거림이 들릴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부족민들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이른 시간이라고 그들을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그들 입장에선 몇 년 만에 의료봉사가 시작되는 거였기에 마음이 조금은 급할 수 있었다.
어제의 평화는 이 순간 깨졌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벌떡!
몸을 일으킨 태수가 바로 가운을 챙겨 입으며 소리 높여 말했다.
“기상! 일어나요!”
태수의 목소리와 동시였다.
벌떡!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다들 바로 몸을 일으켰다. 모두 이런 상황을 한 번 이상 경험했기에 어떤 상황인지 바로 직감했다.
“푸르르!”
“으아!”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털고, 또 기지개를 켜는 등 자신만의 방법으로 정신부터 차렸다.
그리고 의사들은 가운을 입고, 김혁권은 간호복을 빠르게 걸쳐 입었다.
그사이 태수가 정민수와 사이먼 기자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바로 이동할 준비 하고.”
“알았어.”
“먼저 나갑니다!”
태수가 빠르게 말하자 김혁권이 가장 먼저 뒤따랐다.
“같이 가요.”
“자자, 시작해 보자고!”
“아자, 아자!”
다들 파이팅 넘치는 목소리를 내며 텐트 밖으로 향했다.
텐트 주변은 한산했다.
하지만 천막 주변은 이미 많은 부족민들이 도착해 있었다.
다들 붉은 흙을 온몸에 발랐는지 피부색이 땅 색과 비슷했다. 그리고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 위에 티셔츠를 받쳐 입은 사람들도 보였다.
그런 반면 도시 사람들처럼 완전히 티셔츠에 바지를 입은 이들도 곳곳에 보였다.
그 옷차림들이 그들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문화의 과도기를 가장 잘 설명해 줬다.
그런 생각은 잠깐뿐이었다.
태수는 곧장 이기준과 유병태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진료부터.”
“어제 준비하고 자길 잘했지. 이 선생, 가자.”
유병태가 이끌자 이기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이동했다.
그때 여자 간호사들도 텐트에서 나왔다.
이선정 간호사가 서둘러 모자를 머리에 고정시키며 태수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여기 사람들도 어지간히 마음이 급했나 봐요.”
“당연히 그렇겠죠. 이 간호사님이 저 두 사람 보조 좀 해 주세요.”
“알았어요. 먼저 갈게요.”
사사삭.
이선정 간호사가 빠르게 의사들의 뒤를 따르자 태수는 최소현 간호사에게 말했다.
“최 간호사는 수술실 세팅부터.”
“어제 끝냈어요.”
“그럼 서 선생님하고 헌혈부터 시작해 줘.”
“네!”
최소현이 다가가자 서영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같이 이동했다.
이후 남은 건 도성민과 김혁권이었다.
태수는 두 사람에게 바로 할 일을 정해 줬다.
“두 분은…….”
“그래. 우리도 진료 테이블 하나 잡을게.”
“식사 준비해 주세요.”
“뭐?”
도성민이 멍하니 바라보자 김혁권이 옆구리를 가볍게 찔렀다.
“우리는 안 먹어? 우리는 안 먹고 사냐고.”
“그건 아닙니다만.”
“체력 분배도 해야 할 거 아닙니까. 다들 달려드는 것보다는 효율적으로 갑시다.”
“아, 네.”
도성민은 김혁권의 말에 꼼짝 못했다.
전에도 김혁권을 존중하고 따랐지만, 야전을 경험하고 더더욱 정중해졌다.
지옥 같은 시간을 몇 년간 경험했단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때 태수가 추가로 말했다.
“도끼야, 식사 준비하면서 발전기하고 의료기계 한 번 더 확인해 줘.”
“알았어.”
“식사 준비되면 바로바로 먹고, 잠깐 쉬었다가 교대해 주고.”
“알았다니까. 그럼 나도 움직일게.”
도성민이 말하며 움직이자 김혁권이 같이 이동했다.
두 사람이 텐트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찰나, 정민수와 사이먼 기자가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사이먼 기자가 같이 들어야 할 내용이기에 태수는 영어로 말했다.
“두 사람은 우선 가져갈 거 챙기고, 그 후에 먼저 식사하고 간식까지 챙겨서 바로 출발해.”
“알았어.”
“이따가 보자고.”
두 사람은 짧게 대답하고 바로 흩어졌다.
그제야 태수 주변이 한가해졌다.
말 그대로 식전 댓바람부터 아주 난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다들 경험이 있기에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그렇다고 태수가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태수는 부족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곧장 향했다.
그러자 어제의 옷차림 그대로인 지제이가 마주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죄송합니다. 다들 궁금해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그래서…….”
“당연한 일입니다. 아마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셨을 텐데, 그 점이 오히려 죄송합니다.”
“그건 아닙니다.”
지제이가 어색하게 미소 지을 때였다.
태수 앞으로 화려한 전통 복장을 한 중년인이 다가왔다.
그는 다른 부족민들보다 더 화려하고 현란한 장식들이 가득했다.
누군지 몰라 태수가 일단 미소를 짓는 사이였다.
앞으로 다가온 그가 갑자기 소리치며 태수의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그냥 빙빙 도는 게 아니라 뭔가 박자를 맞춘 독특한 걸음걸이였다.
태수는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그가 한 바퀴 돌고 난 순간이었다.
척. 척.
부족민들이 같이 박자를 맞춰 한 발로 땅을 강하게 찧었다. 그 소리는 뭔가 흥분을 일으키고 가슴을 뛰게 했다.
하지만 태수는 영문 모를 그 행동에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주변을 돌고 있는 화려한 복장의 부족민 눈빛이 날카로운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