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484
02487 2487화
태수는 대답한 김혁권과 심드렁한 박성민을 향해 각각 엄지를 내밀었다.
“완전 리스펙트합니다.”
“오늘은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존경해 마지않죠.”
태수의 답에 유병태가 한마디 거들었다.
“저도 동감입니다.”
“저도요.”
최소현 간호사가 답한 순간이었다.
그녀의 뒤에 슬그머니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더니 나지막이 물었다.
“우리 소현이는 왜 앉아서 존경만 하고 있을까?”
“헉……! 아, 선정이 언니.”
최소현 간호사는 상대를 확인하자 간담 서늘했던 자신을 달랬다. 그러나 이선정 간호사는 여전히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얼른 일어나. 잠자는 호텔 속의 공주님을 꽃단장해 드려야지.”
“아, 그래야죠. 일어날게요.”
“그럼 우리 작은 숙녀분을 위해 남성 여러분들께서는 방으로 들어가시거나 아니면 자리를 좀 피해 주시겠어요?”
이선정 간호사가 방긋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 미소와 달리 눈빛엔 거부하면 재미없을 거란 날카로움이 숨어 있었다.
물론 이 중에 거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태수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동주는 베르난도 샤워 끝날 때 됐으니까 옷부터 가져다주고, 저기 안쪽 방에서 좀 쉬어.”
“아, 네.”
“자자, 그럼 남자들은 움직입시다.”
짝짝.
태수가 박수까지 치며 독려했다.
그 모습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다들 움직였다.
반면 김동주만이 유일하게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분위기에 우선 놀랐다. 그리고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단 점이 믿을 수가 없었다.
태수의 말을 곱씹어 보면 확실히 범상치 않았다.
누구라도 쉽게 품을 수 없는 생각들이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또 그 말들에 틀린 건 하나도 없었다.
그게 혼란스러운지 김동주는 복잡한 눈빛으로 움직였다.
같은 시각.
태수는 스위트룸 밖으로 나왔다.
그런 태수의 손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NGO에서 도착 전화가 올 때가 지났는데 이상하게 연락이 없었다.
그때 문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박성민이 옆에 서더니 태수에게 물었다.
“NGO에서 아직 연락 없어?”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전화하자니 재촉하는 거 같고.”
“이자벨 상태가 아직은 괜찮으니까 조금만 더 두고 보려고요.”
말은 그랬지만 태수의 표정은 썩 좋진 않았다.
NGO 의사라면 환자와 관련된 일에 소홀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어떤 연락도 없는 게 신경 쓰였다.
태수는 일단 생각을 멈췄다.
휴대폰을 내린 태수가 박성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쉬지 않고 나오셨습니까?”
“대책 회의를 하자고 했잖아.”
“아, 그랬죠. 그런데…….”
태수가 말꼬리를 길게 늘이자 박성민이 먼저 대답했다.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야. 우리가 유럽에서 죽치고 살 것도 아닌데 뭔 상관?”
“옳으신 말씀.”
“괘씸하고 짜증은 나지만, 이 또한 지나갈 거란 마음으로다가 굳히기 들어갔단 말씀.”
“그보다 한국은 문제없는 거 같죠?”
태수는 다른 건 몰라도 한국 반응이 제일 신경 쓰였다.
그때 박성민이 진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밖에서 돌아다니는데 장인어른이 전화 주셨더라.”
“무슨 일이 있으시답니까?”
“한국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는 건 아닌 모양이야. 환자의 사연은 알겠지만 굳이 거길 가야 했냐는 말들이 오가고 있다나 봐.”
“…….”
태수의 표정이 순간 진지해졌다.
그때 박성민의 손이 태수의 팔뚝을 가볍게 다독였다.
툭.
“죽을상 하지 말고. 너랑 내 마음 안 좋을까 봐 일부러 연락하셨다던데.”
“뭐라고 하십니까?”
“조금 전에 네가 했던 말과 같은 말씀하시던데. 난 네가 먼저 통화한 줄 알고 깜짝 놀랐다니까?”
“…….”
“아, 자식. 아버님이 그러시더라. 떠벌리기 좋아하는 인간들 반응에 일일이 신경 쓸 거 없다고. 막말로 지들이 출동할 것도 아닌데 뭔 상관이냐고 말이야.”
박성민의 말에 태수가 옅게 미소 지었다.
“과격해지셨는데요?”
“나도 딱 그 생각 했다니까. 요즘 상황실 출근이 잦으신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거 같기도 하고.”
“브레드 김이나 조장들이 상당히 거칠긴 하시죠.”
“단순히 거칠어? 성질이 아주 불같지. 아마 기자들이 슬쩍 발 들이밀다가 ‘앗, 뜨거워라.’ 하고 있을지도.”
“훗.”
태수가 실없이 웃자 박성민은 더욱 환하게 미소 지었다.
“우리 장인어른의 전언이다. 내키는 대로 해라.”
“네?”
“성격 죽이고 살다가 화병 얻지 말고 하던 대로 하래. 외국에서 최태수 성질 더럽단 소문은 파다하다고 알고 계시던데.”
“뭐, 그거야 그렇긴 하죠.”
“어쭈? 웬일로 순순히 인정하실까.”
박성민이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태수는 오히려 진하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족쇄를 풀어 주시면 제가 또 훨훨 날아다니는 스타일이라서요.”
“그렇다고 죄다 들이받지 말고.”
“그렇게까진 안 하죠.”
“그건 알아서 하고. 그럼 이제 우리…….”
박성민의 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빠라밤.
태수의 휴대폰이 울리자 동시에 박성민이 울컥했다.
“왜, 또 왜? 내가 뭔 말 좀 하려고 하면 왜 네 전화기가 울리거나 내 전화기가 울려야 하는 건데?”
“저도 좀 신기하……. 어?”
“왜?”
“모르는 번호라서요. 아까 전화한 닥터 크리니코 전화번호는 확실히 아닙니다.”
태수가 갸우뚱했지만 박성민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럼 다른 사람이 왔겠지. 그 유심 전화번호는 한국에서도 모르잖아. 애들하고는 매신저 어플로 통화했다며.”
“그건 그렇죠.”
“좌우간 도착한 모양이네. 그럼 난 들어가서 쉴 테니까, 너도 손님맞이 잘하고 일찍 쉬어라.”
휙휙.
박성민은 손을 흔들더니 반쯤 열려 있던 스위트룸 문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자그마한 복도가 있고 양쪽에 각각 방이 하나씩 꾸며진 구조였다.
그 복도를 통과해야 거실이 나오게 되어 있고, 박성민의 방은 출입문 바로 옆이었기에 문제 될 건 없었다.
다른 팀원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진 터라 태수는 지금 혼자였다.
그 생각을 하는 사이였다.
빠라밤.
휴대폰이 한 번 더 울렸다.
태수도 더 지체하지 않고 휴대폰을 귀로 가져갔다.
“네, 최태수입니다.”
“…….”
“헬로우?”
태수가 의아한 얼굴로 재차 입을 열었다.
그때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이, 닥터 최, 잘 살았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였다. 태수는 얼른 그 목소리와 아는 얼굴을 머릿속으로 대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은 순간 태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혹시…… 오즈마?”
“역시 우리 팀 막내라서 그런지 빠릿빠릿하게 알아듣는데? 하하!”
“아니, 오즈마가 어떻게 이 전화번호로 전화를…….”
“우연히 알게 됐다면 안 믿을 거고. 그보다 너무 좋은 호텔에 있는 거 아니야?”
그 소리에 태수는 등골이 찌르르 울렸다.
“여기…… 진짜 여기 계시는 겁니까?”
“밀라노에서도 가장 좋은 호텔이라. 아무리 NGO의 명예 회원이지만 너무 품위만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몰라.”
“그, 그건 아닌데…….”
“그러고 보니 좀 섭섭하네. 난 이 좋은 호텔에 들어갈 자격도 안 돼?”
닥터 오즈마의 계속된 놀림에 태수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아닙니다. 들어오……. 아니요. 제가 지금 내려가겠습니다.”
“그럴 건 없…….”
“지금 갑니다. 바로 갑니다!”
뚝.
전화를 끊은 태수는 동시에 승강기를 향해 정신없이 내달렸다.
닥터 오즈마가 왜 여기 있는진 나중 문제였다.
오랜만에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태수의 가슴은 설레고 있었다.
잠시 후.
태수는 호텔 로비가 아닌 호텔 바(Bar)에 자리해 있었다.
술을 마시러 온 건 아니었다.
늦은 시간이라 커피숍이 문을 닫아 찾아온 장소였다.
주류가 주종인 바였지만 커피와 간단한 음료는 판매하고 있었다.
태수는 자리한 테이블에 바짝 몸을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 자리한 상대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 상대는 방금 해후를 나눈 닥터 오즈마였다.
그는 얼마나 고생했는지 하얀 피부가 꺼멓게 보일 정도로 그을렸다. 게다가 피곤한 안색이었지만 그도 태수가 반가운지 연신 미소 짓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르완다에서 봤을 때보다 피부가 많이 상해 있었다. 계속된 이동과 장시간 수술로 피곤함이 만성이 된 느낌이었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태수는 안타까움보다 이 순간 이렇게 마주하고 있단 사실에 더 큰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를 한 번 뒤로 쓸어 넘긴 닥터 오즈마가 핀잔을 줬다.
“그렇게 쳐다보면 남들이 오해해.”
“하라죠.”
“하하. 나도 반갑긴 한데, 너무 뚫어지게 바라보진 말아 달라고.”
“신기해서요.”
태수의 말에 닥터 오즈마가 어이없이 바라봤다.
“아까부터 그 소리. 이자벨인가? 그 아이에게 필요한 약상자 가져다주는 내내 그 소리 했잖아.”
“얼마나 믿기지 않으면 계속 같은 소리를 하겠습니까.”
“수선 떨 정도는 아니라고.”
“전 이 정도 해야 됩니다. 전화 받기 전까지 닥터 크리니코가 오는 걸로 알고 있었단 말입니다. 아니면 다른 직원을 보내거나요.”
태수는 자신의 입장을 말함과 동시에 닥터 오즈마에게 어떻게 된 건지 넌지시 물음도 건넸다.
닥터 오즈마도 아는지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답했다.
“사무실 들어가니까 닥터 크리니코가 상자를 준비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그거 뭐냐고 물으니까 닥터 최를 말해서 놀랐어.”
“그럼 이탈리아에 계셨던 게 아닙니까?”
“도착한 지 1시간 정도 됐나?”
그 소리에 태수가 깜짝 놀랐다.
“피곤한 안색은 알겠는데, 오자마자 바로 저 보러 오신 거라고요?”
“닥터 최가 여기 있단 걸 알았는데 당연히 와야지.”
“저 밀라노에 도착한 지 며칠 됐는데요.”
태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하자 닥터 오즈마가 답했다.
“얼마 전에 예멘에 큰 전투가 있었어. 다음 날 바로 들어가서 오늘 나왔거든. 나오자마자 거금의 기부 수술이 잡혀 있다고 해서 나만 먼저 날아온 거야.”
“먼저 날아오신 거라면……?”
“원래는 이틀 뒤에 제임스 박사님하고 모두가 넘어올 예정이었지.”
닥터 오즈마의 아리송한 대답에 태수가 눈을 끔뻑거렸다.
“예정이었다고요?”
“30분 전에 일정이 바뀌었어. 난 내일 오후 비행기로 출발하고, 집결지는 페루야.”
“페, 페루요? 거긴 남미잖습니까.”
“그렇지. 그쪽도 복잡하거든. 설명하려면 길고.”
“그런데 왜 목적지가 갑자기 바뀐 겁니까? 그럼 거금의 기부 수술은 누구한테 넘어간 거고요?”
태수는 머릿속이 혼란스런 표정이었다.
무엇보다 제임스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갔단 사실이 가슴 쓰렸다.
또 제임스의 수술팀을 밀어낸 그 대단한 사람들이 누군지도 무척 궁금했다.
태수의 얼굴에 아쉬움과 호기심이 공존하고 있었다.
닥터 오즈마는 그런 태수를 향해 진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잘 생각해 봐. 힌트를 주자면 NGO 사무실에서 여기까지 20분 걸려.”
“음…… 1시간 전에 도착했고, 30분 전에 바뀌었으면…… 바뀐 내용을 통보받자마자 이쪽으로 출발하셨단 건데요.”
“우리 팀 막내가 벌써 머리가 굳어 가는 건가? 좀 더 폭 넓게 생각해 보는 건 어때?”
“스무고개 하다가 저 심장마비 옵니다.”
태수가 앓는 소리를 하자 닥터 오즈마는 크게 웃었다.
“하하. 그 성격 어디 안 가네.”
“그러니까 제 건강을 위해서 속 시원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우선 기부 수술, 라파엘종합병원에서 들어온 요청이었고, VWD 수술이었어.”
“……네?”
태수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상황이지만 바로 이해되지 않아 순간 갸웃거려졌다.
반대로 닥터 오즈마는 그런 태수의 반응이 재미있단 얼굴로 말했다.
“보스만을 만났었다지?”
“어? 그럼 진짜…….”
“맞아. 보스만이 NGO에 요청을 한 거지.”
“…….”
태수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