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593
Chapter 362화.
그 순간 움찔한 구승헌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수액이라니요?”
“처음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사장님은 당장 입원해도 이상하지 않다고요.”
“그러셨죠.”
“진짜 입원하라는 거 아닙니다. 오늘은 여기서 머물러야 되니까 그 시간 좀 알차게 쓰자는 거죠.”
태수가 의도를 명확히 하자 구승헌은 당황했다.
“이렇게 찾아온 저를…….”
“어떻게 찾아와도 제 눈엔 일단 환자로 보입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제가 지금 편하게 수액 맞으면서 건강 추스릴 때가 아닌 거 같습니다.”
의외로 완강하게 거절하자 태수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러다가 쓰러지면 그 놈들이 알아준답니까?”
“관심도 없겠죠.”
“그럼 사장님 믿고 있는 분들이 박수치면서 결사항전이라도 할까요?”
“그건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 왜 혼자 생으로 버티고 난리입니까! 빨리 일어나세요.”
태수가 버럭 소리 질러 다그쳤다.
그제야 구승헌은 슬쩍 눈치를 보며 조심히 일어났다.
태수는 그런 그가 좀 더 빨리 움직일 명분을 만들어줬다.
“환자를 안정시켜야 의사도 마음 편하게 움직입니다.”
“그럴 거 같습니다.”
“도와달라더니 움직이지 못하게 발을 묶으면 어쩌라고요.”
그 말과 동시였다.
구승헌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서, 선생님!”
“아직 확실한 거 아니고, 확신도 없습니다. 일단 알아보겠단 겁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꾸벅.
구승헌은 허리를 펴지 않고 계속 인사했다.
태수는 그가 빈혈로 쓰러질까 걱정부터 됐다.
“아직 인사할 때 아니십니다. 그러다가 어지러워 쓰러집니다.”
“그, 아…….”
비틀.
“거 봐요. 왜 사람들은 말할 때 안 듣고, 꼭 뭔가 이상이 생겨야 의사 찾는 거야?”
투덜거린 태수는 바로 구승헌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척.
팔을 붙든 순간 느껴지는 건 차가움이었다.
태수는 생각보다 구승헌의 몸 상태가 안 좋음을 직감했다.
이젠 권유가 아니라 강제라도 눕혀야했다.
“갑시다!”
“감사…….”
“그 소리 한 번만 더 해보세요.”
“…….”
“저도 확신 없는 상황이라 부담스러워서 그러는 겁니다. 자, 조심하시고요.”
태수는 부축하면서도 자신의 상황을 분명히 밝혔다.
그저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일이 있었다.
지금의 경우는 후자였다.
잠시 후.
태수는 본부 건물 속 보호자 휴게실에 서 있었다.
말 그대로 보호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간이침대도 비치되어 있었다.
그 중 구석자리에 구승헌이 누워있었다.
포도당과 아미노산이 팔까지 길게 연결되어 있었고, 그 속엔 몇 가지 약이 더해진 상태였다.
그런 그의 눈은 반개되어 있었다.
기절하듯 잠들었지만 마음이 편하지 못해 온전히 눈을 감지 못했다.
태수는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대체 얼마나 마음에 절절이 품고 있어야 자도 자는 거 같지 않을까?’
이젠 구승헌의 절박함이 조금 읽히는 거 같았다.
그때 나비스 간호사가 밧드(철제그릇)을 정리하며 말했다.
“이런 분은 처음이에요. 근이완제를 약하게 투여했다지만 10분을 버티다니요.”
“그럴 사정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입원 시키지 않아도 될까요?”
“하더라도 나중에요.”
태수는 나비스 간호사의 고마운 마음을 조심히 밀어냈다.
그녀는 태수의 무거운 표정을 보고는 더 이상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았다.
“알았어요. 수액 시간은 제가 체크할 테니까 계속 지켜보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갑자기 부탁드려 죄송합니다.”
“젠틀하고 사려 깊은 닥터 최를 돕는 건 당연한 걸요. 먼저 실례할게요.”
나비스 간호사는 가벼운 미소를 보이며 보호자 휴게실을 나갔다.
탁.
문이 닫히자 태수는 고개를 가웃거렸다.
“최악의 환자라며.”
생각해보니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도 살가웠다.
지금까지 홀로 착각하고 있었다고 해도 믿어질 정도였다.
이내 태수는 변화의 이유를 떠올렸다.
선물이 분명했다.
끄덕, 끄덕.
태수는 홀로 이해하고 만족했다.
그런 시간은 잠깐이었다.
드륵.
보호자 휴게실 문이 다시 열렸다.
태수가 고개를 돌려 보자 라쿠와 시선이 마주쳤다.
태수는 손짓하며 그를 유도했다.
“들어오세요.”
“여긴 병실이 아닌 모양입니다.”
“잠시 쉬고 싶은 분들이 머무는 장소입니다.”
태수는 차분히 설명했다.
그 사이 라쿠가 옆으로 다가와 간이침대에 누운 구승헌을 발견했다.
“미스터 구는 결국 누웠군요.”
“사정은 이미 다 아실 거 같고, 왜 제가 거기 샌드위치처럼 낀 겁니까?”
“미스터 구가 말하지 않던가요?”
라쿠가 묻자 태수는 짧게 답했다.
“이잠바크의 영웅이란 별명 때문이라더군요.”
“그거면 답이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라쿠.”
태수가 조용히 부르자 라쿠가 쓰게 미소 지으며 좀 더 자세히 말했다.
“양쪽 진영에서 유일하게 회자되는 사건이라면 이잠바크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그건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최근 말노이 사건도 쉽게 생각할 수 없겠죠.”
“그거야 뭐.”
태수는 자신이 조금 과격하긴 했지만, 썩 반성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라쿠도 그런 반응을 원한 건 아닌지 덧붙여 말했다.
“아무튼 사령관이 바뀌어도 병사들이 닥터 최를 기억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럼 아예 전쟁하지 말라고 무전이라도 때릴까요?”
“썩 추천하고 싶진 않네요.”
“저도 그럴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 마시고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태수가 차분히 연결시켜 말하자 라쿠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어렵단 걸 알지만 미스터 구가 안타까워 데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쿠를 얼마나 붙들고 늘어졌을까요.”
“그림이 그려지십니까?”
“라쿠가 신중한 분이란 건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요.”
태수의 대답에 라쿠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부분은 제가 좀 더 고민해보기로 하고요. 한인 마을은 어떻게 됐는데 아까 그러신 겁니까?”
태수가 진지하게 묻자 라쿠가 가만히 바라봤다.
“흠.”
“왜요. 그렇게 보시면 불안한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들켰습니다.”
그 소리에 태수가 눈에 띠게 동요했다.
“드, 들켜요?”
“미스터 조의 눈치를 제가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게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그래서요. 마을에서 뭐라는데요?”
태수는 다급해졌다.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렸을지도 모른 탓이다.
그런 걱정과 달리 라쿠의 표정은 의외로 평탄했다.
“촌장님이 오려거든 각오 단단히 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아……. 그걸 그렇게 들키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죠.”
“다행히 100퍼센트 들킨 건 아니니까 각오하란 의미가 안 좋은 쪽은 아닐 겁니다.”
그 소리에 태수가 귀를 쫑긋거렸다.
“들켰는데 100퍼센트 들킨 게 아닌 건 뭡니까?”
“제가 상당부분 투자했다고 거짓말 좀 했습니다. 그래서 때 되면 가서 새끼들 받아와야 할 거 같습니다.”
“위탁 사육이면 받아오긴 해야죠.”
태수는 받을 생각이 없지만 완전한 거짓말을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라쿠도 그 문제에 대해 상의를 바랬다.
“가축 새끼라고 꼭 저렴한 건 아닙니다. 그 다음이 문제지만요.”
“그건 라쿠가 적당히 해결해 주시면 되고요. 저는 일부 투자만 한 걸로 되어 있단 거죠?”
“제 사정은 생각지 않으십니까?”
“저 살기 바쁘니까 그거부터 답해주세요.”
태수가 보채자 라쿠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닥터 최가 다시 한인 마을에 간다면 아이들에겐 인기 스타가 될 겁니다.”
“과자 때문에요?”
“아니요. 강아지를 몇 마리 데려갔습니다.”
“애들이 뒤집어졌겠습니다.”
태수가 눈에 훤하단 표정으로 반응함과 동시에 라쿠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정확합니다.”
“촌장님이 몰아세울 때 애들 뒤에 숨으면 되겠네요.”
“너무 당당하게 말씀하십니다.”
“방패는 앞에 세워야죠. 그런데 혹시 다른 소식은 없습니까?”
태수는 한인 마을 소식을 모두 듣자마자 슬쩍 떠봤다.
그때 라쿠가 주머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전 닥터 최가 그저 의사인 줄 알았는데, 이런 기업이 뒤에 있는 줄 몰랐습니다.”
“만나셨네요……. 어?”
태수는 명함 속 이름이 예상 밖이라 조금 놀랐다.
– 동성건설 박해용 과장.
박해용 과장이라면 석정현 이사장에게 다가갈 때 앞을 막았던 덩치 좋은 남자였다.
태수가 명함을 확인하자 라쿠가 이어서 말했다.
“두 번 만났습니다. 처음엔 어떤 이유로 연락을 했는지, 두 번째는 첫 거래를 깔끔하게 했고요.”
“벌써요?”
“벌써라니요. 두 번째 거래는 언제하냐고 삼일에 한 번씩 연락 옵니다.”
라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반면 태수는 고개를 묵직하게 끄덕였다.
“역시 이사장님 밑에 계신 분들다운 일처리야.”
한국말로 중얼거려서 그런지 라쿠가 힐끔 쳐다봤다.
“뭐라고 하신 겁니까?”
“원래 한국은 빨리빨리 문화가 생활 속에 녹아 있다고 했습니다.”
“물건 만들 시간은 줘야하는 거 아닙니까.”
“만들라고 하세요.”
태수가 심드렁하게 반응하자 라쿠는 답답해했다.
“그건 그냥 제가 알아서 하기로 하고요. 최 선생님에게 전해달란 이상한 당부가 있었습니다.”
“어떤 당부일까요?”
“조만간 큰손이 움직인다고 하던데요. 혹시라도 한인 마을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절대 아는 척하지 말란 당부였습니다.”
라쿠는 왜 그런 말이 오가야 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태수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좋은 말씀이네요.”
“한국분들끼리만 통하는 그런 암호입니까?”
“우리만 알고 있는 암호입니다.”
“암호라면 굳이 제가 궁금해 할 건 아니네요.”
라쿠는 역시 장사꾼답게 빠져야할 때를 정확하게 알아챘다.
그래서 태수가 라쿠에게 여러 부탁을 할 수 있었다.
편안하게 부탁하는 만큼 대가도 당연히 돌아가야 옳았다.
“라쿠. 그 가축 새끼들 말입니다.”
“혹시 뭐 아이디어가 있으십니까?”
“네. 모두 라쿠에게 선물하겠습니다.”
태수의 호탕한 결정에 오히려 라쿠가 당황했다.
“닥터 최, 그게 만만한 금액이 아닐 거라고 했잖습니까.”
“라쿠 용돈으로 충분하다면 더 좋지요.”
“더 많은 일을 계획 할 수 있단 겁니다.”
“투자를 하려면 라쿠에게 하고 싶습니다. 사람보다 더 값진 재산은 없으니까요.”
태수는 찡긋 미소를 지었다.
사실 태수의 주머니로 들어가도 될 터였다.
그러나 태수는 아예 생각지 않았다.
한인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산과 소비는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긴 탓이다.
그런 태수의 각오를 눈치 챘는지 라쿠는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태수가 좋아할 다짐을 전했다.
“앞으로 웬만한 일은 제가 힘을 써보겠습니다.”
“당연히 그러셔야죠.”
“당연한 일인 줄은 몰랐네요.”
“하하.”
태수는 가볍게 소리내어 웃었다.
구승헌의 앞이라 크게 기뻐하진 않았다.
그래도 라쿠와의 대화로 가라앉았던 기분이 상당히 좋아진 건 사실이었다.
태수와 라쿠는 구승헌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고 자리를 옮겼다.
그 옆에 메모를 적어 놓아 깨어나도 당황하지 않게 배려해 놓기도 했다.
그런 두 사람은 숙소로 향했다.
들어가기 직전 라쿠가 먼저 태수에게 말을 꺼냈다.
“사실 제가 먼저 안에 어떤 일인지 알렸습니다. 다들 너무 궁금해 하셔서요.”
“잘 하셨습니다.”
드륵.
태수는 고마움을 표하며 숙소 문을 열었다.
그런 반응에 라쿠가 더 당황한 얼굴로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