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922
00925 925화
태수의 시선이 윤사라에게 향해 있는 사이였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안한다.
어느새 맥박은 점점 안정을 찾았고, 혈압도 다시 수치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런 대형 출혈을 겪고도 이리 호전을 보이는 건 역시 윤사라가 가진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 때문일 터였다.
그 수치를 확인한 수술팀원들이 서로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 시선 속에 복잡하고 다양한 마음이 스쳐 갔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태수의 말대로 이번 수술 중 가장 큰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님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휘몰아친 시간들이다.
신장의 문제뿐만이 아니었다.
간경화, 기흉까지도.
결국은 루푸스 염증으로 인한 합병증이다.
이 모든 병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이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한 번의 실수는 죽음이거나 최선이래 봐야 평생 아픈 몸을 이끌고 살아야 한다.
죽어라 해놓고 환자가 고통에 시달리는 건.
수술의료진으로서 최악의 결과였다.
그걸 뼈에 사무치도록 깨달았기에 다들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시간은 늘 상대적이다.
오늘은 빠른 걸 택한 모양이다.
오전에 수술을 시작했는데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다.
긴 시간 진행된 수술이다.
그리고 지금도 수술은 진행 중이었다.
그사이 수술 의료진 모두가 끝없는 긴장 속에서 수술을 이어 왔다. 수술팀원들은 지금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떤지 의식하지도 못했다.
그건 윤사라가 견뎌 주고 있기 때문이다.
수술할 맛.
정말 속물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환자가 버텨 줘야 의사와 간호사들도 수술에 대한 열의를 보일 수 있다.
지금은?
마취되어 잠든 윤사라가 수술팀원들에게 수술을 독촉하는 중이었다.
난 이렇게 버티고 있다. 그러니 수술해 달라.
그런 상황인데 수술팀원들이 먼저 두 손을 들고 수술실을 나갈 순 없는 노릇이다.
이 순간 내일이나 자신의 건강을 걱정할 수술팀원은 없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모두의 생각은 짧았다.
불과 1분 남짓.
그사이 수술실은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때 침묵하고 있던 공우혁이 태수에게 물었다.
“최 선생 말대로 루푸스까지 수술한다면 지금부터 얼마나 더 걸릴까?”
“정확히 예측하기 힘듭니다.”
“어느 정도는 데이터를 뽑아 줘야 돼. 그래야 여 선생하고 나도 그에 맞게 약을 투여할 수 있으니까.”
공우혁의 말에 태수의 눈이 살짝 크게 떠졌다.
그 말인즉, 반대를 뒤집어 수술 진행에 찬성한다는 이야기였다.
공우혁이 가장 반대를 할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에 태수의 입이 쉽게 열리지 않자 여성현이 투덜댔다.
“아무리 전신마취라고 해도 무한정 시간을 끌 수 없는 것도 몰라? 이거 잘난 척은 다 하면서 기본도 모르다니.”
“…….”
“더 이야기해 봐야 내 입만 아프고. 가만 있어 보자……. 4시간. 거기까지는 괜찮을 거 같아. 그거 넘어가면 나도 장담 못해.”
“4시간이라.”
태수가 나지막이 말을 곱씹었다.
여성현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마취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데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말이다.
잘못하면 마취에서 영영 못 깨어난다.
설령 깨더라도 회복 기간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른다는 걸 이야기하고 있었다.
태수가 머릿속으로 앞으로 남은 수술에 대한 시간과 가능성을 계산할 무렵, 성재경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패기가 없어.”
“네?”
“이 상황에서 루푸스 염증까지 수술하자는 의사가 왜 그렇게 패기가 없냐고. 그냥 밀어붙일 거면 화끈하게 밀어붙이라고.”
성재경의 말이 끝나자 유병태도 한마디 덧붙였다.
“내가 알고 있는 최태수란 친구는 절대 재고 따지는 놈이 아니야. 안 되는 것도 될 때까지 밀어붙이는 의사지.”
“…….”
“설령 4시간이 지난다고 멈출 건 아니잖아. 그럼 고민할 이유가 없네.”
유병태의 말에 이어 이선정 간호사가 말했다.
“지치셨으면 좀 쉬세요. 우리끼리 해 볼 테니까.”
“이 간호사님.”
“그렇게 째려볼 힘이 있으면 수술은 잘하겠네. 안 그래, 최 중위?”
이선정 간호사가 찡긋거리자 최소현 중위는 손에 들고 있던 수술 도구를 더욱 강하게 쥐어 보였다.
해달란 무언의 요구였다.
그건 박연주 중위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조현민이 태수에게 물었다.
“최 선생, 한가해?”
“네?”
“아니, 한가하면 좀 나갔다가 바빠지면 들어오려고.”
자극적인 말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이거 왜 이리 허둥거려?”
“수술 안해?”
한마디씩 건네는 수술팀원들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했고 태수에게 집중된 시선은 따가울 정도였다.
왜 아직 시작하지 않냐.
이대로 시간을 끌 거냐.
이젠 거꾸로 재촉하는 눈빛까지도 느껴졌다.
태수의 시선이 한 번 더 윤사라의 손으로 향했다.
사진을 쥔 그 손에 잔떨림도 없었다.
삶에 대한 욕구다.
아니, 죽음에 지기 싫단 의지다.
밝게 웃는 사진 속 윤사라의 모습을 태수도 다시 한 번 직접 보고 싶었다.
아니, 꼭 다시 볼 터였다.
태수의 눈빛도 점점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이내 마음을 굳혔는지 그의 목소리가 낮고 굵직하게 수술실을 울렸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조 선배와 성 선배는 흉부를 먼저 살펴봐 주시고, 유 선생은 신장으로.”
태수가 오더를 내리자 해당하는 보건의들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조 선생, 가자고.”
“난 이미 도착해 있는 거 안 보여?”
“자, 저는 신장으로 갑니다.”
그들의 말이 끝나자 공우혁과 여성현이 태수에게 물었다.
“우리는?”
“그걸 왜 저한테 물으십니까? 알아서 하세요. 유 선생, 신장부터 확보하자고.”
태수가 등을 보이자 여성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저 자식, 뒤끝 있네.”
“최 선생이 그렇지, 뭐.”
“가끔 얄밉다니까요. 그보다 우리끼리 할 말이 좀 있죠?”
“그렇지. 우선…….”
공우혁과 여성현은 빠르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내과의 입장에서 또 마취과의 입장에서 앞으로 윤사라의 전신관리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부분이다.
그저 대화만 하는 건 아니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보건의들의 흐름을 살펴보고 적절한 조치를 하면서 잠깐잠깐 의견을 교환했다.
다시 수술실이 분주해지자 참관실에서 지켜보는 보건의들은 경악했다.
수술 시작부터 지금까지 지켜본 보건의는 없었다.
각자 할 일이 있던 탓이다.
하지만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와도, 또 나갔다가 참관실에 들어와도 수술은 계속되고 있었다.
잠시 조용해진 수술실을 보고 이젠 끝났을 거라 예상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다시 수술을 이어 간다는 사실에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대단한 인간들.”
“버티는 윤사라도 대단하다.”
“저 수술실에 누가 독 풀어 놨어? 진짜 독하다. 다들 독해.”
질린 표정들도 보였다.
그러나 모든 보건의의 마음은 똑같았다.
버텨.
단지 그 마음이다.
조현민과 성재경은 기흉이 일어난 폐에 대한 후속 조치를 이어 갔다.
“성 선생, 그쪽 더 당겨.”
“이렇게.”
“좋아. 유지.”
“끙.”
성재경이 앓는 소리를 내며 일정한 힘으로 버티는 사이, 조현민은 기흉이 일어난 폐를 점검했다.
미리 도착해 있던 내시경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사이 태수와 유병태는 신장을 확보하기 위해 수술 도구를 움직였다.
간 아래, 그리고 장 뒤쪽에 위치해 있기에 눈앞에 나타나게 하는 것도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태수와 유병태의 빠른 손놀림 덕분에 곧 신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좌, 우측 신장을 확인한 유병태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너무 부풀었는데. 요관도 많이 늘어나 있고. 이 정도면 hydronephrosis(수신증) 아니야?”
“혈전 때문인 거 같아.”
“젠장. 그놈의 피가 여기저기서 말썽이네.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하지?”
유병태가 물은 직후였다. 여성현의 심각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혈압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좋아지지 않고 있어. 체온도 꿈쩍을 안 해.”
“손끝부터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고.”
공우혁이 뒷말을 덧붙였다.
두 보건의들이 말한 증상 모두 소변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았을 때 문제가 되는 것들이었다.
심각해지면 신부전, 더 악화되면 심부전까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수술 중에, 또는 회복하는 중에 소변의 양을 확인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태수는 더 지체할 것 없이 유병태에게 말했다.
“소변이 쌓여서 문제면 빼내야지. 카테터.”
“가장 얇은 걸로 준비했어요.”
태수가 옆으로 손을 내밀자 이선정 간호사가 바로 얇은 도관을 내밀었다.
그걸 받아 든 태수는 망설임 없이 카테터를 움직여 신장을 찔러 갔다.
그 모습에 유병태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변했다.
“또 찔러?”
그 말이 끝까지 나오기도 전에 이미 태수가 쥔 카테터가 신장과 요관 사이를 파고들었다.
태수는 반대쪽 카테터 끝을 수술대 아래쪽으로 내렸다.
그러자 카테터를 타고 불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뚝뚝.
한 방울씩 떨어지는 건 방광에서 걸러지지 않은 소변이었다. 코끝을 찌르는 암모니아 냄새로도 확신할 수 있었다.
수술실 바닥은 피와 수액, 거기에 소변까지 뒤범벅이 되었다.
그사이 태수를 향한 유병태의 시선이 거칠게 떨렸다.
신장과 요관 사이의 간격은 무척이나 좁다. 아무리 수신증으로 인해 많이 부풀었다지만 손가락 반 마디도 되지 않았다.
그런 좁은 틈을 아무런 기구의 도움도 없이 한 번에 찔러서 소변이 배출되게 했다.
조금 전에 기흉을 응급조치할 때도 그러했다.
이건 머리에 있다고 되는 일이 절대 아니다.
생사를 오가는 응급환자를 무수히 다뤄봤단 생생한 산증거였다.
-최태수. 넌 어떤 인생을 산 거야?
멱살이라도 잡고 꼭 대답을 듣고픈 심정이었다.
얼마나 많은 경험이 있는 걸까.
남들보다 특이한 태수의 이력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모습으로도 태수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 것 같았다.
유병태가 짧지만 진지하게 고민할 즈음이었다. 태수는 계속 추가적인 조치를 여성현에게 이야기했다.
“지금부터 diuretics(이뇨제) 추가해 주십시오.”
“오케이. 탈수 증상도 계속 점검하면서 진행할게.”
“부탁합니다.”
말을 마친 태수의 시선이 유병태에게로 향했다.
유병태가 살짝 풀린 눈빛으로 태수를 마주 바라봤다.
“왜?”
“지금부터 각오해.”
“안 그래도 그 소리가 언제 나오나 했네. 후우. 그래, 해 보자고.”
숨을 길게 내쉬는 유병태의 표정이 해보잔 패기로 철철 넘쳤다. 동시에 태수의 눈빛 또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위장부터 시작합니다. 큐렛, 믹스터.”
“…….”
척.
이선정 간호사는 거의 동시에 수술 도구를 내밀었다. 이젠 거의 반사적이라 생각될 정도였다.
그사이 유병태도 수술 도구를 들었다.
태수는?
더 할 이야기가 없었다.
대신 수술 도구를 쥔 두 손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위장 주변의 염증 제거부터 시작했다.
모든 염증을 걷어 낼 순 없다. 다만 후에 살아감에 있어 크고 작은 문제가 될 수 있어보인 커다란 염증을 우선적으로 제거하기 시작했다.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수술이다.
아차 실수로 조금 더 아니면 조금 덜 제거한다면 분명히 후유증이 발생한다. 여기서 후유증이라면 이런 위험한 수술을 또다시 해야 한단 의미였다.
두 번은?
때려죽여도 안된다.
어려움을 떠나 자신이 없다.
지금 태수의 눈빛은 패기와 차분함이 공존했다. 또한 수술이 정말 어려운 만큼 투지도 불타올랐다.
태수의 손길은?
이제 막 수술실에 들어온 것처럼 열정과 힘이 가득했다.
“왼쪽…… 오른쪽, 아래.”
“왼쪽 오케이, 오른쪽…… 잠시만!”
얼마나 손이 빠른지 유병태의 손이 따라가질 못했다.
집도의를 받쳐 주지 못하는 어시스던트라면 문제가 있다. 유병태가 죽어라 쫓아가고 있지만 태수의 손길이 두 박자 이상 빨랐다.
이대로 유병태가 계속 늦는다면 수술 진행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유병태도 알기에 기를 쓰고 태수의 뒤를 쫓았다.
그래도 늦는 건 늦는 거였다.
“늦어!”
“젠장!”
“왼쪽 아직 덜 끝났잖아. 확실하게 처리하고 넘어와.”
“한다고!”
유병태는 두 눈을 부릅뜨고 손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