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EPISODE.56
다행히도, 두 사람 사이에 불필요한 오해가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일단 이오부터가 경거망동하거나, 굳이 소란을 일으키는 성격이 아니었으므로.
“그렇군요…….”
러셀의 설명에 이오가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고, 러셀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
“언더월드 입구에 쓰러져 있는 저를 은인께서 업고 숙소로 돌아오셨다는 말이군요.”
조금 가슴이 찔리긴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이야기의 앞을 조금 잘라먹었을 뿐.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용의 힘을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이오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것을 이야기한다 해도 납득시키기 위해선…….
‘이래저래 설명할 게 많지.’
러셀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이오가 손을 움직였다.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손거울을 꺼내 들며 얼굴을 이모저모 비췄다.
“이게 바로, 은인께서 말씀하셨던 뿔이군요.”
“예. 저도 이오 님을 처음 발견했을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음…….”
천연덕스런 거짓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는지 이오가 침음했다.
잠시 고민 끝에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제 몸속에 흐르고 있던 용의 인자가 깨어나기 시작한 것 같아요.”
“…….”
“의식을 잃기 직전, 은빛으로 반짝이는 빛무리가 저에게 날아들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어쩌면 그게 각성의 전조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은빛의 빛무리, 분명 그것은 실베테르가 남긴 힘이었을 것이다.
이오의 음성이 이어졌다.
“각성의 과정, 창틀에서 떨어졌고 밤거리를 헤매다가 정문에서 쓰러졌다면…….”
나름대로의 추측을 통해 기억의 조각을 맞춰나가는 이오를 보며, 러셀의 가슴이 다시 한번 뜨끔했다.
‘그러면서도 이야기가 잘 풀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다니.’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는, 스스로의 인간적인 면모에 러셀이 고소했다.
물론 그게 마냥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는 사이 스스로 생각을 정리한 이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인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셨다면 그대로 길에서 잠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감사드려요. 은인.”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떨떠름하게 답하는 러셀을 향해 이오가 생긋 웃었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저도 용인(龍人)으로서 각성을 시작했잖아요? 그러니 작으나마 저희 부족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테죠.”
“아.”
그 이야기에서 러셀은 어제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 일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몬스터들과 맞서 싸울 무기를 조달하기 위해 언더월드로 왔다고 했었지.’
하얀 물푸레나무 부족의 마을이 있는 곳은 아마조나 대수림(大樹林)의 내부다.
엘프와 페더를 비롯한 여러 요정족은 물론 갖은 종류의 몬스터들까지 서식하고 있는.
아직 인류의 손길이 완전히 미치지 않는 신비(神祕)를 간직한 곳 중 하나.
그런데 그 대수림의 몬스터들이 갑작스럽게 흉포하게 변했다고 하던가?
‘음…….’
몬스터가 갑자기 흉포하게 변했다는 점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러셀은 일단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을 미뤘다.
그리 많지는 않더라도, 일정 주기마다 몬스터가 흉악하게 변하는 일은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외부인인 자신이 간섭할 만한 일도 아니었고.
그때였다.
바람의 정령 한 마리가 열린 창을 통해 숙소 안쪽으로 날아든 것은.
치르, 치르르르-.
이오를 발견한 정령이 요란을 피워댄다.
“앗-.”
그 소란에 이오가 당황한 표정으로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제가 갑자기 없어진 탓에 숙소에서 소란이 일어났나 봐요.”
하기야, 갑작스럽게 사라진 것이니 소란이 일어나는 것도 당연했던바.
“감사했어요. 은인.”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그녀가 러셀의 숙소를 나가다 말고, 문고리를 부여잡으며 멈칫했다.
“부디 은인의 앞길에 숲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이어 러셀을 돌아보며 짤막하게 말했다.
“그럼……다음에 또 뵈어요. 은인.”
다음에 또 뵈어요.
어쩐지 묘한 울림을 가진 말이었다.
* * *
츠츠츠츳-.
이오가 돌아가고 두 시간 후.
마력의 흐름에 휘감겨 있던 러셀이 천천히 두 눈을 반개했다.
그와 함께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흘러나오던 마력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뻗어 나왔던 모든 마력이 써클로 돌아간 것을 확인하며 러셀이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후우우-.”
일말의 흔들림조차 없는 맑은 눈동자라.
하룻밤을 꼬박 지샌 피로 따윈 이미 써클링 작업을 통해 완벽히 날려 버린 후였다.
그렇게 피로를 날려 버린 러셀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우득, 우드득-.
간단한 체조를 통해 몸을 일깨우며 생각했다.
‘본래는 용에 대한 흔적을 찾는 데에만 20일을 모두 사용할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린 탓에 하루 만에 끝나게 되어 버렸으니, 19일가량의 여유가 생기게 된 셈이다.
‘그럼,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한다.’
일단은 먼저 오버로드와 위저드바디의 단련부터 시작해야겠지만, 그 후의 일정은 정해진 것이 없었으므로.
‘도서관을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무리 언더월드가 쇠와 불의 도시라곤 하지만, 여러 책들을 모아 둔 도서관 하나쯤은 있을 테니까.
어쩌면 요정족들 사이에서만 전해져 내려오는 귀한 서적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랐고.
‘대장간 같은 곳엘 가서 기술을 구경한다던가…….’
그렇게 몇 가지 일정들이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와중.
어떤 생각 하나가 러셀의 뇌리를 스쳐 갔다.
‘이번 기회에 그것-에 대해 조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쇠를 비롯한 광물들을 다루는 데 있어 드워프들을 따라올 자들이 없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라면, 그것의 정체를 알고 있을지도 몰랐기에.
.
.
이제는 습관처럼 변해버린 아침 훈련을 끝마치고.
간단히 식사를 해결한 러셀이 숙소를 나서 향한 곳은, 언더월드 내에 위치하고 있는 드워프들의 대장간이었다.
물론 드워프들의 도시인만큼, 언더월드 내에 위치하고 있는 대장간의 개수는 수도 없이 많다.
그중 러셀이 향하는 곳은 피기와 미기가 운영하는 대장간이었다.
그들의 대장간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처음 만났던 날,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라는 말과 함께 대장간 위치를 알려주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독 커다란 간판에 ‘피기&미기’라고 쓰여 있기까지 했으니.
멀리서도 그 위치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꽤 잘나가는 대장간인가 본데?’
간판의 크기와 외형을 통해 대장간의 규모를 어림짐작하며 러셀이 안으로 들어섰다.
화아악-.
들어서기 무섭게 곳곳에서 열풍이 몰아닥쳤다.
코끝을 자극하는 매캐한 탄내와 땀 내음, 그리고 쇳소리.
땅, 땅, 땅-.
풀무를 밟고, 풍로를 돌리며 망치를 두드리는 등.
고개를 돌리자 거의 스물에 달하는 드워프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피기와 미기는 그들 사이를 바쁘게 돌아다니며 이리저리 소리치고 있었다.
“이봐, 똑바로 하라고. 똑바로.”
“풀무 더 세게 안 밟아? 그래서 쇠가 녹겠어?”
외지에서 온 손님을 마냥 반가워하던 어제와는 달리, 한없이 진지해 보이는 장인의 모습.
그 모습에 러셀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래서 드워프들을 장인, 장인 하는 건가.’
미기와 피기의 관리 아래에서 일하고 있는 드워프들 역시 수염이 수북하게 난 것이 하나같이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이들로 보이는데.
‘저런 드워프들을 통솔할 정도라니.’
둘의 실력이 보통이 아닌 모양.
그렇게 감탄을 하고 있노라니, 그제야 러셀을 발견한 미기가 고개를 치켜 들었다.
“오, 자네는, 러, 음 그러니까 러슬? 러실?”
말꼬리를 흐리는 그의 모습에 러셀이 쓰게 웃었다.
“그냥 편하게 작은 인간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기다렸다는 듯 미기가 말을 받았다.
“좋아. 작은 인간. 그보다 왔으면 말을 할 것이지, 왜 가만히 서 있고 그러는가.”
“작업하시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작업은 무슨, 어린 드워프들을 도제 삼아 가르치고 있는 거지.
“어린, 드워프요?”
러셀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드워프들을 돌아봤다.
어린 드워프라니.
액면가로만 봐서는 모두가 족히 40대 중후반은 되어 보이는 얼굴들이 아닌가.
“그럼. 어리지. 인간의 나이로 치자면 이제 열다섯 여섯쯤 되었나?”
그런 생각이 표정에서 드러났던 것인지, 속마음을 꼬집어 낸 미기가 호탕하게 웃었다.
“껄껄껄. 어려서부터 독한 술을 마셔서 그런 것인지, 우리 드워프 족이 나이에 비해 좀 빨리 조숙해지는 편이지!”
어깨에 메고 있던 거대한 망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쿵-.
그 무게가 보통이 아니었던 탓인지, 망치에서 시작된 울림이 러셀의 구두까지 밀려들고.
도대체 저 망치로 무슨 쇠를 내려치는 걸까, 짧은 망상을 하는 러셀을 향해 그가 물었다.
“그런데 작은 인간이 대장간에는 무슨 일인가. 뭔가 관광하고 싶은 곳이라도?”
뒤이어 지나가던 피기가 말을 보탰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 대장간에서 사고 싶은 물건이 있는지도 모르지.”
“오, 그건 좋은 생각이군. 절대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 대장간이 언더월드 내부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도제들이 이렇게 많은 데에는 다 이유가…….”
난데없이 호객행위에 러셀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실은 두 분께 보여드리고 싶은 물건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물건?”
시선을 교환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두 드워프들을 돌아보며 러셀이 아공간을 열었다.
“예. 이걸 좀 봐주시겠습니까.”
말과 함께 러셀이 꺼내 놓은 것은, 손톱만 한 마석이었다.
정확하게는 아공간 속에 보관하고 있던 하급의 식용 마석.
“흠?!”
“이건?”
누가 드워프 아니랄까 봐, 마석을 내놓는 순간 미기와 피기의 눈이 대번에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보기에는 그냥 작은 마석 같은데…….”
마석을 건네자, 기다렸다는 듯 그들이 받아 들었다.
이어 그것을 손아귀 안에서 이리저리 굴리고, 눈 가까이 가져가 확인하는 등의 행위를 하며 서로 대화를 나눴다.
“허. 신기하군. 분명 대충 봤을 때는 평범한 마석인줄 알았는데…….”
“정작 가까이서 보니 우리가 아는 마석들과는 확연히 달라.”
“대륙 동부에서 생산된다는 마석은 어떤가? 그곳의 마석이 조금 특이하다는 말은 들었네.”
“그래봐야 마석일 뿐이지. 그런데 이건 놀랍지 않은가?”
“이렇게 작은 크기의 마력에 이토록 정순한 마력이라니…….”
“게다가 이건 크기만 작을 뿐. 마나를 품고 있는 돌이라기보다는-.”
“마치 마나, 그 자체를 돌의 형상으로 응집시켜 놓은 것만 같아.”
그 말에 두 드워프들의 눈썹이 씰룩하고 움직였다.
“허, 말하고 보니 그렇군. 이건 꼭 마석이라기보다는…….”
“용종의, 드래고닉 하트(Dragonic Heart)같구만.”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