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EPISODE.66
‘이건-.’
난데없이 나타난 적색 궤적에 러셀의 미간이 깊게 패어 들었다.
눈동자 또한 깊게 가라앉았다. 형태는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을 해 본 기억이 있었다.
‘빛의 인도.’
폼페이오 화산에서 동굴을 발견했을 때나, 은룡의 둥지를 방문했을 때도.
형태는 조금 달랐지만, 빛이 자신을 인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스러운 점은, 이 빛이 어디서 나타났냐는 것인데.
부그르르르-.
숨의 일부를 내뱉으며 러셀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빛이 흘러나온 곳을 찾기 위해 시선을 틀었다.
그때마다 러셀의 움직임에 따라 빛의 궤적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한다.
가리키는 곳은 동일했지만, 마치 자신의 시선에 따라 굴절이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설마?’
그 광경에 러셀이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마법을 펼쳤다.
미러 이미지(Mirror Image), 자신의 마법을 그대로 비춰 보이는, 1서클의 마법 중 하나였다.
화아악-.
거울과 같은 반사판이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그 위에 스스로의 모습이 투영되기 시작한다.
그곳에 비춰 보이는 것은 붉은색 뿔을 가진 자신의 모습이라.
‘용인화?’
아니, 용인화가 아니었다.
완전한 용인화가 이루어졌다면, 뿔 하나가 아니라 도합 세 개의 뿔이 모습을 드러내야 했으니까.
‘나타난 것은 하나뿐, 눈의 모습 역시 변화가 없어.’
혹시나 해서 입을 쩍 벌리고 라이트 마법을 들이밀어 봤다.
하지만 송곳니의 형태 역시 평상시와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용인화가 아니라 뿔이 저절로 반응했다는 건데.’
왜?
무엇 때문에?
러셀이 읽은 기록대로라면 폼페이오 화산에 나타났던 것은 화룡(火龍)이었다.
그리고 기록 속, 쿠릴 아일랜드에서 모습을 보였던 용 또한-.
‘화룡이었지.’
폼페이오 화산에 나타났던 화룡과 쿠릴 아일랜드에 모습을 드러냈던 화룡이 같은 용이라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같은 화룡의 힘에 이끌렸다고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고.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
그렇게 생각한 러셀이 다시금 몸을 움직였다. 팔다리를 저으며 힘차게 헤엄쳤다.
향하는 곳은 붉은빛의 궤적이 비추는 곳, 그 끝이었다.
* * *
……!
조용하던 수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어 작은 거품이 수면 위로 부그르르-솟아오르고.
“푸하-!”
머리통 하나가 일렁이는 수면을 뚫고 치솟았다.
흑발에 붉은 눈, 그리고 붉은색의 뿔을 가진 머리통.
바로 러셀이었다.
“여긴……?”
수면을 뚫고 나온 러셀이 시선을 천천히 움직였다.
주변이 캄캄해서였을까.
붉은빛의 궤적이 인도하는 대로 헤엄을 치다 보니 밖으로 나오긴 했는데,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미 목적지에 당도했다는 듯, 뿔에서 나오던 빛 역시 완전히 사라진 지 오래였고.
‘흠.’
본능적으로 라이트 마법을 사용하려던 러셀이 불현듯, 손끝을 멈칫했다.
손가락 끝에 머물던 마력의 잔재를 거둬들였다. 동시에 정령계의 문을 열어젖혔다.
‘라이트 마법을 사용해도 상관없겠지만-.’
바람도 쐬게 해 줄 겸, 종종 페퍼를 소환하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전투 중에만 불러내는 것도 너무 편의주의적인 일이기도 했고.
화르르륵-.
불꽃의 고리와 함께 정령계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이어 아기용의 형태를 하고 있는 페퍼가 불쑥 그 머리를 들이밀었다.
정령계를 넘어 물질계에 현현했다.
갸르르르륵-.
푸드덕, 푸드덕-.
녀석의 날갯짓을 따라 작은 불티가 퍼져나가고, 뻗어나간 불티가 희미하나마 캄캄하던 공간을 밝힌다.
바로 그 순간!
갸르르륵-!
뭔가를 발견한 듯 페퍼가 호들갑을 떨어댔다.
빠른 속도로 정령계의 문을 빠져나와 러셀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똬리를 틀며 제 머리와 눈을 꼬리와 날개 속에 파묻었다.
뭔가에 겁을 먹은 것만 같은 행동.
연결된 사념을 통해 들어오는 감정 역시 두려움이다.
‘뭘 발견한 거지?’
러셀이 의문을 가지자, 페퍼가 슬그머니 날개를 들었다.
눈을 슬쩍 드러내며 입으로 불을 내뿜었다.
갸악-.
화르륵!
그러자 작은 위습과 같은 불덩이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위를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캄캄하던 동굴 곳곳에 환한 빛이 드리워졌다.
그와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그것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가진 뼈 무덤이었다.
아니, 뼈 무덤이 아니었다.
그렇게 착각할 만큼 거대한 크기를 가진
뼈 무덤이라고 착각할 만큼 거대한 유골이었다.
‘허-!’
등뼈의 길이만으로도 족히 수십 미터는 되어 보임 직한 크기.
게다가 등뼈 아래로 턱을 괴듯 나 있는 다리뼈 역시 결코 작지 않았다.
만약 일어선다면 그 높이만으로도 십 미터에 이를 정도.
거기에 늑대의 형상을 하고 있는 두개골과 턱관절을 따라 난 이빨은 상당히 날카로웠다.
‘세상에 이 정도 크기를 가진 늑대가 있다고?’
아니.
이건 이미 늑대가 아니라 신수(神獸) 혹은 마수(魔獸)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신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러셀이 멈칫했다.
어쩌면 이 뼈의 주인일지도 모르는 이의 존재가 머릿속에 떠올라서였다.
‘초대 수왕(獸王) 펜릴.’
일어섰을 때의 높이가 거대한 언덕에 필적하고, 한 번의 도약으로 산과 산을 뛰어넘는다는 기록을 가진 존재였다.
게다가 형상도 늑대.
그만한 존재라면 이런 뼈를 가지고 있다 해도 이상하지는 않을 테지.
‘이게 정말 수왕 펜릴이라면…….’
이곳을 신이 깃든 땅-이라 부르는 수인족들의 말 역시 납득이 된다.
그들에게 있어 초대 수왕인 펜릴은 자긍심의 상징이며 동시에 신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런데 용은 어디 있는 거지?’
러셀의 미간이 깊게 패어 들었다.
용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알려진 펜릴이었지만, 그 말이 곧 ‘그가’ 완전한 용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때였다.
푸드덕-.
러셀의 머리 위에 잠자코 앉아 있던 페퍼가 홰를 치며 날아오른 것은.
아마도 눈앞에 거체가, 이미 죽은 유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테지.
피식-.
그 모습을 보며 러셀이 나지막이 웃었다.
방금 전까지 벌벌 떨던 모습은 간데없고, 의기양양하게 날아다니는 페퍼의 모습이 꽤 귀엽게 느껴졌던 탓이다.
‘어…….’
물론 펜릴의 두개골 위에 내려앉아, 앞발로 탁탁 치며 승리자인 양 포효를 터뜨렸을 때는 느낌이 조금 달랐지만.
갸오오오오-!!
‘이건 수인족들에겐 비밀로 하자.’
그리 생각하며 러셀이 물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서 본 펜릴의 위압감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렬했다.
이미 죽은 유골의 위압감이 이 정도라면, 살아생전에는 어떠했을지.
철벅철벅-.
‘히트(Heat).’
몰려온 열풍이 젖은 옷과 머리칼을 말리고, 유골에서 시선을 뗀 러셀이 천천히 공동 안쪽을 탐색했다.
혹시나 용과 관련된 뭔가가 있을까-싶어서였다.
철……벅, 철…벅, 털벅, 터벅.
물이 말라감에 따라 질퍽하던 발소리가 조금씩 둔중해져 간다.
푸더덕-.
페퍼가 불꽃을 뿌리는 궤도를 따라 러셀이 눈동자를 움직였다.
‘흠.’
장내의 구조를 간략하게 둘러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펜릴의 거체를 담고 있는 공동이라고는 하나, 그래봐야 백 수십 미터 남짓의 폭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고작이었으므로.
이제 남은 것은 펜릴의 거체에 가려져 있는 벽면뿐이었다.
구절 속에 나와 있는 장소가 이곳이라면 반드시 저 거구 너머에는 무엇인가가 존재해야 했다.
‘문?’
아니나 다를까.
유골 뒤쪽으로 넘어가자 거구에 가려져 있던 문 하나가 드러난다.
높이 약 2미터가량의 석문에, 그 석문을 가리듯 틀어막은 펜릴의 거체.
마치 펜릴이 이 문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광경이 아닌가.
“후.”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밀자, 둔중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구그그그긍-.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였으나, 러셀이 가진 힘은 그 이상이었으니까.
“─!!”
곧이어 석문이 열리는 순간, 러셀은 그 자리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론 다 드러나지 않을 거체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석류석(石榴石)을 깎아 만든 듯, 아름다운 광택을 발하는 비늘과 작은 산 하나를 통째로 옮겨 놓은 듯한 거체.
‘크기만 보면 지난번 본 은룡의 배 이상인가…….’
그 크기만큼이나 위압감 역시 상당했다.
은룡에서 느껴졌던 것이 강철과도 같은 단단함과 매끈함이었다면, 붉은 용의 외견에서 느껴지는 것은 화산과도 같이 폭발적인 무엇이었으므로.
그렇게 한동안 화룡의 거체를 살피던 러셀은 이내 의문스러운 점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 첫째는 바로 뿔이 없다는 점이었다.
정확하게는 뿔이 있어야 할 자리는 둘이건만, 정작 돋아나 있는 뿔은 하나뿐이라는 점이다.
‘설마-.’
폼페이오 화산에서 자신이 흡수했던 뿔이 눈앞에 있는 화룡의 것이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그것은 바로 눈앞의 용에게서 어떠한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번에도 너무 늦은 건가.’
지난번 은룡을 만났을 때는, 짧은 시간이나마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었건만.
이번에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듯했다.
갸르르륵-.
그때 페퍼가 울음소리를 흘렸다. 뭔가를 발견한 듯 날갯짓을 멈추며 사념파를 보내왔다.
‘……?’
고개를 갸웃하며 그쪽으로 향하자, 무엇인가를 홰 삼아 페퍼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화산탄?’
거대한 화산탄과도 같았다.
‘물론 진짜 화산탄은 아니겠지만.’
아무리 거대한 화산이 폭발한다 해도, 거기서 쏘아져 나온 화산탄의 직경이 수 미터에 달할 리는 없었다.
게다가, 이게 평범한 화산탄이면 화룡이 소중하게 꼬리 사이에 품고 있을 리도 없지 않은가.
‘이거 설마……알인가?’
그때, 러셀의 머릿속으로 그럴듯한 가정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화룡의 알이라면 화산탄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으므로.
게다가 화룡이 품고 있는 이유 또한 납득이 되지 않는가.
안타까운 점은, 화룡은 물론 그가 품고 있는 알에서조차 아무런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지만.
화룡과 마찬가지로, 이미 생명이 다하고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일 터.
“쯧.”
러셀이 혀를 차며 손을 뻗었다.
괜히 안타까운 마음에 화룡을 쓸어내리려 했다.
허나 러셀은 다음 행동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러셀의 손끝이 닿는 순간, 화룡의 거체에서 믿을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던 탓이다.
푸스스슷-.
화룡의 거구가 수백, 수천에 이르는 불티로 화해 흩어지기 시작한다.
화르륵!
사방으로 흩어진 불티가 마치 바람에 휘날리는 꽃잎이라도 된 듯,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장내를 가득 채웠다.
뒤이어 흩어지며 사라지고 있는 화룡의 내부에서부터 붉은 홍염과 빛살이 동시에 치솟아 올랐다.
화아아악-!
그 빛과 불길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
‘-스태프?’
그것은 일견 스태프 같기도 하고, 일견 창 같기도 했으며, 또 일견 거대한 살(虄)같기도 한 무엇이었으니.
[화룡(火龍), 이그니르가 작은 주인을 배알하나이다.]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께서 오시는 순간까지 기다리지 못한 이 미천한 종(奴)을 부디 용서하시길.]불길 사이에서, 주홍빛을 내뿜는 용의 형상이 그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신기(神器) ‘브라흐마스트라(ब्रह्मास्त्, Brahmastra)’]이어 러셀을 향해, 불길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무엇인가’를 띄워 보내며 말했다.
[이 위대한 ‘마법(魔法)’을 전하기 위해 저는 이곳을 지키고 있었나이다.]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