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5
15화
EPISODE.08
보상으로 해금된 양피지를 확인하기에 앞서, 러셀은 우선 자신의 방을 나섰다.
1층을 향해 내려갔다.
기숙사의 1층.
그 1층에 마련된 학생용 간이식당을 이용해 간단하게나마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함이었다.
‘족히 하루 이상은 굶은 것 같은데…….’
아래로 내려가자, 작게 마련된 간이식당 테이블 위로 호밀빵과 버터가 조금 준비되어있는 것이 보였다.
버터 바른 호밀빵 하나를 입에 물고, 두세 개 정도를 아공간 주머니에 던져 넣던 러셀이 잠시 멈칫했다.
‘음.’
이번에 받은 두 개의 보상 중, 어떤 것을 먼저 꺼내 확인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그리 길지 않은 고민과 망설임의 끝에 러셀이 선택한 것은 중급의 마석이었다.
‘아무래도 자주 보던 쪽이, 시간이 더 짧게 걸릴 테니까’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아공간 안쪽에서 작은 돌조각 하나가 딸려 나온다.
보상으론 처음 등장한 중급의 마석.
러셀은 다시금 계단을 올라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가며 중급 마석을 이리저리 살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희미하게 붉은 기운을 발산하고 있는 마석은 평범한 돌 조각이라기보다 마치-.
‘준보석…….’
이런 단어가 실제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보석에 준하는 무엇인가처럼 보인다는 감상만은 확실했다.
게다가 안쪽에서 느껴지는 마력 역시 지금까지 얻은 것들 중 가장 많았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에라도 섭취해 그 마력양을 실제로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일단은 넣어 둘까?’
아직 확인해야 할 보상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우물우물, 꿀꺽.
러셀이 자신의 방에 도착한 것은 처음 입에 물었던 호밀빵 하나를 다 먹은 후였다.
그 후, 다른 호밀빵 하나를 다시 입에 물며 양피지를 꺼내 든다.
‘음…….’
본래 걸려 있던 인식 방해 마법이 해금되었기 때문인지, 딱히 마력을 불어 넣지 않아도 선명하게 보이는 양피지의 그림.
그것은 지도였다.
어떤 한 지역을 툭 하고 잘라내 표기한 듯한 지도.
그 지도의 한쪽에 붉은색으로 칠해진 x자 표기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로 찾아가라는 것 같은데?’
러셀이 그 사실을 인식하기 무섭게, 지도 위로 녹색의 창 하나가 겹쳐졌다.
[미션-Ⅰ]지도에 표기된 위치까지 찾아가, 이어지는 미션을 해결하세요.
근처까지 다가간다면, 빛이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보상]???
하급 마석(식용)x2, 최하급 마석(식용)x3
[제한]3써클의 수준에서 도전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써클이 그 이상 상승할 경우, 미션의 난이도가 수직 상승 할 수 있다는 점을 미리 고지 드립니다.
녹색 창에 떠오른 내용을 쭉 읽어가던 러셀의 얼굴이 일순, 딱딱하게 굳었다.
단순히 보상 중 하나가 ‘???’로 표기되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첫 번째로는 미션의 이름에 평소와는 달리 ‘Ⅰ’가 붙어 있다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제한이 있다고?’
지금까지 많은 미션들을 해결해 왔지만, 그중 제한이 있는 미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다는 건, 아마도 이번 미션이 그만큼이나 특별하다는 거겠지.’
3써클의 수준에서 도전하는 것을 추천하는 만큼, 곧 있을 여름 방학을 이용해 해결할 수 있다면 좋을 터였다.
‘여태까지와는 달리, 이번 여름 방학에는 보충수업을 받지 않아도 될 테지.’
문제는 이 지도가 표기하고 있는 위치가 어디인가-였다.
‘제국의 영토라면, 조금 곤란한데.’
러셀이 속한 엔디미온과, 제국 브리타니아.
둘의 관계는 대륙에서 모르는 이들이 없을 만큼 오랜 앙숙이었다.
물론 휴전 협정을 치른 후로, 근 몇 년간 전면전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그것은 러셀이 회귀했던 7년 후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전면전만 없었을 뿐, 그렇다고 전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야.’
영토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소규모 국지전들과 암투들이 바로 그 증거였다.
‘끙.’
혹시나 지도에 표기된 위치가 제국 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생각에서 몰려오는 불안감에 러셀이 가볍게 앓는 소리를 냈다.
물론 제국 내라고 해도 전혀 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표면적이나마 휴전 상태이기도 했고, 여러 루트를 이용하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긴 했으니.
‘다만, 혹시 모를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게 문제지.’
게다가 제국은 러셀에게 있어 단순한 적국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원수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물론 정확한 흉수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이긴 하다만.’
어찌 됐든 불편한 곳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바.
“쯧.”
러셀이 짧게 혀를 찼다.
그 후로도 얼마간 양피지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대충 십오 분에서 이십 분 남짓한 시간을 응시하고 있었을까.
‘어?’
양피지의 상하좌우를 바꾸며 이리저리 뒤집던 러셀의 손이 일순, 멈춰버렸다.
대각선의 비스듬한 각도로 지도를 멈춰두고, 그 형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각도를 바꿔놓고 보니 어쩐지 조금 익숙해 보이는 지형.
‘여긴…….’
지도의 왼쪽 아래에 위치한 해안가.
그 옆에 위치한 넓은 숲과, 지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높고 웅장해 보이는 산까지.
‘이거 설마, 폼페이오 화산인가?’
그렇다면 왼쪽 아래에 위치한 해안은 아마도 말디바 시(市) 일터다.
촤라락-.
책상 한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대륙 전도를 꺼내 확인하자, 두 지역의 지형이 놀라우리만큼 일치했다.
물론 양피지가 꽤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긴 했지만.
x자가 표기된 곳은 바로 폼페이오 화산의 어딘가.
‘간다면, 말디바 시를 통해 들어가는 편이 빠르겠지.’
말디바 시는 왕국 내에서도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유명한 휴양지인 만큼, 마차가 오가는 역 또한 있었다.
아카데미가 있는 워커힐 시의 마차역에서도, 하루에 몇 대나 되는 마차가 말디바로 출발하곤 했다.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충……, 사흘하고 반나절 정도였나?’
걸리는 시간 역시 그리 길지 않았다.
여름 방학의 기간은 두 달여.
시간은 충분했다.
‘남은 건, 과연 저 위치에 뭐가 있냐는 건데…….’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에는 가지고 있는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했던바.
‘직접 가서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겠어.’
그렇게 상념을 마무리하며, 러셀이 다시 양피지를 챙겨 아공간 속에 집어넣었다.
* * *
다른 아카데미에도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워커힐 아카데미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통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방학을 앞두고 하는 담당 교수와의 면담이지.’
이번 방학 동안 무엇을 할 생각이며, 어떠한 성과를 목표로 잡았는지에 대한 면담.
물론 지금까지 러셀이 해왔던 면담이라고 해봐야 뻔했다.
‘보충수업을 열심히 듣기.’
돌아갈 집과 영지도 없었을뿐더러 그에겐 열등생, 혹은 낙제생이라는 꼬리표까지 따라붙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4학년 1학기, 그는 더 이상 열등생도 아니었고 낙제생은 더더욱 아니었다.
보충수업을 들을 이유가 없었다.
방학이 열흘 남짓한 무렵.
똑똑.
“교수님-.”
문을 두드리고 인기척을 내자 안쪽에서 음성이 들려온다.
“들어오게.”
그의 담당 교수인 휴버트 교수의 목소리였다.
문을 열자 보이는 수북하게 쌓인 서류와 논문들, 그 사이에 휴버트 교수가 앉아 있었다.
이어서 예의 차향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이번 방학은, 자네에겐 참으로 의미 깊은 방학이 되겠군.”
찻물을 조금 들이키며 휴버트 교수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우등생 러셀. 더 이상 보충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을 축하하네.”
따뜻한 진심이 느껴지는 축하의 말에 러셀이 씩 웃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래. 그래서 자네는 이번 여름 방학 동안 무엇을 할 생각인가. 괜찮다면 이번에 내가 하는 연구에 참여해 보지 않겠는가?”
성과에 따라선 제1 저자 바로 뒤에 러셀의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제안까지.
휴버트 교수의 말에 러셀이 일순 멈칫했다.
‘휴버트 교수님과 함께하는 연구와 논문저술.’
게다가 성과만 좋다면 논문 제2 저자로서 이름을 올리기까지.
만약 할 수만 있다면 그의 커리어에도 좋은 경력이 될 것이었다.
게다가 휴버트는 염탑 내에서도 촉망받는 워 메이지 중 하나.
이런저런 어드밴티지가 상당할 터다.
‘다른 학생들이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겠지.’
하지만 휴버트 교수가 이런 기회를 모든 이들에게 권하는 것은 아니다.
3년 내내, 늪과 같은 아카데미 생활을 보내면서도 성실함과 착실함을 잃지 않았던 러셀이었기에 제안한 것뿐.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러셀은 휴버트의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교수님, 저는 이번 방학 동안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워두었습니다.”
“계획이라……, 내가 그 계획을 조금 들어봐도 되겠나?”
학생 주제에 교수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었다.
속이 좁은 교수들이었다면 앙심을 품었겠지만, 휴버트는 그렇지 않았다.
러셀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아카데미 밖을 조금 둘러보려고 합니다.”
볼일을 보고 돌아와 연구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휴버트 교수는 받아줬을 것이다.
하지만 러셀은 휴버트 교수의 진심에 그렇게 얌체 같은 행동으로 화답하고 싶진 않았다.
“밖을 둘러본다 라. 나쁘지 않은 일이지. 견문을 넓힌다는 것은, 세계를 넓힌다는 말과도 같으니까. 마법사에겐 꼭 필요한 소양 중 하나일세. 더욱이 몇 년간 아카데미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자네라면 더욱더 필요한 일일 게야.”
휴버트 교수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러셀의 말을 받았다.
몇 번 턱을 주억이더니 그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말했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것은 아카데미 안처럼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라네.”
3년간 아카데미 안에서 고생을 한 러셀이었기에, 휴버트 교수는 이 말을 꺼내기까지 잠시 주저했었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지.’
러셀의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아직 2써클.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직은 견습 마법사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묻고 싶군. 자네는 그 세상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각오에 대한 물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욱 나을 것이다.
“이것을 좀 봐주시겠습니까.”
“……?”
고개를 갸웃하는 휴버트 교수를 향해 러셀이 자신의 손바닥을 내보였다.
웅-.
한 개의 써클이 회전하며 손바닥 위로 주먹 크기의 불덩어리가 생겨난다.
1써클 마법인 파이어.
직후 그 위로 새로운 수식이 덧씌워지며 파이어의 형태가 변화되었다.
세 뼘가량의 길이를 가진 파이어 애로우.
2써클의 마법이었다.
여기까지가 휴버트 교수가 현재 알고 있는 자신의 실력, 그리고!
우우웅-
“이건……!?”
세 개째의 써클이 회전하기 시작하고.
러셀의 손아귀에 깃든 불화살이 모습을 바꾸었다.
크기가 한 뼘가량으로 작아지는 대신, 수가 다섯으로 늘어난 것이다.
화력을 낮추는 대신 탄속을 늘렸으며 다발과 연사가 가능하게 개량된 볼트(bolt)마법.
“파이어 볼트!”
그 마법의 정체를 알아본 휴버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놀라 소리쳤다.
“도대체 언제 3써클을…….”
캐스팅 속도는 물론이거니와 마법의 완성도 역시 제법 나쁘지 않았다.
아무리 밤잠을 줄여가며 노력했다 하여도, 이 정도라면 적어도 3써클이 된 지 삼 주 정도는 되었을…….
“아직 일주일이 조금 안 되었습니다.”
이어진 그의 대답에 휴버트 교수가 자신의 의자 위로 무너지듯, 풀썩. 주저앉았다.
“허, 허허.”
어딘지 조금 멋쩍은 듯 중얼거렸다.
“확실히, 견문을 넓힐 때가 되긴 했군…….”
.
.
그로부터 며칠 뒤.
방학 첫날부터 집무실에 남아 논문 작업을 이어나가던 휴버트 교수가 멈칫했다.
“음.”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무실 뒤쪽에 난 창을 통해, 교정을 빠져나가는 학생들 무리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말디바 시라…….”
러셀이 가장 먼저 가보겠다고 한 도시의 이름.
휴양지로 유명한 도시였지만, 평소 근면 성실한 러셀의 성격을 생각하면 단순히 놀러 가는 것은 아닐 터다.
휴버트 교수가 생각하고 있는 점 역시 그것은 아니었고.
“어쩌면 두 사람이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군, 가능성이 그리 높은 것은 아니지만…….”
말디바 시.
그곳은 그의 스승이 태어난 고향이었으며 동시에 매해 여름마다 찾아가는 휴양지이기도 했으므로.
“으음.”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