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EPISODE.83
왕녀의 외출.
그것도 왕도(王都) 내에서의 외출이 아닌 외부로의 외출이었다.
평범한 행사였다면 한차례 소란이 일어났어도 이상한 일은 아닐 터. 허나, 예상했던 것과 달리.
소란은 일지 않았다.
정식적인 국가 행사가 아닌 만큼, 왕녀 스스로가 가능한 소란을 최소화하길 바랐던 것이다.
그러니 채비 역시 단출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물론 단출하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왕족 관점에서의 표현이었지만.
화아악-.
환한 빛무리가 장내를 밝게 비추고, 여느 귀족가의 여식처럼 꾸민 헤카테가 침음을 흘렸다.
“음…….”
조금 불편한 표정으로 뒤쪽을 응시했다.
“……나를 호위하겠다는 명목은 좋으나, 이래서야 어딜 가든 너무 눈에 띄겠구나.”
자신을 뒤따르는 십 수 명가량의 로열 가드들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오늘은 왕가의 공식적인 행사가 아닌 만큼 경들 역시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수십 보(步) 이상을 뒤떨어져 따르는 것이 어떤가?”
“하오나 왕녀 전하. 그것은…….”
그 말에 로열 가드들 중 직급이 높은 이가 입을 열었다. 왕족의 안전이니 뭐니 하는, 장황설을 늘어놓을 것이 분명할 터.
슥-.
한 걸음 움직인 헤카테가 그의 말을 끊었다.
“경들이 나의 안전을 걱정해 그리 말하는 것임은 나 역시 충분히 알고 있노라. 허나 오늘은 평소와는 다르지 않은가?”
자신의 옆에 서 있던 러셀의 옷자락을 슬그머니 엄지와 검지로 움켜쥐며 작게 웃었다.
“6써클 마법사인 러셀 레이먼드 백작이 내 바로 곁에 있느니라. 그런 상황에서 내 안전을 위협하기 위해선……, 적어도 초인(超人)급의 강자는 와야 할 테지.”
엔디미온의 왕녀를, 벌건 대낮에 도시 한복판에서 암살하기 위해 초인을 보낸다?
“설혹 제국이라 하더라도 그 정도로 미친 짓을 벌일 것 같지는 않은데……. 경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왕녀의 물음에 로열 가드들의 시선이 일제히 러셀을 향했다.
자신들의 시선이 향하자, 흑발에 붉은 눈동자를 지친 청년이 멋쩍은 표정으로 헛기침하고.
“흠흠…….”
먼저 반대 의견을 꺼냈던 로열 가드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왕녀의 말을 부정했다간, 그건 그거대로 레이먼드 백작의 실력을 무시하는 꼴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리하기에는 러셀 레이먼드라는 사내가 쌓아 올린 업적이 너무도 과했다.
‘5써클이었던 시절에도, 초인의 팔 한쪽을 날려 버린 사내가 아닌가.’
물론 자세한 내막은 그보다 조금 복잡했지만. 어쨌건 간에.
그것으로도 모자라 러셀은 더욱 무수한 위업들을 쌓으며 6써클에 올라서기까지 한 상황.
그런 사내와 함께 있는 와중에 왕녀의 안전을 위협할 만한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로열 가드 사내가 한숨을 내쉬며 한 발짝 물러났다.
“알겠습니다. 저희들 역시 평복으로 변장을 하고 뒤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전하.”
“내 억지를 받아 주어서 고맙네.”
“그 대신…….”
“……?”
“뒤따르던 기사들의 수를 조금 더 늘려도 되겠습니까?”
거리를 벌리는 만큼 호위 벽의 형성을 조금 더 촘촘히 하고 싶다는 말이다.
“경들이 내 억지를 들어준 만큼, 나 또한 한 걸음 물러나야 할 터.”
기껍게 웃으며 헤카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도록.”
.
.
러셀과 헤카테가 워프 게이트가 있던 공간을 빠져나온 것은 그로부터 약 삼십 분 정도가 지난 후.
로열 가드들이 요청한 증원이 도착한 뒤였다.
그렇게 늘어나게 된 로열 가드들의 숫자는 처음보다 두 배가량 늘어난 서른.
‘이곳을 빠져나가는 순간부터, 일정 거리를 두고 그들이 뒤를 따르게 되겠지.’
감각을 집중한다면, 자신들을 뒤따르고 있는 그들의 존재를 어렵지 않게 잡아챌 수 있을 터.
그렇게 생각하며 출입구가 있는 1층으로 향하던 와중이었다.
삐걱-.
낡은 계단의 삐걱거림.
러셀과 발을 맞춰 걷던 헤카테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대여.”
“네. 헤카테.”
“시장과의 만남이 예정된 것은 오늘 저녁이라고 했던가?”
이러지 저러니 해도, 러셀이 영지를 둘러보고자 한 이유는 공무였으니까.
현재 영지 면적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세 개의 도시, 그 도시들을 관리하고 있는 시장을 만나볼 필요가 있었다.
러셀이 턱 끝을 주억이자, 헤카테의 입가를 따라 미소가 번져나간다.
“그렇다면, 그전까지는 그대와 함께 도시를 둘러보면 되겠구나.”
어린아이도 아닌데,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눈앞에 둔 것처럼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인지.
“흠흠.”
혹시나 제 가슴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은 아닌지, 그런 걱정에 헤카테가 작게 헛기침했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의 신형이 워프 게이트가 있던 건물을 빠져나오고.
화아악-.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불어온 바람에 머리칼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무섭게, 곳곳에서 사람 사는 소리가 들려온다.
“자, 이리 좀 와보시오! 이게 바로 왕도에서 유행한다는……!!”
“꿀 과자 있습니다! 사탕도 있어요!”
“돼지고기는 이만하면 충분할 것 같은데, 술을 조금 더 구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 남부지방에서 나는 감귤 맥주가 그렇게 인기라고 하던데…….”
좌판을 열어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들부터 시작하여, 점심 장사를 준비하고 있는 식당 주인들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일상을 이어가며 거리에 활기를 더하고 있었던 것.
이것이 바로 러셀이 국왕에게 하사받은 3개 시(市)들 중 하나.
웨스텔 시(市)의 모습이었다.
고작 세 개의 도시 만으로도 러셀을 단숨에 준(準) 대영주의 반열에까지 끌어 올려준 도시들이다.
그런 만큼 도시 하나하나의 규모 또한 상당했다.
웨스텔은 그중에서도 특히 규모가 큰 도시였다.
‘괜히 대도시로 분류되는 게 아니야.’
레인켈 백작령과 같이 매해 풍작이 이루어지는 넓은 농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스텔이 대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 중 첫 번째는 물길이지.’
물건을 나름에 있어 수로(水路)는 육로만큼이나 중요한 길이었다.
그런데 웨스텔 시에는 무려 3개나 되는 강줄기가 흘러들고 있었음이니.
몰려드는 상인이 많은 만큼 도시가 발전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
상념을 이어가다 말고, 러셀이 손을 뻗었다.
헤카테의 어깨춤을 부드럽게 감싸 안음과 동시에, 그녀의 몸을 자신의 품 안쪽으로 끌어들인다.
물이 흘러가는 듯 일련의 동작이 매끄럽게 이어지고.
스윽, 턱-.
졸지에 러셀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헤카테가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그, 그대여……!?”
그보다 반 박자 늦게, 물건을 실은 수레 한 대가 헤카테의 옆으로 지나간다.
내버려 두었다고 해도 큰 사고가 날 속도는 아니었을뿐더러 헤카테가 스스로 피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괜찮아요?”
“나, 나는 괜찮다.”
헤카테가 더듬거리며 흐트러진 신형을 바로잡았다. 이어 고개를 슬그머니 돌렸다.
혹시라도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러셀에게 들통날까 걱정되어서였다.
‘이건……, 그때 보았던 소설 속의 장면과 비슷하구나.’
러셀과 약혼을 치르기 전.
언젠가 시녀에게 졸라서 빌려 보았던 시중 연애담.
[연하남 길들이기]그 내용의 일부가 절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평범하게 남녀 간의 하루를 보내는 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그 내용을 이렇게 재현하게 될 줄이야.’
원래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일이지만, 소설 속의 장면이 떠오르며 괜히 러셀을 의식하게 되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감각에 헤카테는 헛기침하며 손부채질을 했다.
“흠흠.”
어리둥절해하는 러셀을 뒤로하고, 화제를 전환할 거리를 찾기 위해 시선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도, 대화 주제로 삼기에 딱 좋은 것이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으니-.
“그, 그보다 슬슬 웨스텔 아카데미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붉은색 돔 지붕을 가진 건물을 중심으로 넓게 펼쳐진, 거대한 아카데미 건물.
저 아카데미가 바로 웨스텔 시가 대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였다.
워커힐 아카데미와도 쌍벽을 이루는-.
‘니콜로 마키아벨리라는 우수한 마법사를 배출한 명문(名門)…….’
웨스텔 아카데미.
물론 현재로선 창탑주와 염탑주로도 모자라 러셀과 앨런까지 배출한 워커힐 아카데미에 비해 조금 밀리는 경향이 있긴 했다.
그렇다고 해도, 웨스텔 아카데미가 엔디미온 내에서 손에 꼽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 만큼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음.”
한동안 아카데미의 독특한 지붕을 응시하던 헤카테가 입을 열었다. 얼굴 가득 드리었던 붉은 기색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폐하께서 왜 그대에게 아카데미가 포함된 도시를 영지로 하사하셨는지를 생각해 보았는가. 그대여?”
워커힐과는 달리, 웨스텔 시는 지금까지 왕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해 다스리던 도시였다.
사실상 왕실 직할령이라고 해도 무방한 셈.
‘지금까지 직접 관리하던 도시를 내 영지에 포함시켰다는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라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을 뿐.
물꼬가 트이기 시작한 러셀의 생각이 빠른 속도로 한 방향을 향해 수렴하기 시작한다.
마법사로써 쌓아 올린 날카로운 이성과 합리적 직관.
“설마…….”
두 가지가 어우러지며 러셀은 순식간에 정답이라 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해내기에 이르렀다.
“사람입니까?”
대귀족들이 오래도록 자신의 작위를 유지하면서, 그만한 권력을 유지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력(金力), 인맥(人脈) 혹은 무력(武力)등.
분명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리고 사람……, 인재(人材) 역시 바로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아무리 금력과 인맥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아래에서 받쳐줄 사람이 없다면 그를 유지하긴 쉽지 않을 테니까.
괜히 많은 귀족들이, 하나라도 더 많은 인재를 포섭하기 위해 공을 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카데미란 그런 인재를 포섭하기에 있어 알맞은 장소 중 하나였다.
“그대라면 눈치챌 줄 알았다.”
만족스런 웃음과 함께 헤카테가 고개를 끄덕인다.
“돈이 많은 상인이나 귀족의 자제들이 아카데미에 다수 입학한다곤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곧 아카데미의 전부라곤 할 수 없을 테지.”
가난하지만 재능 있는 이들.
혹은 그 재능을 뛰어넘을 열정을 가진 이들 역시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었으니까.
“제 영지 안에 있는 아카데미가 아닌가. 그런 학생들에 대한 보고를 받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터.”
한 마디를 덧붙이며 그녀가 말을 맺었다.
“폐하께서는 어쩌면, 그대가 나와 맺어지기 전부터 레이먼드 가(家)가 왕실의 든든한 우방으로써 다시 자리매김하기를 바라셨을지도 모르겠군.”
전날 국왕, 알폰소 라트모스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괜히 머릿속에 떠올랐다.
비록 왕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한 사건은 아니나, 보고서가 조작된 것에.
레이먼드 가가 지금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그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증거.
‘……웨스텔 아카데미.’
어쩌면, 황금알을 낳을‘지도’ 모르는 거위가 그곳에 있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