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EPISODE.114
그 후의 일들은 순풍을 받아 나아가는 배마냥 순조롭기만 했다.
순조(順調)롭다는 말이 과연 전장과 어울리는지는 조금 의문이었지만.
피가 강이 되어 흐르고 시체가 산이 되어 쌓이는 곳이 바로 전장이었으므로.
‘어쨌건 간에…….’
언데드들에게 짓밟힌 칼리온 산맥의 영토를 대부분 수복했을 뿐만 아니라, 제국군의 손에 점거당했던 산맥 동부의 17개 광산들 역시 모두 되찾아낸 것이었다.
물론 그 선봉에 러셀과 아레크스, 엔디미온에서 보내온 두 명의 초인이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두 열강의 전면전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쩌면 그 도화선이 될지도 모르는 전초전에 있어서 승기를 잡은 것은 명백하게 이쪽이었던 바.
딸깍-.
와이셔츠 소매에 달려 있던 링스냅 형 단추를 다시 채우며, 러셀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확인하며 그간 있었던 일들 중 일부를 머릿속으로 간략하게 되짚었다.
‘그날 이후, 도망간 그 작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
키옐 측이 영토를 빠르게 수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비단 러셀과 아레크스 뿐만이 아니었다.
한 번 패전을 경험한 제국 측에서, 두 사람을 견제할 별도의 병력을 보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전선을 밀어 올릴 수 있었던 것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확실하게 승기를 잡은 듯한 전황에 한껏 움츠러들었던 키옐 측의 분위기가 조금씩 살아나는 것과는 달리 알 수 없는 적들의 꿍꿍이에 러셀은 가슴 한켠으로 작은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수를 예측할 수 없는 상대와 싸우는 것만큼 고역인 일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그때였다.
러셀의 뒤쪽에서 옷차림을 다듬던 아레크스가 그를 향해 물어온 것은.
“준비가 다 된 모양이구려. 신성공.”
“예. 키옐 측에서 준비한 의복을 입어 봤는데, 어울리는지 모르겠군요.”
그리 말하며 목 부분의 옷매무새를 다잡았고, 아레크스가 껄껄 웃었다.
“그 마법 실력만큼이나 신성공의 본판 역시 훌륭하다는 소문은 지방에서도 누누이 들어왔었지.”
엄지를 추켜세우며 말했다.
“충분히 잘 어울리신다오.”
그 말대로, 지금 러셀의 모습은 상당히 훌륭했다.
입고 있는 의복 역시 꽤 세련되게 디자인된 것은 물론, 약혼식 이후로 키가 더 자란 탓에 더욱 멀끔해 보이기까지.
거기에 흑발과 적안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퇴폐적인 분위기란!
저자에서 인기리에 나오는 화보 잡지 속 모델들의 그림 또한 지금의 러셀에게는 한 수 접어 줄 테지.
호탕하기까지 한 그의 칭찬에 작게 웃으며 러셀이 화답했다.
“아레크스 경께서도 훌륭하십니다.”
도무지 전장 한복판이라고는 볼 수 없는 분위기.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두 사람이 있는 곳은 바로 키옐의 왕궁이었다.
제국군과 언데드를 북쪽으로 밀어냄에 따라 생겨난 잠시의 시간.
그 시간을 이용해 키옐에선 군을 재정비하는 기간을 가지고 싶어 했고, 그로 인해 잠깐의 여유가 생긴 것이었다.
그와 더불어 더 이상 러셀이 키옐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엔디미온 상층부에선 러셀에게 귀환령을 내린 상황이었다.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던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기에 성대한 연회는 열 수 없지만, 키옐의 국왕이 직접 나서서 감사를 전하고 싶다는 키옐 측의 전언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마도 이 행사가 끝나고 나면 본국으로 귀환하게 되겠지.’
물론 그것이 평화로운 일상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보장할 수 없었다.
키옐과 나제 연맹이 연관되어 있을 뿐, 작금의 상황은 엔디미온과 브리타니아.
두 열강의 대치라고 봐도 무방했으므로. 언제 전면전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다시 한번 되짚으며 러셀이 물었다.
“그보다 나제 연맹 쪽도 걱정이군요.”
“나제라면…….”
왕도백탑의 탑주, 아멜리아 머윈이 있는 곳이다. 키옐에 원조하기 위해 엔디미온에서 아레크스를 파견했듯, 그곳에는 아멜리아 머윈이 파견되었던 것.
“이쪽에 두 명이나 되는 초인이 파견되었듯, 저쪽이라고 그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을 테니까요.”
“음…….”
잠깐의 침음.
“공께서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이해하오만, 본인의 생각에 제국이 나제 연맹 쪽에도 두 명이나 되는 초인을 보냈을 것 같지는 않구려.”
“……?”
의아해하는 그를 향해 아레크스가 설명했다.
“백탑주 쯤 되는 강자를 상대할 만한 초인은 제국에도 그리 많지 않다오.”
8써클에 근접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 7써클, 백전연마(百戰鍊磨)의 강자.
요정족과의 혼혈이기에 나이가 어려 보이는 것뿐, 그녀가 넘어온 사선과 수라장의 숫자는 손가락, 발가락의 개수를 곱한 것을 가뿐히 넘어설 정도였다.
“물론 없지는 않겠지만……그만한 거물을 나제 연맹을 상대로 하는 전쟁에 내놓기에는 꽤 아까울 것 같구려.”
하물며 확실히 그녀를 제압할 수 있는 패 중 하나인 암탑주, 로드릭 암스트롱은 지난 내전으로 인해 목숨을 달리한 상황.
제국으로썬 윗줄에 위치한 초인들을 움직이는데 신경을 기울일 수밖에 없으리라.
“다만 한 가지, 내가 우려되는 것은 공께서 걱정하신 부분 다른 쪽이라오.”
“……?”
“신성공께서 알고 계시겠지만, 전쟁이란 아무리 좋은 단어를 가져다 붙인다 하더라도 그 근본을 갈취에 두고 있소.”
타국의 것을 빼앗아 아국으로 삼는다. 그것이 영토건, 인구건, 그렇지 않으면 식량이건 간에.
“헌데 이번 전쟁은 그렇지 않소.”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증오하는 언데드의 특징 때문인지, 단 하나의 포로조차 남기지 않는 것은 물론, 놈들이 지나간 자리는 시취와 사기로 범벅이 되어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나기 어려운 땅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실제로 되찾은 영토들 역시 대부분이 끔찍할 정도로 황폐화되어 있었고, 역병의 조짐이 드리우기 시작한 지역 역시 일부 있었다.
“마석 광산을 점거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론 아무리 계산해도 수지타산이 안 맞는단 말이지…….”
단련된 오러의 영향으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외견을 하고 있을 뿐.
아레크스 카일렌 역시 칠십이 넘은 노장이었다.
어쩌면 넘어온 사선이 아멜리아 머윈보다 많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그런 그가 우묵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이번 전장은, 여러모로 이질적이었던 바.
그의 이야기를 듣는 러셀의 두 눈이 덩달아 깊게 가라앉았다.
.
.
그로부터 잠시 후.
자신들을 안내하기 위해 찾아온 이의 정체를 확인하며 러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사람을 안내하기 위해 찾아온 이의 얼굴이 꽤 눈에 익었던 탓이었다.
키옐과 관련된 임무라곤 한 번이 전부인 그가 익숙하다고 할 만한 얼굴이라면 단 두 사람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허허. 오랜만입니다. 레이먼드 공작 각하.”
동맹이라곤 하나 엔디미온은 제국이라 자처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대국. 그런 대국의 공작에겐 키옐의 백작이라도 존대를 하는 것이 당연했다.
당시부터 범상치 않은 청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불과 몇 년 만에 엔디미온의 공작 자리에까지 올라갈 줄이야.’
과거를 회상하며 건넨 인사에 러셀이 부드럽게 웃으며 화답했다.
“예. 정말로 오랜만이로군요. 백작님.”
굳이 하대를 하지 않은 것은 예전의 인연과 외교적인 부분을 고려했기 때문일 테지.
그런 러셀의 말에 백작이 머뭇거리며 자신의 뒷목을 주물렀다.
“허허, 그것이…….”
“……?”
어쩐지 멋쩍은 표정.
곧이어 러셀은 그 표정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제는 후작입니다. 공작 각하.”
단박에 공작위까지 올라선 러셀에게 이 이야기를 늘어놓자니 어쩐지 자랑처럼 느껴져 민망했던 것.
그런 킴블리 후작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러셀이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후작님.”
“허허허.”
화제를 전환하기라도 할 요량인지 아레크스와 인사를 나누고 문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그간의 이야기는 일단 이동을 하면서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
.
국력이 약하다곤 하나, 일국의 후작이 안내역으로 나서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키옐 측에서 엔디미온과의 관계를 얼마나 중하게 여기는지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
그렇게 킴블리 후작을 따라 접견 장소로 향하며 두 사람은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회포를 풀 만큼 깊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그간의 안부 정도야 얼마든지 주고받을 수 있었기에.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길 얼마간, 세 사람의 걸음이 이내 접견장의 입구에 도착하고.
“폐하─.”
킴블리 후작이 다음 말을 고하는 것보다 먼저, 안쪽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들어오시게.”
딸깍-.
문이 열리며 드러난 접견장은 그리 넓은 편이 아니었다.
자리하고 있는 것 역시 러셀과 안면이 있는 카밀라 왕녀를 제외하곤 국왕의 측근으로 추측되는 이들이 대부분.
그들의 사이에 키옐의 국왕이 앉아 있었다.
“경들 모두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소.”
노회한 시선과 음성, 그를 발견한 두 사람이 서둘러 고개를 숙이려는 찰나. 국왕이 깡마른 손을 뻗었다.
두 사람의 행동을 제지하며 말했다.
“그만들 두시오. 나라의 은인에게 인사라니, 오히려 인사라면 이쪽에서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고 싶은 심정이라오.”
국제 관계에 있어 예의에 어긋나는 제안이었다. 허나 자리에 있는 다른 키옐의 중진들은 물론 킴블리 후작 또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미 논의가 끝난 일이란 말인가.’
서로 시선을 주고받은 러셀과 아레크스가 조금 숙였던 자세를 바로잡았다.
“폐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두 사람을 대표해 고개만 작게 숙여 보이는 러셀의 모습에 키옐의 국왕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오늘 이렇게 조촐한 자리를 마련한 것은, 타국의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키옐을 위해 힘을 빌려준 경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라오.”
“타국이라니요. 키옐은 우방국 아닙니까. 저희 엔디미온은 우방국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허허. 그리 말씀해주시니 마음은 든든하오만 입으로만 떠들어 대는 것도 예의는 아닐 테지.”
국왕이 손짓하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두 명의 기사가 앞으로 나섰다.
각기 사람 머리통만 한 자루와, 주먹 크기 목함을 들고 있는 이들이었다.
“아레크스 경. 먼저 이것은 경께 드리고 싶은 물건이라오.”
말과 함께 자루를 내려놓자, 쩔그렁 하는 소리와 함께 안쪽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온다.
선명한 마력광.
그 정체는 러셀이 흘러나오는 마력을 통해 짐작한 대로였다.
‘마석, 그것도 불순물이 거의 섞이지 않은 최상급의 마석인가?’
그것이 무려 한 자루씩이나.
“광산에서 생산되는 마석 중, 최상급만 따로 추려낸 것이라오. 이미 정제는 마쳤으니 부디 아레크스 경께서 요긴하게 사용해 주셨으면 하는구려.”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 몇 배는 비싼 취급을 받는 것이 최상급의 마력석이었다.
저만한 양이라면 마법 병기는 물론 갑주까지 만들어내고도 그 양이 남을 터.
“이러한 것을 받아도 될지…….”
아레크스의 손끝이 잘게 떨리고, 국왕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국을 구해준 것을 생각하면 경이 이것의 배를 요구한다 해도 아깝지 않을 터.”
이어 시선을 돌렸다.
“공작에게 도움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닐진대…….”
러셀을 마주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은 직접 보고 이야기하는 편이 빠르겠구려.”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다른 기사의 손에 들려있던 목함이 열리는 순간, 화르륵-!
돌연 러셀의 머리 위로 불꽃의 문이 나타났다. 그 안쪽에서 소형화를 한 페퍼가 불쑥 머리를 들이밀었다.
갸르르륵.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