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85
485화
삐이이이익―
어디선가 세찬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윈터킵 앞에서 대치하고 있던 백은 기사단과 흑검 기사단은 갑자기 들린 경계 신호에 퍼뜩 놀랐다.
그때 급하게 달려온 백은 기사단의 일원 중 하나가 칼리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칼리는 얼굴이 굳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윈터킵 지하로 내려갔다.
이를 본 흑검 기사단의 일원들이 거칠게 앞으로 나섰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
“밑에 주군이 계시다! 당장 비켜라!”
밀고 들어가려는 흑검 기사단을 백은 기사들이 막아섰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두 기사단의 대립.
그때 안쪽에서 듀크 드레이커가 나섰다.
그의 눈에는 맹렬한 노기가 깃들어 있었다.
듀크는 흑색 기사 시절 사용했던 질풍검을 뽑아 들고 백은 기사단의 기사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당장 비켜서라. 마지막 경고다.”
살기 어린 듀크의 경고에 백은 기사단의 기사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그들 역시 주군인 칼리의 명을 받고 움직이는 기사들이었다.
듀크의 살기를 받아 내며 검을 쥐고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태도에 듀크의 몸에서 질풍기가 일어났다.
우우우웅―
그가 백은 기사단에게 달려들려는 찰나 뭔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콰쾅!
백은 기사단의 기사들과 듀크 사이에 낡은 검 하나가 바닥에 꽂혔다.
듀크는 그 검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챘다.
‘베르나스.’
다름 아닌 검왕 베르나스의 검.
곧 백은 기사단의 기사들 사이로 베르나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땅에 꽂힌 자신의 낡은 검을 쥔 베르나스를 보며 듀크가 미간을 찌푸렸다.
“검왕, 지금 무얼 하시는 겁니까.”
베르나스는 말없이 땅에 꽂힌 검을 손에 쥐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가 칼리 드레이커의 스승이자 후원자라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이런 상황에서까지 그녀를 도울 줄은 몰랐다.
게다가 드레이커 가문 내에 교류하는 인물이 거의 없는 베르나스였지만, 듀크와는 술잔을 기울일 만큼 친밀한 사이였다.
듀크는 검왕이 드레이커 가문 내의 정치나 권력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지금 그가 보이는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듀크가 그런 의문을 드러냈음에도 베르나스는 여전히 검을 뽑지 않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듀크는 그런 베르나스를 보고 뭔가를 눈치챘다.
‘설마……?’
그는 잠시 동안 베르나스와 눈을 마주친 뒤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검을 다시 납검했다.
“……일단 물러난다.”
겉으로 볼 때는 듀크가 베르나스에게 겁을 먹고 물러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적어도 흑검 기사단의 기사들은 듀크가 그런 성정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물러나자고 했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흑검 기사단 기사들은 듀크의 말에 검왕과 백은 기사단을 노려보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흑검 기사단이 완전히 물러난 뒤에야 백은 기사단 역시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검왕 베르나스는 흑검 기사단이 물러났음에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흑검 기사단이 물러나자마자 흑랑단을 이끌고 달려온 상흔의 기사 가레스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가레스는 윈터킵의 지하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검왕과 백은 기사단을 보고 얼굴이 굳어졌다.
“베르나스 경. 사계성에 외부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경계 신호가 울렸습니다. 조사가 필요하니 비켜 주십시오.”
그러자 이번에는 베르나스가 땅에 꽂아 둔 검을 뽑아 들고 가레스를 겨누며 말했다.
“불허(不許)한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검왕 베르나스가 한 말이었기에 그 무게감이 남달랐다.
베르나스는 가레스가 이끄는 흑랑대와의 대치에서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흑색 기사이자, 현 드레이커 가문의 최강자인 베르나스가 이를 막고 있는 이상 가레스로서도 더 밀어붙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그때 칼리 드레이커가 지하에서 올라왔다.
그녀가 흑랑대를 이끌고 온 가레스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레스 경. 윈터킵의 지하 추모 공간에서 암습이 있었습니다.”
칼리가 침착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추모를 하던 지크 드레이커 경이…… 지멘스의 암살자들에게 암습 당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 * *
사계성 한복판에서, 그것도 가주의 장례 의식 중에 드레이커의 직계 혈족인 구원의 기사 지크 드레이커가 암습을 당했다는 소식은 금세 아틀라스를 넘어 중앙대륙 전체로 퍼져 나갔다.
시신은 발견되지 않은 상태여서 아직 죽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추모실 벽과 바닥에 남은 피의 흔적들로 볼 때 그의 죽음은 거의 확실시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말의 가능성을 위해 드레이커의 모든 기사들이 총동원되어 아틀라스 전역을 뒤지며 사라진 지크 드레이커를 찾았다.
이들이 아틀라스 곳곳을 수색하는 동안 하워드의 명을 받은 흑의인들은 알려지지 않은 지하 수로를 이용해 지크의 시신을 옮기고 있었다.
윈터킵의 지하와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 오래된 지하 수로는,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이가 거의 없었다.
아틀라스가 미들랜드의 중심이 되기 이전, 신성 제국 시절에 만들어진 시설이었기에 드레이커 가문조차 알지 못했다.
하워드의 수하들은 익숙하게 이 미로 같은 지하 수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쿵!
그들은 지크의 시신을 넣어 둔 궤짝을 어딘가에 내려놓았다.
곧 흑의인들이 나가자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지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스스스―
궤짝에 있는 지크는 그가 그림자 분신으로 만들어 낸 가짜였다.
진짜 지크는 모습을 숨긴 채 하워드와 그의 수하들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내내 살피고 있었다.
하워드 뒤에는 유령병을 붙여 놓고 누구와 만나서 논의를 하는지를 계속 살펴 온 것이다.
지크는 이번 기회에 드레이커 내에 숨어 있는 쥐새끼들이 누군지를 모두 찾아낼 생각이었다.
예상치 못한 것은 하워드가 죽은 지크의 시체를 끌고 들어온 곳이었다.
사실 하워드의 입장에서는 지크의 시신에 지멘스 암살자들의 흔적을 남겨 두고 곧바로 죽음을 공표하여 가문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괜히 지크의 시신을 쥐고 있다가 꼬리를 잡혀서 행각이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상황이 완전히 뒤집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시신을 여기까지 끌고 온 이유가 있다는 거겠지.’
지크는 궤짝을 놓은 방을 살폈다.
사방이 완벽히 막혀 있는 곳으로 외부와의 차단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인 듯싶었다.
‘감옥은 아닌 것 같은데. 뭐지?’
지크는 그림자에 은신을 한 상태로 밖으로 나가 이 공간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볼 생각이었다.
공간 바깥으로 나가자 길고 어두운 복도가 쭉 이어졌다.
곳곳에 갈림길이 많았고, 구조가 거의 똑같아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설계된 공간의 목적은 하나였다.
‘결국 안에서 도망치기 어렵게 만들어진 구조다. 설사 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해도 오히려 길을 잃고 헤매다가 더 안쪽으로 들어오도록 되어 있어.’
천천히 살피던 지크는 이곳이 하워드가 만든 안가나 비밀 공간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무리 하워드가 드레이커의 십자회 의원이라고 하더라도 혼자서 이런 규모의 공간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설사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런 공간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하워드가 손을 잡은 곳이라는 건데. 놈이 믿고 있는 뒷배가 어디인지 알 수 있겠군.’
전생의 하워드는 제국의 편을 들어서 드레이커 가문이 아벨 드레이커와 미친 황제의 손에 넘어가는 데 큰 일조를 한다.
이번 삶에서는 미친 황제도 죽었고, 제국은 반으로 갈라진 상태이니 전생과는 다른 선택을 했을 터인데, 그 배신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아내야 했다.
‘지멘스나, 아니면 나락일 가능성이 높다.’
아틀라스에 아무도 모르게 이런 규모의 지하 시설을 만들 만한 곳은 그 두 곳을 제외하고는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그때 복도를 걸어가는 이들을 발견한 지크는 모습을 감춘 채 그들의 뒤를 따랐다.
로브를 입고 있는 것이 마법사들인 듯싶었는데, 나락의 흑마법사들이 풍기는 마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멘스의 비밀 연구소 같은 건가?’
지크는 조금 더 가까이 붙으며 두 마법사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제 키메라 연구가 거의 안정기에 들어섰으니 상부에서도 저희의 공적을 인정할 겁니다.”
“아직 섣불리 판단하지 말게. 실험체들에게 혈계 능력을 부여하고 그 기능 실험까지 완벽히 끝나야 제대로 된 성공이라 할 수 있어.”
“혈계 능력 강화와 전이 실험은 거의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잖습니까. 수석께서 바라시던 고지에 다다른 셈입니다.”
지크는 두 마법사의 대화를 듣고 이곳이 키메라 연구 실험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키메라 연구 실험소라면 설마……?’
그러고 보니 지멘스와 나락을 제외하고 이런 비밀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곳이 하나 더 있었다.
‘노스트라 패밀리.’
무려 천 년을 이어온 마피아들이었다. 그들은 아틀라스의 지하에 이런 끔찍한 실험소를 만들어 두고 드레이커를 비웃듯 은밀하게 키메라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크는 하워드가 손을 잡은 이들이 노스트라 패밀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깨닫자 노스트라 패밀리의 대담한 행위와 이런 놈들과 손을 잡은 하워드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하워드, 겨우 범죄자 놈들과 손을 잡고 드레이커 가문을 좌지우지하려 했던 것이냐.’
전생에 이어서 이번 생에서도 하워드는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 드레이커를 배반했다.
이번 기회에 하워드를 비롯한 가문의 배반자들과 위험 요소들은 모두 뿌리 뽑아야 했다.
‘내부에 적을 남겨 두면 후에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내부의 적들을 일망타진할 절호의 기회였다.
지크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다시 상황을 살폈다.
‘하워드는 부족한 병력을 노스트라 패밀리와의 거래로 채우려 했을 것이다. 나를 제거하고, 칼리 누님을 가주로 올린 후, 뒤에서 자신이 가문을 조종할 수 있도록.’
하지만 하워드의 무력으로는 칼리나 백은 기사단을 제압할 수 없다.
그러니 그는 노스트라 패밀리의 도움을 받아 그녀에게 금제를 걸어 자신의 명령에 따르도록 계획을 세운 듯했다.
드레이커의 직계를 손에 쥐고 흔들 음침하고, 비열한 계책이었다.
‘잠깐, 그런데 하워드 같은 소인배가 대놓고 노스트라 패밀리와 손을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워드는 아서 드레이커의 명령을 따르는 비열하고 충직한 개였다.
‘과연 아서 드레이커가 노스트라 패밀리와 손잡은 것을 몰랐을까?’
게다가 사계성과 연결된 이 실험실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오히려 아서나 바론의 주도로 노스트라 패밀리와 거래를 했을 가능성이 더 높겠지.’
상황을 파악해 가던 지크는 하워드가 거래의 중간 관리자 역할을 했다가 아서의 죽음 이후로 노스트라 패밀리 쪽과 새로운 거래를 맺은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게다가 노스트라 패밀리의 경우 지크에게 다리오와 식스를 비롯해 여러 실험체를 잃었으니 그 원한이 깊을 터였다.
이번 기회에 하워드의 손을 빌려 지크를 처리하기 위해 혈계 능력자들을 파견한 듯싶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지크는 아서 드레이커가 노스트라 패밀리와도 관계를 맺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짐짓 소름이 끼쳤다.
‘아서 드레이커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가라앉은 눈으로 두 명의 마법사를 따라 연구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두 마법사가 커다란 검은 문 앞에 서더니 동시에 양쪽에 있는 두 개의 수정구 위에 손을 올려 두었다.
우우웅!
수정구에서 빛이 나더니 서서히 검은 문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열렸다.
지크는 그 문 뒤에 감춰져 있던 것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유리관 안에 거북이처럼 생긴 마수가 온몸이 사슬로 구속된 채 둥둥 떠 있었다.
지크는 유리관 안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알아챘다.
‘사흉?’
사흉 중 하나인 도올이었다.
노스트라 패밀리의 실험체들이 도올의 피를 이용해 만들어진 키메라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도올로부터 타락한 성혈을 뽑아내는 곳이 아틀라스 지하에 존재할 줄은 미처 몰랐다.
마법사들은 도올이 갇혀 있는 유리관 옆에 놓인 병 안에 검은 피가 한 방울씩 떨어지는 것을 살폈다.
그때 수석 마법사가 고개를 저었다.
“이전에 비하면 피의 질도 양도 턱없이 부족하군.”
“뭐, 꽤 오랫동안 뽑아냈으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대단한 마수라고는 하지만 한계라는 것은 있을 테니까요.”
수석 마법사는 혀를 차며 모인 도올의 피를 가져온 병에 담아서 품에 넣었다.
그러고는 문을 닫고 나가려 할 때였다.
“음?”
누군가가 그에게 메시지 마법을 보낸 듯싶었다.
옆에 있던 마법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가 선임 마법사를 보며 말했다.
“하워드 쪽에서 약속했던 순혈 용살자의 시신이 들어왔다고 연락을 줬다.”
수석 마법사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종 실험을 할 기회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