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3
73화
‘어머니가 힐러 클래스였다고?’
지크가 놀라자 루퍼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 잘 모르겠구나. 클래스라는 개념 자체가 요즘에는 없어졌으니 말이다.”
지크는 전생의 스승을 통해 클래스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일단 모른 척을 했다.
“클래스라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
“드레이커의 순혈 각성자이니 요람에서 받았던 축복 의식을 기억하겠구나.”
“물론입니다.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죠.”
“드레이커에서는 그것을 축복 의식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건 클래스의 개방 의식일 뿐이다. 드레이커들은 대부분 ‘검사’ 클래스로 개방이 되지.”
놀랍게도 루퍼스는 드레이커 혈족의 클래스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검사 클래스라. 그럼 다른 클래스들도 있습니까?”
“물론이다. 고대에는 사람이 가진 재능을 분별해서 그 재능에 맞는 클래스를 부여하고 더 높은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체계화되어 있었다. 다만 오늘날 기사의 시대가 오면서 대부분 클래스를 기사와 마법사 정도로만 나눌 뿐이지.”
“재능에 맞게 클래스를 나누어 개방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합리적인 이야기군요.”
“그래. 검에 재능이 있는 자는 검사의 길을, 활에 재능이 있는 자는 사수의 길을, 창에 재능이 있는 자는 창수의 길을 가는 것. 그게 클래스의 의미다.”
지크는 루퍼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의 가문인 드레이커에서 단지 힐러의 재능을 타고났다는 것만으로 갖은 고생을 했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렸다.
‘잠깐, 어머니가 힐러 클래스였다면 아버지도 그걸 알고 있었다는 말 아닌가.’
지크가 루퍼스에게 물었다.
“어머니가 힐러였다면 아서 드레이커 역시 이 클래스에 대한 개념을 알고 있었을까요.”
루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알고 있었을 거다.”
그 말에 지크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검사의 재능이 아닌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왜 나를 가문에서 축출한 거지.’
어머니가 힐러였다면 힐러가 가진 효능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텐데 왜 굳이 자신을 방치한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크는 루퍼스에게 물었다.
“힐러 클래스에 대해 알고 계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루퍼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자세한 것은 잘 모른다. 워낙 희귀한 재능이라서 전승 기록에도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더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전 가주셨던 내 고모님도 힐러의 재능을 가지셨다는 거다.”
지크의 예상대로 아가멤논의 전대 가주는 힐러 클래스였다.
힐러의 힘을 가진 전대 가주와 지크만이 황금 마스크를 활성화시킨 걸 봤을 때 이 신물은 힐러의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아티팩트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가멤논 가문에서 힐러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까.”
루퍼스가 고개를 저었다.
“드물었지. 대부분은 나나 가문의 원로들처럼 용력을 타고난 검사들이었지. 하지만 가주의 자리는 대대로 힐러의 재능을 타고난 이가 맡았다.”
“어머니도 그럼 가주의 지위를 가질 수 있었겠군요.”
“자격은 충분했지. 하지만 로라는 성년이 되기도 전에 이 성을 떠나 신성 왕국으로 갔다.”
의외의 말에 지크는 깜짝 놀랐다.
“신성 왕국이요? 왜 그곳으로 간 겁니까.”
“자세한 것은 로라가 말해 주지 않았다. 그저 가문을 구할 길을 찾기 위해서라는 말만 남기고 떠났지. 후에는 아서 드레이커와 결혼하겠다며 떠났고.”
얘기를 들을수록 지크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더 큰 의문점들이 생겨났다.
지크는 황금마스크의 이마에 새겨진 신성 왕국의 휘장과 같은 문양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어머니는 신성 왕국으로 가서 힐러 클래스에 대해 조사하려고 했을 수도 있겠어. 가문을 침식하는 마기를 자신의 힘으로 정화하기 위해 말이야.’
이에 대한 정확한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바로 그의 아버지인 아서 드레이커 뿐이었다.
‘그 사람에게 물어보면 과연 답을 해 줄까.’
정황상 드레이커는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저주받은 아가멤논 가문을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전생의 아서 드레이커는 지크의 정체를 알면서도 가문에서 쫓겨날 때까지 놔두었으니 전생에서 아가멤논 가문은 마기에 완전히 침식되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을 것이었다.
지크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근차근 알아봐야 할 것들이 많군.’
“지크, 네게 주고 싶은 것이 있다.”
그때 루퍼스가 자신이 차고 있던 목걸이를 풀어서 지크의 손에 쥐여 줬다.
지크는 루퍼스가 준 목걸이를 살폈다.
목걸이에 달린 펜던트는 열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한 여인이 찍힌 오래된 사진이 들어 있었다.
여인의 얼굴을 본 지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가주님. 이 사진은…….”
“로라 아가멤논. 네 어머니다.”
지크는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서 한 번도 그의 어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
사진 속의 어머니는 지크와 비슷한 나이 대였다.
비단결처럼 아름다운 긴 머리를 옆으로 넘긴 그녀는 우아하면서도 강단 있는 인상의 미녀였다.
지크는 사진을 보며 루퍼스에게 물었다.
“……어머니도 저처럼 검은 눈동자였습니까.”
그러자 루퍼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로라의 눈동자는 에메랄드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초록빛이었다.”
“저는 여태껏 제 눈동자가 어머니를 닮았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눈동자 색만 다를 뿐 너는 로라를 그대로 쏙 닮았다. 어제 너를 처음 봤을 때 로라가 다시 돌아온 줄 알았을 정도로.”
뒤에 있던 다른 원로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크는 목걸이의 뚜껑을 닫고 목에 걸었다.
“감사합니다, 가주님. 소중하게 간직하겠습니다.”
루퍼스가 지크를 보며 말했다.
“로라가 가문을 떠나고 나서 어느 날 그 아이가 오랜만에 다시 돌아왔었다. 그러고는 한마디만 남기고 다시 떠났다.”
“뭐라고 말입니까.”
“검은 눈동자의 아이가 가문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것이다.”
지크의 표정이 굳었다.
“어머니가 예언을 한 겁니까.”
루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라는 힐러 클래스였지만, 한편으로는 이레귤러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비범했지.”
중앙대륙에서는 이레귤러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았다.
신성제국 시기에는 이레귤러에 대한 종교 재판이나 이단 사냥도 있었을 정도였다.
‘어머니가 이레귤러 였다라…….’
루퍼스는 지크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보다 가문의 후원이 필요하다 했었지. 후원이 다 무엇이냐, 지크. 네가 바로 이 아가멤논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다.”
* * *
“후우.”
지크는 아가멤논 성의 수련실에서 바하무트를 들고 호흡을 다듬으며 검을 휘둘렀다.
가주가 지크를 가문의 후계자로 지목하는 바람에 여러 가지 절차를 처리하기 위해 성에 더 머물기로 했다.
아직 무투대회까지는 시간이 있었기에 지크는 가주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머무는 동안 지크는 아가멤논 가문의 비전 검술인 ‘황금 검술’을 익히게 되었다.
그는 일단 아가멤논 가문의 전승 비록을 보며 검술의 형을 익혔다.
아가멤논 가문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곳답게 검술의 역사 역시 깊었다.
직계 혈통이 익혀야 하는 전승 검술은 방패와 검을 동시에 다루는 방패 검술이었다.
검형을 익히던 지크는 이 검술이 팔라딘 전승 검술은 물론 제국식 검술과도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세 가지의 검술이 모두 뿌리가 같다는 걸까.’
특히 아가멤논식 방패 검술인 황금 검술은 풀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하고 거대한 카이트 쉴드를 든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검술이었다.
지크는 왜 아가멤논 쪽 사람들의 체격이 좋은지 알 것 같았다.
그는 황금 검술을 익히며 한 가지를 떠올렸다.
‘황금 검술은 공수 밸런스가 잘 잡힌 기술이다. 만약 여기에 예전 스승에게 배웠던 혼신기를 결합한다면.’
아직 용족 스킬인 언령술이 해제되지 않아 완벽한 혼신기를 쓸 수는 없었다.
언령술이 개방된 후 황금 검술과 완전한 혼신기를 결합한다면 엘리멘탈 소드와 참룡검결에 이어 새로운 무기가 탄생될 수도 있었다.
어느 정도 검형을 익힌 지크는 헤르시온을 활성화시켜 풀플레이트 아머 형태로 착용을 하고 골린의 방패와 바하무트까지 든 뒤 아가멤논의 황금 검술을 펼쳐 보았다.
후우웅!
방패로 치고 뒤로 빠지며 검으로 찌른 뒤 다시 돌아서 검을 휘둘렀다.
거기에 질풍기로 민첩함을 올리고 오러로 공격을 강화했다.
휘이익!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 내지 않아도 지크의 공격은 일반 기사는 쉽게 받아 내지 못할 만큼 빠르고 강력했다.
훙!
“후우.”
투구를 해제한 지크는 자신의 움직임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헤르시온을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거 정말 좋은데 제국 놈들한테 꼬리 밟힐까 봐 제대로 쓰지를 못하겠네.”
형태만 바꿀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쓰고 싶었다.
지크는 시간을 내서 골린을 직접 만나 헤르시온을 개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에서 수련을 마무리하기로 한 그는 헤르시온을 해제하고 수련실에서 나왔다.
정원을 나가 보니 아가멤논의 원로들이 펠릭스를 둘러싸고 검술을 봐주고 있었다.
휘익!
“거기서 돌면 안 되지!”
“좀 더 축을 잡고!”
“무게 중심을 꽉 잡아!”
팔라딘 전승 검술과 아가멤논의 황금 검술은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원로들에게 배워 두면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정작 가르침을 받는 펠릭스는 죽을 맛이었다.
“흐어. 마스터. 살려 주세요.”
펠릭스가 우는 표정으로 지크를 바라봤지만, 그는 고개를 슥 돌리고 구조 신호를 외면했다.
‘열심히 해라, 펠릭스. 내가 가르치기 귀찮아서 그러는 건 절대 아니다.’
50년 동안 성안에 갇혀서 답답했던 원로들에게 펠릭스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지크는 원로들에게 자근자근 요리되는 펠릭스를 버려두고 그대로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시녀장이 지크에게 다가왔다.
“도련님. 가주님께서 부르십니다.”
처음 봤을 때의 음산했던 노파의 모습이 사라진 시녀장은 날이 갈수록 더욱 우아한 면모를 갖추었다.
‘아직도 웃을 때는 가끔 히익히익 하는 게 살짝 무섭기는 하지만.’
지크는 시녀장의 말에 따라 가주 집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집무실에 가 보니 루퍼스의 책상 위에 문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50년 만에 아가멤논 가문이 세상 밖에 나오게 되면서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외조부님.”
둘이 있을 때는 가주가 아닌 외조부라 불러 달라 한 루퍼스였다.
루퍼스는 서류 더미 사이로 지크가 온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오랜만에 서류 작업을 하려니 골치가 아프구나. 나가서 차나 한잔하자꾸나.”
루퍼스와 지크가 테라스로 나가자 메이드들이 차를 가져 나왔다.
지크가 루퍼스에게 물었다.
“그럼 여태껏 시의 운영은 어떻게 해 오신 겁니까.”
루퍼스가 단정하게 깎은 턱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영지 바깥에 있는 대리인들에게 맡기고 중요한 결정만 내려서 편지로 전달을 했었지.”
“대리인들이 있었군요.”
루퍼스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너를 불렀다.”
그가 지크를 보며 말했다.
“아가멤논 가문은 미케네의 수호자로서 오랜 시간 동안 이곳을 지켜 왔다. 동시에 세 가문이 우리를 도와 미케네를 비롯해 주변 영지들을 관리했지.”
“가신들 말씀이군요.”
“지크, 네가 아가멤논의 정식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권력을 쥔 자가 독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종의 안전장치 마련해 둔 것이었다.
루퍼스의 말에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잘됐군요. 안 그래도 외조부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무엇이냐. 뭐든 말해 보거라.”
루퍼스의 말에 지크의 눈이 번뜩였다.
“대리인인 그 세 가문을 비롯해 아가멤논과 연관이 있는 모든 가문들의 가주와 영주들을 성에 초청해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