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1
0010 정밀 검증(2)
“야-! 기린아!”
아직 이름을 모르는 탓에, 나는 기린을 기린이라 불렀다.
뭔가 홍길동 같은 소리였으나, 기린은 내 부름에 나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거의 4m에 근접하는 거구의 기린이 성큼성큼 다가오자, 묘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초롱초롱한 눈빛이 그 위압감을 많이 억눌러주었다.
“몬가요옹?”
사육사가 알려준 맹수라는 이야기에 살짝 겁 먹은 것이 무색하게도 기린은 무척이나 순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내 근처까지 머리를 내리며 두 눈을 꿈뻑이고 있었다. 공격 의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까 저쪽에 있는 사람들이 뭔가 하지 않았어? 뭘 했는지 알려주면 좋겠는데.”
“아아앙. 알겠어요옹.”
뭔가 늘어지는 말투였으나, 기린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 해주었다.
그 내용을 전해들은 나는 사육사가 주었던 식빵 한 쪽을 먹으라고 건네주었다. 그리고, 짜게 식은 눈빛으로 초능력 연합회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기린 앞에서 개다리 춤은 왜 춘 거예요? 그것도 노란색 쫄쫄이를 입고…….”
“커흠! 크흐으음! 커흐으으으음!”
내 말에 초능력 연합회 직원들이 헛기침을 했다. 좀 과하게.
오직 그 사람들 가운데 장일운 대리만이 히죽히죽 웃고 있는 상황이었다.
‘저 인간이 범인이구만.’
업무 상황에서도 부하 직원들을 알차게 놀려먹는 장일운 대리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마냥 그러고 있을 수도 없었다. 아직 내 정밀 검증이 끝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라쿤입니다. 너굴맨에게 해치워지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가볍게 웃으며 말하는 장일운 대리의 말에, 호기심이 앞서기 시작했다. 업무를 이용해 부하 직원들을 괴롭히는 인간이 또 무슨 짓을 시켰을지 기대가 됐다.
어쨌거나, 바로 근처에 위치한 라쿤의 우리였기에 금세 라쿤을 볼 수 있었다.
너구리 같이 생긴 녀석이 그늘이 진 나무 아래에서 눕듯이 앉아 있었다.
나는 태평하기 짝이 없는 라쿤을 향해 손짓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팅 초능력은 단순히 언어만을 통역해주는 것은 아닌지, 라쿤이 쪼르르 다가왔다.
“왜?”
“저 사람들이 너한테 뭔가 보여주거나 하지 않았어?”
“응? 저 사람들? 아아.”
라쿤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솜사탕을 주던데? 누굴 병신으로 아나. 그게 물에 씻으면 사라진다는 것 정도는 이젠 나도 안다고. 애초에 요즘은 씻어먹지도 않지만.”
지금까지 겪어왔던 것이 있는지, 라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면 가보겠다며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라쿤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다시금 연합회의 인간들을 짜게 바라보았다.
“라쿤한테 솜사탕은 왜 줘요? 솜사탕 씻어먹는 라쿤이 언제 건데……. 게다가, 저 녀석은 요즘 뭐 씻어먹지도 않는대요.”
“오오오…….”
내 말에 연합회 직원들이 박수까지 쳐가며 대단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계속해서 검증을 이어갔다.
동물원이 폐업하며 다른 동물원으로 동물들이 이송됐으나,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동물들이 꽤 있었다.
수달 같은 경우에는 수조 안에 던져둔 물건을 꺼내오게 하는 것이었고, 악어의 경우에는 먹이를 던져준 사육사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곰이나 사자 같은 동물들을 거쳤고, 앵무새 같은 경우에는 특정한 말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했다.
결국, 여러 동물들에게 연합회 인간들이 해둔 짓거리를 보게 된 나는 고개를 내젓길 반복했다.
‘도대체 머리에 뭐가 들었길래 이딴 생각을 하는 거지?’
특히, 늑대 무리의 우두머리가 남겼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미친 놈도 아니고 인간이 왜 바닥에 엎어져서 하울링을 하냐고…….
어째서 부끄러운 짓을 한 당사자 보다 내가 더 부끄러워야 하는 건지는 몰라도, 나는 착실히 검증을 이어갔다.
그리고, 검증이 어느정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기린의 경우를 제외하면 잠자코 구경하던 사육사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코끼리 입니다만……. 전해 들으셨나요?”
“아, 네.”
나는 사육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코끼리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요?”
“네……. 원래 좀 녀석이 악동 기질이 있긴 했는데, 요즘은 이상 행동을 보이고 있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사육사는 정말 코끼리가 걱정이 된다는 듯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말했다.
나는 내 초능력이 그에게 도움 되길 바라며, 코끼리 우리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음에도 코끼리가 이상 행동을 보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교- 미- 하- 고- 싶- 다-!”
뿌우우우- 하는 소리에 지나지 않았으나, 나는 그 울음 소리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다.
코끼리가 이상 행동을 보인 이유는 하나였다.
‘미친, 코끼리가 섹무새라고?’
코끼리는 교미를 원했다.
동족 하나 없이, 저 홀로 오랜 시간동안 동물원에 있다보니 외로움이 폭발한 것이었다.
‘……아니, 성욕이 폭발한 건가?’
나는 코끼리 우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알게 된 원인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며, 코끼리 우리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바닥에 드러누워 발버둥치고 있는 코끼리를…….
“교- 미-!”
아니, 바닥에 드러누워 교미를 외치고 있는 교무새를 발견했다.
“저 녀석이 저런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됐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좀 알아봐주세요. 먹이는 잘 먹긴 하는데, 매일 같이 저렇게 바닥에 드러누워서 소리를 질러대니 걱정 되네요…….”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처럼 걱정하는 사육사의 모습에, 선뜻 사실을 알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이건 내 초능력의 등급이 걸린 일이었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나는, 걱정스레 코끼리를 바라보고 있는 사육사에게 귀를 가까이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하실 말씀이라도?”
“으음……. 저 녀석이 저러는 이유는 하나 입니다.”
“그게 뭐죠?”
“……교미요.”
“예?”
“교미요. 교미.”
내 말에 사육사는 입을 떡-하니 벌리고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금세 정신을 차린 그는 믿기 힘들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그럴리가요……. 저 녀석은 발정기가 아닙니다만…….”
“코끼리 발정기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계속 소리치고 있거든요. 교미하고 싶다고……. 무슨 고등학교 남학생 같을 정도예요.”
내 말에 사육사는 믿기 힘들면서도 믿어야 하는 이 상황에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마른 세수를 했다.
“그럼, 해결 방법은…….”
“뭐, 해결 하는 거야 하나 뿐이죠.”
“하아아…….”
사육사는 무척 골치 아프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 문제로 영업하지 않고 있는 동물원인데, 이 상황에서 새로운 코끼리를 들이기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동물원으로 보내자니, 흔쾌히 받아주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와 사육사가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인지, 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코끼리가 벌떡 일어나더니 다가왔다.
“인간들이다! 오랜만이네! 역시, 이 몸을 잊지 못해서 왔구나! 이 자식들! 진작에 올 것이지, 심심해 죽는 줄 알았잖아!”
“……심심하다고?”
“그래! 여기 혼자 있는 게 얼마나 심심한 줄 알아? 타이어 굴리기도 하루 이틀이지, 재미 없다고! 굴려봐야 환호해주는 관객도 없고.”
“너, 그럼 방금 교미하고 싶다고 소리지르던건?”
내 말에 코끼리는 뭔가 쑥쓰럽다는 듯이 코를 쓱 들어올려 제 이마를 문질렀다. 고개마저 까딱이는 것이 부끄러움에 웃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핫, 들었어?”
“그래. 네가 좀 큰 소리로 외쳤어야지.”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걸? 혼자 있어 봐야 심심하지, 인간들은 오지도 않지. 이럴 때는 교미 생각이 간절해지거든. 내 장기를 뽐내도 봐줄 인간 하나 없다니, 얼마나 심심할지 상상이 돼?”
“…….”
코끼리의 말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보니 교미에 미친 섹무새가 아니라 외로움에 미쳐가는 관종이었다.
나는 내가 코끼리와 대화하고 있는 모습에 기대감을 갖고 있는 사육사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 발정기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심심한 거네요.”
“……예? 심심하다고요?”
“네. 흔히들 관심종자라고 하죠? 그런 녀석이예요. 자길 봐주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심심한 거죠. 거기에 혼자 있다보니 외로움도 더해졌고……. 그러다 보니 교미 생각이 난다고 하네요.”
“아아…….”
사육사는 정말 미안하다는 듯이 코끼리를 바라보았다.
코끼리가 외로워하는 것이 자신의 탓이라 느끼는 듯했다.
“마침, 사람들도 이렇게 모였겠다……. 한 번 재롱이나 부려보라고 하죠 뭐. 한동안 괜찮지 않겠어요?”
나는 곧바로 코끼리에게 그렇게 심심하면 할 수 있는 걸 한 번 해보라고 했다.
“좋아! 딱 보라고!”
코끼리는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구석으로 가더니 흙먼지가 소복히 쌓인 타이어를 굴려왔다.
단단한 상아와 두꺼운 코를 이용해 덤프 트럭의 타이어를 아주 가볍게 굴려왔다.
“와아아!”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영지는 난간에 찰싹 달라 붙어서 소리를 지르며 코끼리 단독 쇼를 관람했다.
원래라면 그 행동이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행동이었으나, 코끼리에겐 달랐다. 오히려 영지의 환호성에 으쓱이며 더 재롱을 부리는 것이었다.
세워 놓고 두터운 발로 타이어를 굴러가게 만들기도 하고, 상아를 이용해 부침개 뒤집듯이 한 바퀴 뒤집기도 하는 것이었다.
“정말이군요……. 저 녀석이 이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즐겁다는 듯이 뿌- 소리를 내며 코로 빨아들인 물을 하늘 높이 뿌려대는 코끼리의 모습을 보며 감동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걱정을 조금은 덜 수 있게 됐습니다!”
사육사는 내 손을 붙잡고 연신 감사하다며 허리까지 숙여보였다. 코끼리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이 느껴졌기에, 나도 모르게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근데 좀 놔 줬으면…….’
그래도 삼 분 동안 손을 잡고 흔드는 건 좀 아니었다.
“이야……. 정말 대단한 능력입니다. 코끼리도 그렇고……. 설마 저희가 준비한 걸 전부 정확하게 맞추실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죠.”
그리고, 그런 나를 구해준 것은 연합회의 장일운 대리였다.
장일운 대리가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자, 드디어 사육사가 내 손을 놓아 주었다.
“일단 검증은 이 정도만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사실, 더 준비한 게 없기도 하지만요. 하핫!”
웃으며 준비한 것이 없다는 말을 하는 장일운 대리의 모습에 가볍게 웃어준 나는, 손을 내미는 장일운 대리와 악수했다.
“아무튼, 수고하셨습니다. 자세한 결과는 며칠 정도 걸릴 겁니다.”
“음, 얼마나 걸릴까요?”
“보통은 나흘 안에 처리 될 겁니다. 다만, 상부까지 저희 보고서가 올라가야 하니 아무리 빨라도 이틀은 걸립니다.”
장일운 대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서 나 혼자 초능력 정밀 검증을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이틀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내 반응에, 장일운 대리는 결과가 나오면 연락 주겠다며, 연합회의 사람들을 이끌고 휙하니 가버렸다.
연합회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여전히 코끼리를 구경하고 있는 누나와 영지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