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10
0109 붉은여우(2)
“민가에 피해가 있었어요?”
공연수가 가져온 자료에는 민가에 대한 피해가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포획이 아니라 퇴치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 숨긴 것이라며, 그는 다급히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큰 피해는 아니었습니다. 민가에서 기르는 닭들이 몇 마리 정도 잡아먹힌 수준이었습니다. 해당 부분은 저희가 다 보상을 해드린 상태고요.”
사람이 공격을 받거나 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에, 나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야 뭐.
“저희는 이 이상 피해가 발생하는 걸 방지하고, 여우가 반려견 등에 공격을 당해 죽는 걸 방지하기 위해 한 시라도 빠르게 포획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워낙 잽싸다보니, 포획이 쉽지가 않은 상황이고요. 그래서, 신수환님께 부탁드리고자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좀 부탁한다는 듯이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는 공연수의 모습에 나는 가볍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할 일 없는 상황에, 이렇게 할 일이 생기다니! 내심 즐거웠다.
“걱정 마세요. 도와드릴테니까요.”
“저……. 그럼 보수는 어떻게……?”
내가 펫 호텔에서 한 마리당 거진 십억에 가까운 돈을 받는 것은 비밀도 아니었다. 당연히 그러한 돈을 버는 내가 움직이는데 필요한 돈이 문제였다.
공연수는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됐어요. 야생동물 한 마리 잡는데 예산이 얼마나 잡혀 있겠어요? 제가 돈 받고 움직이면, 그 돈으로 알바를 고용해서 인해전술로 붙잡을 수도 있을 걸요?”
“감사합니다!”
허리에 스프링이라도 단 건지, 공연수는 연신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나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바로 내일 움직이겠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안 그래도 할 일 없는데, 며칠씩 기다려주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심심한 걸 어떻게 참으라고.
“예!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공연수도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며 내일 보자는 말을 남기고서 떠나갔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마자 나는 곧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정말 소은이도 데려가게?”
“응. 여우를 홀리려면 어울리는 미끼가 있어야지.”
“소은이가 왜 미끼야!”
“악!”
아침부터 화끈해진 등짝에 꿈틀거려야 했지만, 나는 꿋꿋하게 준비를 이어갔다.
나 대신 카페를 관리해줄 누나를 도와 동물들을 카페로 이동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물론, 오늘의 조수라고 할 수 있는 소은이의 케어를 위한 세 마리는 빼놓고 말이다.
“내도 델꼬 가라! 쫌!”
“널 어떻게 믿고? 중간에 기어나가서 사람들한테 먹을 거나 안 뺏으면 다행이지.”
“?!”
대포동 녀석은 따라갈 수 없다는 것에 아쉬움을 분노로 표출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라쿤 녀석들은 일을 돕기 보다는, 자기들의 욕심을 우선하는 녀석들이었으니 말이다.
여우를 찾으라고 산에 풀어놓으면, 100% 자기들 먹이나 찾고 있을 것이 뻔했다.
“쥔님, 저도 가면 안 돼요?”
“거기 가도 뛸 곳은 없어. 나무가 많아서, 계속 멈춰야 할 걸?”
“그럼 관심 없어요. 다녀오세요!”
마루 녀석도 잠깐 흥미를 보였지만, 말 그대로 잠깐이었다. 직선 주행만 좋아하는 마루였으니 나무가 많은 산은 취향이 아닌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소은이가 나와 함께 가는 것에 아쉬움이나 흥미를 나타내는 동물들은 더 이상 없었다. 다들 카페 생활에 익숙해지고 만족하다보니 오히려 그 영역을 벗어나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다른 준비를 시작했다.
“청호야, 이건 들 수 있지?”
“충분히 가능함다.”
청호에게는 소은이에게 필요한 것들이 담긴 가방을 메어주었다. 그 안에는 상비약이나 반창고 같은 것들은 물론이고, 소은이가 좋아하는 간식이나 여벌의 옷이 들어 있었다.
나름대로 꽉 들어찬 가방이다보니 두툼했지만, 청호는 문제 될 것 하나 없다는 듯이 가방을 메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자, 그럼 출발할까?”
“웅!”
뽀니의 위에 올라타서 나를 빤히 보던 소은이는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뽀니와 청호, 소은이의 애착 토끼인 일기토를 차에 올려주었다.
뒤 이어 소은이를 카시트에 태우는 것으로 드디어 준비가 끝이났다.
그리고, 미리 공연수에게 전달받은 위치로 이동했다.
누나와 몇 번이나 데이트를 즐겼던 곳이었기에 찾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곳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미 공연수와 함께 포획팀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차에서 내리니, 기다리고 있던 공연수가 나를 무척이나 반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에게 마주 인사를 해주고서, 곧바로 동물들과 소은이를 내려주었다.
“혹시……. 따님도 데려가실 생각이신가요?”
소은이가 차에서 내려 내 다리에 달라붙는 것을 바라본 공연수가 조금 떨떠름한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어린 아이를 대동하고서는 붉은여우 수색에 대한 부분이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여기는 것이 분명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오히려 더 쉽게 잡을 걸요?”
“그게 무슨…….”
나는 공연수의 말에 대답하기 보다는, 소은이를 뽀니의 등에 태워주었다.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소은이에게 딱 맞는 안전모와 보호장구도 채워주었다. 소은이가 탔다는 걸 인지하고, 그 높이 만큼 인지하고 있는 뽀니라서 문제가 될 일은 거의 없지만 말 그대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것이었다.
“가시죠.”
공연수는 떨떠름한 표정을 다 지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말에 태우고 다닌다는 것에 안도한 듯한 모습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했지만, 우리중에서는 그 누구도 벌써부터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가장 앞에서 안전을 책임지듯 움직이는 청호와, 소은이를 태웠음에도 산뜻한 발걸음으로 움직이는 뽀니는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심지어, 바닥에서 깡총거리며 뒤따르는 일기토마저도 여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헉, 허억……!”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공연수였다.
“힘들면 쉬고 계시죠? 제가 알아서 찾아올테니까요.”
“그, 그렇지만…….”
“붉은여우를 잡는데 사람이 많을 필요도 없잖아요. 포획팀은 포획팀대로 따로, 저는 저대로 따로 움직이는 걸로 하죠.”
“알겠습니다.”
잠깐 고민하던 공연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언제든지 손쉽게 연락할 수 있도록 자그마한 무전기 하나를 건네받은 상태로 말이다.
“소은아 가자!”
“웅! 꼬!”
내가 먼저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하니, 소은이를 태운 뽀니와 청호, 일기토가 내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규격 외의 동물들과 생활하다보니 내 신체능력 역시 평범함을 뛰어넘은지는 오래였다.
타다다닥, 빠른 속도의 발소리를 내며 달려가니 나무들이 휙휙 주변을 스쳐지나갔다. 슬쩍 뒤를 보니 소은이와 동물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산을 이리저리 뛰어다녔음에도 붉은여우는 털 한 가닥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멈추어 어떻게 해야 좋을까- 고민하고 있으니, 소은이가 다가와 내 옷자락을 툭툭 당겼다.
“압빠. 쩌어기.”
“저기? 어……!”
소은이가 어딘가를 가리키는 것에,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조금 빨간색 같기도 하고 주황색 같기도한 무언가가 보였다.
햇빛을 살짝 가리며 집중하여 그곳을 바라보니, 명백하게 여우로 보이는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급히 청호의 가방에서 자그마한 육포조각을 꺼내어 소은이에게 쥐여주었다.
“소은아. 이거들고 저기로 가볼래? 우리집 동물들한테 간식 주는 거처럼 주는 거야.”
“웅! 할래!”
고개를 크게 끄덕인 소은이는, 뽀니에서 내려주자마자 붉은여우를 향해 도도도 달려갔다. 넘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됐지만, 걱정이 무색하게도 소은이는 금세 붉은여우에게 다가갔다.
소은이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 붉은여우는 순간 도망치려 했지만, 소은이의 매력에 푹 빠지기라도 한 건지 멍하니 소은이를 바라보았다.
“머거!”
“으, 으엉……?”
제게서 도망치지 않은 붉은여우에게 다가간 소은이는 그대로 녀석에게 육포조각을 내밀었다.
소은이의 매력과, 입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달짝지근한 육포의 향에 정신이 팔린 녀석은 그대로 육포조각을 찹찹 씹어대기 시작했다.
“잡았다, 요놈!”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몰래 다가가, 그대로 녀석을 붙잡았다.
내게 붙잡힌 녀석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더니, 축- 늘어졌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음을 확신한 것이었다.
“아이고! 내가 요물한테 홀려버렸네. 마누라 미안혀……. 나 먼저 가.”
그런데, 정신을 차린 녀석이 이상한 소리를 했다. 마누라라고 하는 걸 봐서는 한 마리가 아니라, 다른 배우자 개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공연수씨. 지금 붉은여우를 잡았거든요? 일단 만나서 보시죠.”
“……정말입니까? 당장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다급하면서도 기쁜 듯한 목소리로 답한 공연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오오! 정말 붉은여우잖습니까! 그렇게 개고생을 했는데도 못 잡았는데, 어떻게 잡으신 겁니까?”
“다 우리 딸 덕분이죠. 그치?”
“그치이~!”
내 말을 따라하며 헤실헤실 웃음을 터트리는 소은이의 모습에 공연수를 비롯한 포획팀은 자신들도 모르게 아빠미소를 지으며 흐뭇해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그들은 정말 어떻게 잡은 건지 설명을 요구했다. 나는 말로 하는 설명보다, 직접 보여주기로 결정하고서는 붉은여우를 소은이 앞에서 좌우로 이동시켰다.
“……지금 따님한테 반하기라도 한 겁니까?”
내가 들고 이리저리 움직였는데, 그럴 때마다 붉은여우의 시선이 소은이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소은이가 동물들한테 좀 사랑받는 편이라서요.”
“오…….”
공연수를 포함한 포획팀은 대단하다는 듯이 박수를 치며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려주어야 했다.
“그런데 하나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네요.”
“문제요? 붉은여우한테 상처라도 있습니까?”
“그건 아닌데……. 이 녀석이, 마누라라고 하는 걸로 봐서는 암컷 개체가 또 있는 것 같거든요?”
“예? 그게 정말입니까?”
고개를 끄덕여주니, 공연수가 혼잣말로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GPS에 추적되지 않는 곳에서 발견 신고가 한 건 있었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설마? 단순히 다른 짐승을 착각한 게 아니라, 진짜 야생 개체가 있던 건가?”
진지한 표정으로 혼잣말로 중얼거린 공연수는 번뜩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신수환님. 혹시, 그 암컷 개체의 포획도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예, 뭐…….”
딱히 어려울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암컷 개체를 찾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이미 붙잡힌 수컷 붉은여우가 아주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케헤헹! 거기 좀 더 쓰다듬어 주십시오!”
소은이의 품에 안긴 붉은여우 녀석은 소은이의 손길에 행복해하며, 제 마누라라는 붉은여우가 있을 보금자리의 위치를 아주 상세하게 불고 있었다.
우리는 녀석 덕분에 불과 십 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또 다른 붉은여우를 잡을 수 있었다.
“하이고, 화상아! 요물한테 홀려가지고 마누라를 팔아먹어?!”
“케에엥! 여우 죽는다!”
사이좋게 붙잡혀, 조금 널찍한 케이지에 갇힌 한 쌍의 붉은여우는 부부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암컷 개체가 수컷 개체를 마구 구박해대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 모습을 피식 웃으며 지켜보고 있으니, 공연수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신수환님. 덕분에 무사히 두 마리를 성공적으로 포획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아유, 됐어요. 저도 이번에 붉은여우 두 마리를 키울 수 있게 됐으니까요.”
“……예?”
내 말에 공연수가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다름이 아니라, 내가 붉은여우들을 기르겠다는 소리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붉은여우를 데려가려 했지만, 이미 소은이가 두 녀석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으니 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절대 반박할 수 없는 한 방을 날리기로 했다.
“저보다 케어 잘 할 자신 있으세요?”
“그, 그게…….”
드루이드보다 동물들을 더 잘 케어할 수 있냐는 물음에 공연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그는 상부와 몇 번 연락을 주고받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붉은여우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토종 여우다보니, 가능하시다면 번식도 꼭 좀……. 모처럼 암수 한 쌍의 개체가 잡혔으니…….”
공연수는 광견병 주사 등 꼭 필요한 부분을 알려주며 아쉬움 가득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