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11
0110 유치원의 스타
“크, 맛있네!”
우리 부부의 소박한 취미라고도 할 수 있는, 저녁 시간의 맥주 타임은 무척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아, 맞아. 수환아. 폭신이는 괜찮아? 오늘 힘이 없더라. 새끼 낳다가 문제라도 생긴 거 아냐?”
“나도 그거 때문에 좀 봤는데……. 괜찮은 거 같더라. 새끼들도 다 건강해 보이고. 그냥 좀 지친 거 같던데?”
“그래? 그럼 보양식이라도 하나 만들어 줘야하나?”
누나는 얼마 전, 네 마리의 새끼를 낳은 폭신이를 걱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본인도 소은이를 낳으면서 겪었던 일이 있다보니, 일종의 동병상련을 느끼는 듯했다.
“내 옆에 있으면, 평범한 사료도 곧 보양식 아닐까?”
“……그런가?”
괜히 으스대며 말하니 누나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그 때 휴대폰이 지잉 지잉 울리며 전화가 왔음을 알려왔다.
“응? 엄마가 이 시간에 웬 일이지.”
“어머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받았다.
“엄마, 이 시간이 웬 일이래?”
“아들. 엄마가 친구들이랑 만나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야.”
“무슨 이야기?”
“요즘 아기들 유치원이 부족하다고 난리라던데, 넌 어떻게 할 생각이니?”
“어?”
엄마의 말에 나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솔직히, 유치원에 대해서 잠깐 생각은 해보긴 했는데 아직 별다른 계획은 없었기 때문이다.
소은이랑 매일같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니, 어떻게 버티라고.
‘왜 그래?’
‘아니, 엄마가 소은이 유치원 어떻게 할 건지 묻는데?’
갑자기 말을 하지 않으니 곁에 있던 누나가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말해준 나는 그대로 휴대폰을 빼앗겼다. 아니, 왜?
“어머님~ 저 하은이에요!”
내 휴대폰을 빼앗은 누나는 그대로 엄마와 하하호호 웃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나나 소은이에게 말을 할 때랑은 조금 다른 목소리라서 황당함이 더 커졌다. 나름대로 자주 본 것이긴 했지만, 솔직히 볼 때마다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잠깐 엄마와 이야기를 주고 받던 누나는 본론을 꺼냈다.
“어머님. 소은이는 내년에 유치원에 보낼 생각이에요. 매년 겨울에 모집하다보니, 올해는 어쩔수가 없었거든요. 네, 네네. 네에~ 들어가세요! 나중에 또 전화 드릴게요.”
잠시동안 엄마와 전화를 주고받던 누나는 태평한 표정으로 내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년에 소은이를 유치원에 보낸다니?”
“조만간 말하려고 했었어. 유치원은 매년 겨울 즈음에 그 다음 해의 원생들을 모집하니까.”
“꼭 보내야 하나?”
“의무는 아니지만……. 보내는 게 좋다고 생각해. 우리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친구들도 만들어줘야지. 거기다가, 내년이면 소은이도 다섯 살이야.”
“끙…….”
누나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유치원에 소은이를 보낸다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누나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아무리 카페에서 어느정도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고는 해도, 또래의 친구들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했다.
그래도 내년부터는 소은이와 하루에 몇 시간은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 벌써부터 속이 쓰려왔다.
반 정도 남은 맥주를 한 입에 털어넣고나니 목까지 쓰렸다. 제길.
“끄으으으!”
“어휴.”
탄산으로 목이 따가워 눈물을 글썽이고 있으니 누나가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너무하네.
괜히 흐르는 눈물을 닦은 나는 그대로 과자를 입에 털어넣으며 쓰라린 속을 달랬다.
그런데, 남아 있던 과자를 모조리 털어넣고 나니, 뭔가가 내 다리를 툭 건드렸다.
“압빠!”
“어? 소은이 깼어?”
“웅! 압빠!”
“왜?”
“유찌어니 모애요?”
순간 나는 얘가 언제부터 깨어 있던 건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어서 대답해달라는 듯이 바지를 잡아당겨대는 통에, 소은이의 호기심부터 풀어주기로 했다.
“유치원은 소은이처럼 아직 어린 아이들이 가는 곳이야. 카페에는 다 엄마나 아빠처럼 어른들 밖에 없지? 그런데 유치원은 소은이의 친구들이 많은 곳이야.”
“칭구! 토토토토토!”
토끼즈 다섯 마리를 토토토토토라고 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소은이의 빵빵한 볼살을 가볍게 쓸어주며 고개를 내저었다.
“토끼들이 소은이 친구는 맞는데, 유치원에 있는 친구들은 토끼들이 아니라, 소은이랑 비슷한 친구들이야.”
“우웅?”
아직 내 말을 자세히 이해할 정도는 아니었던 건지, 소은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나는 정말 유치원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소은이에게 더 집중하기로 했다.
“푸르륵!”
“뺘하하항!”
소은이를 끌어안고 배방귀를 뀌어주니 소은이는 즐겁다며 버둥거렸다.
“소은아, 아빠랑 또 잘까?”
“웅!”
방금 깨긴 했지만 그래도 다시 자고 싶었던 건지, 소은이는 내게 안겨들며 곧장 고개를 꾸벅꾸벅 흔들기 시작했다.
“……잘도 자네.”
안기자 마자 고개를 흔들더니 그대로 잠에 빠진 소은이의 모습이 조금 황당했다.
하지만 그래도 무척 사랑스럽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기에, 뒷정리는 내일의 나에게 미루며 누나와 함께 소은이를 안고 잠에 빠져들었다.
○ ◑ ● ◐ ○ ◑ ● ◐ ○
소은이가 다섯 살이 되는 해의 봄, 드디어 소은이의 유치원 등원이 시작되었다.
“으어어어엉! 소은아아아아!”
유치원 선생님의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걸어들어가는 소은이의 모습을 본 나는 오열했다. 앞으로 매일같이 하루에 네 시간은 소은이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니! 아니, 것보다 누가 소은이를 괴롭히면 어떡해!
“남들이 이상하게 보잖아. 얼른 가자.”
나는 누나의 손에 질질 이끌려 가면서 유치원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못한 나는, 유치원에서 제공해주는 CCTV 화면을 볼 수밖에 없었다.
“거봐. 걱정할 거 없지?”
누나와 함께 CCTV 화면을 확인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CCTV 화면속의 소은이는 무척 즐겁다는 듯이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또래의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같은 여자아이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인형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자그마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 내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소은이가 제 곁에 놔두고 있던 가방이 묘하게 꿈틀거리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누나, 이거……. 움직이는 느낌이지 않아?”
“……그렇네?”
소은이의 가방이 꿈틀거리는 느낌에, 누나와 함께 CCTV의 화면을 유심히 바라보던 나는 소은이의 유치원 가방에서 뽈록- 튀어나와 있는 자그마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잠깐만. 저거, 토끼 귀 아냐?”
가방 지퍼 끝자락 부근에 살짝 튀어나와 있는 흰색의 무언가는 수시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재빨리 토끼즈를 확인하기 위해 달려갔다. 그리고, 아무리 둘러봐도 다섯 마리가 아니라, 네 마리 밖에 없음을 확인했다.
“삼기토 어디갔어?”
“애기가 데리고 갔샤!”
남아 있는 네 마리 토끼즈의 증언에, 나는 소은이 가방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와 누나 모르게 소은이가 삼기토를 가방에 챙겨넣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이 CCTV 화면에 보이던 가방이 휙 열리더니 삼기토가 불쑥 튀어나왔다.
“……진짜 데려갔네.”
나와 누나는 소은이가 삼기토를 데려갔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이마를 짚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하지만 딱히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었다. 워낙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삼기토인데다, 소은이가 곁에서 삼기토를 잘 케어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삼기토 덕분에 소은이가 유치원의 스타가 되는 상황이었다.
토끼를 보게 된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소은에게 몰려들었고, 소은이는 그런 아이들을 통제하며 삼기토를 구경시켜주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삼기토에게 인형옷을 붙인다거나 하면서 놀기 시작했고, 소은이와 삼기토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뭉쳤다.
당연하지만, 삼기토로 인해 유치원 선생님의 전화도 받게 되었다. 혹시라도 문제가 되는 건 아니냐는 물음이었지만, 내가 드루이드임을 알려주니 오히려 좋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덕분에 소은이는 매일같이 동물들을 데리고 유치원에 등원하기 시작했다.
“와앙! 소으니 오늘은 여우 목도리 해따!”
하루는 붉은여우 한 마리를 몸에 감고 갔다. 조금 찹찹한 날씨였는데, 붉은여우 덕분에 소은이는 따듯함에 배시시 웃음짓고 있었다.
“소으니 말타고 와써!”
또 어느 날, 유치원 버스가 고장나는 바람에 개별 등원을 하게 됐을 때는 뽀니를 타고 등원하기도 했다.
“우아앗! 펭귄이다! 우린 칭구!”
심지어 하루는 페엥과 손을 잡고 함께 유치원에 등원했다.
당연히 소은이는 말 그대로, 유치원의 스타가 되었다. 온갖 동물들을 데리고 등원하여 친구들과 놀아대니, 소은이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그 누구도 없었다.
단순히 개나 고양이, 토끼 같은 동물 뿐만 아니라 쉽사리 볼 수 없는 동물들을 많이 데려갔기 때문이었다. 거위나 라쿤은 물론이고, 한무까지도 데려갔었으니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인기는 동물원으로 체험학습을 떠났을 때가 최고조에 이르었다.
“안농! 안농! 삐루루룩!”
“앵무새다앗!”
동물원에 찾아간 소은이의 매력에 이끌린 조류들이 소은이 곁으로 우르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소은이 덕분에 새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던 아이들이 소은이에게 푹 빠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최소한 소은이 주변에 있으면 동물들로 인해 즐거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아이들이 소은이에게 푹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