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26
0125 현장학습
“오늘이지?”
“응.”
나는 누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물들의 털을 빗겨주고 있었다.
원래 사육사들이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주니 깔끔한 녀석들이지만, 오늘은 조금 더 깔끔하게 보일 필요가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은 소은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현장학습이라는 명목으로 우리 동물원으로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소은이 친구들에게 동물들이 꼬질꼬질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자, 다음!”
“잘 부탁한다는 거샤!”
하나하나 동물들의 털을 빗겨주고 나니 내 주변이 털로 가득했다. 흰색, 검은색, 노란색. 아주 휘황찬란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 털을 모으면 웬만한 대형견 한 마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뭉쳐 있는 털들을 정리하고 나니, 깔끔하게 차려입은 누나가 다가왔다.
“소은이 거의 다 왔어.”
소은이에게 준 휴대폰이나 GPS 팔찌 등으로 위치를 확인한 누나가 내 몸에 붙은 털들을 떼주었다.
그렇게 깔끔한 모습으로 돌아온 나는 누나와 함께 동물원의 정문으로 나갔다.
중간중간 팬이라며 찾아오는 이들과 사진도 찍어주고 싸인까지 해주다보니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다행스럽게도 늦지는 않았다.
정문에 있는 매표소를 지나 밖으로 나가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트램이 다가오고 있었다. 관광객들의 수송을 위해 들여놓은 건데, 자세히 보니 유치원생들이 가득하게 있었다.
이윽고 트램이 내 앞에 정차했고, 그곳에서 익숙한 얼굴을 찾을 수 있었다.
“압빠! 엄마!”
트램에서 폴짝폴짝 뛴 소은이는 우리를 향해 손을 붕붕 흔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우리를 확인한 유치원 교사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소은이 어머님 아버님이시죠?”
“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예요.”
누나는 소은이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기 때문인지, 꽤나 신경쓰는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그 신경이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건 아니었다.
“오시는데 힘드셨죠? 아이들이니 데리고 오는 게 힘들었을텐데…….”
“괜찮아요. 제 일인걸요.”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내저은 선생님은 아이들을 트램에서 내렸다. 보조 교사와 인솔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기에, 아이들은 그들의 인솔에 따라 트램에서 내렸다.
당연하지만, 나와 누나가 있는 것을 파악한 소은이는 그런 인솔을 돌파해버렸다.
“히히, 압빠!”
내게 달려와 폭- 안긴 소은이는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런 소은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준 나는 소은이를 친구들 곁에 돌려보냈다. 아무리 집에 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일종의 수업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껏 돌려보낸 소은이는 또 다시 인솔을 돌파했다. 그것도, 친구를 데리고.
“압빠! 내 칭구! 찌여니!”
“안녕하세요. 소은이 친구 양지연이예요.”
소은이 친구라는 지연이는 무척 예의가 바른 모습이었다. 조금 천방지축, 말광량이 기질이 있는 소은이와는 정 반대의 모습이었다.
“안녕? 아저씨는 소은이 아빠야. 소은이랑 친하게 지내줘.”
“네!”
지연이라는 아이는 내 말에 힘차게 대답하더니, 허리를 꾸벅 숙이고서는 소은이를 데리고 친구들 사이로 돌아갔다.
“쟤 괜찮네. 누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응. 저번에 소은이 데리러 갔다가 봤는데, 엄청 착하더라. 대신……. 미안하긴 하지만 조금 애늙은이 같은 기질이 있지만.”
“그럼 잘 어울리는 거지. 서로 보완해주는 거잖아. 너무 활발한 소은이랑 침착한 지연이가 섞이면 적당해지지 않겠어?”
우리는 소은이가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보며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동물들과 즐겁게 노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친구들과 노는 모습은 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색다른 느낌을 받는 동안, 소은이 유치원의 교사들은 아이들을 인솔하여 동물원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뒤를 졸졸 따라가는 어린이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리고, 아이들이 모두 동물원에 입성하는 것과 동시에, 아이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와아앙, 꺄아악 아이들의 환호성이 들려오며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다름이 아니라, 소은이를 발견한 동물들이 아이들에게로 몰려갔기 때문이었다. 수 많은 동물들이 다가오니 무서워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신기해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갠차나! 얘들은 안 물어!”
소은이는 동물들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의 앞에서 동물들을 만져보았다.
깨물거나, 아프게 하기는 커녕 머리를 들이밀며 쓰다듬어달라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런 소은이의 모습 덕분에 아이들은 하나둘씩 용기를 내어 동물들에게 다가갔다.
“꺄하하하항! 간지러워!”
낙타에게 목덜미를 간지럽혀지는 아이는 웃으며 자지러졌고, 과자가 들어 있던 가방이 털리고 있음에도 라쿤이 몸에 올라타는 것이 좋다며 웃는 아이가 있었다. 아니, 저 놈이?
그래도 다행인 것은, 소은이가 라쿤 녀석의 목덜미를 잡아채며 미수에 그쳤다는 것이었다.
“여러분, 선생님들 따라오세요!”
그리고, 잠시동안 동물들에 둘러싸여 있던 아이들은 교사들의 인솔에 따라 동물원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관람의 시작은 여러 새들이 있는 조류관이었다. 주로 유부 녀석과 그 부하들이 자리하는 곳이었는데, 그곳에는 꽤 많은 동물들이 있었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철새들이 계절에 따라 자리하고 있었고, 앵무새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러분, 여기는 앵무새들이 있어요. 앵무새가 어떤 새죠?”
“말을 따라해요!”
“알록달록해요!”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에 열심히 대답하기 시작했다. 손을 번쩍번쩍 들어올리며 힘차게 대답하는 그 모습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지나갔다.
“과자를 주면 노래를 불러요오!”
“에……?”
아이들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던 선생님은 소은이의 외침에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소은이는 선생님이 제 말을 믿지 못한다고 생각한 건지, 그대로 근처에 있던 앵무새에게 다가가 간식 하나를 먹여주었다. 우리 동물원에 있는 앵무새중 가장 큰 녀석이었는데, 덩치에 맞게 발달한 성대로 말과 노래를 아주 잘 하는 녀석이었다.
“요들레이힛! 요를레리이요호~ 요를렐레, 요를레잇!”
그리고, 그 녀석의 장기는 요들송이었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따라하기도 버거울 정도의 속도로 요들송을 부른 녀석은 스스로가 만족스럽다는 듯한 모습으로 몸을 흔들어댔다.
“…….”
당연히 그 요들송을 들은 선생님은 순간 패닉에 빠지게 되었다. 앵무새가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이런 정도의 말을 할 것을 기대했을 건데 요들송을 완벽하게 부르니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한 것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놀라든 말든, 아이들은 그 모습에 환호하며 주변 앵무새들에게로 퍼져나갔다.
미리 동물들에게 줄 수 있는 간식을 조금씩 나눠받은 아이들은 앵무새들에게 간식을 주었다.
아이들에게 간식을 받은 앵무새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노래로 아이들에게 보답하기 시작했다.
각종 동요는 물론, 누구나 알 법한 가요같은 것들이 울려퍼지는 것이었다. 수십여 명이 동시에 음악 스트리밍을 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동물원이야…….”
선생님이 한숨과 함께 중얼거리는 소리가 살짝 들려왔다. 동물들의 개성이 강한 탓도 있지만, 내 초능력의 영향이 지분 중에 70% 정도는 차지하는 것 같은 느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선생님은 자신이 말실수 했음을 알고 미안하다는 듯이 내게 고개를 꾸벅 숙여보였다.
“여러분! 앵무새들도 말을 많이 하면 힘드니까, 이제 그만 놓아주세요!”
앵무새들이 많은 조류관에서 탈출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선생님은 곧바로 아이들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조류관에서 탈출한 선생님이 향한 곳은 코끼리와 기린 등 대형 동물이 모여 있는 구역이었다. 조류관보다 더 하면 더 했지, 평범한 곳이 아닌데…….
“코끼리가 어떻게 울까요?”
“뿌우우!”
“그러면 호랑이는 어떻게 울죠?”
“어흥!”
“잘했어요. 그럼, 기린은 어떻게 우는 지 아는 사람 있나요?”
기린의 울음소리를 묻는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의 입이 금세 다물어졌다. 다른 동물들의 울음소리야 여기저기서 쉽게 접하니 쉽게 말하지만 기린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 명 만큼은 달랐다.
“꾸루어우응! 꺼웅!”
손을 번쩍 치켜든 소은이는 기린 울음소리를 흉내내듯이 외쳤다.
“그, 그게 뭘까요?”
“기린 울음소리요오!”
설마 소은이가 대답할 줄은 몰랐던 건지 선생님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소은이는 그것을 증명하겠다는 것처럼 기린 우리에 다가갔다.
“꾸루어우응!”
“꾸루어우응! 꺼웅”
소은이가 기린을 향해 크게 외쳤고, 기린이 그런 소은이에게 답을 해주었다.
설마 소은이가 정말 기린의 울음 소리를 따라했을 거라곤 생각치 못했던 사람들은 놀란 모습을 보였다.
기린이 잘 울지 않는 동물이라 사육사들도 잘 들어보지 못한 소리일 정도였으니 놀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소은이야 툭하면 듣는 소리였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소은이가 선생님의 혼을 쏙- 빼놓는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친구들을 이끌고 냅다 코끼리 우리에 들어가더니 뿌우뿌우와 즐겁게 놀이시간을 즐긴 것이었다. 굵고 길쭉한 코를 미끄럼틀처럼 타고, 코끼리의 등을 타고 한 바퀴 돌기도 하는 것이었다.
물론, 소은이의 만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소은이는 여러 동물들의 우리에 난입해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선생님의 안색은 시간이 갈수록 파리하게 질려갔다.
‘호랑이 우리에 비집고 들어갔을 땐 시체같았지.’
호돌이의 등에 올라타서 친구들 사이를 누비던 소은이의 모습을 본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결국 이후로는 사고치지 못하게 선생님 옆에 딱 붙어 있어야 했던 소은이의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 다른 동물원에서는 이렇게 동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안 돼요. 알겠죠? 여기는, 소은이 친구들이 있는 곳이라 여러분들을 아프게 하지 않았지만 다른 곳에 있는 동물들은 여러분을 아프게 할 수도 있어요.”
괜히 동물들에 대한 상식이 이상하게 박힐 수 있다는 것에, 선생님은 힘겹게 아이들의 상식을 바로잡아야했다.
나는 미안함을 가득 담아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괜히 와도 된다고 한 건가 싶었다.
집이 이곳인 소은이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왠지 피로에 찌들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