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25
0124 양봉
“소은아, 아빠랑 일하러 갈까?”
“모하눈데?”
“꽃이랑 꽃을 비벼줄 거야.”
“왜에?”
소은이랑 놀면서 일할 생각을 하던 나는 갑자기 훅 들어온 왜 공격에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나는 이내 침착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참외랑 토마토 보면 식물들한테서 나오잖아? 그런데, 그 열매가 생기려면 꽃이랑 꽃을 비벼줘야 해. 소은이한테 엄마랑 아빠가 있는 것처럼 열매도 엄마랑 아빠가 있는 거야.”
“우아! 할래, 나두 할래!”
내 말에 소은이가 폴짝폴짝 뛰며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내 손에 맞는 장갑과, 소은이 손에 맞는 장갑을 챙겨 화단으로 나갔다.
화단에는 각종 열매들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 꽃들이 열매가 될 생각을 하니 절로 흐뭇해졌다.
“자, 소은아. 이걸 잡고 이렇게, 다른 꽃에다가 슥슥 비벼주면 돼. 대신, 소은이는 참외 꽃에만 비벼야 해. 알았지?”
나는 소은이에게 참외 꽃 하나를 따서 건네주었다. 그걸로 다른 꽃을 톡톡 두드리는 듯이 시범을 보여주니, 소은이가 곧 잘 따라하기 시작했다.
“히히, 맛있는 참외 조야대!”
참외에서 씨를 빼고 과육부분만 오물오물 먹는 걸 좋아하는 소은이는 즐겁게 웃으며 참외 꽃을 수분시키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런 소은이처럼 꽃 하나를 따서 여기저기 꽃을 문질러댔다. 가볍게 한 번씩 터치하는 것 정도로도 충분했기에,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낮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보니 허리가 조금씩 아플 뿐이었다.
“압빠. 이거 바!”
“응? 뭘……. 으악! 소, 소은아 움직이지 마! 꿀벌한테 쏘이면 아야하니까, 조심해.”
나는 소은이가 들고 있는 꽃 위에 내려 앉아 있는 벌 두 마리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아무리 꿀벌이라 해도, 쏘이면 아픈 것은 마찬가지였다.
소은이는 내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왜 그러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소은이는 말을 참 잘 듣는 아이였다. 움직이지 말라니까, 눈만 데록데록 굴리면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멈춰 있는 소은이의 손에서 꽃을 가져온 나는 그대로 꽃을 내던지려했다.
하지만 그 꽃에 있는 벌들을 자세히 바라보니 무언가 조금 이상했다.
꽃가루를 모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묘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던 것이었다. 그것도 꽃가루를 챙기려던 모습 그대로 굳어서 말이다.
“뭐지? 설마, 얘들도 내 말을 알아듣는 건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고 있는 꿀벌들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 벌들도 몸을 살짝 기울이며 내 고갯짓을 따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여기로 와볼래?”
부우웅!
꽃을 쥔 손이 아니라, 다른 손을 내미니 그곳에 벌 두 마리가 내려앉았다.
“우아! 압빠, 나두! 나두 보여조!”
어느새 움직이지 말란 말을 잊은 소은이는 내게 매달려, 꿀벌을 보여달라며 매달렸다.
왠지 꿀벌도 내 영향에 포함되는 느낌이었기에, 나는 조심스레 소은이에게 꿀벌을 보여주었다. 만에 하나라도 쏘일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주의와 함께 말이다.
“얘들이 꿀버리야?”
“응. 얘들이 꽃에서 가루를 모아서, 그걸 꿀로 만들거든. 그래서 꿀을 만드는 벌이라고 해서 꿀벌이야.”
“꿀 머꾸시퍼!”
달달한 걸 좋아하는 소은이는 꿀이라는 소리에 입맛을 다셨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소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얘들한테 꿀 좀 달라고 할까?”
“웅!”
머리가 찰랑일 정도로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은이의 모습에 웃은 나는 꿀벌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녀석들의 시선이 소은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말이 아니라 페로몬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꿀벌들의 대화아닌 대화내용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날개가 붕붕 흔들리고, 엉덩이를 움찔대는 모습에서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새 여왕님! 구 여왕, 숙청!’
“안 돼!”
나는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꿀벌들을 말렸다. 이대로 있다간 꿀벌 한 집단이 고스란히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꿀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붙잡고서, 녀석들의 이상한 생각을 고쳐야 했다.
소은이가 여왕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절대로 기존 여왕을 숙청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쉬움. 새 여왕님.’
“하…….”
소은이가 새 여왕이 아니라는 것에 아쉬워하는 꿀벌들은 소은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대신, 얼마든지 소은이를 볼 수 있게는 해줄게. 소은이가 꿀을 좋아하니까, 너희들이 꿀을 조금씩 가져오는 거지. 어때?”
‘소은님! 모신다!’
여왕으로 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소은이가 좋은 건지 꿀벌들은 의기투합하더니 어디론가 휙하니 날아가버렸다.
“꿀벌 오디가써?”
“집에 갔나봐. 꿀 가지러 간 거 아닐까?”
“꿀!”
소은이는 꿀이 기대되는지 폴짝폴짝 뛰었다. 그러나, 떠났던 꿀벌이 돌아왔을 때, 녀석들에게는 꿀이 아닌 다른 것이 달려 있었다.
“……꿀이 아니라 집을 들고왔네.”
돌아간 두 마리는 수백 마리가 되어 돌아왔다. 덤으로 자기들의 집을 힘겹게 들고서.
새카맣게 물들어 있는 꿀벌 무더기가 소은이 머리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벌집을 들고 날아오고 있었다.
“우리 꿀벌두 키우눈 거야?”
“……응. 그렇게 됐네.”
“히히! 꿀 잔뜩!”
소은이는 꿀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그리도 좋은지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꺄아아악! 벌이야!”
나는 한숨을 내쉬며, 우리 집의 건물 외벽에 자리잡으려는 꿀벌들에 놀란 누나에게로 달려갔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수환아! 벌, 벌이야! 119 불러야 하나? 어떡해! 우리 동물원에 벌 잡는 동물들이 있었나? 어떡하지?”
“일단 진정해.”
화들짝 놀라서 벌집이 자리잡기 시작하는 곳을 가리킨 누나를 품에 안고 가볍게 토닥여주었다.
“수환아, 설마 쟤들도 키울 생각이야?”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됐네.”
“도대체 뭘 했길래, 벌이 벌집 채로 이사를 오냐고…….”
누나는 한숨을 폭- 내쉬며 집 외벽에 붙기 시작한 벌집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내가 기르는 동물이라면 최소한 사람에게 피해를 줄 일은 없음을 잘 아는 누나였기에, 금방 진정할 수 있었다.
“갑자기 벌은 왜 데리고 온 거야? 지금까지 곤충은 키울 생각을 전혀 안 했잖아.”
“나도 원래 키울 생각은 없었어. 근처에 있는 녀석들을 좀 이용할 생각이었지. 이렇게 집을 똑 떼어내서 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니까?”
진심이었다. 아무리 내가 드루이드라고 해도, 벌이 집을 똑 떼어내서 올 거라곤 예상할 수가 없었다.
원래 내 목적은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벌들을 이용해 작물들을 수분시키고, 조금씩 꿀을 얻어먹는 것이었다. 이렇게 동거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자연산 꿀을 얻을 수 있으니까 딱히 나쁘지는 않은 걸까?”
안전한 것을 확인한 누나는 소은이처럼 벌 보다는 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확실히 소은이가 나도 많이 닮았지만, 누나도 많이 닮았다는 게 느껴졌다.
“근데, 소은이가 저러는 것도 괜찮은 거 맞아?”
그러던 도중, 누나가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벌집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소은이가 검지손가락을 콕, 뻗어서 벌집의 입구에 손가락을 쑤셔넣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으악! 소은아!”
나는 다급히 달려가서 소은이의 손가락을 뽑아냈다. 아무리 벌들도 소은이를 좋아한다지만 집을 그렇게 부숴버리려는 것까지 참아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뽑혀나온 소은이의 손가락을 보고서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꾸리야!”
소은이의 손가락에는 샛노란 꿀이 가득하게 묻어 있었다.
그 모습에 벌집의 입구를 살짝 바라보니, 여러마리의 꿀벌들이 열심히 꿀을 갖고 오는 중이었다. 보아하니, 저장해둔 꿀을 꿀벌들이 가져와 소은이 손가락에 발라준 것이었다.
‘소은님, 꿀 원하신다! 꿀, 바쳐라!’
내부에서 들려오는 붕붕 날갯짓이 마치 대화소리처럼 들렸다.
“휴…….”
소은이가 안전하다는 것에 안도한 나는, 손가락을 쪽쪽 빨며 꿀을 맛보는 소은이를 붙잡아세웠다.
“소은아, 그러면 안 돼. 누가 소은이가 있는 집에 커다란 걸 넣어서 입구를 막으면 어떻겠어? 소은이가 잘못한 거지?”
“우……. 잘모태써요.”
“그러면 꿀벌들한테 미안하다고 할까?”
“웅! 미아내!”
소은이는 벌집 부분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사과했다. 그런 행동에 꿀벌들은 괜찮다는 듯이, 소은이의 손가락에 꿀을 더 발라주고 있었다.
“압빠두, 꿀?”
“아빠는 괜찮아. 엄마한테 줘.”
마치 나눠먹겠다는 듯이 꿀이 발라진 짧은 손가락을 내미는 모습에 웃은 나는 소은이를 누나에게 보냈다.
그리고, 나는 벌집으로 시선을 돌려 입구로 슬쩍 얼굴을 내미는 벌 한 마리를 바라보았다. 다른 꿀벌보다 덩치가 많이 큰 개체인 것으로 보아, 그 녀석이 여왕벌인 것 같았다.
손가락을 살짝 내미니, 여왕벌이 조심스레 올라탔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살짝 만져보았다. 여왕벌이 좀 크긴 해도, 애초에 작은 꿀벌이다보니 딱히 이렇다 할 촉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미안한데, 조금 낮은 곳에 작게 집을 하나만 지어줄 수 있겠어? 거기에 꿀을 조금만 담아줘. 그러면 소은이가 지금처럼 집에 손가락을 쑤셔넣진 않을 거야.”
‘긍정. 가능.’
여왕벌은 내 말을 듣자마자 배를 움찔거리며 날개를 파라락 떨었다. 그러자, 벌집 안에 있던 일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더니, 내가 가리킨 곳에 집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밀랍을 뱉어내며 집을 만들어낸 일벌들은 곧바로 그 집에 꿀을 채워넣기 시작했다. 심지어, 접근하기 편하도록 구멍까지 널찍하게 뚫어놓은 상태였다.
“고마워.”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어주니, 여왕벌은 기쁘다는 듯이 몸을 떨었다. 하지만 녀석은 금세 내 손에서 벗어나, 다시금 벌집 내부로 들어가버렸다.
묘하게 귀여운 구석이 있는 듯한 녀석의 모습에 아쉬움이 잠시 느껴졌다.
나는 집에 있는 과일 중에 바나나를 하나 꺼내와, 벌집 근처에 내려놓았다. 집을 옮기는 것으로도 모자라 꿀을 담을 작은 집까지 하나 만들었으니 지쳤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설탕물도 좋은 선택이긴 하겠지만, 벌이 바나나도 먹는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선택한 것이었다.
“우아! 압빠, 꿀벌이 바나나 머거!”
누나와 꿀을 나눠먹은 듯한 소은이가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 바나나를 조금씩 떼어내고 있는 꿀벌을 보며 감탄했다.
그리고, 그렇게 성공적으로 우리 집에 자리잡은 꿀벌들은 아주 좋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자리를 잡고, 꿀을 모으기 시작한 벌들이 노리는 것은 가장 먼저 집 주변에 있는 화단이었다. 그곳에서 꽃가루를 아주 열심히 옮겨준 녀석들 덕분에, 참외 같은 열매들이 아주 주렁주렁 열리게 되었다.
그 외에도 화단을 섭렵한 녀석들이 동물원 전체를 누비며 꽃가루를 옮긴 덕분에, 동물원 전체에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상황이 되었다.
단순히 동물들을 보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많았으나, 꽃을 보기 위해서 찾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였다.
게다가 우리 집에 자리를 잡은 꿀벌이 만들어내는 꿀은 시중에서 사먹는 꿀보다도 몇 배는 더 달콤하고 맛있는 느낌이었기에, 우리 가족은 미각적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