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24
0123 멸종위기종
롤링맨의 촬영 이후, 동물원을 찾는 사람들이 더 늘었다.
나름대로 유명하긴 하지만, 동물원이 다 거기서 거기지- 하는 생각을 갖고 찾지 않는 이들이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동물들이 풀려 있고, 그런 동물들과 마음껏 교감을 나눌 수 있었으니 사람들이 찾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개나 고양이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동물 뿐만 아니라 신기한 동물들도 많았으니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우리 동물원의 주의사항같은 꿀팁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입구에서 당근을 약탈하는 낙타가 있으니, 당근은 필히 숨기거나 중심에 있는 상점에서 사라.
호랑이도 패는 고양이가 있으니, 고양이를 보면 도망쳐라.
라쿤을 보면 주머니를 확인해라. 뭔가가 사라졌다면 라쿤 사육사를 찾아가라.
헬륨풍선을 놓쳤다면 아무 까마귀나 까치를 붙잡고 하늘을 가리켜라.
코끼리는 관종이다. 못 본척 지나가면 물을 뿌린다. 근처를 지나갈거면 손이라도 흔들어라.
공주님 유치원 휴원일에 가면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호랑이를 마주쳐도 놀라지 말자.
이외에도 여러 꿀팁들이 돌아다니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팁을 가지고 동물원을 누볐다.
심지어, 해외 팬도 다수 보유한 롤링맨 덕분에 외국인들의 방문 비율도 조금씩 늘고 있었다.
방문객의 95% 가량이 내국인이었던 상황에서, 이제는 내국인의 비율이 80% 정도까지 하락한 것이었다.
평소처럼 동물원을 거닐다보면 팬이라며 찾아오는 외국인들 덕분에 흠칫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설픈 한국어로 말을 걸면 그나마 낫지만, 영어도 아닌 언어로 X라X라 말을 걸어오니 놀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놀라게 되었다.
“뭐고? 니들 뭐하노?”
대포동은 갑자기 나타나, 자신에게 이런저런 기계들을 갖다대는 사람들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
평소 사람들이 한번씩 만지면서 놀아주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기계같은 것들을 들이미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휴대폰이나 카메라 같은 것도 아니었으니 더더욱 의아한 것이었다.
“내 주는기가? 잘 받아간데이!”
다만, 문제가 있다면 어리둥절한 상황에서도 그 손기술이 죽는 것은 아니란 것이었다. 대포동은 그대로 제게 들이밀어지는 기계를 쥐고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Noooooooooo!”
순식간에 기계를 탈취당한 외국인은 비명을 내지르며 대포동을 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괴도나 다름 없는 대포동을 쫓기란 요원했다.
자그마한 장애물 따위는 부드럽게 스쳐지나가는 라쿤과 달리, 하나하나 넘어가거나 우회해야 하는 인간은 녀석을 쫓기 힘든 것이었다. 더군다나, 내 능력의 영향을 한껏 받은 라쿤이었으니 사람이 쫓기는 더더욱 힘들었다.
물론,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유부야. 저 녀석좀 잡아와라.”
허공을 향해 가볍게 중얼거리니, 어디선가 부엉이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거의 무소음이나 다름 없는 비행으로 대포동에게 접근한 유부는 그대로 라쿤을 낚아챘다.
“으아아아악! 놔라! 와 붙잡노?!”
갑작스레 유부에게 잡히게 된 대포동은 버둥거리며 탈출하려했다. 그러나, 녀석이 유부의 탄탄한 발톱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잡아왔소이다.”
“수고했어. 자, 가서 소고기 꺼내달라고 해.”
“후후, 고맙소이다!”
나는 식사 담당 직원에게 줄 쪽지를 써서 유부에게 넘겼다. 직원에게 가져가면 유부가 좋아하는 먹이를 건네줄 것이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것처럼 홀연히 사라진 유부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서, 내 손에 붙잡힌 대포동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얌마. 손님들 거 마음대로 훔치지 말랬지?”
“훔친 거 아이다! 내한테 준 기다!”
“주긴 뭘 줘. 니가 그냥 갖고 튄 거잖아.”
“쳇. 좀 넘어가믄 덧나나?”
반성은 커녕 당돌하게 외치는 대포동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나는 녀석의 품에 있는 기계를 빼앗았다.
“까비.”
“까비, 같은 소리하네. 손님들 물건 좀 훔치지 마라?”
녀석에게서 기계를 가져온 나는 그대로 녀석을 풀어주었다. 내가 뺏은 기계에 미련이 남은 듯한 모습을 보인 녀석이었으나, 이내 미련을 떨쳐내고 도망쳤다. 버티고 있어봐야 간식제한이라는 형벌이 떨어질 뿐이라는 걸 잘 아는 것이었다.
그리고, 녀석이 슬그머니 도망치는 것과 동시에 내 손에 쥐어진 기계의 주인이 천천히 다가왔다.
“엄……. 하, 하이?”
키가 크고 턱수염이 짙으며 연한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척 봐도 외국인이구나- 할 법한 사람이 다가온 것이었다. 나는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외국인임에도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외국인이었다. 그것도, 꽤나 잘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그 기계의 주인 입니다.”
내게 고개를 가볍게 꾸벅- 숙여보인 외국인은 내가 쥐고 있는 기계를 가리켰다. 그가 절도범……이 아니라, 라쿤에게 탈취당하는 모습을 본 나였기에, 가볍게 웃으며 그 기계를 넘겨주었다.
하지만 넘겨주는 것은 넘겨주는 것이지만, 나는 그 기계의 정체에 대해서 궁금함을 느꼈다. 도대체 이게 뭐길래, 대포동에게 그걸 들이밀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 기계가 뭐길래 라쿤한테 대고 있던 건가요?”
“이것은 근밀도 측정기입니다.”
“근밀도 측정기요? 그……. 근육이랑 뼈, 수분 같은 거 측정해주는 거요?”
“맞아요. 대신, 작은 만큼 비싸요. 이거면 자동차도 살 수 있어요.”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인 주제에, 자동차만한 가격이라는 것에 꽤나 놀랐다. 조만간 라쿤들의 도벽을 손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물씬 들 정도였다.
“근데……. 그 근밀도 측정기를 왜 그 녀석한테 들이밀고 있던 거죠? 라쿤은 여기가 아니라도 많이 있을텐데.”
내 말에, 외국인은 대답을 하기 보다는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어 내게 내밀었다.
“라이노레스큐?”
“저는 라이노레스큐의 연구원, 데이비드입니다.”
라이노레스큐라는 단체 소속의 연구원이라는 데이비드는 근밀도 측정기를 가지고 동물원에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드루이드의 초능력, 동식물에 작용한다고 알고 있어요. 저희는 그 부분에 집중하고 있어요.”
내 초능력에 대한 작용을 알아보기 위해 왔다는 데이비드는 동물들에게 작용한 결과를 측정하고 있다고 했다.
단순히 초능력의 힘이 동물에게 머물게 되어 그 힘을 사용하는 건지, 아니면 개체 자체의 근력 등을 더 강화시키는 건지 확인하려한 것이란 소리였다.
“그래서, 결과는 확인했어요?”
“모든 동물을 확인하진 못했지만, 몇몇 동물들을 확인했어요. 결과는 신기해요. 동물들의 근밀도가 평균치를 상회하는 것이예요.”
데이비드는 태블릿을 하나 꺼내더니, 내게 이런저런 그래프가 가득한 것을 보여주었다. 온통 영어로만 써져 있는 것이다보니 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움이 느껴졌지만, 몇몇 단어로 그 내용을 유추 할 수 있었다.
그래프는 동일 종의 임의 개체 수십 마리의 평균치와, 우리 동물원에서 측정한 동물의 측정치를 표시해둔 것이었다.
“차이가 꽤 많이 나네요. 우리 동물원의 동물들이 강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은 몰랐는데.”
두 개의 선이 그려진 그래프는 무척이나 차이가 컸다. 좌측에 표시되어 있는 수치로만 봐도 차이가 큰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캣이나 유부 같은 녀석들은 평균치의 열 배가 넘는 수치를 보이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보면서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이런 수치를 측정해서 뭘 하겠다는 건지 의문인 것이었다. 내 능력이 동물들을 건강하고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진 데이비드의 말에 그 의문은 거의 사라졌다.
“제가 이런 측정을 한 이유는 하나예요. 저희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진행을 위해, 저희를 후원해주시는 분들에게 정확한 자료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예요.”
“프로젝트라면 어떤 거죠?”
“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한글 학명을 몰라서…….”
잠시 휴대폰을 사용하던 데이비드는 곧장 입을 열었다.
“북부흰코뿔소라는 동물을 아시나요?”
“코뿔소 아닌가요? 자세히는 몰라요.”
데이비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북부흰코뿔소라는 동물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북부흰코뿔소는 멸종 직전에 놓인 동물인데, 전 세계에도 케냐에 딱 두 마리만 남아 있는 상태라고 했다. 더군다나, 남아 있는 두 마리 역시 나잇대가 좀 있는 암컷이라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멸종이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다만, 지금은 데이비드가 속한 단체에서 그 두 마리와 미리 보존해둔 유전자를 이용하여 복원을 진행중인 상태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 동물원에 찾아와 동물들의 정보를 측정하고 있는 이유는, 여러 국가의 지원을 받아 펫 호텔에 그 두 마리의 개체를 보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저희가 다국적 과학 컨소시엄이지만 자본이 넉넉한 게 아니라서요. 펫 호텔에 보내야 한다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 비용을 후원받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과정이었어요.”
원래라면 내게 들키지 않고, 조용히 측정만하고 돌아간 다음 정식으로 협조를 요청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측정을 하고, 후원자들에게 예산을 요청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내용에는 조금도 관심이 가지 않았다. 예산이니, 타당성 조사니 하는 것 보다도 내 머릿속에 딱 하나 박힌 이야기가 있었다.
“멸종위기라…….”
단 두 마리의 암컷만이 남아, 멸종이 확정되었지만 어떻게든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만 머리에 남아 있었다.
인공수정, 체외수정 등등의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남아 있는 두 마리 개체의 건강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데이비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두 마리라면 제가 받을테니, 관련 허가만 받아둬요. 마음같아선 무료로 해드리고 싶지만……. 형평성 문제도 있고, 제 동물원이 난장판이 되는 걸 원치는 않으니 최소한의 비용만 받을게요.”
“정말인가요?”
“네. 솔직히, 멸종 직전이라는데 외면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붉은여우도 번식시켰으니, 효과가 있을 것 같고요.”
내 말에 데이비드의 얼굴이 화사하게 펴졌다.
“당장……! 당장 허가 받고 오겠습니다!”
데이비드는 허가를 내어주지 않으면 상사들의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 듯한 모습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런 데이비드가 돌아간지 며칠 정도가 지났을 때, 라이노레스큐라는 곳에서 협조요청서가 들어왔다.
내용은 간단했다. 반드시 번식에 성공해야 하는 북부흰코뿔소를 펫 호텔에 입주시키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미리 약속했던대로 코뿔소의 입주를 받아들였다. 덕분에 코뿔소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낸다고 시설팀이 꽤나 고생해야했다.
“코뿔소! 꾸아앙!”
게다가, 유치원에서 배웠는지, 소은이가 코 앞에 검지를 치켜들고 뛰어다니는 일도 있었다.
기대감이 그득한 소은이의 행동과, 우리의 준비가 끝이 날 즈음에 코뿔소가 도착했다. 케냐에서부터 바로 날아온 녀석들은 엄중한 보호와 의료진의 케어 하에, 준비된 코뿔소 우리에 입주했다.
건강이 조금 나쁜 상태로 입주한 녀석들은 내 영향에 놓이자마자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하더니, 데이비드를 비롯한 라이노레스큐의 모든 이들이 그렇게 염원하던 번식에 성공했다.
서서히 배가 부푸는 코뿔소의 모습에 대기하던 연구원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고, 내 초능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더더욱 커져갔다.
덕분이라고 해야할지……. 각종 멸종위기종이 우리 동물원에 입주하기 시작했고, 우리 동물원은 전 세계에서 멸종위기종을 가장 만나기 쉬운 동물원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