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73
0172 인싸 녀석들
“압빠, 압빠!”
“응? 소은아, 왜?”
유치원을 가지 않는 토요일 아침. 소은이가 내게 매달려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왔다.
“오늘, 새 칭구 와?”
“새 친구? 아아.”
소은이의 말에, 나는 소은이가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오늘이 바로, 펫호텔에 새 입주자가 들어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새로운 동물이 우리 동물원을 찾는 날이었다.
“오늘 올 거야. 기대 돼?”
“웅! 어떤 동물이야?”
“카피바라라고 하는 동물이야.”
나는 간단하게 동물의 이름을 알려주며, 카피바라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강아지야?”
“아니, 쥐야. 찍찍거리는 쥐.”
“진짜아? 어엄~청 큰데에?”
카피바라가 쥐라고 알려주니, 소은이가 놀란 모습을 보였다. 내가 보여준 사진에 있는 카피바라 위에, 강아지 한 마리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강아지보다도 더 큰 동물이 쥐라고 하니, 작은 쥐밖에 모르는 소은이가 놀란 것이었다.
“다 자란 카피바라는 소은이보다도 무거울걸?”
“헤에엑!”
쥐가 큰 것으로도 모자라, 자기보다 무거울 거라는 소리에 소은이는 더더욱 놀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그 놀람은, 어서 카피바라를 실제로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압빠, 압빠! 카피바라 언제 와아?”
“음……. 11시 정도에 올 거야.”
“카피바라 오면 꼭 알려조야대!”
“알았어.”
새로운 동물을 만나는 것이 그리 기대되는지, 소은이는 내게 몇 번이나 당부했다. 꼭 꼭, 자기에게 알려달라고 말이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까지 하고서야 만족하고 놀러 간 소은이를 보며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약속이야?”
“오늘 펫호텔로 들어오는 동물 있잖아. 카피바라.”
“아, 자기도 같이 보고 싶다는 거구나?”
“그렇지.”
우리 딸이지만 못 말린다며 고개를 내젓는 누나의 모습에 또다시 웃음 지은 나는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누나와 차도 마시고 티비도 보고, 간단하게 게임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 것이었다.
“앗! 나 초월 떴어!”
“진짜? 아니 나는 왜 안 줘! 이거는 억까지!”
누나 혼자 가챠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고 있으니, 휴대폰이 지이잉- 진동을 울렸다.
[카피바라 주인] [신수님.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차량을 타고 진입할 수 있나요?]오늘 도착하기로 한 카피바라의 주인이 보낸 메시지였다.
나는 혼자 아이템을 먹었다고 좋아하는 누나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엉덩이는 왜 때려.”
“탐스러워서? 아무튼, 카피바라 주인이 이제 온다니까 난 그쪽으로 갈게.”
“다녀와. 난 초월이나 하나 더 뽑아야지.”
엉덩이를 한 대 더 때려주려다가, 엉덩이를 감싸고 도망치는 누나의 모습에 포기했다.
“다녀올게!”
뒤에 대답하는 누나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동물원의 옆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매표소가 있는 정문이 아니라, 차량의 통행이 가능한 곳이었다.
“아, 소은이.”
옆문으로 가던 나는 소은이가 꼭 당부했던 것이 떠올랐다. 고개를 끄덕이며 소은이를 불렀다.
“와써? 와써? 새 친구 와써?”
뽀니를 타고 오다가 폴짝 뛰어, 내 품에 안긴 소은이는 내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조금 있으면 올 거야.”
“히히!”
기대된다는 듯이 내 품에 안긴 소은이는 어서 오라는 듯, 차가 올라올 길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SUV 한 대가 나타났다.
우리 앞에 멈춰 선 SUV에서 남자 한 명이 내리며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반갑습니다. 카피바라를 사육하고 있는 김명무입니다.”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은 그는 곧바로 트렁크를 열더니, 총 다섯 개의 이동장을 꺼냈다.
“얘들입니다. 제가 해외출장을 가는 바람에, 돌볼 수가 없네요. 앞으로 한 달 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동장을 내려놓은 김명무는 당장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한다며 훌쩍 떠나버렸다.
SUV가 빠르게 언덕을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소은이와 함께 카피바라가 있는 이동장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와, 여긴 또 어디야?”
“우욱, 속이 안 좋아…….”
“자기야! 나 너무 외로웠어!”
“뀨잉, 나도!”
“오오옷! 처음 보는 인간!”
다섯 마리 카피바라들은 이동장에서 나오자마자 저들끼리 뭉치더니 나와 소은이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녀석들은 곧바로 나와 소은이에게 다가와 슬쩍 몸을 들이밀었다.
“뭐해! 어서 쓰다듬어 달라고!”
“나부터!”
“킁킁, 이 인간 좋은데?”
“치유되는 느낌이야!”
“나와, 나도 좀 보자.”
친화력의 카피바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친화력이 좋은 동물답게, 녀석들은 나와 소은이에게 달라붙으며 어서 쓰다듬으라고 요구해댔다.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나는 녀석들을 데리고 동물원 내부로 향했다.
그리고, 친화력 최고의 동물답게, 녀석들은 금세 동물원에 적응해버렸다. 아니, 적응 수준을 뛰어넘어, 원래부터 동물원에 있던 녀석들처럼 녹아들었다.
○ ◑ ● ◐ ○ ◑ ● ◐ ○
“우오오, 거 비늘 때깔 한 번 곱네요?”
느긋하게 햇볕을 쬐고 있던 누렁이에게 다가간 카피바라 한 마리는 냅다 칭찬을 박아버렸다.
그런 카피바라의 행동에 누렁이가 얼떨떨한 모습을 보였으나, 카피바라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누렁이의 곁에 슬그머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금 추운 것 같긴 해도, 날씨 좋죠?”
“어…….”
“아, 이런. 제 소개를 잊었네요. 저는 오늘 여기에 처음 오게 된 카피입니다.”
카피바라 중 한 마리인 카피 녀석은 아주 태연하게 누렁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근데 저것도 대화인가?’
반쯤 혼잣말 같긴 한 이야기를 중얼거리는 카피바라였다.
“나는 누렁이…….”
“오, 예쁜 이름이군요! 잘 지내봐요!”
카피바라 중 한 마리인 카피 녀석은 누렁이에게 올라타듯이 몸을 밀착했다. 그러다 보니, 누렁이가 카피 녀석을 잡아먹기 위해 몸을 휘감은 것 같은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카피는 누렁이의 몸이 제 몸을 감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관심사가 뭐냐고 태평하게 물어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친화력이 얼마나 좋아야 저러는 거야…….”
나는 카피 녀석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동물원으로 퍼져나간 녀석들은 여러 동물들에게 인사를 하며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긴 참 좋은 것 같아요. 그렇죠? 이렇게 물도 있고, 참 살기 좋은 곳 같아요.”
“…….”
소은이의 물놀이용 악어……가 아니라, 수로를 떠다니는 악어인 보뚜 녀석은 제 곁에서 헤엄치는 카피바라 한 마리를 황당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수로를 함께 이용하는 동물들이 적지 않았지만, 그 동물들 대부분이 서로 데면데면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갑게 다가오는 녀석은 처음인 것이었다.
“저는 피바라고 해요. 물을 참 좋아하고, 다른 동물들과 이렇게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해요. 그다음으로는 인간들에게 쓰다듬 받는 걸 좋아하죠.”
“…….”
피바라는 카피바라가 귀찮았던 건지, 보뚜는 슬그머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음음, 바쁘시구나. 그럼 나중에 봐요!”
하지만 피바는 자신을 회피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대화 상대를 찾아 수로를 헤엄쳤다.
녀석은 수로에 있는 수달이나 오리너구리 가족 등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것도, 제 몸 위에 유부가 서있는 상태로 말이다.
두 번째 카피바라도 무척 친화력 좋게 다른 동물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또 다른 카피바라를 찾았다.
“어구어구, 귀여워라.”
“……쟤는 좀 이상한 애가 아닐까.”
그리고, 세 번째 카피바라인 바라를 본 나는 황당했다.
다름이 아니라, 녀석이 호랑이 우리 내부로 들어가, 새끼 호랑이들이랑 놀아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세히 보니 또 다른 카피바라 한 마리가 호돌이의 옆구리에 딱 달라붙어서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놈들은 천적에 대한 겁이 없나? 아니면 서식지에 호랑이가 없어서 그런가? 뭐지?”
나는 이 카피바라라는 종에 대해 의혹이 생겼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다녀야,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동물들에게도 마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 무척 신기했다.
아무리 친화력이 좋아도 이 정도로 좋을 수가 있나 싶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물이 카피바라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지막 남은 카피바라를 찾았다.
마지막 카피바라는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소은이가 녀석을 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끼즈와 함께, 녀석을 데리고 있었다.
“이히히, 쓰담쓰담!”
“히야, 여기가 천국이네요!”
“그런 거샤!”
“애기 손길은 엄청 좋은 거샤!”
마지막 카피바라는 소은이의 손길을 즐기며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소은이는 그런 카피바라를 쓰다듬으며 재밌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말이다.
잠시 동안 카피바라를 쓰다듬던 소은이는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자그마한 가방에서 과일 조각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거 머글래?”
“먹으라는 건가요?”
“애기가 주는 간식이샤!”
“그럼 잘먹겠습…….”
소은이가 내미는 간식을 향해 주둥이를 벌린 카피바라였으나, 그 주둥이에 간식이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핫햐! 이 간식은 괴도 대포동이 가져간데이!”
바로, 대포동이 갑자기 나타나 과일을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포동이! 그러면 안대!”
“아따 맛있고만!”
소은이가 타박했지만, 간식은 이미 대포동의 주둥이 속으로 들어간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렇게 카피바라에게서 간식을 강탈해 먹어치운 대포동은 마치 놀리기라도 하듯 카피바라를 바라보았다.
“맛있나요?”
“맛있다 안카나.”
“다행이네요. 제가 못 먹은 건 아쉽지만, 당신이라도 맛있게 먹었으면 되는 게 아닐까요?”
“이, 이익…….”
온화하기 짝이 없는 카피바라의 모습에 대포동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먹을 것을 빼앗긴 동물들은 하나같이 화를 내거나 짜증을 터트렸지, 이렇게 온화하게 반응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대포동은 이내 호다닥 도망쳤다. 본능적으로 카피바라 같은 부류는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걸 느낀 것이었다.
이제는 약탈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녀석이다 보니, 그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카피바라야말로 녀석의 천적이라 할 수 있었다.
“이상한 애들이 들어온 건가……?”
카피바라들이 적응을 빨리 한 건 좋은데, 적응을 좀 과하게 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