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72
0171 신 콩쥐팥쥐
“소은아, 연기 한 번 해볼래?”
“연기이?”
“응. 소은이도 콩쥐팥쥐 동화 알지?”
“웅!”
내가 몇 번 동화를 읽어준 적이 있었기에, 소은이는 잘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이가 거기 나오는 콩쥐 역할로 동영상을 찍을까 하는데, 해볼래? 대신, 소은이가 아는 거랑은 조금 다른 내용이긴 할 거야.”
“할래! 콩쥐 할래!”
소은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솔직히, 연기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이미 소은이는 몇 번이나 연기를 해보았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펩드라마라고, 펫들이 등장하는 웹드라마를 찍으며 소은이가 출연한 덕분이었다.
“그럼 찍으러 갈까?”
“웅!”
좋다며 내게 덥석 안겨드는 소은이를 데리고, 미리 준비해둔 촬영 장소로 향했다.
○ ◑ ● ◐ ○ ◑ ● ◐ ○
“……콩쥐는 원숭이 가족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어요. 콩쥐가 무척 귀여워, 다른 이들에게 무척 사랑받았기 때문이에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러 동물들이 나타나 두 번의 연출을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귀엽다며 과일 같은 것들을 준다거나 하는 모습과, 가발을 쓴 원숭이 한 마리가 그런 과일들을 빼앗는 모습이 나온 것이었다.
“원숭이 가족들은 콩쥐를 매번 힘들게 했어요.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죠.”
“밭을 매라끽!”
“이런, 콩쥐에게 젓가락으로 밭을 매라고 하네요.”
원숭이 한 마리가 소은이에게 젓가락 하나를 툭, 던져주었다.
그 젓가락을 받아든 소은이는 흙바닥을 젓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하지만 이미 단단한 흙바닥은 젓가락으로 헤집을 수가 없었다.
“우웅……. 오또카지.”
“콩쥐는 고민했어요. 이 젓가락으로 어떻게 이 넓은 밭을 다 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래도 해야 했어요. 하지 않으면 저녁 메뉴가 브로콜리 무침이 되거든요.”
“브로콜리 시러!”
소은이는 땅바닥을 젓가락으로 콕콕 찌르길 반복했다. 그 동작에 흙바닥이 조금 깨지며 조각나긴 했지만, 극히 일부분이었다.
“브로콜리를 싫어하는 콩쥐는 열심히 젓가락으로 밭을 매려고 했어요. 그렇지만 젓가락으로는 아무리 해도 오늘 안에 해결할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콩쥐는 금세 울상이 되었어요.”
“힝…….”
입술을 비죽 내민 소은이는 젓가락을 들고 바닥을 째려보았다.
“이대로라면 저녁으로 브로콜리를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울적한 콩쥐는 바닥을 노려보았어요. 그런데, 그때 콩쥐에게 그늘이 드리웠어요.”
“아가, 무슨 문제라도 있니?”
소은이에게 드리운 그늘은 바로, 코뿔소가 만들어내는 그늘이었다. 녀석은 슬며시 소은이에게 다가와, 왜 그러고 있는지 이유를 물었다.
“우웅, 여기를 매야 해!”
“저런…….”
코뿔소는 소은이의 말에 안타깝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코뿔소도 아는 것이었다. 이 밭을 매려면 젓가락 하나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도와줄 테니, 슬퍼하지 말렴.”
“코뿔소는 콩쥐에게 자기가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부드럽게 소은이에게 얼굴을 비비적거린 코뿔소는, 고개를 조금 과하게 숙이며 자신의 뾰족한 뿔을 땅바닥에 쿡- 박아 넣었다.
소은이가 젓가락으로 콕콕 찌르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뿔은 깊게 땅속으로 박혀들어갔다.
“흐읍!”
그리고, 땅속에 뿔을 박아 넣은 코뿔소는 그대로 힘을 주며 앞으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땅에 박아 넣은 뿔을 밀어내며 움직이니, 소은이가 젓가락으로 콕콕 찌를 때와 완전히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뿔을 중심으로 땅이 갈라지듯 헤집어지며 밭이 매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우아아!”
소은이는 순식간에 밭이 매어지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여, 박수를 짝짝 쳐댔다.
“고마어!”
“후후, 별 거 아니란다.”
부드럽게 웃어 보인 코뿔소는 겸양을 떨며, 다시 한번 바닥에 뿔을 찔러넣었다.
꾸그극-!
다만 이번에 뿔을 찔러 넣은 것은 땅을 헤집기 위함이 아니었다. 바닥에 숨겨져 있던 무언가를 꺼내는 것이었다.
조금 커다란 상자가 녀석의 뿔에 걸려 바닥에서 뽑혀 나왔는데, 그것을 개봉하니 내부에는 바나나 몇 송이가 들어 있었다.
“콩쥐가 혹시라도 저녁으로 브로콜리를 먹지 않도록, 코뿔소가 바나나를 캐준 것이었어요.”
“빠나나다!”
바나나를 발견한 소은이는 곧바로 껍질을 벗겨 한 입 베어 물었다.
하지만 그 바나나는, 한 입 밖에 먹지 못한 그 바나나는 금세 소은이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끽! 이런 건 내가 먹는 거다끽! 넌 이거나 먹어라끽!”
“갑자기 나타난 원숭이는 소은이의 손에 들린 바나나를 강탈해가, 자신이 먹어치웠어요. 심지어, 원숭이는 바나나를 가져가 비어버린 콩쥐의 손에 브로콜리 한 송이를 쥐여주었어요.”
“……브로콜리 시러.”
브로콜리를 쥐게 된 소은이는 입술을 비죽이며 브로콜리를 밭에 심어버렸다.
“콩쥐에게서 바나나를 빼앗은 원숭이는 콩쥐가 브로콜리를 심는 모습을 보더니, 콩쥐에게 또 다른 일을 시키기 시작했어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원숭이가 소은이를 데리고 이동했다. 이동한 곳은 우리 집 마당 구석에 있는 수돗가였다.
“오늘 물을 써야 한다끽! 이걸 가득 채워놔라 끽!”
“콩쥐에게 일을 시킨 원숭이는 어서 하라고 재촉하더니, 그대로 어디론가 떠나버렸어요. 콩쥐는 원숭이를 째려보다, 원숭이가 시킨 대로 커다란 항아리에 물을 채우기로 했어요.”
소은이는 그대로 수돗가의 손잡이를 돌려, 물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떡하죠? 항아리 바닥이 깨져 있어서 물이 다 새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본 콩쥐는 또다시 울상이 되었어요.”
고사리 같은 자그마한 손으로 물이 새는 부분을 막으려 했지만, 그 부분이 소은이의 손보다도 커다랬기에 의미가 없었다.
“이대로 있다간 조금 전 심었던 브로콜리를 캐서 먹어야 할 상황이에요. 콩쥐는 쪼그려앉아 고민했어요. 차라리 브로콜리에 곁들여 먹을 소스를 찾으러 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었어요.”
“꿀……?”
소은이는 꿀을 찍어, 달달한 맛으로 쌉싸름한 맛을 지우겠다는 건지는 몰라도 꿀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때, 소은이의 귓가에 부우우웅- 소리가 들려왔다.
“콩쥐가 고민하고 있을 때, 콩쥐가 꽃인 줄 알고 벌들이 다가왔어요.”
소은이는 제게 다가온 벌들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조심스레 쓰다듬어주었다. 벌들은 그 손길을 즐기다가, 이리저리 비행하며 페로몬을 뿜어댔다.
“콩쥐에게 다가온 벌들은 콩쥐의 표정이 울적한 것을 보며, 그 이유를 물었어요.”
“여기에 물을 받아야 하눈데, 구멍 나써!”
부우우웅!
소은이의 말에 벌들이 힘찬 날갯짓을 하며 대답했다.
“벌들이 콩쥐를 돕기로 했어요. 벌들은 구멍 난 항아리에 밀랍을 만들어내더니, 금세 그 구멍을 막아냈어요.”
“고마어!”
벌들은 정말 순식간에, 벌집을 짓듯이 항아리에 있는 구멍을 막아냈다.
“콩쥐는 벌들의 도움으로 항아리를 멀쩡하게 만들었어요. 덕분에, 물을 받아도 조금도 새지 않았어요.”
항아리 가득하게 물을 받은 소은이는 물이 찰랑찰랑할 정도로 가득 찬 항아리 앞에서 잠시 물장난을 쳤다. 손바닥으로 수면을 치기도 하는 등의 행동을 보인 것이었다.
“벌들의 도움으로 일을 잘 끝내게 된 콩쥐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어요. 이렇게 일이 잘 끝났으니, 오늘 저녁은 브로콜리가 아닐 것 같았어요. 하지만, 원숭이가 또다시 콩쥐를 찾아왔어요.”
소은이가 물장난을 치며 놀고 있으니, 가발을 쓴 원숭이가 또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품에 자그마한 포대자루 하나를 끌어안은 채로 말이다.
“원숭이는 콩쥐에게 곡물이 든 자루를 내어줬어요. 자루 안에 있는 곡물들의 껍질을 벗기라는 것이었어요.”
“히이잉…….”
자그마한 제 손가락보다도 더 작은 것들이 무수한데, 그것들을 까야 한다는 것에 소은이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근처를 지나가던 수많은 새들이 콩쥐의 곁으로 다가왔어요.”
“왜 그러고 있소이까?”
“이거, 까야대.”
소은이는 시무룩하게 수많은 낱알들을 가리켰다.
“콩쥐가 시무룩한 모습을 보니, 새들은 왠지 콩쥐를 꼭 도와주고 싶었어요.”
“흠흠. 어린 아가씨가 고생하는 것을 볼 수는 없소이다. 우리가 도와주겠소!”
“콩쥐를 도와준다고 한 새들은 갑자기 콩쥐가 갖고 있던 자루를 붙잡더니 하늘로 날아올랐어요.”
“오디가!”
“잠시만 기다리시오. 걱정할 것 없소이다.”
하늘로 날아오른 녀석들에 당황한 소은이가 외치니,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유부가 소은이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런 유부가 장담한 대로, 새들이 다시금 자루를 들고 돌아왔다.
“웅? 우아! 이거 오또케 해써?”
“인간들의 힘을 좀 빌렸소이다. 방앗간이라고 했던 것 같소. 반짝이는 것을 조금 주고, 도움을 받은 것이외다.”
“똑똑한 새들은 인간들에게 도움을 빌렸어요. 까마귀들이 가지고 있던 동전과, 앵무새들의 협상으로 곡식들을 모두 도정해낸 것이었어요.”
과정이야 어찌 됐든, 소은이는 깨끗하게 도정된 곡식들을 보며 기뻐했다.
“콩쥐는 무척 기뻤어요. 이대로라면 정말 오늘 저녁은 브로콜리가 아닐 것이 분명해요.”
소은이는 다시금 찾아온 원숭이에게 당당하게 자루를 내밀었다.
“끼익…….”
“원숭이는 자기가 시킨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해낸 콩쥐에게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결국, 원숭이는 콩쥐가 원하는 저녁을 사주기로 했어요.”
원숭이가 소은이에게 배달음식 전단지를 주는 것과, 각종 해산물과 고기가 가득한 피자를 한 입 크게 베어 무는 소은이를 찍는 것을 마지막으로 촬영이 종료되었다.
“히히, 압빠! 이거 마시써!”
행복하다는 듯이 햄스터처럼 볼이 빵빵해질 정도로 피자를 입안에 넣고 씹는 소은이의 모습은 귀여움 그 자체였다.
“끼이이익! 난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다끽!”
“닥치샤! 감히 애기를 괴롭히다니, 용서할 수 없다는 거샤!”
“살려주라끽!”
뒤에서 소란이 이는 듯했지만, 귀엽게 피자를 먹는 소은이를 보고 있으니 딱히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