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78
0177 합동 훈련(1)
혹한이라고 해도 될 추위가 몰아치는 겨울날.
호빵이 먹고 싶다며 소은이와 함께 떼를 쓰고 있는 누나로 인해서 편의점으로 향했다. 뱃속에 있는 아기가 먹고 싶다며 소은이랑 껴안고 버둥거리는데 어떻게 안 들어 줘.
동물원 내부에도 간단하게 이런저런 것들을 파는 상점이 있긴 했지만, 그곳에는 호빵이 없기 때문에 산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느긋하게, 산책한다는 생각으로 털레털레 언덕길을 내려갔다. 어둑한 길이었지만 딱히 무섭거나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요즘 훈련은 어때요?”
“뭐……. 좀 힘들긴 한데, 실력 향상이 눈에 띄니 다들 열심히죠.”
내 경호를 위해 동행한 경호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몇몇 경호원들 중에는 흔히 말하는 ‘눈탱이 밤탱이’ 상태가 된 경호원들이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소은이의 경호 도중 실수한 것으로 인해 내가 열심히 굴려버렸기 때문이다. 캥거루와의 1:1 복싱대결을 진행했는데, 그 사건으로 인해 한껏 힘이 올라 있던 캥거루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이들의 눈에 멍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특별훈련을 진행한 덕분에, 경호원들은 한층 더 강력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운동 조금 했다고 자부하는 일반인들은 어떻게든 경호원들의 방심을 유도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반사 신경까지 얻게 된 것이었다.
지금이라면 갑자기 밀쳐내려 해도, 오히려 그 힘을 이용해 상대를 넘어트릴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쨌거나, 그렇게 경호원들과 함께 언덕길을 내려간 나는 곧바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호빵은……. 그냥 종류별로 다 사자.”
호빵을 고른 나는 고생하는 경호원들에게도 먹을만한 것들을 골라, 계산을 마쳤다.
“자, 드시면서 하세요.”
“감사합니다.”
경호원들이 넉넉하게 먹을 수 있을만한 양의 간식거리들을 넘겨준 나는, 호빵과 간식들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팔랑팔랑 흔들거리며 다시금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갑자기 경호원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어째서 그러는 건가 싶어 앞을 바라보니, 웬 시커먼 인간 하나를 볼 수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드러난 피부라고는 코와 입가 정도밖에 없는 인간이었다.
검은 머리, 검은 정장, 검은 선글라스, 검은 장갑. 검은색 성애자인가 싶을 정도로, 검은색 일색의 남자였다. 그는 경호원들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신수환님.”
“어……. 예, 안녕하세요.”
‘미친놈인가……?’
당장 이 자리에서 피해야 하나- 싶어 슬쩍 눈치를 봤다. 아무리 봐도 조금 정상인의 범주는 벗어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시간도 아니고, 겨울이라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상태였다. 그런데 앞이 보이긴 하는 건가 싶은 수준의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니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끼야아아아악!”
심지어, 괴물의 둥지가 이제 오픈한 직후였기에, 저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이 들려오니 괜히 무서워졌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그 온통 검은색의 남자는 무해한 모습을 보였다.
“괴한이나 강도 같은 범죄자는 아니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두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해칠 의사가 없음을 보여준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국정원에서 일하고 있는 원정국입니다.”
“……진짜 이름 아니죠?”
“글쎄요?”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원정국의 모습에 점점 더 미심쩍어졌다.
“일단, 제가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신수환님께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부탁이요?”
“예. 어떻게 보면 대단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부탁이죠.”
괜히 불안해지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원정국의 말은 정말 별 거 아니었다.
“저희 요원들의 훈련을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훈련이요?”
“예. 저희 측에서도 열심히 훈련을 하고는 있지만, 어디 훈련이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그 긴박함과 긴장감 등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부분을 신수환님의 동물들에게서 찾고자 함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내 말에 원정국이 큼큼- 목을 가다듬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조금 간단하게 말해서, 신수환님의 동물들과 대련을 하고 싶습니다. 통제된 상황에서의 훈련이 아닌, 까딱하면 위험할 수 있는 맹수와의 대련을 통해 실전 감각을 익혀주고자 합니다.”
몇 마디를 덧붙인 원정국의 말에, 나는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기들이 자체적으로 하는 훈련에는 긴장감과 긴박함이 부족하니, 그 부분을 맹수로 채우겠다는 것이었다. 요원들은 두려움을 극복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원정국의 지론이라고 했다.
“게다가, 지금 신수환님의 경호원분들이 동물들과 훈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호원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동물들이 드림팀이라고 하던가요?”
원정국의 말에 내 근처에 있던 경호원 중 한 명이 움찔거렸다. 자세히 보니, 최근 들어 드림팀에게 가장 심하게 시달렸던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원정국의 그 말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얼마 전에 있었던 그 사건 때문에 흥분했던 동물들이 조금 과격해졌기 때문이다. 흥분했지만, 그것을 차마 풀지 못했던 녀석들이 과격해진 것이었다.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경호원들을 열심히 굴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샌드백을 자처하는 사람이 있으니 나쁘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못할 건 없죠. 저희 경호원들도 하는 훈련이니까요. 대신, 무기 종류를 쓰시는 건 안 되고, 동물들에게 큰 상처를 입힐만한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는 것도 알아주셔야 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 목적은 공포를 심어주되, 요원들이 그 공포를 극복해 내는 방법을 스스로 깨우치길 바라는 거니까요. 혼자서 곰이나 호랑이를 때려잡는 요원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죠.”
요구하는 조건은 무조건 수용하겠다는 듯한 원정국의 모습에, 나 역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몇 가지 조건들을 더 주고받은 다음, 매달 하루씩 일정을 잡아 훈련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 ◑ ● ◐ ○ ◑ ● ◐ ○
“오늘이지? 오늘이지? 빨리, 오늘이라고 말해줘!”
“그래, 그러니까 좀. 코 좀 치워봐!”
나는 내게 코를 불쑥불쑥 들이미는 뿌우뿌우 녀석의 코를 잡고, 콧구멍을 찰싹 때렸다. 비어 있는 원통을 두드리듯 토옹- 소리가 울려 퍼졌다.
뿌륵! 소리를 내며 화들짝 놀란 뿌우뿌우 녀석이 살짝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녀석은 다시금 기대된다는 듯이 흥분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다름이 아니라, 경호원들보다 조금 더 거칠게 대해도 되는 이들이 찾아오는 날이 오늘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훈련 삼아 올 국정원 요원들을 샌드백이라고 알려준 탓이었다.
요원들을 가지고 놀 생각이 가득한 뿌우뿌우 녀석의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녀석에게 튼튼한 옷을 입혀주었다. 혹시라도 상처가 생기지 않게 막아주는 것은 물론, 추운 날씨에도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보온성이 뛰어난 옷을 입혀준 것이었다.
뿌우뿌우 외에도, 여러 동물들에게 옷을 입혀주며 오늘 밤에 찾아올 이들을 대비했다.
그리고, 괴물의 둥지 휴무일이라고 대외적으로 알려둔 밤이 되고, 새까만 어둠이 짙게 깔리니 검은색의 승합차 두 대가 스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반갑습니다. 그때 이후로는 처음이죠?”
인솔자로 온 건지는 몰라도, 원정국이 차에서 내리며 가볍게 인사했다.
그런데 그런 원정국의 뒤로 여러 사람들이 내렸는데, 그 모습이 꽤나 기괴했다. 원정국처럼 새카만 정장은 아니지만, 새카만 옷을 입고 내부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 검은색의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신분이 노출되면 안 되는 요원들이다 보니, 불가피하게 헬멧을 쓰고 있을 예정입니다.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그렇긴 하겠네요.”
아무리 요원들의 훈련이라 해도, 보안 시스템을 꺼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상황에서 신분 노출을 막으려면 얼굴을 가리는 것이 최고였다.
어쨌거나, 내가 원정국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요원이라는 사람들의 준비가 끝이 났다.
“훈련 과정에 대해서는 전해주셨죠?”
“그럼요. 신수환님의 경호원분들이 동물들과 연합하여, 저희 요원들을 공격하는 형태로 진행된다고 전해두었습니다. 역할은 일종의 탈출로, 동물원의 끝부분에 있는 도착점에 성공적으로 도착하면 끝이라고 딱, 전해두었습니다.”
“주의사항도 다 전해주셨죠?”
괜히 요원들을 더 굴리겠다고 주의사항 같은 것들을 전해주지 않았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걱정과 다르게, 원정국은 요원들에게 주의사항을 모두 전해준 듯했다.
“그럼 시작하죠.”
나는 곧바로 동물원의 입구를 열어주었다. 평소 신수의 둥지나, 괴물의 둥지 때와는 다르게 꽤나 흉흉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 분위기를 느낀 건지, 요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뒤에서 어서 가라고 재촉하는 원정국의 외침에, 그들은 천천히 동물원 내부로 입장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 중 한 명이 비명을 내질렀다.
“후끼야아아악!”
다름이 아니라, 입장하는 것과 동시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누렁이가 그대로 한 요원의 몸을 옥죄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렇게 몸을 휘감은 누렁이는 가볍게 맛이라도 보듯이 요원의 헬멧을 핥는 것처럼 혀를 낼름거렸다.
당연하게도 그렇게 누렁이에게 붙잡힌 요원을 구하기 위해 다른 이들이 달라붙었지만, 이미 거대 뱀 수준으로 자라난 누렁이를 떼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제길……. 포기한다. 빠르게 목표지점으로 향하는 걸 목표로 하겠다. 이동!”
“사, 살륩……!”
자신을 포기한다는 대장격 인물의 말에, 누렁이에게 붙잡힌 사람이 무어라 외치려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빠르게 누렁이가 그 요원의 가슴팍을 강하게 압박하며 말을 끊어버렸다.
그 모습에 정말 가망이 없다고 느낀 건지, 다른 요원들은 재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먼 거리를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이 입장했음을 알게 된 동물들이 하나둘씩 그들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끄억!”
갑자기 소리도 없이 나타난 곰 한 마리가 등 뒤에서 날린 펀치를 맞은 한 요원이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며 날아갔다.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는 모습을 보아,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한 요원들은 그 요원 역시 버려두고 이동을 이어갔다.
“와, 내가 살다 살다 국정원 요원을 공격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그런 그들을 가로막는 무리가 있었다. 바로, 내 경호원들이었다. 동물과 경호원들이 힘을 합쳐, 요원들을 상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총 세 명의 경호원들의 곁에는 원숭이와 캥거루가 자리하고 있었다.
“경기와 인천이 캥거루, 영월과 제주가 원숭이. 나머지는 경호원들을 맡는다.”
그래도 나름 사람들을 상대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원들은 그들을 상대로 적절한 인원을 분배했다.
“캥거루는 뒷발차기가 무척 위협적이니 주의하, 컥!”
캥거루를 상대하기 위해 나선 요원, 경기와 인천은 캥거루의 뒷발차기를 경계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행동이었다.
경호원들을 상대하며 복싱에 눈을 뜬 캥거루였기에, 뒷발만 경계하고 있던 경기와 인천에게 레프트 훅을 날린 것이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공격이 날아오는 것에, 경기와 인천은 그대로 쓰러졌다. 턱을 잘못 맞은 덕분에 그대로 몸에 힘이 풀리며 기절한 것이었다.
당연히, 그 모습을 보며 요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캥거루에게 요원 두 명이 1분도 버티지 못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