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84
0183 불법 건축물(2)
지하에 많은 수의 굴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지반이 약해진다는 것이었다.
내부가 그득하게 가득 차 있어, 위에서 아래로 쏟아질만한 것이 없는 상태가 더 단단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 부분이 걱정되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토목이나 건축 관련된 전문가가 필요했기에, 쉽지 않았다.
내가 따로 토목이나 건축 관련된 전문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설팀도 지하의 굴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좋을까- 하던 도중,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인물이 있었다.
무인도에 조난당한 컨셉으로 촬영할 때 알게 된 인맥이자, 간간이 연락 정도는 주고받는 권설도가 떠오른 것이었다.
건설에 관련된 초능력자이자, 방송을 타며 나름대로 유명해진 권설도는 현재 예정되어 있던 입대마저 미루고 박사 학위를 향해 쭉 내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설도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하는 통신사 기본 컬러링이 잠깐 울린 다음, 설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ㅂ…….”
“형님! 오랜만입니다!”
“……어, 그래. 반응 빠르네.”
“이 정도는 기본이죠!”
활기차게 전화를 받은 설도의 목소리에 피식 웃은 나는 간단하게 안부를 물었다.
“잘 지냈지?”
“아, 말도 마세요. 교수님이 얼마나 들들 볶는지, 그냥 군대나 갈 걸 그랬어요.”
“네가 선택한 박사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하아…….”
장난스럽게 외치니 설도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힘든 듯했다.
그래도 버틸만하다는 설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곧장 본론을 꺼냈다.
“설도야. 하나 좀 물어보려고 하는데, 우리 동물원 지하에 굴이 좀 많이 생겼거든? 동물원 전체에. 괜찮을까? 뭐, 싱크홀 그런 거.”
“굴이요?”
“응. 토끼굴……이라기엔 조금 크긴 하네. 카피바라 알지? 그런 녀석들이 충분히 돌아다닐 수 있는 수준의 굴이 동물원 전체에 퍼져 있어.”
내 말에 설도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곧바로 영상을 매우 빠른 배속으로 편집하고 압축해, 설도에게 보내주었다.
“형님, 이거 뭡니까? 이거 진짜예요?”
“진짜야. 이런 게 있다는 건 나도 오늘 알았어.”
“와…….”
지하에 있는 굴이 사실이라는 말에 설도가 여러 반응을 보였다. 신기함, 황당함 등등. 그걸 말로 하자면 ‘이게 왜 진짜임?’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반응을 보이던 설도는 금세 이야기를 이어갔다.
“형님. 일단 제가 지금 이렇게 영상만 보고 말씀드리긴 힘들 것 같고, 내일 제가 찾아갈게요.”
“직접 오게?”
“네. 저런 건 저도 처음 보는 거라……. 직접 봐야 뭘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너 지금 서울 아냐? 거기서 오는 거면 좀 미안한데.”
“괜찮아요. 그런 걸 살면서 언제 보겠어요? 그런 걸 보는 것만으로도 저한텐 좋은 경험이 되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설도의 말에 납득한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설도는 정말 다음날 아침 일찍 찾아왔다. 전날 전화를 끊은 직후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와서 숙박하고, 아침부터 찾아온 것이었다.
“형님!”
짐을 한가득 짊어지고 찾아온 설도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다음, 설도와 굴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굴은 동물원 전체에 있는 상태였기에, 처음 발견한 굴의 입구로 향했다.
“이겁니까?”
“어. 처음에는 아주 그냥 잡초 같은 것들로 입구를 가려놔서, 있는 줄도 몰랐다니까.”
고개를 내저으며 말하니 피식 웃은 설도가 내시경 카메라 같은 것을 굴속으로 밀어 넣었다. 조명까지 달린 카메라가 내부로 길게 들어갔다.
“오오……. 제법 잘 파 놨는데요?”
카메라로 내부를 확인한 설도는 머리와 팔을 억지로 굴속에 밀어 넣었다.
내부를 이리저리 측정하는 듯한 설도는 금세 흙이 가득한 몰골로 빠져나왔다.
“형님, 크게 걱정하실 필요까진 없을 거 같은데요?”
“그래?”
“동물들이 굴을 정말 잘 파 뒀어요. 단순히 흙을 파내서 만든 굴이 아니라, 내부를 완전히 다져놨어요. 게다가, 주변 하중을 분산할 수 있도록 굴의 형태도 꽤 좋은 상태예요.”
나무뿌리가 있어 땅을 잡아주는 곳 위주로 굴이 파져 있고, 이미 있는 굴 바로 옆으로는 다른 굴이 없다며 무너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주었다.
“그럼 이대로 놔둬도 되는 거야?”
“음……. 꼭 그런 건 아녜요. 비가 한두 번 오는 건 괜찮은데, 비가 오면 올수록 내구성이 약해질 거니까요. 아무리 다져놨다지만 흙이라, 빗물에 약하거든요.”
“그럼 굴을 다 없애야겠네.”
내 말에 설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고개를 끄덕이던 설도가 갑자기 머리를 붕붕 흔들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형님. 이참에 제대로 정비해서, 굴을 하나의 관광 아이템으로 만드시죠?”
“관광 아이템?”
설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떠오른 생각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굴의 형태는 고스란히 두되, 사람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확장한 다음 배수로를 비롯해 전기 공사를 해서 관광지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오……. 나쁘지 않은데?”
“그렇죠? 한 번 해보시는 게 어때요? 저한테 맡겨주세요. 제가 튼튼하게 만들어보겠습니다! 겸사겸사 제 커리어에도 한 줄 좀……. 흐흐.”
“다 목적이 있었구만?”
“이런 쪽으로 공사하는 것도 나름대로 커리어가 되니까요. 물론, 형님이 원하실 때 이야기죠.”
나는 히죽히죽 웃는 설도의 머리를 꾹- 눌렀다. 좋다고 한 이유가 있었네.
하지만 딱히 그 의견이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굴을 메운다고 해도 꽤 큰 공사를 해야 하는데, 기왕 공사를 하게 되는 거면 관광지로 쓸 수 있는 것이 남는 게 더 좋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토끼를 비롯한 동물들이 열심히 만들어놓은 걸 마냥 부수면 동물들에게 좋다고 할 수도 없었고.
결정을 내린 나는 설도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 부탁한다. 네 초능력이 있으니까, 튼튼하긴 하겠네.”
“걱정 마십쇼 형님. 안전에 관해서는 조금도 문제가 없도록 만들 테니까요!”
대나무와 덩굴만 사용해서 폭풍을 버티는 집을 만들어내는 설도였다. 안전에 대해서는 정말 믿을 수 있었다.
나는 설도가 알려준, 공사를 위한 각종 절차를 진행했다.
공사에 관한 허가를 비롯해 각종 행정적인 절차를 진행한 것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 있을 거라는 설도의 말과 다르게, 내가 진행한 민원은 정말 빛의 속도로 처리되었다.
시장과 구청장 모두 국회의원 출마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탄원서를 좀 보내달라는 말에 100만 장이 가볍게 쌓여버린 일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내게 잘 보이려 하는 경향이 있었다.
단 1표 만으로도 당락이 갈릴 수 있었으니,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것이었다. 괜히 내가 저 사람 때문에 힘들었다- 한 마디 하는 걸로 당선될 것도 낙선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마침 휴가라던 구청장은 내가 와서 민원을 처리한다는 소식에 당장 달려와 자기가 직접 일 처리를 감독할 정도였다.
어쨌거나, 그렇게 행정절차를 마무리 한 나는 곧장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공사는 시작했지만, 인부들을 불러 모으지는 않았다. 첫 시작은 동물들과 설도 위주로 진행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여기를 좀 파 줘.”
설도가 한곳으로 가리키며 흙을 파는 시늉을 하니, 카피바라 한 마리가 그 자리에서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곳을 지정해 주니, 동물들이 열심히 땅을 파내는 모습을 보였다. 토끼즈, 카피바라, 족제비, 개 등등. 여러 동물들이 동시에 땅을 파기 시작하니 굴이 금세 확장되어갔다.
“나두 할래!”
소은이도 내가 화단 정리를 할 때 쓰는 모종삽을 가져오더니 땅을 콕콕 파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설도의 진두지휘 아래 굴이 확장되며, 여러 작업이 함께 진행되었다.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대를 세우고, 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시멘트를 바르고, 비가 와도 물이 고이지 않도록 배수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전기 역시 들어가며 내부에 조명이 밝혀지기 시작했고, 환기를 위한 팬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지하에는 널따란 굴이 생겨갔고, 약 한 달 가량 흘렀을 때. 드디어 관람객들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시설이 만들어졌다.
당연하지만, 굴의 내부는 이전과 꽤나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내부에는 시멘트를 바르긴 했지만 그 위로 다시 흙과 이끼를 덮었고, 구석구석에 동물들을 위해 자그마한 굴을 추가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어때? 처음이랑 조금 많이 달라지긴 했는데, 마음에 들어?”
굴의 최초 주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토끼즈를 비롯한 동물들을 불러 모아, 완성된 굴을 보여주었다.
“예전 거가 조금 더 아늑하긴 했샤. 하지만 여기도 엄청 좋은 거샤!”
“저는 좋은 것 같네요. 여기 있으면 사람들도 오는 거잖아요? 보금자리에 누워서 사람들에게 예쁨 받는다니! 환상적인데요?!”
“조금 더 어두웠으면 좋겠지만, 이 정도도 괜찮긴 해요.”
자기들 몸에 맞춘 굴이었던 것에 비해, 사람들도 드나들 수 있을 크기였기 때문인지 완벽한 만족을 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대부분 만족하고 있었다. 특히, 카피바라는 보금자리에서도 사람들과 부대낄 수 있다는 것이 좋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동물들이 조용히 쉴 수 있는 부분도 따로 만들어두었기에, 동물들은 굴이 바뀐 것에 대해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환기도 되고 온도 조절도 되니 더 좋다는 녀석도 일부 있을 정도였다.
나는 동물들도 굴 안에 자리를 잡고,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하고서 지하굴이라는 이름을 붙인 굴을 관람객들에게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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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굴이 오픈한 뒤로, 사람들은 대체로 괜찮다는 평을 내리고 있었다.
특히, 지하굴에는 새끼 동물들이 많다 보니 새끼 동물들만 보러 가려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 되었다.
주변이 막혀 있고, 조명도 야외에 비해 조금은 어둡고, 아늑하기도 하니 새끼 동물들이 그곳에 모여 있는 것이었다.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이곳은 안전하다- 라고 느끼며 모여든 것이었다. 온갖 새끼 동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보니 사람들 중 일부가 ‘지하 보육원’이라는 이름을 지어낼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소리가 울리는 굴 특성상 내부에서 정숙하도록 유도하는데다, 온도도 언제나 일정하게 유지되니 사람들도 굴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있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지하굴은 조용히 휴식하면서 새끼 동물들이 저들끼리 뒤엉키는 모습을 보며 힐링하는 장소가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