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91
0190 동물 구조대! (4)
통신 장치가 작동하며, 지하 공동에 매몰된 이들과 연락이 닿게 되었다.
“아아, 저희는 구조대입니다. 들리십니까? 들리신다면 붉은빛이 나는 부분을 잡고 말씀해 주십시오.”
“드, 들려요……. 제발 살려주세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현재 여러분들을 구조하기 위해 모두가 힘쓰고 있습니다.”
매몰자들을 안심시키겠다는 듯, 마이크를 잡은 소방관이 차분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구조가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고, 물과 식량을 주었으니 일단 안전한 곳에서 음식을 먹고 체력을 보존하고 있으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혹시, 부상자 있습니까? 따로 반드시 필요한 약물이 있는 분들은요?”
“제가 팔 쪽이 조금 많이 까졌는데…….”
“응급처치를 위해 소독약과 거즈 등을 내려보내겠습니다. 제대로 된 처치는 저희가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뵙고 해드리겠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혈압약을 드셔야 하는데, 혹시 있을까요?”
“성함과 주민번호를 말씀해 주시면 저희가 해당 약품을 바로 공수해 드리겠습니다.”
약품을 공수해 주겠다는 것과 동시에, 소방관 중에서도 구급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해둔 약품들을 파이프에 들어갈 정도로 소분해서 포장하고, 파이프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필요한 의약품까지 전달해 주니, 매몰자들이 안도하는 모습이 내시경 카메라에 찍히고 있었다.
“저희는 여러분들을 구출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포기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매몰자들이 안도했다고는 해도,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며 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두더지들을 다시 불러냈다.
“또 일을 시켜서 미안한데, 이번에는 내려가면서 조금 넓적하고 튼튼한 콘크리트를 좀 찾아줄래? 그걸 찾으면 그 콘크리트의 중심부터 지상까지 올라오면 돼. 할 수 있어?”
두더지들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금 땅을 파고 내려갔다.
그리고, 십여 분 가량 기다리고 있으니 땅이 잠깐 들썩이다가, 두더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도 내 요구를 착실히 따라준 녀석들을 풍족한 간식과 함께 청호의 가방에 다시금 넣어주었다.
“파이프가 조금 부족할 것 같은데……. 조금 더 필요하십니까?”
“아뇨, 이번엔 파이프를 쓸 건 아니에요.”
나는 라숙규의 물음에 고개를 내저으며, 멀뚱멀뚱 기다리며 주변의 풀을 씹던 토끼와 카피바라들을 불러냈다.
“이번엔 너희들이야. 저번에 굴을 팠던 것처럼 파면되는데, 이번에는 아래로 쭉 파고 내려가야 해.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면 될 것 같아. 대신, 콘크리트가 나올 때까지만 파 줘.”
“맡겨 주샤!”
“이렇게 해서 인간들이 좋아한다면 얼마든지 해드리겠어요!”
“아앗! 같이 파야 하는 거샤!”
“인간들의 사랑은 우리가 독차지하겠다는 거예요!”
“뀨엑!”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토끼와 카피바라들이 바닥을 헤집으며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녀석들을 하나씩 잡아, 기다란 로프가 연결된 하네스를 채워주었다.
하네스까지 차게 된 녀석들은 아주 빠르게 땅을 까내리며 지하로 내려갔다.
굴을 단단하게 만들던 것처럼 파낸 흙을 이용해 벽까지 다지면서 내려가니 두더지에 비하면 조금은 느린 속도였다.
하지만 숫자가 제법 많았기 때문에, 사람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정도는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이를 가진 굴이 빠르게 뚫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 시간 가량 기다리고 있으니, 새카만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 굴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다 판 거샤!”
“이제 올려달라는 거샤. 털 다 더러워졌샤.”
“이리 와요. 내가 깨끗하게 핥아줄게요!”
“뀨엑! 저리 가라는 거샤!”
내부에서 토끼즈와 카피바라가 뒤엉켜 노는 듯한 소리가 지상까지 울렸다.
나는 그 소리에 피식 웃으며, 근처에서 대기하던 콩콩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콩콩이가 손에 쥔 로프를 빠르게 휘감기 시작했다. 토끼즈와 카피바라에게 채워준 하네스와 연결된 로프였는데, 그것이 빠른 속도로 감겼다.
“나왔샤!”
빠르게 감긴 로프 덕에, 지하 깊은 곳까지 내려갔던 토끼즈와 카피바라가 금세 지상으로 올라왔다. 녀석들은 흙으로 더러워진 몸을 털어내고서 저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들에게도 수고했다는 의미로 간식을 넉넉하게 챙겨주고, 아직까지 활약하지 않은 한 녀석을 불러들였다.
“이번에는 네 차례야.”
나는 넓적한 꼬리로 바닥을 툭툭 두드리는 비버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어 보였다.
“이 구멍 맨 밑에 콘크리트가 있을 거야. 거기에 구멍을 뚫으면 되는데, 철근도 있을 거야. 그것도 뚫은 다음에 무너지지 않도록 보강 좀 해줘. 할 수 있어?”
“물이 없어서 조금 힘들긴 하겠지만……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내 말에 가능하다며 꼬리로 바닥을 두드리는 비버의 모습에, 나는 녀석에게도 하네스를 채워 구멍으로 내려보냈다.
구멍에서 까각까각 소리가 들려오고, 꼬리로 뭔가를 두드리는 건지 찹찹찹 소리도 들려왔다.
그리고, 그렇게 구멍 안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던 녀석은 어떻게 온 건지는 몰라도 구멍을 기어올라왔다.
“나무도 진흙도 없어서 힘드네요.”
“그럼 좀 갖다 줄까?”
“비버는 건축에 관해 도움받지 않는다아아악!”
이상한 놈. 나는 비버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그 사이, 적당한 흙과 나뭇가지 같은 것을 알아서 조달한 비버 녀석이 다시금 구멍으로 쏙- 기어들어갔다.
이후에도 한동안 구멍 안에서 소리가 나고, 비버가 오르내리길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덧 노을이 져가는 시간 즈음이 되니, 비버가 다시금 올라왔다.
“휴! 힘들었다!”
지하에서 올라온 녀석은 힘들었다며, 그대로 바닥에 추욱- 널브러졌다.
나는 녀석을 들어 올려, 다른 동물들이 쉬고 있는 곳에 내려놓았다.
카피바라가 지친 비버에게 슬쩍 먹이를 밀어주는 모습을 보며, 라숙규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내시경 카메라 하나만 더 갖다주시겠어요?”
라숙규는 자기가 지휘관이라는 것도 잊었는지, 호다닥 달려가 내시경 카메라를 들고 왔다.
그 내시경 카메라를 이용해 비버가 다져놓은 구멍 내부를 확인했다. 겉면에 발라진 진흙은 벌써 말라붙어 단단하게 굳어 있었고, 중간중간 약할 것 같은 부분에는 나뭇가지가 박혀 튼튼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그런 구멍이 길게 이어지다가, 콘크리트 구조물을 지나 지하 공동이 보였다. 내부에 있던 매몰자들이 희망 가득한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저거 철근 자른 겁니까?”
“아, 네. 저희 동물원 비버 이빨이 좀 튼튼해서요.”
“튼튼한 걸로 저런 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동물이 철근을 갉아내냐고 중얼거리는 라숙규를 가볍게 무시하고, 내시경 카메라를 끌어올리며 견적을 잡았다.
“두 명은 조금 무리고, 한 명 정도는 들어갈 수 있겠네요.”
“아, 그럼 저희 구조대원을 투입하겠습니다.”
나를 들여보낼 생각이 없다는 듯한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내가 직접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누나랑 약속하기도 했고.
“도르래 가져와! 견인 장치도!”
“아, 그건 필요 없어요. 그냥 튼튼한 로프에 하네스 정도만 가져오시면 돼요.”
“예? 그럼 어떻게 진입을……. 아.”
내가 곁에 있던 콩콩이를 가리키니, 라숙규가 이해했다는 모습을 보였다.
라숙규는 도르래 대신, 투입될 구조대원과 하네스와 같은 안전장치들을 가져오게 시켰다.
“어?”
그런데, 지하로 투입될 구조대원을 바라본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요, 수환쓰.”
“조구대, 네가 여기에 왜 있어?”
“……소방관한테 현장에 왜 있냐고 묻는 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아, 맞다. 너 소방관이었지.”
지하로 투입될 사람이 내 친구 중 유일한 소방관인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매번 바쁘다고 못 만나던 녀석이었는데,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
“나중에 술이나 한 잔 사라?”
“갑자기?”
“……누군가가 파이프를 가져오라고 하셔서 열심히 저 밑에서부터 낑낑거리면서 들고 왔거든.”
“아.”
구대 녀석의 말에 잠깐 미안함이 들려다가, 사라졌다.
“사람 구하는 건데 하지 마?”
“……가불기로 치고 들어오네. ”
“흐흐, 그래도 술은 사줄게. 지금 고생할 사람은 너잖아?”
“제기랄.”
구대는 투덜거리면서도 피식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하네스를 걸치며 재빠르게 로프를 연결했다.
“얘가 중형차도 들어 올린다고 했나?”
“그렇지. 사람 한 명 끌어올린다고 버거워 할 리가 없으니까 걱정 마.”
“잘 부탁한다.”
콩콩이에게 다가가 팔뚝을 가볍게 두드린 구대가 구멍으로 천천히 몸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구멍 근처에 자리를 잡은 콩콩이가 로프를 잡으니, 녀석은 구멍에 하반신을 넣고 대롱대롱 매달린 형태가 되었다.
“콩콩아, 천천히 내려.”
내 지시에, 콩콩이가 둘둘 말린 로프를 조금씩 풀어내며 구대를 지하로 내려보냈다. 그렇게 몇 번 움직이다 보니, 팽팽하던 로프가 어느 순간부터 느슨해졌다.
“모시러 왔습니다! 한 분씩 지상으로 올라갈 테니, 현재 몸이 아프신 분들부터 이동하겠습니다!”
줄이 느슨해지고, 곧바로 구멍에서 구대가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그리고, 아래에서 주의사항을 설명해 주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줄이 두어 번 당겨졌다.
“들어 올려. 천천히. 그렇지.”
그것이 들어 올리라는 신호임을 알기에, 콩콩이를 시켜 줄을 다시 말아올렸다. 다시금 팽팽해진 줄을 계속 감아올리니, 꽤나 초췌해진 모습의 어르신 한 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
정말 매몰자가 지상으로 빠져나오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환호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구조대원들이 빠르게 몰려와, 어르신을 모시고 갔다.
뒤편에서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가 터지는 것을 바라보던 나는 다시금 로프를 아래로 내려주었다.
그렇게 매몰자들이 한 명씩 구조되어, 지상의 땅을 밟기 시작했다.
이윽고 가장 마지막으로, 매몰자들의 구조를 위해 진입했던 구대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생했어.”
“……야. 너 조금 전에 멈추려고 했지?”
눈치 빠르긴. 기자들도 있어서 하려다가 말았는데, 로프에 매달려 있다 보니 그걸 알아차린 것 같았다.
“나는. 모르는. 이야기. 입니다.”
“야이씨.”
누가 봐도 연기하는 티가 나는 내 모습에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린 구대는 고개를 내저으며 나중에 보자는 이야기를 남기고 구조자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녀석이 사라지자마자 라숙규가 다가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저희 동물들이 다 했죠 뭐.”
“그래도 선생님이 아니셨다면 이 동물들이 있었어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나를 치켜세우는 듯한 라숙규의 모습에 괜히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피곤하실 테니 댁까지 모시겠습니다.”
귀가하는 것도 헬기로 책임지겠다는 듯한 라숙규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금세 동물원으로 돌아왔다.
기자들이 들러붙으려 했지만, 알게 모르게 소방관들이 기자를 막는 듯한 모습을 보인 덕분에 기자들에게 붙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조만간 다시 뵙겠습니다.”
“다시요?”
“거의 확정적으로 선생님께 표창장이나 감사패를 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상을 주겠다는 말에 잠시 얼떨떨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못 받을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압빠아아아!”
“다녀왔어?”
현관을 열자마자 소은이가 달려오고, 누나가 웃으며 맞이해주었다.
“압빠가 최고야!”
“정말? 아빠가 최고야?”
“웅!”
내가 최고라며 볼에 뽀뽀를 쪽쪽- 해대는 소은이의 모습에 무척 보람찬 느낌이었다.
그런 소은이를 안고서 거실로 가니 뉴스가 방영되고 있었다.
“……매몰자 9명이 모두 구조되었으며 이들을 구조한 것은 유명 뮤튜버이자, 부산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초능력자 신수환씨로…….”
뉴스에는 내 사진이 큼지막하게 나오다가, 내가 동물들과 함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던 당시의 모습이 찍힌 영상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영웅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며, 소방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신수환씨에게 감사패와 표창장을 비롯한 보상이 지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어우, 조금 부끄러운데.”
뉴스에서 내가 영웅이라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괜히 부끄러워지고,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히히.”
그래도, 그 뉴스를 보며 좋아하는 소은이를 보니 금세 괜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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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몰자들을 구조한 뒤, 나는 한동안 제발 인터뷰 좀 해달라는 기자들에게 시달렸다. 모두 불러 모아놓고 인터뷰를 해줘도, 다음날이면 또 다른 사람들이 찾아와 또 해달라며 엉겨 붙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에게 시달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연락이 왔다. 라숙규가 말했던 그 표창장과 감사패의 수여에 관한 연락이 온 것이었다.
당시 참여한 동물들을 데리고 왔으면 한다는 말에, 녀석들을 모두 데리고 연산동에 위치해 있는 소방본부로 향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직접 내려왔다는 소방청장에게서 표창장을 비롯한 감사패를 건네받았다.
노고를 치하한다 같이 온갖 미사여구로 꾸민 글이 가득한 것들을 받고, 소방청장과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으니 수여식이 끝났다.
하지만 수여식이 끝났을 뿐이었다. 아직 치러질 식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바로, 구조에 참여한 나와 동물들을 명예소방관으로 위촉하는 것이었다.
“콩콩이. 위 고릴라는 앞장서 인명 구조에 힘썼으므로 명예소방관에 임명함.”
소방청장은 구조에 참여한 동물들에게, 각자 머리에 맞는 형태로 특수 제작한 듯한 소방 모자를 씌워주며 상장을 건네주었다.
내가 따로 통역을 해주지 않았기에 동물들은 뭐가 뭔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모자 하나는 마음에 드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