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02
0201 진화의 섬(2)
스슥, 스슥.
다이어리에 여러 내용들을 기입한 나는, 다이어리를 탁- 소리가 나도록 덮었다.
“열심히 자라라.”
다이어리를 가방에 넣은 나는, 조금 전에 심어두었던 식충 식물인 네펜데스를 가볍게 톡 건드렸다.
그러자, 굳게 닫혀 있던 포충낭의 덮개가 스르륵- 열렸다. 마치 이제 사냥할 준비가 되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게 지금 열리네. 보자……. 내가 그걸 들고 왔던가?”
포충낭의 덮개가 열리는 것을 본 나는, 가방을 뒤졌다.
잠시 물건들을 뒤적거리던 나는 손에 익숙한 자그마한 통을 잡아 꺼냈다.
그 통은 밀웜이 들어 있는 통이었는데, 그 안에서 적당한 크기의 밀웜 두 마리를 꺼내 포충낭에 톡톡 떨어트렸다.
“오, 닫힌다.”
밀웜을 떨어트리고 잠시 기다리니, 열렸던 포충낭의 덮개가 닫혔다.
그 모습을 보고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충낭이 열리고 닫히는 건 신기하긴 했지만, 그것을 마냥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주변에 가루 형태의 식물 영양제를 흩뿌려놓고서, 천천히 섬의 더 깊은 곳을 향해 걸어갔다.
“너 이 자식! 내 걸 훔쳐 먹어?!”
“그우우우우우아아아우아에엑!”
“가만두지 않겠다!”
도중에 고라니와 멧돼지의 추격전 아닌 추격전을 구경하게 됐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갔다.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아니, 완전히 닿지 않았던 숲으로 들어가니 걷는 것이 제법 힘들었다.
앞을 나아가려는 것을 막는 넝쿨, 길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듯이 틀어막고 있는 수풀 같은 것들을 피해 가며 더더욱 깊은 곳으로 향했다.
“하, 길을 따로 만들던가 해야지.”
어렵게 길을 만들어가며 걸어가고 있으니, 내 초능력에 내가 영향을 받으며 강해진 체력으로도 버티기 힘들었다.
헉헉거리며 올라가고 있으니, 근처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마치 바이올린을 잘 못 연주해서 삐이익- 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풀어둔 몇 마리의 동물들 중 한 마리가 내는 소리가 분명했기에, 녀석을 확인하기 위해 그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다가갔다.
“아 나, 진짜! 좀 빠져요! 쪼오오옴!”
“……너는 또 뭐 하는 거야.”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넝쿨에 뿔이 휘감겨 있는 채로 버둥거리고 있는 사슴을 말이다.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도 더 큰 높이에, 덩치도 꽤 커다란 녀석이 뿔에 넝쿨이 휘감긴 채로 낑낑거리고 있었다.
낑낑거리던 녀석은 나를 발견하고서 반색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어? 왔어요? 그럼 저 좀 구해주실래요?”
“뭐 하다가 넝쿨에 걸린 거야?”
“여기에 맛있는 게 있어서 정신없이 먹다 보니까, 꼈지 뭐예요.”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녀석의 뿔에 걸린 넝쿨들을 풀어주었다. 고구마 줄기가 그러했듯, 당기는 것 정도로는 잘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날붙이로 끊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휴……. 죽는 줄 알았네요.”
고개를 처박은 상태로 넝쿨에 걸려 있던 탓인지, 사슴 녀석은 목을 거칠게 흔들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뿔이 꽤나 위협적으로 붕붕 흔들렸지만, 녀석은 그 뿔이 나나 다른 나무에 닿지 않도록 신경 써가며 목을 흔들었기에 위험하지는 않았다.
“어우, 좋다.”
목을 뿌득뿌득 흔들어 스트레칭을 마친 녀석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몇 번 뛰는 것으로 스트레칭을 마무리했다.
“나 없는 동안 별일 없었어?”
“뭐, 딱히 없었어요. 넝쿨에 걸려 있던 거 빼면요.”
은근슬쩍, 자신의 뿔을 휘감고 있던 넝쿨을 짓밟는 녀석의 모습에 피식 웃음 지었다.
녀석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녀석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섬 전체를 둘러보려는데, 좀 태워줄래?”
“얼마든지요!”
성질이 더럽다고 하는 사슴 치고는 꽤나 유순한 모습으로, 녀석이 등을 내어주었다.
살짝 몸을 낮춰주는 녀석의 행동에 바닥을 가볍게 박찼다. 녀석의 등으로 훌쩍 뛰어오르니, 커다란 뿔이 내 시야 앞을 살짝 가리고 있었다.
“뿔 잡아도 돼?”
“어……. 뿔은 좀…….”
뿔이 머리에 연결되어 있다 보니, 녀석은 뿔을 잡으면 불편할 것 같다며 목덜미를 잡아달라 요구했다.
와피티 사슴이라는 종의 수컷으로, 앞다리를 기준으로 해서 머리까지 조금 짙은 색의 두터운 털을 가진 녀석이었다.
나는 그런 녀석의 목덜미 털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어디로 갈까요?”
“음, 일단 덩치한테 갈까.”
“엑.”
덩치, 이 섬에 내가 풀어둔 한 마리의 곰이었다. 그 녀석을 언급하니, 사슴이 질색했다.
야생에서 살다가 상처로 인해 구조되어 동물원에 있던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곰이라는 천적을 잘 알고 있는 녀석이다 보니, 곰을 만나러 간다는 것에 질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교육한 덕분에 자기들끼리 잡아먹는 일은 없었다. 그 사실을 잘 아는 녀석은 조금 떨떠름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커다란 뿔을 가지고도 숲을 잘 누비면서 다니는 녀석이었기에, 녀석은 나를 태우고 빠르게 걸었다.
몇 번 말을 타보긴 했는데, 그때 탔던 말 보다는 승차감이 꽤 좋게 느껴졌다. 내 초능력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사슴이라 그런 건지는 몰라도, 제법 좋았다.
“너 승차감 좀 좋다?”
“후후후! 고마워요!”
승차감이 좋다는 소리에 사슴은 왠지 뿔을 더 도드라지게 고개를 내밀었다. 마치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며 뽐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다음에는 소은이도 한 번 태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원의, 일정 수준 이상으로 덩치가 크면서 어느 정도 속도를 낼 수 있는 동물들을 모조리 타본 소은이라면 이 사슴을 무척 좋아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언제가 됐든 무하마드가 뽀니를 데려갈 텐데……. 그땐 얘를 타고 다니라고 할까?’
심지어 추후 뽀니가 떠나게 된다면 그 대신이라고 하긴 조금 그렇지만, 이 녀석을 타고 다니게 해도 될 것 같았다.
“나중에 내 딸도 한 번 태워줄래?”
“당신의 아이라면 얼마든지요!”
“아마 직접 보면 오히려 네가 태우고 싶어 할걸?”
“기대되네요!”
정말 기대라도 된다는 듯, 녀석의 발걸음이 통통 튀듯 경쾌해졌다.
그렇게 통통 튀는 듯한 녀석을 타고 빠르게 나무들을 헤치고 나아가다 보니 어느덧 덩치 녀석이 주로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섬의 형태는 두 개의 산봉우리가 이어져 있는 듯한 형태였는데, 선착장의 바로 앞에 있는 첫 번째 봉우리를 지나고 내리막길로 접어들다 보면 보이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
그 연못이 바로 덩치 녀석이 이 섬에서 가장 좋아하며, 자주 자리하고 있는 장소였다.
“음? 없네?”
덩치가 보이지 않는 것에,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덩치가 이 섬에 온 이후로, 이곳에서 떠나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녀석은 떠난 것이 아니었다.
촤아악!
잔잔한 연못의 수면이 갑자기 솟구치더니,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여 덩치라는 이름이 붙은 덩치 녀석이 수면 아래에서부터 솟아올랐다.
수면 아래에서 솟아오른 녀석은, 내가 왕창 풀어두었던 물고기들 중 한 마리를 베어 문 채로 나타났다.
“사냥하고 있었네요. 어우, 저 이빨 좀 봐. 물어뜯길까 무섭네요.”
팔뚝만 한 물고기 하나가 덩치의 날카로운 주둥이에 물려 있는 그 모습을 보며, 사슴 녀석이 부르르- 떨었다.
사슴의 등을 타고 그 진동이 느껴졌기에, 나는 피식 웃으며 사슴에게서 내린 다음 덩치에게로 다가갔다.
“잘 지냈어?”
“우므우믐. 음음움응.”
“……그건 좀 뱉고 말해줄래?”
“퉤엡. 나는 잘 지냈다! 여기 너무 좋다! 시끄럽지 않아서 더 좋다!”
덩치 녀석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물고 있던 물고기를 뱉어내고 대답했다.
이 섬이 무척 좋다는 듯한 녀석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풍성한 털은 물에 폭삭 젖어 초라한 몰골이 되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녀석의 거대한 덩치가 도드라지고 있었다.
흔히들 ‘그리즐리 베어’라고도 하는, 회색곰 특유의 거대하고 강인한 신체가 고스란히 보여지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내 초능력의 영향을 잘 받는 타입인지, 녀석은 이 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이전보다도 그 덩치가 더 커진 상태였다.
“그건 맛있어?”
“엄청 맛있다! 많이 먹고 싶다! 근데 날쌔서 잡기 힘들다!”
자신이 잡아온 커다란 물고기, 다른 동물들처럼 내가 외부에서 들여와 연못에 풀어둔 무지개송어 한 마리를 품에 끌어안은 덩치 녀석이 기쁜 듯이 포효를 터트렸다.
그 포효에 파다닥 소리가 나며 주변의 새들이 도망치고, 사슴 녀석이 움찔거리다가 나무에 뿔을 거하게 들이받았다.
“아, 놀랬잖아요!”
“……미안하다.”
내가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슴 녀석이 겁을 상실한 것처럼 덩치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런 외침에, 덩치는 오히려 제 얼굴을 가리듯 앞발로 코를 가리며 사과했다.
그 모습에 정신을 차린 건지, 사슴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서는, 자신이 잡은 송어를 바라보며 침을 뚝뚝 흘리는 덩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먹어도 돼.”
“고맙다!”
덩치 녀석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송어를 크게 베어 물었다.
사람의 팔뚝보다도 더 커다랗게 자라난 녀석이었는데, 그런 송어가 단 한 입만에 사라져버렸다. 남은 거라곤 녀석의 손톱에 걸려 있던 지느러미 조각뿐이었다. 그것도 금세 통- 튕겨내었다.
“너무 맛있다!”
한 입에 송어를 해치운 녀석은 또 먹고 싶다는 듯이 아쉽다는 표정을 가득 담아 연못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녀석의 주둥이를 가볍게 톡 때리고서 연못가로 다가갔다.
“오, 잘 자라고 있네.”
연못 내부에는 내가 풀어놓은 물고기들이 그득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계곡이나 피서로 찾아가는 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자그마한 물고기들은 물론이고, 조금 전 덩치가 먹은 것 같은 송어처럼 커다란 크기를 자랑하는 물고기들 역시 그득하게 있었다.
내가 물고기와는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초능력의 효과 자체는 물고기에게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빠르게 성장하고, 빠르게 번식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었다.
말이 연못이지, 섬의 전체 면적 중에서 7%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커다란 호수에 가까운 것이라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이 섬의 모든 동물들이 물을 마시기 위해 찾는 곳이기도 했고, 덩치처럼 물고기를 먹는 녀석들의 사냥터가 되는 곳이기도 한 연못이었다.
“하루에 몇 마리 정도 먹는 건 괜찮겠다. 그래도 씨가 마를 정도로 싹 잡아먹으면 안 되는 거 알지?”
“알겠다!”
내 말에 알겠다고 외친 덩치 녀석이 그대로 연못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몰아치는 물보라에 재빨리 피한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사슴에게 다시 올라탔다.
“자, 조금 더 둘러보자.”
“출발할게요.”
목덜미에 있는 털을 붙잡으니, 사슴이 빠르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