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01
0200 진화의 섬(1)
은수가 상급의, 식물 계열의 초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우리 가족에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애초부터 은수는 나나 누나에게 초능력이 있든 없든 사랑스러운 아들이었고, 소은이에게는 귀여운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은수에게 초능력이 생겼다고 이제 막 만으로 한 살이 된 아이를 부려먹을 생각은 없었으니 달라질 이유가 없었다.
“다녀오게씀미다! 은수 빠빠이!”
“은수야, 누나 유치원 잘 다녀오라고 해주자.”
“누우!”
우리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다를 것 하나 없이 하루를 시작했다.
누나가 씻는 사이, 나는 은수에게 아침을 먹이고 있었다. 누나가 미리 만들어둔 것을 은수에게 먹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죽처럼 부드러운 음식을 티스푼 같은 수저로 떠, 은수의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우뭄으, 아무으무!”
“그래, 엄마가 해준 거라서 맛있지? 그래도 먹을 때는 말하면 안 돼.”
조금씩 흘러내리는 음식들을 닦아준 나는, 오물거리면서 열심히 이유식을 씹어삼키는 은수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은수가 배부르게 다 먹고 트림까지 하고 나니, 누나가 촉촉한 상태로 욕실에서 나왔다.
막 욕실에서 나온 엄마를 발견한 은수가 해맑은 미소로 파닥거렸다.
그 모습에 입꼬리를 말아올린 누나는 은수를 안아들었다.
“아, 수환아. 오늘 그 섬에 간다고 했었지?”
“응.”
누나의 물음에,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수가 초능력자라는 것으로 인해서 바뀐 것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내 초능력이 강해지고 있다는 소리에도 바뀐 것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내 초능력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강해진 건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에, 섬을 구해서 내 초능력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서해안 쪽으로 약간의 크기가 있는 무인도를 구매해서 그곳을 내 초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꾸미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늘도 늦게 올 거야?”
“글쎄, 자세한 시간은 봐야 알 것 같은데. 왜?”
“어머님이랑, 우리 엄마가 은수도 좀 데리고 오라고 하셔서. 하루 정도 자고 올까 하는데, 너는 어떻게 할래?”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 양가 어머니들이 원하는 사람은 은수였지, 내가 아니었다.
“편하게 다녀와. 애들도 엄마한테 맡겨놓고 친구랑 놀러 가도 되고. 어차피 두 분은 애들 보고 싶은 거잖아. 나는 기왕 가는 김에 하루 자고 오지 뭐.”
“괜찮겠어? 거기 딱히 뭐 없잖아.”
“저번에 섬 구매한 다음에 별장도 지어뒀으니까 문제는 없지. 조금 느리긴 해도 인터넷도 되고.”
내 말에 누나가 반색했다. 최근 들어 은수를 케어한다고 제대로 쉬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쯤 누나의 머릿속에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밤새 수다를 떨 생각이 가득하겠지.
“소은이나 은수도 할머니들 좋아하잖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놀다 와.”
“그, 그럴까?”
“애들을 잘 키우려면 부모도 간간이 쉬어 줘야지.”
설득된 듯, 고개를 끄덕인 누나가 어디론가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시작은 우리 엄마와 어머님이었고, 그다음은 친구들인 것 같았다.
“소은이한테는 말 못 하고 가서 미안하다고 전해줘.”
“응, 응. 다녀와!”
전화를 하던 누나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붕붕 흔들었다. 그 모습에, 은수 역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니, 파닥파닥 휘젓는 것에 가깝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 두 사람의 배웅을 받은 나는 집을 나섰다.
○ ◑ ● ◐ ○ ◑ ● ◐ ○
헬리콥터 같은 비행이 가능한 이동 수단의 구매 욕구가 뿜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끼며 요트에서 내려왔다.
내가 구매한 섬까지 오는 것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먼 거리를 차량으로 이동하고, 바다에서 요트로 이동하니 온 몸이 찌뿌둥한 데다 멀미까지 장난이 아니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자율주행 선박이 합법화되어, 편하게 고급 요트를 타고 올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요트가 아니었으면 자그마한 통통배를 타고 멀미 수준이 아니라 속에 있는 것들을 다 게워내면서 왔을 것이 분명했다.
어쨌거나, 섬에 만들어져 있는 자그마한 선착장에 요트를 고정해두고서 섬으로 진입했다.
수많은 나무들 사이로, 임시로 만들어둔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니 한 마리 동물이 툭- 튀어나왔다. 바로,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동물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는 고라니였다.
“으우어우우어어어억! 인간 왔다!”
갑자기 튀어나온 고라니 녀석은 나를 보고 괴성을 내지르더니, 나를 확인하고 나서야 괴성을 멈추고 반가운 모습을 보였다.
이 녀석은 어떻게 이 섬에 오게 된 건지는 몰라도, 내가 섬을 구매할 때부터 있던 녀석이었다.
어차피 내 초능력이 동물에 관한 것도 있다 보니, 그 부분 역시 알아보기 위해 풀어놓은 상태였다.
“잘 있었어? 나 없는 동안 별일 없었고?”
“덩치한테 소리쳤다가 뒤질 뻔한 거 빼면 없지!”
“……곰한테 깝치는 고라니는 너 말고 없을 거다.”
내가 따로 섬에 들여온 곰에게 시비를 걸었다는 고라니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 생각해 보니 딱히 이상한 건 아닌 것 같았다. 큰 소음을 내며 조명까지 달고 빠르게 달리며 덩치도 더 큰 자동차에 싸움을 거는 고라니였으니, 곰 정도는 애교겠지.
어쨌거나, 며칠 만에 만나는 고라니와 인사를 나눈 나는 곧장 별장으로 향했다. 으리으리하게 지어둔 것은 아니고, 우리 네 가족에 몇몇 손님들을 들일 수 있을 정도의 별장이었다.
“허, 벌써 집을 지어놨어?”
그리고, 별장에 도착한 나는 황당함을 느꼈다.
갈매기들이 별장의 지붕에 둥지를 틀어놨기 때문이다. 3층 규모의 별장이라, 지붕의 끝부분밖에 보이지 않았는데도 여러 개의 둥지가 보이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별장 내부까지 침입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기에, 녀석들을 무시하고 내부로 들어갔다.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별장이라 딱히 먼지가 쌓여 있지도 않았기에, 전기만 올리고서 짐을 풀었다.
“보자…….”
캐리어를 풀어헤친 나는, 캐리어에서 몇몇 짐들을 꺼내 다시금 밖으로 나왔다.
각종 식물 영양제를 비롯한 조경 도구 같은 것들을 챙겨서 나온 것이었다.
“저번에 어디에 해뒀더라?”
밖으로 나온 나는 저번에 왔을 때 했던 작업을 어디서 했는지 떠올리며 천천히 이동했다.
그런데, 이동하던 도중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쿠익쿠익 거리는 듯한 괴상한 소리였는데, 내가 작업하던 곳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 크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윽고 작업하던 곳에 도착한 나는, 흙바닥을 파헤치고 몸통의 절반가량을 지하로 파묻고 있는 멧돼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녀석도 내가 섬을 구매할 때부터 있던 녀석이었는데, 지금 하는 꼴을 보아하니 내가 심어둔 고구마를 노리는 듯했다.
“좀! 끊어! 지라고! 제발! 배! 고프다고!”
“……뭐 하냐?”
“으어억!”
낑낑거리며 바닥에서 고구마를 파내려는 멧돼지의 모습을 바라보다 말을 거니, 녀석이 퍼드득 움직이며 놀란 모습을 보였다.
저돌적이고 공포 따위는 모르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멧돼지가 맞나 싶은 모습이었다.
“그, 그……. 이걸 좀 먹으려고 했는데…….”
스스로도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는 자각이 있는지, 멧돼지는 슬그머니 몸통을 더럽히고 있는 흙더미를 털어냈다.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바닥에 파묻혀 있는 고구마 줄기 일부를 앞발로 끌어당겼다. 마치 먹고 싶으니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고구마? 야, 많이 자랐네.”
왠지 불쌍해 보이는 모습에, 고구마를 심어둔 곳에 다가간 나는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구마가 은수의 머리보다도 더 커다란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멧돼지 녀석이 끊어지지 않는 줄기 때문에 고구마 알맹이만 조금 파먹었음에도 그 정도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무리 반 자른 고구마를 땅에 심어둔 거라고는 하지만, 며칠 만에 어마어마한 속도로 자라난 것이었다.
“배고픈데…….”
그 고구마를 보고 감탄하던 나는 곁에서 눈치를 주는 멧돼지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고구마 몇 덩이를 잘라냈다.
단순하게 당기는 것으로는 멧돼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절대 끊어지지 않으려 했지만, 날붙이를 쓰니 아주 손쉽게 잘려나갔다.
“쿠허헉! 쿠헉!”
고구마 몇 덩이를 꺼내어 녀석에게 내어주니, 정말 배가 고팠던 건지 허겁지겁 고구마를 먹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은수의 머리보다 큰 고구마 몇 개가 멧돼지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잘 먹네.”
“인간이가 온 다음부터 이런 것들이 엄청 맛있어졌거든. 특히 인간이가 직접 심은 것들은 더 맛있다고.”
“내가? 뭐……. 그렇겠지.”
멧돼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초능력이 있으니, 맛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처음부터 관여한 작물의 경우에는 더더욱 맛이 좋을 수밖에 없고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멧돼지에게 일용할 양식을 내어준 나는 그 대가로, 녀석의 노동력을 받기로 했다.
멧돼지를 데리고 섬의 조금 더 깊은 곳으로 향해서, 그곳에 작물들을 심기 시작했다.
음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작물부터 시작해 각종 나무의 묘목이나, 여러 꽃과 풀의 씨앗도 뿌린 것이었다.
그렇게 멧돼지의 도움을 받아 그다지 힘을 들이지 않고 식물들을 심는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지금 심은 거는 파먹지 마라? 대신, 나중에 다 자라면 그때는 파먹어도 돼.”
“기대되는데?”
벌써부터 자라날 작물들에 입맛을 다시는 멧돼지를 뒤로하고, 다이어리를 꺼내들었다.
오늘 날짜와 묘목 등을 심은 날짜를 기록해둔 것이었다.
식물 계열의 초능력자인 은수가 없는 곳에서 내 초능력만으로 얼마나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확인하기 위한 기록이었다.